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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끝나지 않은 야만, 전쟁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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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11 10:09 조회 5,8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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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정찰병』
월터 딘 마이어스 지음|앤 그리팔코니 그림
이선오 옮긴|북비|40쪽|2011.12.05
10,000원|높은학년|미국|반전, 역사

흑인 소년이다. 겁먹고 긴장한 눈동자가 표지의 왼쪽 3분의 1 위치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총을 든 오른손과, 어색하게 주먹 쥔 왼손이 떨고 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 책장을 넘기기가 두렵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은 강국의 패권주의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할 수 있는지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베트남의 입장은 명백히 민족해방전쟁이었으나, 미국의 목적은 달랐다. 당시 미 당국은 기업가 집단이 공모한 반공주의를 고조시켜 노동조합의 핵심 인물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했다. 그렇게 기업을 지켜주고, 미력해진 노조마저 견제하기 위한 본보기로 무력을 동원해 동남아시아의 공산화를 막으려던 것이 미국의 명분이었다.

파병을 시작한 1961년 당시, 신병들은 기본 전투 교육만으로는 전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사지로 내몰려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채 총을 들었다. 징집된 청년 중 80%는 블루칼라, 즉 노동자들이었다. 정치가, 권력가, 재력가의 아들들은 징집에서 제외되었고, 대학생들은 미뤄졌다. 간혹 파병된 대학생들은 대부분 장교였다. 통계에 따르면, 1970년 당시 전사한 사병들 중 4분의 1이 흑인이었고 그들 대부분이 대도시 빈민가 출신이었다. 본질적으로 계급과 인종차별적 문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 첫 장을 넘긴다.

면지는 온통 검은색이다. 그림책 면지에 검은색이라… 마음의 각오를 해야겠다.
거친 콜라주 기법이 읽는 속도를 늦춘다. 인물들의 움직임이나 상황은 어떤 묘사도 없이 건조한 일상 언어를 썼다. 화자의 상태를 묘사한 문장은 이야기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만들고 그것이 뜻하는 바를 멈추어 생각하게 만든다. ‘내 숨소리가 아침 공기처럼 부드러워진다.’거나, ‘날씨가 덥다. 하지만 등을 타고 내리는 땀은 차갑다.’ 등을 읽다보면 그 느낌을 떠올리게 되어 전장에서 맞는 순간의 긴장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우리는 움직이기가 두렵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더 두렵다.

나이 많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은 깊고 키를 덮는 갈대밭은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베트남 땅에서 정찰병은 먹잇감에 총알받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적의 위치를 알려 정찰의 임무를 다한 후 아군을 기다리다 아군 폭격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소년병은 긴장으로 온몸이 떨리고 공포는 극에 달한다. 어디에 묻혔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지뢰와 언제라도 날아올지 모를 총탄이 두려워 한 걸음을 떼기조차 어렵다.

월터 딘 마이어스는 미국 흑인문학의 대가라 할 수 있다. 1937년생인 작가가 할렘가에서 거칠게 자라나 17세가 되던 해는 미국이 막 베트남 상황에 개입할 즈음이었다. 그해 생일에 입영하여 3년을 복무했는데, 스스로 ‘우둔하고’, ‘성장이 멈춘’ 시기라고 말한다. 그가 전쟁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사건은 1968년 당시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이복동생 웨인의 죽음이었다. 1968년은 전 세계적인 저항운동과 반란의 움직임이 일어난 해였다. 베트남은 음력 설인 구정을 기해 일제히 공격해왔고 미국은 집중 포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엄청난 반전 움직임이 일었고 군대 안에서는 사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병들은 자신들이 노동 계급이었음에도 바닥까지 처참한 베트남 농민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유린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군은 철수했고 사실상 패배했다.

적.
검게 탄 얼굴에 나이의 강이 깊게 패인 할머니.
오랜 기억으로 눈이 무거워진 할아버지.
그리고 아기들, 아기들.
흙바닥 위에서 울고 있는 꼬마 적들.
먼지를 뒤집어쓴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꼬마 적들.

그는 가혹한 상황에 놓인 도시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소년의 생활에 대한 책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그려낸 『Falling Angel』(국내 미출간)이나, 왕따 현상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역설한 『Shooter』(국내 미출간), 그리고 살인 혐의로 기소된 십대의 이야기 『몬스터』(창비, 2008) 등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될 만한 이야기다.
베트남전은 끝났지만 지구상에 전쟁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소년 정찰병』이 미국에서 2002년 5월에 출간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2002년 초,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막 전쟁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이라크전도 끝났지만 흑인 소년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미국의 야만은 신자유주의경제 이론을 앞세운 세계화 전략으로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얼굴은 바뀌었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
적도 지금 편지를 쓰고 있을까?
나는 너무 피곤하다.
나는 이 전쟁이 정말 너무 피곤하다.

창밖은 붉은 하늘과 폐허가 된 숲, 고향에 부칠 편지를 쓰는 병사의 등 뒤에 황폐한 풍경이 있다. 황폐해진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책을 덮으면서 이 어린 정찰병과 함께 베트남 남쪽 하노이에서 멀지 않은 정글을 빠져나와 힘들게 살아남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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