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녹록지 않은 삶도 역사의 주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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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미 서울 염리초 사서
인간의 삶 속에 어찌 기쁨과 희망만 자리할 수 있으리.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행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사노라 겪어 낸 슬픔과 기쁨들이 켜켜이 쌓여 한 사람의 일생을 이루고 한 시대의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 삶의 아픔과 기쁨을 주체치 못했던 이 땅의 주목 받지 못하는 민중들은 일을 하면서도 쉬면서도 노래를 잊지 않았는데 지은이 없이 절로 생겨난 그 노래들을 우리는 ‘민요’라 부르며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조선의 시인 조수삼의 한시 ‘추재기이(秋齋紀異)’. 원숭이를 훈련시켜 빌어먹는 거지, 소설 낭독꾼 전기수, 성대모사에 뛰어났던 박뱁새 등 당시 낮은 계층 71명의 삶을 노래했던 이 시 속에는 백가지 새를 등장시켜 자신의 아픔과 슬픔, 기쁨까지도 풀어냈던 <백조요>의 앞 못 보는 노래꾼이 등장한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 하는 이 시의 후렴구는 사연을 알고 다시 불러보면 그 삶이 내 삶인 양 더할 나위 없이 서러워지는 노래인데 통영의 한 걸인이 불렀다고 전해지는 <백조요>를 한문학자의 원문풀이를 곁들여 그림책으로 꾸몄다.
표지 그림 속 대청마루에 늘어선 사대부들을 흥겹게 만들고 있는 통영 동이의 춤사위가 제법 신명난다. 기운 옷을 입은 채 한 가락 뽑고 있는 오라버니 옆에서 역시 기운 옷의 누이가 동냥질로 노랫값을 받아내고 있는데 빈 바가지에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결코 각박하지 않다. 우리네 삶이다. 자기가 잘 하는 일에 신명을 더해 일하면 배 고프지 않을 정도의 먹을 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잔칫상 음식들은 배고픈 사람들의 차지로도 넉넉하게 돌아갔던 우리 옛 삶. 각각의 처지에 만족하며 욕심 없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에 아득바득 오르려고 하지도 않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연연하며 억지스럽게 애쓰지도 않았으며 더 많이 가지려고 남을 속여 가며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 여유는 삶 속에서 멋들어진 민요 가락을 뽑아낼 수 있게 했고 노래 뿐 아니라 시, 그림 등 다양한 놀이 문화로 지금껏 전해져 온다. 해야 할 일을 즐기면서 할 줄 아는 ‘고수’의 삶, 이들의 삶이 어찌 매양 넉넉할 수 있을까. 하나만을 고집하며 외곬으로 사는 덕에 그들은 요령을 피울 줄도 모르고 속도전에서조차 처진다. 치열하면서 느릿하게 이루어지는 그 삶을 작가는 흙을 개어 여러 번 덧칠하는 그림 형식으로 표현해 공을 들였다. 특히 속표지에 강조된 투박하면서 거칠게 그려진 온갖 새 그림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발돋움하며 날아오르는 <백조요>의 주인공들이다. 넉넉지 않은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하며 더 큰 기쁨을 얻었던 우리 조상들 모습이다.
책 속 통영동이 역시 그 기쁨에 치중했다. 남의 집 잔칫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신이 난 채 너스레를 떨다가 기어이 누이마저 잃고 만다. 사랑하는 누이를 잃어 울다 울다 눈이 먼 통영동이의 슬픈 모습은 검은 바탕에 흐릿하게 그려져 막막함을 더한다. 어둠 속을 휘젓고 있는 통영동이 발사위는 ‘둥그렁 뎅 둥그렁 뎅’ 민요가락과 어우러지는데 이야기 첫 대목에서의 흥겨움은 사라지고 애달프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들린다. 잃어버린 누이를 찾기 위해 지팡이 하나 손에 쥐고 너른 충무땅을 헤매는 통영동이를 그린 이는 흙 재료를 이용해 다듬어지지 않은 민중 특유의 토속적 느낌으로 표현했다. 흙 바탕 속 여러 마리 새 그림은 눈까지 먼 통영동이가 온전치 못한 몸으로라도 노래노래 부르며 오래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그린 이의 간절함이다.
해피엔딩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결말이 나지 않은 이 글의 뒷부분을 어떻게 상상할까 궁금하다. 통영동이의 슬픈 노랫가락을 듣고 바랐던 누이가 찾아왔을 수도 있고 끝끝내 오누이는 만나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다. 모두가 정답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생긴 대로 잘 하는 대로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얼사절사 잘 넘어가’야 하는 그림책이니 말이다. 그러나 소외되고 그늘진 곳의 몇몇 사람들 역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라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행복한 결말의 동화책만 손에 쥐어 주어서도 안 되고 어둡고 그늘진 세계도 맛보여 주어야 옳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이도 상징적인 그림에 흥미를 갖게 마련이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정확히 알아차리지는 못한다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역사를 무시하고 허투루 여겼다간 ‘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냐’는 질책을 훗날 다음 세대로부터 듣게 될 수도 있다.
잃어버린 누이동생을 위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이 땅 곳곳을 누비며 백 가지 새 노래를 불렀다는 통영동이 이야기는 어두운 흙빛 바탕의 흑백 그림으로 결말조차 확실하지 않게 그려진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추천되어야 한다.

