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정이’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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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7-25 21:11 조회 5,592회 댓글 0건본문
김혜원 학교도서관 문화살림
‘정이’를 아시나요. 양 볼이 빵빵하고, 숱 없는 머리를 양 갈래로 치켜 묶은 여덟 살 여자 아이 말이다. 받아쓰기는 세 개쯤 틀리지만, 급식 시간엔 밥 한 톨 남김없이 완벽하게 먹을 수 있는 아이다. 먹을 것이라면 된장찌개도, 김치도, 심지어 한약까지도 맛있기만 하다. 이런 정이에게 사건이 생겼다. 밥상 위에 올라온 장조림을 먹지 말라고 한다. 입 짧은 오빠를 위한 반찬이란다. ‘너는 이거 아니어도 뭐든지 잘 먹잖니.’라는 엄마 말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정이는 결단을 내린다. ‘나도 편식할거야!’ 정이는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났다. 작가의 전작 『나도 편식할거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까탈스럽지 않지만, 나름 고집 센 여덟 살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진다. 어느 평론가는 ‘우리 동화에서 오랜만에 보는 명불허전 캐릭터’라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 동화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정확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몽실이, 노마 정도일까? 외국 동화에서 생각나는 삐삐, 앨리스, 프레드릭, 해리포터처럼 선명하지가 않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유은실의 ‘정이’는 우리 동화에서 선명한 캐릭터로 떠오를 가능성이 보인다. 『나도 편식할거야』를 읽은 사람들은 장조림을 보며, 한약 봉지를 보면, 언뜻 정이는 이랬는데 하는 생각을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이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예민해지겠다고 선언한다. 엄마의 관심이 온통 예민한 오빠에게 쏠려있다.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못자는 오빠는 정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도 키가 정이보다 작다. 잠을 잘 자야 쑥쑥 클 텐데 걱정하던 엄마에게 고모할머니가 조언을 하셨다. ‘침대를 사 줘봐.’ 이 말을 들은 정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산산조각내는 엄마의 말씀 한마디, ‘그럴까요? 그런데 정이는 필요 없어요. 정이는 아무데서나 잘 자요. 정이는 지 오빠처럼 예민하지 않아요.’ 침대를 오빠만 사 주다니. 그래서 정이는 예민하기로 했다. 예민하면 잠을 못 자야 하니까, 잠투정을 해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런 정이 옆에서 엄마가 배를 만져 준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겨우 일 분. 예민하게 버티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런…! 아침이다. 예민해야 하는데…, 예민하고 싶은데….
책을 읽다보면 정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절로 웃음이 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나는 …… 침대에서…… 못 잘 거야. 맨날 맨날…… 순할 거야. 맨날 맨날 아무 데서나 잘 거야.”(23쪽) 소리 내어 울면서도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하고 있는 이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정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데는, 여덟 살 아이의 눈높이를 정확히 찾은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큰 몫을 한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길이의 문장을 쓰는지, 어떤 종류의 낱말들을 말하는지에 대해, 작가가 많이 고민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세 개의 단편 중에 「예민은 힘들어」의 첫 문장은 저학년 동화의 좋은 예문이다. ‘손님이 온다. 손님은 좋다. 먹을 걸 사온다.’ 초등 일학년 일기장의 한구절 같은 이 문장들은, 이 책을 전작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정이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다른 동화를 읽어보면 상상할 수 있다. 작가의 목소리를 죽이고 주인공의 목소리를 살려 내는 일, 그러기 위해 작가의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 저학년 동화에서는 필요하다. 그래서 저학년 동화를 쓰기가 힘들다고 한다. 등단 이후 작가의 작품들을 쭉 살펴보면, 점점 대상 연령이 내려가고 있고, 문장이 짧아지고 있다. 어쩌면 ‘손님이 온다.’ 이 한 문장이 유은실 저학년 동화에 대한 성공적 안착의 상징이 될지 모르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책을 동시에 보면서, 두 책의 삽화가 서로 다른 것은 아쉬웠다.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삽화는 중요한 몫을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다음 책이 나올 때는 일관된 주인공 그림을 보았으면 한다.
통통하고 씩씩하고 먹성 좋은 여덟 살 정이, 그 아이가 돌아왔다.
