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어린이 인문 깊게 읽기]아이들이 울고 웃으며 판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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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3-12 21:40 조회 6,771회 댓글 0건본문
『판소리 조선 팔도를 울리고 웃기다』
김기형 지음|강전희 그림|문학동네어린이|52쪽
2012.10.25|12,000원|가운데학년부터|한국
전통문화
판소리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또 나왔다.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된 다음부터 이런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는데 책들의 내용이나 수준이 거의 엇비슷하다. 듣자하니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한 번 정도는 판소리를 언급하는 모양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판소리가 명창과 고수가 벌이는 공연이며, 여기에 귀명창이라고 하는, 소리를 제법 알아듣는 청중이 어우러져 펼쳐진다는 것과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로 다섯 마당의 소리판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도 상당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판소리를 ‘전통문화 즐기기’라는 제목의 시리즈 중 하나로 소개하는 책이라면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게 하고 즐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공자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판소리를 좋아한다면, 판소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하물며 판소리를 즐기는 아이들이 있다면 우리의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데 대해서 자긍심을 가지라는 주문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되겠다. 아쉽게도 나라 밖에서는 그토록 소중한 유산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는 판소리가 우리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오페라나 뮤지컬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에 비해 소리판을 찾아 창을 즐기려는 사람의 수가 너무 적지 않는가? 우리들의 문화생활 속에 판소리의 입지가 이런 만큼 이 책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판소리는 한자말을 많이 사용하고 독특한 발성 때문에 처음 듣는 사람은 얼른 알아듣기 어렵다. 공연장에서 사설집을 구해 글로 적힌 걸 보면서 창을 듣는다면 이미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고전이라 한결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풍자와 해학에 어느새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예를 들어 뺑덕어미가 등장하는 대목이라면 뺑덕어미의 생김새는 어떻고 심성은 어떠한지, 차림새며 몸놀림을 눈앞에 보듯 실감나게 표현하고 약간은 과장된 묘사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책에서는 33쪽에 “판소리의 문학성”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언급했는데 재미있는 여러 대목을 좀 더 풍부하게 실어서 독자의 욕구를 자극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합죽선을 활짝 펼쳐 쥔 소리꾼의 실루엣이 화면에 커다랗게 그려진 반면 청중들의 표정이 살아있는 표지그림은 조선 팔도를 울리고 웃긴 소리판의 분위기를 매우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다만 좀 더 세심하게 그림을 보면 흥보가를 보여주는 그림에서 탈을 쓴 도깨비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은 것, 춘향가에서 그네의 높이가 너무 높아 공중그네처럼 보이는 점, 심청가에서 심청이 인당수로 몸을 던지기 전 뱃머리에 서있는 극적인 장면을 강조하려다 보니 배와 인물의 비율이 왜곡되게 그려진 점이 거슬린다. 요즘 우리 소리판은 거의가 여자명창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 같은데 책 속에는 반대로 남자명창이 대부분이고 단 한 장면만 여자명창으로 그려져 있다. 점점 여자명창만 늘어가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아쉬움일까?
KBS 제1FM 라디오방송에서는 오전 11시와 오후 5시에 우리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가끔 이 방송 중에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가장 극적인 대목들을 들을 수 있다. 서울 남산자락 아래의 국립극장에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판소리완창무대가 펼쳐진다. 전주 대사습놀이가 해마다 펼쳐지고 그 대회를 통해 대통령상을 받은 명창들이 이 무대에 선다. 전주와 고창에는 판소리 박물관이 있다. 이 책에는 이렇게 판소리를 접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 없다는 것도 아쉬웠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먹어 봐야 맛을 안다고 했다. 부록으로 판소리 중 재미있는 대목을 CD에 담아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여간 이 책을 읽는다고 판소리를 더욱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