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오늘의 청소년책 북토크] 한 뼘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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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1-03 11:21 조회 982회 댓글 0건본문
한 뼘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으려면
고정원, 김윤나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김보린 예일여중 1학년, 채지영 예일여중 국어교사
방과후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주로 교복을 입은 채 오기에 어떤 학교 학생들인지 금세 알 수 있죠. 공공도서관 이용교육을 위해 방문한 학교에서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소장하는 책이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답니다. 우리 도서관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고, 유독 이용자가 많은 예일여중 학생을 만나서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그에 앞서 국어선생님과 인터뷰도 나눠 보았습니다.
채지영 교사: 장르문학부터 고전까지 갖춘 이유
고정원 예일여중에는 ‘필독서’가 있잖아요. 선생님께서는 1학년을 담당하고 계시니, 1학년 도서를 어떻게 선정하셨는지 궁금해요.
채지영 국어과 회의로 10권의 책을 선정했어요. 가급적 재미있는 책, (청소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 독서력이 없어도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골랐어요. 사실 10권을 다 읽은 학생들은 많지 않아요. 저희 반에도 5명 정도가 도전하고 있고요.
고정원 필독서로 선정하신 책들은 제가 다 읽은 책이기도 한데요. 중1 학생들이 읽기에는 『유진과 유진』(이금이), 『초정리 편지』(배유안) 같은 책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정유정)는 재미있긴 하지만 분량이 많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는 요즘 청소년들이 읽기에 좀 어렵지 않을까요?
채지영 중3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중1 학생들 대다수가 솔직하고 소박하게 독서감상문을 쓰더라고요. 제가 책 줄거리는 많이 못 쓰게 해요. 책 내용을 분석하는 글 혹은 읽고 느낀 바를 써 달라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학생들이 어떤 대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자세히 살필 수 있어요. 피드백도 해 줘요. 1학년에게는 강제 독서를 시키는 편이에요. 『초정리 편지』나 『유진과 유진』을 읽을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잘 못 읽는 아이들도 『오백 년째 열다섯』은 재미있게 읽으니까요. 『위저드 베이커리』(구병모), 『시간을 파는 상점』(김선영), 『우아한 거짓말』(김려령) 이런 책들을 아이들이 잘 읽어 내죠.
고정원 『제인 에어』,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은 고전을 선정한 이유는요?
채지영 학생들에게 고전 한 권쯤은 읽어 내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어요.
고정원 고전의 분량이 워낙 많은데, 어떤 책으로 읽히세요?
채지영 너무 얇거나 두껍지 않은 책으로 비치해요. 『제인 에어』는 아이들에게 ‘막장’이라고꼬셔서 읽히고 있어요. (웃음) 고전뿐만 아니라 『나는 초콜릿의 달콤함을 모릅니다』(타라 설리번) 같은 책을 소개해서 공정무역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요. 익혔으면 하는 가치관이나 감수성을 가까이 하도록 ‘의도한 책’들을 중간중간 목록에 넣어요.
김윤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선생님의 열정이 가히 놀랍습니다. 최신간 청소년 문학책부터 장르문학, 고전문학까지 고르게 읽히고 계셔서 청소년들이 다양한 책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독서를 하며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책이 한 권씩 생겼으면 좋겠네요. 이제 청소년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종이책이 좋은 보린이: 어려워도 읽고 보는
고정원 보린아! 국어선생님께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학생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마자 너를 알려 주셨어. 이렇게 시간 내서 고마워. 우리 도서관에서도 얼굴을 본 것 같네?
김보린 선생님, 어젯밤에 도서관에 계시지 않으셨어요? 제가 학원 갔다가 집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책 읽으려 왔었는데 계셨던 것 같은데요.
고정원 훌륭한 학생이야. (웃음) 맞아, 어제 당직이어서 밤 10시까지 있었어. 기억해 줘서 고마워. 우선 질문.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필독 도서가 있어서 (인증) 도장도 받고 그랬다가 고학년 되면서 없어졌지.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렇게 필독서가 있으니 어땠어?
