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새책 소중한 그 이름,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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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1-26 17:15 조회 5,712회 댓글 0건본문
남정미 서울 염리초 사서
화장도 않고 맨날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엄마여도 아이들은 절대 지겨워하지 않는데 어제 같은 오늘을 한탄하며 뭔가 표시 나는 값진 일을 꿈꾸는 엄마들이 있다. 꿈이 꿈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당찬 엄마들은 저지르기도 잘 한다. 물론 저지른 그 일들이 모두 성공이라면 다행이지만.
성공의 기준이 뭘까. 내가 좀 희생하여 물질적으로 넉넉해지고 그 넉넉함 속에서 내 아이와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는 간절함마저 잊어버린 채 넉넉함에 길들여지는 것? 행여나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거나 엄마가 필요한 순간을 맞아도 내 아이는 자못 어른스런 표정으로 혼자서도 척척 구급상자 열고 바쁜 엄마 대신하여 마냥 참고 견딜 줄 아는 것? 그건 아니다. ‘능력’이 부족한 엄마여도 따뜻한 그 품을 찾아 언제고 스스럼없이 기대 올 줄 알고, 다독이는 엄마의 손길만으로도 자잘한 몸과 마음 상처 다스릴 줄 알며, 그렇게 키워진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곳에 두말 않고 펼칠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자라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평범 속의 엄마들이 꿈꿔야 할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표지 속 예쁘게 차려입고 도도하게 손 흔들며 달려 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매정하다. 목을 길게 늘이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가족들은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뛰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만 쳐다보는 가족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늘도 늦게 들어오나 콩닥콩닥 아이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엄마는 손 흔들며 외친다.
“아홉 시에 올거야.”
아홉 시가 언제인지 시계를 보지 못하는 아이는 그때부터 내내 아홉 시만 기다릴 것이고 아홉 시가 될 때까지 아빠와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아이도 힘들고 아빠는 더 힘들 것이다. 엄마가 읽어 줄 땐 안 그랬는데 아빠가 읽어 주는 그림책 속 꼬마 개미와 뚱보 고양이, 대장 호랑이가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크기의 똑같은 글씨체다. 크고 작게, 각각 다른 목소리로 실감나게 읽어 주던 엄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니 함께 듣던 고양이도 딴짓을 하고 고양이 옆 강아지도 쿨쿨 잠들었는데 읽고 있는 아빠 혼자 신났다. 아빠가 만들어 주는 오므라이스 요리 시간도 가관이다. 감자 요정과 당근 괴물의 한판 승부가 상상과 현실이 구분되도록 색깔 없는 연필 그림으로 자못 치열하게 그려졌는데 쏟아진 채소들과 깨진 달걀, 아빠 이마의 못난이 주름만 도드라진 색깔로 입혀져 사태의 심각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날은 꼭 친구들이 놀러 오게 마련, 우르르 몰려온 친구들과 함께 널브러진 장난감 속에서 한바탕 놀이가 끝난 후 아빠는 비로소 집안을 치우고 두 꼬마의 목욕까지 도맡아 시키려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얼굴에 물총을 한 대 맞은 아빠는 기어이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이야기는 울음바다로 넘친다. 그 울음바다는 아파서가 아니라 ‘엄마 빨리 와!’로 이어져 철철 흘러넘친다. 이 순간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엄마 등장.
일하는 엄마를 가진 모든 가정의 모습이 이럴 리는 없겠고 이야기 속 엄마는 이제 막 새로운 일거리를 얻었거나 일상에서 벗어난 그 일에 엄청난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인가 보다. 엄마의 재미만큼 남은 가족들은 힘들어지게 마련, 엄마 몫을 대신 해야 하는 아빠와 엄마 없이 지내야 하는 시간이 힘든 아이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유쾌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생겼다. 이 책이 유쾌해지려면 신나게 변신하고 나갔던 엄마는 오후가 되어 돌아오면서 남겨졌던 가족들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어야 했고 다음 날은 거울 속 자기 얼굴에 눈길 빼앗기지도 않으며 서툰 아빠 대신 맛있는 아침상을 떡하니 준비해 주는 모습을 보여 줬어야 했다. 때문에 온 가족이 겪게 될 불편쯤이야 모두가 함께인데 어떤 고난인들 넘지 못하리란 각오를 다지며 잠시의 일탈에 만족하면서.
부족함을 이겨낼 줄 알고 불편을 참아낼 줄도 알며 간절한 씨앗 하나 마음 속에 심어 두고 그것을 위해 흔한 간식거리 하나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받을 줄 아는 자녀들로 자라나는 것.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그렇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내 아이가 자라날 수 있도록 무엇보다 먼저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느라 포기해야 할 한 때의 꿈 쯤은 미련 없이 접을 줄 아는 엄마들이 많아지는 세상일 때 지나친 사교육도 돌봄교실의 필요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자라나는 어린이들 기억 속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보물로 ‘엄마’라는 이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 뿐임을 턱없이 바쁜 엄마들이 부디 알아주기를 바란다.
