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세상에 신선이 없다 누가 말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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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4-21 22:42 조회 6,170회 댓글 0건본문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
정창권 지음ㅣ김도연 그림ㅣ사계절출판사
156쪽ㅣ2012.12.20ㅣ11,000원
가운데학년부터ㅣ한국ㅣ인물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 후기 사회 변동은 사람들의 의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상업이 발달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부를 축적한 평민이 생겨나고 교육이 보급되면서 서민들 가운데서도 학식을 갖춘 사람들이 늘어나 서민들의 문예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그 무렵 사람들에게는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소설들이 많이 읽혔을 뿐만 아니라 한글 소설들이 보편화되어 크게 유행했는데 어떤 경로로 책을 구입하고 판매할 수 있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이 책은 조선 후기에 한양 거리를 누비며 책을 팔았던 기이한 책장수 조신선에 관한 이야기로 당시 책의 역사와 문화,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어린이 역사책이다. 겉표지를 보면 장대한 체구에 불그스레한 뺨, 푸른 눈동자에 붉은 수염까지 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사람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이 ‘조’씨라 ‘조생’이라고 불렸던 그는 영조와 정조, 순조 임금 무렵에 책을 팔기 위해 한양 저잣거리를 누비고 돌아다녔다고 하는데 호기심을 안고 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당시 한양 풍경이 눈앞에 쭉 펼쳐진다. 한양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 거리인 종로의 운종가며 한양의 교통과 문화 중심지였던 광통교 같은 서울의 지명이 등장한다. 서화 가게(글씨와 그림)를 비롯해 가구 가게, 서점, 세책가(책 대여점)등 조생의 발걸음을 따라서 한양이란 도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조생은 해가 뜨면 거리로 나와 시장으로 골목으로 서당으로 관청으로 내달렸다. 위로는 벼슬아치부터 아래로는 소학 동자에 이르기까지 달려가서 만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달리는 것이 마치 새가 나는 듯하였다.” (116쪽)
책이 필요한 사람들과 책을 팔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그는 한마디로 서적 중개 상인이었다. ‘서쾌’, ‘책쾌’라고도 불렸는데 조생이 보통 책장수들과 다른 점은 그가 책을 보따리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나귀에 싣고 다닌 것이 아닌 소매나 품속, 허리춤에 가득 넣고 다녔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책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몸속에서 하나씩 꺼내 주곤 했단다. 가세가 기울어 선비라는 명분이 무색하게 된 양반들은 조상 대대로 보던 책을 처분해야만 했는데 그 시기에 책이란 집안의 자랑이며 재산과 같이 귀한 것이어서 팔아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그런 책을 건네받으면서 조생은 책을 내 몸과 같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차별을 두어 판매했다. 책만 팔았다면 여느 책장수와 다를 바가 없었겠지만 그가 책을 대하는 태도는 남달랐다.
“내 비록 책은 없으나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얼마 동안 소장하고 있었는지, 내가 어떤 책을 얼마에 팔았는지 알고 있고, 비록 그 뜻을 알지 못하나 어떤 책은 누가 쓰고 누가 해설을 달았는지, 몇 질 몇 책인지는 다 안다오. 그러니 천하의 책은 모두 내 책이며, 천하에 나만큼 책에 대해 아는 사람도 없다오.” (118쪽)
책의 형식이나 구조, 전래 따위에 관한 사실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조생은 오늘날 도서관 사서의 고유 영역인 참고봉사 업무까지 톡톡히 수행했었던 것 같다. 또한 책 거래에 관한한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가였으며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겪어 본 그는 그 시대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기에 외모만큼이나 기이한 그를 세상 사람들은 신선이라고 불렀나보다.
조생과 더불어 책 속에는 다양한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조생의 이야기를 「육서 조생전」이라는 작품으로 남긴 문필가 조수삼, 자신의 눈을 찌른 천재화가 최북, 「흠영」이라는 귀중한 일기를 남긴 간서치 유만주 모두가 동시대에 살면서 성공이나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올바른 신념으로 스스로 노력하며 삶을 살아간 사람들이다.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해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요즘 조생의 이야기는 책의 소중함과 그 진가를 알게 함으로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또 혹시 아나? 조생처럼 책을 가까이 접하다 보면 나이를 거꾸로 먹어 지상에 사는 신선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