김보린 다른 학교는 없는데, 저희 학교만 그런 것 같더라고요. 저는 책 읽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좋았어요. 이런 기회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어요.
고정원 책 읽는 거 싫어하는 애들도 많잖아.
김보린 맞아요. 책 안 읽는 친구들은 정말 안 읽더라고요. 우리 학교는 독후감이 숙제여서 저한테 카톡으로 (독후감으로 써야 할 책) 줄거리 이야기해 달라는 애들도 있어요.
고정원 너 주위에는 책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김보린 없어요. 도서관에 혼자 와서 책 빌려요. 같이 노는 친구들이랑 공부할 친구들은 많은데 말이죠. 아직 1학년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책보다 핸드폰을 보는 것 같아요.
고정원 너도 핸드폰이 있는데, 어떻게 책을 더 가까이 두게 되었어?
김보린 사실 핸드폰으로도 웹소설을 볼 수 있잖아요. 저는 핸드폰으로 보는 것보다 이렇게 종이를 넘기면서 보는 것이 더 좋아요.
고정원 감동이다. 혹시 부모님도 책을 많이 보시니?
김보린 저희 엄마가 추리소설을 좋아하세요. 저도 많이 읽고요. 그래서 책이 두꺼워도 읽는 데 문제가 되진 않는 것 같아요.
고정원 예일여중 추천도서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뭘까 궁금하네.
김보린 『유진과 유진』이랑 『모모』요. ‘큰 유진’과 ‘작은 유진’으로 불리는 두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이들이 겪은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부모마다 달랐던 게 기억이 나요. 자기가 겪고 싶어서 겪은 일도 아니었을 텐데, 읽으면서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됐어요.
고정원 이금이 작가님이 인물들의 감정선을 독자들도 잘 느낄 수 있도록 쓰셨지.
김보린 『알로하, 나의 엄마들』도 봤는데 밤 9시부터 읽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완독했어요.
고정원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도 읽지 않았으면 읽어 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인데, 분명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야. 『모모』 이야기도 해 줄래?
김보린 『모모』는 시간을 좀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인 것 같아요. 추상적인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고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어려워서 두세 번 정도 읽었어요.
김윤나 우리나라 작가들이 쓴 책과 외국 작가들이 쓴 책은 서사를 풀어 가는 방식이나 분위기가 다르잖아. 어떤 것이 좀더 좋다든가 하는 것이 있었어요?
김보린 읽기 쉬운 건 우리나라 작품인 것 같아요. 주로 일본 작가가 쓴 책들이 술술 읽혀서 일본 문학 쪽에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김윤나 그렇구나. 추천목록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가장 오래전에 발행된 도서 같은데, 이 책은 읽고 어땠어?
김보린 종교적인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헷갈리는 대목들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자세히 읽고, 어렵다 싶은 건 술술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읽어 갔어요.
'읽을 만한 책'을 함께 찾아보는 연습
김윤나 혹시 영화 <우아한 거짓말> 봤어? 왕따로 세상을 등진 청소년 ‘천지’와 그의 가족이 겪는 통증을 그린 영화인데, 배우 김유정이 가해자로 나와. 원작인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비교해도 좋을 것 같아. 『완득이』도 영화로 나와서 흥행에 성공했어.
고정원 얼마 전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도 연극으로 공연을 했죠. 『시간을 파는 상점』, 『아몬드』도 극으로 올렸고요. 모두 성공리에 마쳤다고 들었어요.
김윤나 저는 『시간을 파는 상점』을 바탕으로 한 연극들을 청소년자료실 동아리 학생들과 같이 관람했어요. 요즘 청소년문학을 원작으로 한 연극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도 흥미로울 것 같아요.
고정원 그렇네요. 혹시 보린이는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고전 작품 중에 읽은 책이 있어?
김보린 『죄와 벌』을 읽었는데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더라고요. 읽다 보니 저도 정신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았어요. 주인공의 내면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읽고 보니 다른 고전들도 그런지 궁금했어요. 밝은 분위기의 고전도 읽고 싶어요.