‘정이’를 아시나요. 양 볼이 빵빵하고, 숱 없는 머리를 양 갈래로 치켜 묶은 여덟 살 여자 아이 말이다. 받아쓰기는 세 개쯤 틀리지만, 급식 시간엔 밥 한 톨 남김없이 완벽하게 먹을 수 있는 아이다. 먹을 것이라면 된장찌개도, 김치도, 심지어 한약까지도 맛있기만 하다. 이런 정이에게 사건이 생겼다. 밥상 위에 올라온 장조림을 먹지 말라고 한다. 입 짧은 오빠를 위한 반찬이란다. ‘너는 이거 아니어도 뭐든지 잘 먹잖니.’라는 엄마 말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정이는 결단을 내린다. ‘나도 편식할거야!’ 정이는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났다. 작가의 전작 『나도 편식할거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까탈스럽지 않지만, 나름 고집 센 여덟 살 아이의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그려진다. 어느 평론가는 ‘우리 동화에서 오랜만에 보는 명불허전 캐릭터’라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 동화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정확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몽실이, 노마 정도일까? 외국 동화에서 생각나는 삐삐, 앨리스, 프레드릭, 해리포터처럼 선명하지가 않다. 이런 우리 현실에서 유은실의 ‘정이’는 우리 동화에서 선명한 캐릭터로 떠오를 가능성이 보인다. 『나도 편식할거야』를 읽은 사람들은 장조림을 보며, 한약 봉지를 보면, 언뜻 정이는 이랬는데 하는 생각을 들지도 모르겠다.
그런 정이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예민해지겠다고 선언한다. 엄마의 관심이 온통 예민한 오빠에게 쏠려있다. 밥도 잘 안 먹고, 잠도 잘 못자는 오빠는 정이보다 두 살이나 많은데도 키가 정이보다 작다. 잠을 잘 자야 쑥쑥 클 텐데 걱정하던 엄마에게 고모할머니가 조언을 하셨다. ‘침대를 사 줘봐.’ 이 말을 들은 정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침대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놀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산산조각내는 엄마의 말씀 한마디, ‘그럴까요? 그런데 정이는 필요 없어요. 정이는 아무데서나 잘 자요. 정이는 지 오빠처럼 예민하지 않아요.’ 침대를 오빠만 사 주다니. 그래서 정이는 예민하기로 했다. 예민하면 잠을 못 자야 하니까, 잠투정을 해봅니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런 정이 옆에서 엄마가 배를 만져 준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겨우 일 분. 예민하게 버티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런…! 아침이다. 예민해야 하는데…, 예민하고 싶은데….
책을 읽다보면 정이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절로 웃음이 난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나는 …… 침대에서…… 못 잘 거야. 맨날 맨날…… 순할 거야. 맨날 맨날 아무 데서나 잘 거야.”(23쪽) 소리 내어 울면서도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하고 있는 이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정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데는, 여덟 살 아이의 눈높이를 정확히 찾은 작가의 글쓰기 방법이 큰 몫을 한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길이의 문장을 쓰는지, 어떤 종류의 낱말들을 말하는지에 대해, 작가가 많이 고민한 흔적이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세 개의 단편 중에 「예민은 힘들어」의 첫 문장은 저학년 동화의 좋은 예문이다. ‘손님이 온다. 손님은 좋다. 먹을 걸 사온다.’ 초등 일학년 일기장의 한구절 같은 이 문장들은, 이 책을 전작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정이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문장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다른 동화를 읽어보면 상상할 수 있다. 작가의 목소리를 죽이고 주인공의 목소리를 살려 내는 일, 그러기 위해 작가의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 저학년 동화에서는 필요하다. 그래서 저학년 동화를 쓰기가 힘들다고 한다. 등단 이후 작가의 작품들을 쭉 살펴보면, 점점 대상 연령이 내려가고 있고, 문장이 짧아지고 있다. 어쩌면 ‘손님이 온다.’ 이 한 문장이 유은실 저학년 동화에 대한 성공적 안착의 상징이 될지 모르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두 책을 동시에 보면서, 두 책의 삽화가 서로 다른 것은 아쉬웠다.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삽화는 중요한 몫을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다음 책이 나올 때는 일관된 주인공 그림을 보았으면 한다.
통통하고 씩씩하고 먹성 좋은 여덟 살 정이, 그 아이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