조선의 시인 조수삼의 한시 ‘추재기이(秋齋紀異)’. 원숭이를 훈련시켜 빌어먹는 거지, 소설 낭독꾼 전기수, 성대모사에 뛰어났던 박뱁새 등 당시 낮은 계층 71명의 삶을 노래했던 이 시 속에는 백가지 새를 등장시켜 자신의 아픔과 슬픔, 기쁨까지도 풀어냈던 <백조요>의 앞 못 보는 노래꾼이 등장한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 하는 이 시의 후렴구는 사연을 알고 다시 불러보면 그 삶이 내 삶인 양 더할 나위 없이 서러워지는 노래인데 통영의 한 걸인이 불렀다고 전해지는 <백조요>를 한문학자의 원문풀이를 곁들여 그림책으로 꾸몄다.
표지 그림 속 대청마루에 늘어선 사대부들을 흥겹게 만들고 있는 통영 동이의 춤사위가 제법 신명난다. 기운 옷을 입은 채 한 가락 뽑고 있는 오라버니 옆에서 역시 기운 옷의 누이가 동냥질로 노랫값을 받아내고 있는데 빈 바가지에 먹을 것을 나눠주고 있는 아주머니의 표정은 결코 각박하지 않다. 우리네 삶이다. 자기가 잘 하는 일에 신명을 더해 일하면 배 고프지 않을 정도의 먹을 것은 누구나 얻을 수 있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잔칫상 음식들은 배고픈 사람들의 차지로도 넉넉하게 돌아갔던 우리 옛 삶. 각각의 처지에 만족하며 욕심 없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에 아득바득 오르려고 하지도 않았고 가지지 못한 것에 연연하며 억지스럽게 애쓰지도 않았으며 더 많이 가지려고 남을 속여 가며 인색하게 굴지 않았다.
그 여유는 삶 속에서 멋들어진 민요 가락을 뽑아낼 수 있게 했고 노래 뿐 아니라 시, 그림 등 다양한 놀이 문화로 지금껏 전해져 온다. 해야 할 일을 즐기면서 할 줄 아는 ‘고수’의 삶, 이들의 삶이 어찌 매양 넉넉할 수 있을까. 하나만을 고집하며 외곬으로 사는 덕에 그들은 요령을 피울 줄도 모르고 속도전에서조차 처진다. 치열하면서 느릿하게 이루어지는 그 삶을 작가는 흙을 개어 여러 번 덧칠하는 그림 형식으로 표현해 공을 들였다. 특히 속표지에 강조된 투박하면서 거칠게 그려진 온갖 새 그림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나름의 사연을 간직하고 발돋움하며 날아오르는 <백조요>의 주인공들이다. 넉넉지 않은 삶 속에서 여유를 갖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함께하며 더 큰 기쁨을 얻었던 우리 조상들 모습이다.
책 속 통영동이 역시 그 기쁨에 치중했다. 남의 집 잔칫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신이 난 채 너스레를 떨다가 기어이 누이마저 잃고 만다. 사랑하는 누이를 잃어 울다 울다 눈이 먼 통영동이의 슬픈 모습은 검은 바탕에 흐릿하게 그려져 막막함을 더한다. 어둠 속을 휘젓고 있는 통영동이 발사위는 ‘둥그렁 뎅 둥그렁 뎅’ 민요가락과 어우러지는데 이야기 첫 대목에서의 흥겨움은 사라지고 애달프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들린다. 잃어버린 누이를 찾기 위해 지팡이 하나 손에 쥐고 너른 충무땅을 헤매는 통영동이를 그린 이는 흙 재료를 이용해 다듬어지지 않은 민중 특유의 토속적 느낌으로 표현했다. 흙 바탕 속 여러 마리 새 그림은 눈까지 먼 통영동이가 온전치 못한 몸으로라도 노래노래 부르며 오래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그린 이의 간절함이다.
해피엔딩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결말이 나지 않은 이 글의 뒷부분을 어떻게 상상할까 궁금하다. 통영동이의 슬픈 노랫가락을 듣고 바랐던 누이가 찾아왔을 수도 있고 끝끝내 오누이는 만나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을 수도 있다. 모두가 정답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생긴 대로 잘 하는 대로 둥그렁 뎅 둥그렁 뎅 얼사절사 잘 넘어가’야 하는 그림책이니 말이다. 그러나 소외되고 그늘진 곳의 몇몇 사람들 역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이라는 것은 우리 어린이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러자면 행복한 결말의 동화책만 손에 쥐어 주어서도 안 되고 어둡고 그늘진 세계도 맛보여 주어야 옳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이도 상징적인 그림에 흥미를 갖게 마련이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정확히 알아차리지는 못한다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드러나지 않는다 해서 역사를 무시하고 허투루 여겼다간 ‘왜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냐’는 질책을 훗날 다음 세대로부터 듣게 될 수도 있다.
잃어버린 누이동생을 위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이 땅 곳곳을 누비며 백 가지 새 노래를 불렀다는 통영동이 이야기는 어두운 흙빛 바탕의 흑백 그림으로 결말조차 확실하지 않게 그려진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추천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