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생명 사랑 녹아든 자연과 우정, 모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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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6-11 10:00 조회 7,895회 댓글 0건본문
『바람의 눈을 보았니?』
질 르위스 지음|해밀뜰 옮김|276쪽
2011.11.21|11,000원|높은학년|영국
동화
이 작품(원제: Sky Hawk)에는 외국 영화 속에서 봄직한 강이 흐르고 호수, 계곡, 숲과 양떼들이 있는 농장이 스코틀랜드의 안개 속에 끝없이 펼쳐진다. 칼룸은 수백 년 동안 이어온 농장의 아들이다. 여자아이 아이오나는 정신병자로 놀림받는 할아버지와 산다. 그래서 친구가 없지만 동물들과 자연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아이다. 맨손으로 송어를 잡을 수도 있고, 나무 위를 손쉽게 오르기도 한다. 칼룸네 호수에 사는 물수리 ‘아이리스’ 역시 아이오나가 먼저 발견한다. 아이오나는 물수리가 오고 있음을 직감으로 안다.
“난 그냥 알아. 느껴지거든. 너도 느끼고 싶음 네가 새라고 상상해봐.”
“새가 되어봐. 바람을 느껴봐, 칼룸. 의심하지 말고 바람에 너를 맡겨봐. 네 모든 것을 말이야.”
나는 여전히 아이오나가 이상한 아이로 보였다. (중략) 나는 내가 새라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푸른 하늘 위로 높이, 높이, 더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어느 순간 아주 빠른 속도로 나는 하늘을 맘껏 날아다녔다. 나무 위로, 거대하고 푸르른 산맥을 넘어, 차가운 바람 사이를 가르며 태양의 아름다운 빛을 한껏 머금을 수 있는 곳까지 날았다. (48~ 쪽)
칼룸은 아이오나로부터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며 성숙된 생명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이오나는 아이리스를 지켜줄 것을 부탁하고 뇌수막염으로 죽게 된다. 아이오나의 죽음으로 칼룸은 아이리스와 더욱 하나가 됨을 깨닫는다.
새의 눈 속에 내가 있고, 내 눈 속에 새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아이리스는 아이오나의 죽음을, 아이오나가 나에게 한 부탁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가만히 말하는 듯했다. (133쪽)
동화 속 생명 사랑의 정신이 아름답다. 생명 사랑은 가슴속에 묻은 친구와 멀리 아프리카의 친구까지 알게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물수리가 추적이 안 될 때 칼룸은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낙심한다. 아이오나가 죽은 것도, 물수리의 위치를 놓친 것도, 자기 탓인 것만 같다. 아이리스를 찾기 위한 칼룸의 노력은 아프리카 감비아의 제네바란 소녀에게까지 이어져 생명 사랑의 숭고한 정신이 한데 모아진다.
칼룸, 아이오나, 제네바로 연결되는 우정의 축, 스코틀랜드에서 감비아까지 이어지는 공간적 축. 두 개의 축을 아우르는 물수리 아이리스와 생명력 넘치는 자연이 씨줄, 날줄로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낸다. 이런 커다란 걸개를 바탕으로 아이오나의 죽음, 아이리스의 실종으로 알게 된 감비아 소녀 제네바, 제네바의 아픈 다리를 고쳐주기 위한 모금운동, 현명하고 사랑이 많은 가족, 친구들과의 우정, 다툼의 이야기들이 수백 년 내려온 농장을 배경으로 촘촘하게 펼쳐진다. 여러 이야기가 중첩돼 자칫 산만할 듯하지만 치밀한 짜임, 군더더기 없는 묘사와 서술로 엮어내는 작가의 문학적 역량은 가슴 찡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작가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책의 백미는 물수리 아이리스가 겨울을 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아프리카 감비아까지 이어지는 공간적 축의 이동이다. 아이리스에게 달아 둔 GPS(위치추적장치)로 구글 어스에 아이리스의 코드를 입력하면 현재 어느 지역, 어느 나무에 앉아 있는지도 알 수 있다. 방향, 고도, 속도, 그동안 날아간 총 거리가 컴퓨터 화면에 뜬다. 컴퓨터, 구글 어스의 검색…. 컴퓨터의 순기능이 이렇게 잘 묘사된 작품이 있을까? 구글 어스를 통한 추적 말고도 칼룸은 컴퓨터를 활용하여 마지막 추적지인 감비아의 맹글로브 숲 인근의 관공서, 여행사, 호텔, 동물보호단체, 회사, 새를 연구하는 연구소, 심지어 감비아 정부에도 이메일을 보낸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컴퓨터는 마치 재앙이나 되는 듯하다. 컴퓨터 사용 시간을 정해주기도 하고, 어떤 행동에 대한 벌 중에는 ‘컴퓨터 사용 금지’가 들어간다.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부모는 집에 아이 혼자 두기가 불안하다. ‘틀림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하고 있겠지’ 하고 자조 어린 말을 내뱉는다.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아이와 부모와의 전쟁. 컴퓨터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염려하는 부모 마음은 이해하나 문명의 이기 중 이기인 컴퓨터를 어찌 멀리할 수 있을까?
지은이는 수의학을 전공하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야생동물에 대해 배우고 경험했는데, 특히 야생동물과 소통하고 사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바람의 눈을 보았니?』는 물수리와의 실제 일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작가의 삶과 경험이 그대로 투영되어 물수리와 아이들, 가족,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아프리카 감비아까지, 구글 어스를 통해 물수리를 추적하는 재미와 모험, 긴장감 등 사고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다.
작가의 진솔한 삶을 그대로 풀어내고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서술과 치밀한 짜임의 문학적 장치를 더하여 만들어낸 작품은 누구에게나 사랑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생활동화의 소재에서 벗어나 굵직굵직한 소재로 어린 독자들이 꿈을 실현하는 데 굳건한 밑바탕이 될 이 같은 동화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