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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같은 시각에 우린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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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2 22:49 조회 7,02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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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보는 태양은 ‘현재의 태양’이 아니라 8분 전의 태양이다. 태양빛이 지구에 닿기까지 8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EBS <지식채널e>)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과거의 태양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3차원이 아니라‘3차원의 공간과 일차원의 시간이 더해진 4차원’이란 말이 뇌리에 깊숙이 들어왔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공간’내에서는 8분 전의 태양이 ‘현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과학의 힘을 빌리더라도 현재의 공간에서는 태양의 미래나 과거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 속에 동시에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은, ‘지금’이라는 시간이 ‘여기’라는 공간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임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시간’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공간’ 속에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지닌 가장 중요한 함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시간의 네 방향』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이 가진 관념성과 철학성에 공간의 이야기를 부여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유럽의 한쪽 오래된 도시 한가운데 600전에 세워진 시계탑이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은 시계탑 광장의 동, 서, 남, 북에 있는 집에서 가장 잘 보인다. 그림책은 창밖으로 시계탑이 보이는 동쪽 집 부엌, 남쪽 집 공방, 서쪽 집 아이들의 방, 북쪽 집 거실에서 같은 시각에 일어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1500년에서부터 2000년까지 100년마다 한 번씩 각 네 방향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낯선 듯하지만 친숙하다. 하지만 시계탑이 가리키는 시간의 네 방향과 그 이야기들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넘기면 어려운 퍼즐을 맞추듯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동쪽 집 부엌에서 축제나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시간을, 남쪽집 공방에서 무언가를 만들면서 보내는 시간을, 서쪽 집 아이들의 방에서 아이들을 염려하는 부모의 시간을, 북쪽 집 거실에서남녀의 사랑의 시간을 보여준다. 콜라주 형식으로 된 일러스트는 낯설면서 익숙하게 각 시대별 특징과 생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같은 시각 다른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변화’와 ‘영속성’을 발견한다. 동쪽 집 부엌에서 과거에 요리하는 생선이 현대에도 요리되거나 예전에 쓰이던 반죽 그릇이 100년이 지난 다음에도 쓰이고 있는 것은 영속성이다. 반면, 벽면에 붙은 찬장의 모습과 사용하던 그릇은 변화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한때 찬장의 위치가 벽에서 아래로 내려왔다가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기도 한다.

남쪽 집 공방에서 책표지에 쓰일 가죽을 가져다주던 사람이 100년 뒤 가죽을 가져다주는 사람과 닮아 있고 천둥소리에 놀란 개가 100년 뒤 폭죽 소리에 놀란 개로 재현되고 있는 점이나 모두들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영속성과 만드는 것이 책표지, 신발, 시계, 책의 다양성으로 나타나는 점에서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서쪽 집 아이들의 방에서 침대와 침대 머리위의 그림,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과 몇 백 년 뒤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닮은 점이나 요람, 증조부가 가지고 놀던 인형, 증조할머니가 가지고 놀던 종이극장, 연의 등장에서 영속성을, 침대 위 그림 내용의 변화, 가구의 변화, 어렸던 아이들의 성장을 발견할 수 있다. 북쪽의 거실에서 두 남녀가 서 있는 위치와 자세, 사랑의 고민, 열쇠 등에서 영속성을, 거실이 호텔로, 1700년 거실의 화분이 몇 백 년의 흐름을 거치면서 자라고 꽃봉오리를 맺어 활짝 피우는 장면에서는 변화와 성장, 화해, 결실을 발견할 수 있다.

네 방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다른 듯하면서 공통점이 있다. 네 집 각기 다른 모양의 창밖으로는 항상 광장의 시계탑이 보인다. 그리고 같은 시각을 가리킨다. 다른 일상을 보여 주는 듯하지만 같은 시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700년의 공방에 놓여 있는 모래시계는 1500년의 거실에 놓여 있던 바로 그 모래시계였음을 알게 된다. 관련 없는 듯 보였던 이야기들이 시간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똑같은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빨리 흐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치 느리게 가요. 같은 시각에 어떤 사람은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죽어요.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각에 인생을 바꿀 만한 중요한 약속이 있어 서두르고,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각에 빵이 타지 않게 화덕에서 꺼내야 하지요. 어떤 사람에게 그 시간은 그냥 느끼지도 못한 채 지나가버리기도 해요.’_9쪽

엎지른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물리 현상은 시간의 화살을 되돌리면 성립이 안 되는, 비가역적인 경우가 있다. 그 경우 시간의 방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영국의 천문학자 아더 에딩턴 경은 이렇게 비가역적인 시간의 방향성을 두고 ‘시간의 화살’이라고 불렀다.

시간의 화살은 방향을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강물처럼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다시 미래로 흘러간다. 강물이 높은 산중에서 시작하여 넓은 바다에서 그 끝을 보는 것처럼,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생각할 때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서쪽 방 우주 사진 아래 침대에 누운 천문학자가 꿈인 카츠프렉처럼…….

돌고 도는 시계바늘처럼 변화된 모습으로 다른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과거의 시간과 삶의 모습은 닮은 점이 있다. 하지만 결코 그 기억과 시간은 같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아름다우면서 기이하기도 한 그녀의 그림책 『시간의 네 방향』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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