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청소년 문학 깊게 읽기]네 안에는 빛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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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5 22:37 조회 5,824회 댓글 0건본문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
김이윤 지음_창비_227쪽_2012.03.23_9,500원
중학생_한국_소설
두 달 전 시아버님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돌아가셨다. 암 발병 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병의 완치를 바랐던 가족들의 노력은 말로만 들었다. 결혼을 한 지 일 년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시아버님의 병은 서서히 진행됐고 마지막에는 암이 온 몸으로 전이되어 움직일 수도 없고 물 한 모금 마시지도 못하다가 한 말씀 남길 기력도 없이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다른 가족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슬픔이 컸지만 생각보다 가족들은 시아버지의 죽음을 빨리 받아들이고 감정을 추스렸다. 차분히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남편의 모습에서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오랜 투병과정을 지켜보며 시아버님의 고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젠 인생의 삶과 죽음을 받아들일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어려서는 부모의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청소년기에 부모와 정서적으로 온전히 분리되어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이 사람의 모든 인간관계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러니 청소년기에 부모와의 관계는 무엇보다 중요한데, 생로병사 앞에 인간의 힘은 무력하기만 하다. 언젠가는 이별하게 되어 있지만, 이별이 더 빨리 온 것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청소년기에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주인공 여여의 엄마도 암이다. 하지만 여여는 열일곱, 엄마는 마흔다섯이다. 엄마와 둘이 그러나 아빠는 없다. 아니 누군지도 모른다. 여여는 젊은 엄마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이 이럴까,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엄마는 암 진단을 받은지 58일 만에 시골로 요양을 가고 여여는 혼자 살게 된다. “딸 하나 데리고 사는 미혼모라면 더 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약하나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엄마가 싫다. 화가 난다.”
(44~45쪽) 이렇게 속울음을 울어도 보지만 여여는 열일곱, 한창 공부할 나이라 학교에도 가야 한다. 그리고 심각한 일이 생기면 엄마가 사용하는 분류법으로 이번 사건을 분류해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이번 일은 내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내가 관여해 봤자인 남의 일인가. 그도 아니면 오직 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운명적인 일인가. 그래, 이건 내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의 일도 아니다. 이건 운명적인 일이야. 신의 영역인 일.(19쪽)
친구 세미 엄마의 잔소리마저도 부러워하는 평범한 소녀 여여는 슬픔과 명랑사이에서 방황하지만, 여여가 슬픔에 젖어 삶의 의욕을 잃거나 일탈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기우다. 혼자서 밥도 잘 챙겨 먹고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를 직접 찾아 나서면서 내 반쪽의 근원을 찾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여여의 존재를 모르는 아빠의 행복한 가족을 본 후 엄마와 아빠의 사랑은 이미 지난 과거로 인정하게 된다. 뮤지컬 <맘마미아>의 여주인공 소피가 아빠를 찾아 벌이는 소동이 떠오른다. 조용히 첫사랑이 찾아와 마음을 두근거리게도 한다. 아픈 엄마 옆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여여는 온전한 사랑을 할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부모와의 이별을 당차고 지혜롭게 이겨내는 과정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두려운 것은 두려움에 눈을 감는 것이다. 여여가 두려움을 끌어안고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엄마는 미혼모로서 혼자서 딸을 낳아 키운 갈등과 혼란 속에서 딸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있지만 그누구보다 영원한 사랑을 전해준다.
“그래, 네 안에는 빛이 있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모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빛이 답을 가르쳐 줄 거야. 어둠 속에 있을 때도 빛은 너를 이끌어 주고, 네가 밝음 속에 있을 때도 반짝이면서 잘하고 있다고 알려 줄 거야.”(194쪽)
두려움을 없애는 법은 가짜다. 없앤 것은 쉽게 나타난다. 두려움을 받아들여 보자. 두려움을 끌어안고 당당하게 바라보면 내면의 빛이 길을 밝혀 줄 것이다.그때 비로소 두려움에게 인사하는 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산산조각난 항아리를 다시 붙이려 하지 말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 산산조각이 나면 /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산산조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