화장도 않고 맨날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엄마여도 아이들은 절대 지겨워하지 않는데 어제 같은 오늘을 한탄하며 뭔가 표시 나는 값진 일을 꿈꾸는 엄마들이 있다. 꿈이 꿈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당찬 엄마들은 저지르기도 잘 한다. 물론 저지른 그 일들이 모두 성공이라면 다행이지만.
성공의 기준이 뭘까. 내가 좀 희생하여 물질적으로 넉넉해지고 그 넉넉함 속에서 내 아이와 가족들이 나를 기다리는 간절함마저 잊어버린 채 넉넉함에 길들여지는 것? 행여나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거나 엄마가 필요한 순간을 맞아도 내 아이는 자못 어른스런 표정으로 혼자서도 척척 구급상자 열고 바쁜 엄마 대신하여 마냥 참고 견딜 줄 아는 것? 그건 아니다. ‘능력’이 부족한 엄마여도 따뜻한 그 품을 찾아 언제고 스스럼없이 기대 올 줄 알고, 다독이는 엄마의 손길만으로도 자잘한 몸과 마음 상처 다스릴 줄 알며, 그렇게 키워진 사랑을 도움이 필요한 또 다른 곳에 두말 않고 펼칠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자라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평범 속의 엄마들이 꿈꿔야 할 성공적인 삶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표지 속 예쁘게 차려입고 도도하게 손 흔들며 달려 나가는 엄마의 모습은 참으로 매정하다. 목을 길게 늘이고 애처롭게 쳐다보는 가족들은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뛰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자기만 쳐다보는 가족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오늘도 늦게 들어오나 콩닥콩닥 아이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채 엄마는 손 흔들며 외친다.
“아홉 시에 올거야.”
아홉 시가 언제인지 시계를 보지 못하는 아이는 그때부터 내내 아홉 시만 기다릴 것이고 아홉 시가 될 때까지 아빠와 함께 해야 하는 일은 아이도 힘들고 아빠는 더 힘들 것이다. 엄마가 읽어 줄 땐 안 그랬는데 아빠가 읽어 주는 그림책 속 꼬마 개미와 뚱보 고양이, 대장 호랑이가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크기의 똑같은 글씨체다. 크고 작게, 각각 다른 목소리로 실감나게 읽어 주던 엄마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니 함께 듣던 고양이도 딴짓을 하고 고양이 옆 강아지도 쿨쿨 잠들었는데 읽고 있는 아빠 혼자 신났다. 아빠가 만들어 주는 오므라이스 요리 시간도 가관이다. 감자 요정과 당근 괴물의 한판 승부가 상상과 현실이 구분되도록 색깔 없는 연필 그림으로 자못 치열하게 그려졌는데 쏟아진 채소들과 깨진 달걀, 아빠 이마의 못난이 주름만 도드라진 색깔로 입혀져 사태의 심각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날은 꼭 친구들이 놀러 오게 마련, 우르르 몰려온 친구들과 함께 널브러진 장난감 속에서 한바탕 놀이가 끝난 후 아빠는 비로소 집안을 치우고 두 꼬마의 목욕까지 도맡아 시키려는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얼굴에 물총을 한 대 맞은 아빠는 기어이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서 이야기는 울음바다로 넘친다. 그 울음바다는 아파서가 아니라 ‘엄마 빨리 와!’로 이어져 철철 흘러넘친다. 이 순간 ‘띵동’ 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엄마 등장.
일하는 엄마를 가진 모든 가정의 모습이 이럴 리는 없겠고 이야기 속 엄마는 이제 막 새로운 일거리를 얻었거나 일상에서 벗어난 그 일에 엄청난 보람과 재미를 느끼고 있는 중인가 보다. 엄마의 재미만큼 남은 가족들은 힘들어지게 마련, 엄마 몫을 대신 해야 하는 아빠와 엄마 없이 지내야 하는 시간이 힘든 아이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유쾌하기보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게 생겼다. 이 책이 유쾌해지려면 신나게 변신하고 나갔던 엄마는 오후가 되어 돌아오면서 남겨졌던 가족들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어야 했고 다음 날은 거울 속 자기 얼굴에 눈길 빼앗기지도 않으며 서툰 아빠 대신 맛있는 아침상을 떡하니 준비해 주는 모습을 보여 줬어야 했다. 때문에 온 가족이 겪게 될 불편쯤이야 모두가 함께인데 어떤 고난인들 넘지 못하리란 각오를 다지며 잠시의 일탈에 만족하면서.
부족함을 이겨낼 줄 알고 불편을 참아낼 줄도 알며 간절한 씨앗 하나 마음 속에 심어 두고 그것을 위해 흔한 간식거리 하나라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받을 줄 아는 자녀들로 자라나는 것. 나는 우리 어린이들이 그렇게 자라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내 아이가 자라날 수 있도록 무엇보다 먼저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기르느라 포기해야 할 한 때의 꿈 쯤은 미련 없이 접을 줄 아는 엄마들이 많아지는 세상일 때 지나친 사교육도 돌봄교실의 필요도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자라나는 어린이들 기억 속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보물로 ‘엄마’라는 이름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시기는 바로 지금 뿐임을 턱없이 바쁜 엄마들이 부디 알아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