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인천, 노래가 흐르고 이야기가 살아 있는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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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4-21 23:23 조회 6,676회 댓글 0건본문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
나도원 지음・사진|한겨레출판|208쪽
2012.11.15|11,000원|고등학생|한국
대중음악, 지역문화
멀리 팔미도가 어렴풋이 보이는 산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가족 나들이나소풍 장소는 으레 인천 상륙작전의 주역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는 자유공원이었고, 고등학교 때 공부하다 친구들과 머리를 식히러 간 곳은 월미도였다. 그러나 인천의 품에서 그 물을 마시고 자랐지만 인천 사람이란 의식 없이 살아왔다. ‘인천’ 출신이라고 ‘부산에 이은 제2의 항구 도시’라는 것 말고 특별히 내세울 만한 것도 찾지 못했다.
전국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는 도시, 전쟁 때 몰려든 북한 사람들과 산업화로 흘러 들어온 지방 사람들로 이루어진 이방인들의 도시, 그래서 제대로 된 문화도 없이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팍팍한 도시라는 인상 때문에 자랑스럽게 인천사람이라고 내세워 본 적 또한 없다. 인천 문화재단과 한겨레출판이 손잡고 펴낸 ‘문화의 길 총서’ 중 한 권인 『시공간을 출렁이는 목소리, 노래』를 읽으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대중문화 평론가인 저자가 인천의 문화와 노래를 찾아 돌았던 골목과 거리…… 신포동, 만석동, 동인천역 주변, 애관극장, 대한서림 등은 ‘대중들이 사랑하는 노래와 음악인의 고향이며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 낸 곳’이었는데 나에게는 단순히 학교생활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과 쇼핑을 하거나 쫄면과 튀김을 먹으며 수다를 떨던 곳일 뿐이었다. 인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인천은 항구의 도시, 최초의 이민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항구를 통해 떠나갔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항구를 통해 인천으로 흘러왔다. 일제강점기때 인천으로 들어와 유년기를 보낸 ‘고가 마사오’는 후에 조선의 전통 음악과 정서에 영향을 받아 엔카와 트로트의 교과서적인 작품들을 작곡한다.
떠나는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고향을 버리고 타향으로 흘러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별의 아픔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박경원의 <이별의 인천항> 최영섭의 가곡 <그리운 금강산>과 같은 노래가 되었다. 해방 후 미군이 부평에 주둔하면서 인천에 새로운 음악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미8군 무대에서 시작된 밴드 음악은 최초의 그룹사운드 ‘에드훠’전설적인 밴드 ‘히식스’, 영화 고고70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데블스’를 탄생시키고 70년대 그룹사운드의 전성시대를 연다. 포크의 시대 대표 뮤지션인 송창식,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구창모 역시 인천이 낳은 음악인이다.
인천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항만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사회가 만들어졌고 1972년 동일방직 사건과 1985년 대우자동차 파업 등 굵직한 노동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이런 노동 문화를 바탕으로 노래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된다.
80년부터 90년대 초까지 인천은 서울과 함께 한국 록음악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이 도시가 배출한 음악인이 많았을 뿐 아니라 팬들도 많다보니 성대한 헤비메탈 공연이 수봉문화회관이나 인천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인천에서 대형 록페스티벌이 처음 시도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1999년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며 막을 열었지만 악천후로 엉망이 된다. 그러나 이후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로 이어지며 다른 지역에까지 록페스티벌 문화를 확산시켰다.
시간을 씨줄로 공간을 날줄로 하여 인천의 곳곳을 찾아다닌 저자를 따라가다 보니 내가 버려두었던 나의 고향 인천은 한국대중 음악 역사의 압축판인 동시에 대중음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돈은 물론이고 문화도 지독히 서울 중심인 우리나라에서 이렇듯 인천이라는 도시 공간 속에 할 이야기와 노래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이야기를 찾아 파시와 짜장면, 철도와 다방을 다룬 다른 ‘인천 문화의 길 총서’를 펴낸 이들의 노력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이야기가 샘솟고 노래가 흘러나온다면 문화는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지며 삶은 좀 더 아름답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어디라도 지역문화는 피어나야 한다. 그래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더 사랑하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