김윤나 생각해 보니 고전 중에 밝은 서사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고전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는 서사가 많다 보니 더 그런 듯합니다. 그리고 당대의 시대상, 사회상을 풍자하고 고발하는 작품들도 주로 고전문학이죠.
고정원 『파우스트』와 『1984』 등 유명한 고전 대다수의 작품상이 어두워요. 『제인 에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고전은 더 어두운 것 같네요. 선생님이 권장하신 추천도서도 다 읽고, 스스로 찾아서 읽기도 하고 정말 훌륭해요. 다른 친구들은 왜 책을 안 읽을까?
김보린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잘 만나서 읽다 보면 ‘읽을 만하다’는 걸 알 텐데, 한 번 읽고 대강 넘겨 버리는 것 같아요. 책을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도서관을 경험할 기회는 더 없는 것 같아요. 도서관 대출증이 없는 친구들도 많더라고요.
고정원 그럼 친구들이 다음에는 읽을 수 있도록 ‘읽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는 책이란 뭘까?
김보린 이꽃님 작가가 쓴 『죽이고 싶은 아이』요. 이꽃님 작가 책은 다 재미있게 읽었어요.
고정원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이 찾는 책을 보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광고하는 책들을 많이 찾는 것 같아. 일본 연애소설이나 추리소설도 많이 보이고.
김보린 정말 SNS에서 책 광고를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광고만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고정원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어떤 방식으로 기록해?
놀이터 같은 도서관이 곁에 있다면
김보린 ‘북적북적’이라는 독서기록장 앱이 있거든요. 거기에 메모장 기능이 있어요. 앱에서 책 읽은 것이 쌓이는 것이 보이고, 독서 레벨이 올라갈수록 캐릭터도 달라져요.
김윤나 그렇구나. 아까 국어선생님께서 ‘강제 독서’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책을 강제로 읽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김보린 워낙 책 읽는 친구들이 없어서 강제라도 책을 읽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괜찮은 책을 만나게 해 주면 독서를 시작하고,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분명 생겨날 것 같거든요. 게다가 지금 저희 반은 필독서를 권하시는 담임선생님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아침 독서시간만 보더라도 친구들이 고요하게 책 읽기에 집중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종을 치면 바로 책을 덮는 건 좀 아쉬워요. 그후로는 안 읽게 되니까요···
고정원 그래도 우리 도서관에는 예일여중 친구들이 많이 와. 보린이처럼 혼자 오는 아이들이 많지만···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책도 읽고, 책 이야기도 이렇게 나누면 더 재미있을 텐데. 친구들에게 ‘책 같이 읽자.’라고 말해 본 적 있어?
김보린 주변 친구들이 책을 안 읽으니 그렇게 말하기가 좀 그래요. “뭐야, 쟤 책 읽네.” 하면 좀 재수없어 보이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고정원 우리 도서관에는 책 읽는 아이들이 모여서 독서동아리를 함께하고 있어. 보린이는 혹시 동아리에 참여해 볼 생각이 있니?
김보린 있어요! 책 좋아하는 아이들은 보통 활발하지 않으니까 사람을 먼저 모으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웃음) 같은 책을 읽은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고정원 혹시 학교도서관에는 가니?
김보린 저는 1학년인데, 저희 학교도서관은 3학년 교실 끝에 있어요. 그러다 보니 잘 안 가요. 구산동도서관마을 바로 옆이 제가 다니는 학원인데요. 집이랑 학교랑 학원이랑 다 제가 다니는 길에 있어서 오히려 공공도서관을 더 자주 가요. 위치가 중요한 것 같아요.
김윤나 그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학교에서 도서관 위치는 정말 중요하구나. 청소년들이 누구나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도서관의 위치도 고려해서 정하는 게 좋겠어요.
고정원 우리 그럼 더 자주 보자. 서로 재미있게 읽은 책 소개해 주기도 하고, 좋지?
김보린 아주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