어린이 새책 책이 할 수 있는 일, 책이 할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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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16:43 조회 6,002회 댓글 0건본문
‘좋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어딘가 다르다’고 말할 때 ‘다르다’라는 말은 어떤 뜻일까. 훌륭한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학살을 저지르기도 하고 엄선된 책을 많이 읽었을 학자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기도 한다. 책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책이 주장하는 방향으로 독자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념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요즘처럼 책을 통한 ‘정보’와 ‘가치관’의 전달 양태가 다른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공공을 통해 교환되는 정보는 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끊임없이 오류가 수정되면서 정확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가치관을 교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훨씬 더 폭넓은 개방성을 지향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점가에는 잠언이나 우화, 묵상록 등이 많이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어지러운 삶의 돌파구를 책에서 찾았고 현자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학부모들은 언제나 자녀에게 지금 자신이 읽고 감명 받은책의 어린이판을 사 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 책 동네에서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비롯하여 명상적 이야기들이 호응을 얻었고 각종 미덕을 강조하는 책이 넘쳐 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떤 한 윤리적 태도에 바로 동의를 선포하기보다는 다양한 타인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책이 늘어났다. 독자들도 정의의 윤리보다는 상황에 따른 배려의 윤리를 헤아리려 하고 관용의 자세를 갖추려고 한다. 책이 건네준덕목의 내용을 끊임없이 다시 통찰하며 윤리를 제안하는 방식이 민주적인가도 살핀다. 관련 서적을 내는 일도 한결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시리즈가 있어 주목했다. ‘인성’이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어린이 책에서 ‘윤리’나 ‘도덕’을 대체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출판 기획자들은 ‘인성’이 도덕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느낌을 주며 어린이가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심리적인 처방까지 포함하므로 시대 변화에 맞는 적절한 개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분류를 살펴보면 ‘자신감’, ‘끈기’, ‘화해’, ‘좋은 습관’, '배려‘의 다섯 항목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담으려고 심사숙고한 것으로 보인다. 각 권은 모두 다른 필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했으며 한 권에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마다 ’어른을 공경하는 배려‘, ’아껴 쓰는 좋은 습관‘, ’목표를 이루는 끈기‘ 등의 집필 목적을 적어 두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편을 제외하면 ‘동화’로 부르기에는 구성과 문장이 미흡하다. ‘20점짜리 시험지를 발견한 엄마가 불꽃마녀로 변신하여 70점이 넘을 때까지 게임을 중지시켰다’는 한 이야기는 결국 그 명령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이 오른 주인공이 ‘게임 점수보다 성적 오르는 재미가 더 커서’게임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불꽃마녀까지 등장시켜서 동화로 쓸 필요가 있을까. 인물의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아’, ‘윽’, ‘우헤헤헤’ 등의 감탄사가 남발하는 문장은 만화 대본을 읽는 것처럼 헐겁다. ‘여자애들은 툭하면 울어서 말이야’ 같은 편견이 담긴 문장이나 ‘여러분은 효자, 효녀가 되는 거예요’ 같은 명령하는 말이 여과 없이 쓰이는 점 등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착한아이’, ‘나쁜 아이’ 등의 단정적인 낱말이 직접 나오는 장면이 많은 것도 이야기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데 한몫했다. 전체 작품가운데 윤리적 주제보다는 심리적 처방을 다룬 몇 편이 완성도가 비교적 높았다. 1권 ‘자신감’ 편의 「그날 밤 용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는 동화라고 부를 수 있는 참신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훨씬 먼 미래에 대한 기대에 그쳐야 옳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눈앞의 어린이를 변화시키는 책을 만들겠다는 섣부른 생각은 위험하다.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 진지한 주제를 담겠다는 기획도 ‘만화’가 아니라 ‘동화’일 때는 신중한 창작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충분히 실용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책을 통한 ‘정보’와 ‘가치관’의 전달 양태가 다른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공공을 통해 교환되는 정보는 기술과 통신의 발달로 끊임없이 오류가 수정되면서 정확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가치관을 교류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훨씬 더 폭넓은 개방성을 지향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점가에는 잠언이나 우화, 묵상록 등이 많이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어지러운 삶의 돌파구를 책에서 찾았고 현자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학부모들은 언제나 자녀에게 지금 자신이 읽고 감명 받은책의 어린이판을 사 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 책 동네에서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비롯하여 명상적 이야기들이 호응을 얻었고 각종 미덕을 강조하는 책이 넘쳐 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떤 한 윤리적 태도에 바로 동의를 선포하기보다는 다양한 타인의 의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는 책이 늘어났다. 독자들도 정의의 윤리보다는 상황에 따른 배려의 윤리를 헤아리려 하고 관용의 자세를 갖추려고 한다. 책이 건네준덕목의 내용을 끊임없이 다시 통찰하며 윤리를 제안하는 방식이 민주적인가도 살핀다. 관련 서적을 내는 일도 한결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시점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인성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시리즈가 있어 주목했다. ‘인성’이라는 말은 언제부터인가 어린이 책에서 ‘윤리’나 ‘도덕’을 대체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출판 기획자들은 ‘인성’이 도덕보다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느낌을 주며 어린이가 부딪히는 문제에 대한 심리적인 처방까지 포함하므로 시대 변화에 맞는 적절한 개념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이 시리즈의 분류를 살펴보면 ‘자신감’, ‘끈기’, ‘화해’, ‘좋은 습관’, '배려‘의 다섯 항목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린이들이 생활 속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담으려고 심사숙고한 것으로 보인다. 각 권은 모두 다른 필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작업했으며 한 권에 네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마다 ’어른을 공경하는 배려‘, ’아껴 쓰는 좋은 습관‘, ’목표를 이루는 끈기‘ 등의 집필 목적을 적어 두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몇 편을 제외하면 ‘동화’로 부르기에는 구성과 문장이 미흡하다. ‘20점짜리 시험지를 발견한 엄마가 불꽃마녀로 변신하여 70점이 넘을 때까지 게임을 중지시켰다’는 한 이야기는 결국 그 명령을 따라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이 오른 주인공이 ‘게임 점수보다 성적 오르는 재미가 더 커서’게임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결말로 이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굳이 불꽃마녀까지 등장시켜서 동화로 쓸 필요가 있을까. 인물의 행동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아’, ‘윽’, ‘우헤헤헤’ 등의 감탄사가 남발하는 문장은 만화 대본을 읽는 것처럼 헐겁다. ‘여자애들은 툭하면 울어서 말이야’ 같은 편견이 담긴 문장이나 ‘여러분은 효자, 효녀가 되는 거예요’ 같은 명령하는 말이 여과 없이 쓰이는 점 등은 짚고 넘어갈 대목이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착한아이’, ‘나쁜 아이’ 등의 단정적인 낱말이 직접 나오는 장면이 많은 것도 이야기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데 한몫했다. 전체 작품가운데 윤리적 주제보다는 심리적 처방을 다룬 몇 편이 완성도가 비교적 높았다. 1권 ‘자신감’ 편의 「그날 밤 용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는 동화라고 부를 수 있는 참신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책을 통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훨씬 먼 미래에 대한 기대에 그쳐야 옳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눈앞의 어린이를 변화시키는 책을 만들겠다는 섣부른 생각은 위험하다.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 진지한 주제를 담겠다는 기획도 ‘만화’가 아니라 ‘동화’일 때는 신중한 창작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이것이 충분히 실용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