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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4-21 22:17 조회 6,07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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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전집은 ‘우리교육’ 출판사의 사장을 역임한 박성규 씨의 제안에 따라, 특히 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문학‧교양도서로 기획된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영미권에서 중학생용 교재로 쓰이는 수준이다. 기왕 번역된 셰익스피어 작품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 읽기에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원작보다 요즘 말과 어긋난 문투의 번역 탓이 더 크다.

사전 풀이로 문학, 예술의 고전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이다. 의미는 틀리지 않았지만, 어딘가 대책 없이 몰린 구닥다리들의 완고하기 만한 주장으로 들릴 여지가 없지 않은 풀이다. ‘고전은 매우 어렵지만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을 은연중 품게 되면 사태가 더 악화된다. 천 년 전, 2천 년 전, 심지어 5천 년 전 글들이, 아무리 천재의 영감에 의해 씌어졌단 들, 뭘 그리, 어떻게 그리 어렵겠는가? 하여 ‘고전’의 처음 뜻, 즉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의 뜻을 우리는 동시에 상기해야 한다. 고전음악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가책락, 고전미술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그림, 고전문학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이야기…. 유치원 이전 가정교육에 이르면 언어를 배우는 과정과 고전 이야기를 들어보는 과정이 겹쳐지고 더 근본적으로 고전은, 음악에서, 미술에서, 무엇보다 문학에서, ‘말’이 완성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딱히 누구한테, 혹은 어디서 들은 것만도 아닌…. 그것은 심오하다기보다는, 언제 어느 시대건 재해석이 가능하고 재해석을 요하는, 아무리 재해석하더라도 식상하지 않을 수 있는 있는 모종의 이야기 형식, 아름다움의 틀에 가깝다.

셰익스피어(1564~1616) 연극은 무엇보다, 위로부터의 제임스 1세 왕 판版 성경과 더불어, 아래로부터 근대 영어가 완성되는 과정, 문학이 혹은 시적인 것이 근대 영어를 완성하는 과정, 밑에서 위를 향해 완성하고 완성되는 가장 행복한 언어의 과정 가운데 하나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가 서사문학의 탄생이자 고대 그리스 언어의 탄생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은 저급언어가 고급언어로 발전하는 과정, 언어의 민주화 과정으로서 고급-표준화 과정을 보여준다. 표현이 탄생하는 과정을, 자연의 비유에서 인간의 비유로 넘어가는 대목을, 인간 사회의 온갖 신분, 온갖 직업 및 분야의 현상, 상승 및 타락 그리고 해체 과정을 당대적으로,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초기작의, 두 줄이나 세 줄, 심지어 네 줄로 중언부언 흐지부지 나뉘어 나열되던 의미의 망이 씻은 듯한 줄로 합쳐지고, 글의 길이가 줄어들고 의미가 중첩되고 팽팽해지는 바로 그만큼 투명성이 심화하고 급기야 의미의 망은 한 행, 한 행이 독립되어 서로를 비춰주는 의미의 거울로 응축, 전화한다. 근대를 둘러싼 중세풍 ‘이전’과 현대풍 ‘이후’가, 일상성과 비극적 숭고, 그리고 희극성이 교묘하게 살을 섞는다. 이것은 한국어 문학뿐 아니라, 한국어 자체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셰익스피어 시대 무대는 막 앞으로, 그리고 대낮의 마당 객석 한가운데로 쑤욱 길을 낸다, 점잖은 귀족이나 돈 많고 교양 있는 시민들은 멀리 객석에 앉아 있다. 마당 객석에 진을 친 것은 가장 값싼 입장료를 치르고 들어온 서민들. 이들이 때론 야유하고 때론 박수치고 때론 요구하고, 자기들끼리 잡담하고 하여간 소란하고 요란하다. 햄릿 독백은 이 무대를 걸어 나오며 진행된다. 하여, 어떻게 되는가? 바로 이 길이 걸작 예술 탄생을 위한 역사상 가장 짧은 지름길로 된다. 3막 1장 58절부터.


『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1(총26권)
셰익스피어 지음|김정환 옮김|아침이슬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 그것이 문제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 죽는다, 잠든다–
그뿐, 그리고 잠든다는 말이 끝장,
상심과 천 가지 당연한 충격,
육신이 물려받은 충격의 끝장이라면–그건 완료지,
몸 바쳐 바라 마지않을. 죽는다, 잠든다.
잠든다, 어쩌면 꿈꾼다. 아하, 그게 골치로다,
그 죽음의 잠 속에 어떤 꿈이 올지
우리가 이 필멸의 육신을 벗어 버린 다음에 말야,
망설일 밖에. 그런 고로
그토록 오랜 삶이라는 재앙이 생겨나는 거야,
왜냐면 누가 견디겠는가, 시간의 채찍과 경멸을,
압제자의 횡포를, 오만한 자의 방자함을,
응답 없는 사랑의 격통을, 법의 지지부진을,
관료의 시건방을, 그리고 모욕
근사한 자가 비천한 자한테 감내하는 모욕을,
견디겠는가, …(중략)

대중에서 나온 것이 미학적으로 응축, 대중을 압도한다. 언어가 충격과 감동이 하나인 문학의 은총을 받으며 다양하고 복잡한 뜻을 품는 동시에 압축되고 정제된다. 가장 시적인 대사가 가장 무대적인 언어로 전화, 대사의 억양과 분위기와 흐름이 등장인물의 성격과 동작을 품거나 뿜어내거나 형상화하므로 등퇴장 말고는 별다른 지문을 요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장면은 학생이 학교를 벗고 사회 인생을 입는 첩경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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