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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영원한 친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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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7 15:38 조회 7,00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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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유년기에는 할머니에게 어리광만 부리는 철없는 아이로, 아동기에는 할머니에게 반항하는 나쁜 아이로, 청년기에는 점점 기억력이 나빠지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을 지니게 되는 감성적인 청년으로 그렇게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참 예쁘셨던 것 같다. 얼굴도 계란형에 작고, 긴 머리를 뒤로 묶어 비녀를 꽂고 있는 모습이 참 고우셨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과 손이 점점 쭈글쭈글해지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랑 있기 싫어./할머니 불쌍해.’ 이렇듯 이중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많았다. 점점 커 가면서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을 때쯤 할머니는 병원에서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가끔씩 집에 오실 때는 내가 누군지 잘 못 알아보시곤 했다. 이름을 얘기해 주고 손을 잡아 주고 해야 가끔 기억을 해 주시곤 했다. 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약이었다. 조금만 머리가 아프셔도, 허리가 아프셔도 무조건 피로회복제를 찾으셨다. 가끔 손자에게도 한 모금씩 주시고 그야말로 약 중독이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점점 집에 오시는 시간이 줄어드셨고, 집에 불도 지르셨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치매판정을 받으시고 몇 년 되지 않아 결국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 좀 더 사랑스럽게 대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렇게 나의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할머니의 사라지는 기억』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마존에서였다. 한참 책을 고르고 있는 와중에 책 표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내용은 잘 몰랐지만 이미지만으로 첫눈에 반한 그림책이었다. 그림만으로 얼핏 치매에 관련된 책이 아닐까 추측했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그랬다. 프랑스 그림책이었는데 에이전시 측에 문의해 보니 아직 우리나라와는 계약이 되어 있지 않은 출판사였다. 그래서 계약하는데 있어서 조금 주춤하는 듯 했다. 에이전시 담당자에게 꼭 하고 싶은 책이니 잘 전달해 달라고 해서 몇 주간의 조율 끝에 계약을 끝마칠 수 있었다.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림책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번역 글이 들어오고 작업본이 들어와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보니 더할 나위 없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해서 제작에 들어가고 『할머니의 사라지는 기억』이라는 타이틀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림책 내용은 할머니의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손녀는 애처롭게 느끼며 지켜보는 것이다. 하지만 손녀는 결코 슬퍼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지난날의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다시 할머니에게 말해 주면서 공감해 가는 손녀의 일상은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기억의 일부분을 생생하게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손녀의 물음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치매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네 할머니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어느 나라나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이런 할머니지만 손녀는 싫은 기색 하나 없다. 옆에서 돌봐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손녀는 행복을 느낀다.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가족이 많이 드물다. 그래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예전만 못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사라지는 기억』을 읽다 보면 멀리 계시지만 꼭 내 곁에 계신 것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꼭 조금은 슬픈 그림책을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그림책은 치매에 관련된 그림책 같지 않게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다. 어쩌면 다른 그림책보다 더 긍정적이고 더 밝은 그림책이다. 잘 표현된 글 못지않게 그림 또한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만으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세밀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이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한 번쯤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따뜻하고 포근한 고향 하나씩은 담고 산다. 힘들 때는 고향의 추억을 조금씩 꺼내 그 향기로 나를 무장하고 상처 입은 날이면 마음의 고향으로 들어가 푹 묻히기도 한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의 고향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품을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은 조건 없이 무한하고, 노련함과 여유로움에서 오는 삶의 방식은 아이들에게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할머니의 사라지는 기억』이 우리네 마음 한 곳에 있는 고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책이라는 것을 이 짧은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담스러운 원고청탁에서 벗어나 다시 한번 할머니에 대해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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