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어린이 문학 깊게 읽기]마음의 눈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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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1-05 16:52 조회 5,992회 댓글 0건본문
『연두와 푸른 결계』
김종렬 지음|백대승 그림|다림|272쪽|
2012.06.11|10,000원|높은학년|한국|동화
산에도 들에도 나무에도 돌무더기에도 이야기가 있다. 인간은 살아오면서 만물에 다 생명이 있음을 알고 의미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힘을 믿으며 살았다. 그 자연관은 우리 일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 있다. 요즘도 조그만 집을 한 채 지어도 바람 잘 통하고 볕 잘드는 곳, 물 빠짐이 좋은 곳을 택한다. 이 중 불가피하게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비보풍수裨補風水라 하여 이를 보완하는 경험적 지혜를 쓰기도 한다. 이를 섣불리 미신이니 비과학의 소치라 말할 수 있을까? 조상들의 자연관을 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인간 편의만을 좇는 요즘 우리들에게 경계의 바람을 일으키는 동화가 나왔다.
실제로 1997년 11월 경복궁 경회루 연못 청소를 하던 중에 북측하향정 앞 연못 바닥에서 청동 오조룡五爪龍이 발견되었다. 경회루건축원리를 기록한 『경회루전도』에 따르면 ‘경회루의 물로 궁궐 내불기운을 막고자 구리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경복궁의 모자라는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비보풍수를 쓴것이라 생각된다. 경회루 구리용은 동화 『연두와 푸른 결계』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일이기도 하다. 용은 물을 다스리기도 하지만 불을 다스리기도 한다고 했다. 더욱이 복도 주고 재앙도 준다는 용의 양면성이 동화 곳곳에 녹아 있다.
연두는 열두 살 여자아이다. 역사학자인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동생 연우와 산다. 답사를 떠난 할머니가 석 달째 소식이 없다. 동생 연우 생일 선물을 사러 찾아간 종로통 서점에서 한복 차림의 또래 여자아이 덕이를 만난다. 묘한 이끌림으로 종묘를 찾게 되고 신과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공간이라는 푸른 결계를 넘어 신의 공간으로 들어서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해치와 너구리 모루, 황룡대장군을 만나면서 연두는 황당한 상황들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그들이 내어놓는 세 가지 과제를 거부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문제를 알아내고 풀어내면서 천, 지, 인 세 가지 패를 얻는다. 할머니와 함께 했던 고궁 답사의 기억과 할머니가 쓴 책 『마음으로 읽는 우리나라 궁궐이야기』가 그 열쇠가 되어준다.
세 가지 패를 얻었으니 이제 그 패를 쓰면서 벌어질 일들이 흥미진진하다. 동서남북을 지켜준다는 사방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과 사람들이 나이별로 누구나 갖고 있는 열두 띠 수호신들이 마구 살아 움직인다.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의 경계를 지키며 살려는 신들과 천박한 인간 세상을 응징하려는 오조룡을 중심으로 신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알고보니 여의주를 탐하고 인간 세계를 응징하려는 분노의 오조룡은 의연하기만 한 황룡대장군의 무의식, 즉 또 다른 어두운 마음이었다. 이 싸움을 잠재우고 말리는 일을 인간의 아이 연두가 맡게 된 것이다. 열쇠는 할머니에게서 받아 걸고 다니던 연두의 돌조각 목걸이에 있었다. 극적인 상황에 푸른빛을 내며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목걸이가 여의주 조각이었다니… 덕분에 연두는 오조룡 봉인에 성공한다.
“두려움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거야. 마음의 눈을 뜨게 되면 어떤 두려움도 너를 흔들지 못할 거야.” (118쪽)
연두는 특별한 능력을 갖지 않았음에도 자신 앞의 문제에 용감하게 대처하고 삶의 일시적 역경에 흔들리지 않는 긍정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어! 그러고 보니 이야기 전체에 옛이야기의 특질이 살아 있다. 세 가지 고난 극복을 통해 세 가지 해결책을 얻어내는 일은 제쳐 놓더라도 판타지 세계와 현실 공간은 같은 세계에 있다는 일차원성, 시공간의 구체성 등이 그렇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주변 현실 공간을 터무니없이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판타지 공간으로 끌어들인다. 환상적인 형태로 인간의 핵심 문제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보게도 한다.
『연두와 푸른 결계』는 우리가 수만 년 살아오면서 지키고 있던 자연에 대한 외경, 그 본성을 들여다보자고 한다. 날이 갈수록 경박해지는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 잊고 지내던 그 마음을 다시 찾아들자고 한다.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꺼내어 도닥이자고도 한다. 신들의 마음이라 함은 결국 인간의 마음 아니었던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면 지금도 경복궁 옆 고궁박물관 전시실에 갇혀 있는 오조룡의 용트림이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