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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사려 깊은 번역가의 말 걸기] 장벽을 넘어 소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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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3-05 10:34 조회 66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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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넘어 소통하는 법


신수진 번역가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죠. 그 과정에서 때론 오역을 하기도 하고 과한 의역을 하기도 해요.”

황석희 영화 번역가의 에세이 『번역: 황석희』 머리말에 실린 구절이다. 의사소통은 꼭 언어라는 형식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언어로 대화한다고 해도 말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는 오역과 의역은 물론 의도적인 곡해까지 일어나곤 한다. 그러니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일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비장애중심주의 너머, 모두를 위한 책

나의 직업적 정체성은 어린이책 번역가다. 나아가 나는 시민교육 활동가이자 장애를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지난 1월에는 이 세 가지 정체성을 한꺼번에 발현시킨 ‘모두를 위한 책’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는 이수지 작가가 수상했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비롯해 여러 가지 국제적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2년마다 한 번씩 선정하는 ‘모두를 위한 책(IBBY Collection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도 그중 하나다. 2021년 선정작인 40종의 어린이·청소년 책을 제주에 있는 ‘창작공간 낭썹’에서 전시하고, 책 읽기 모임을 열고, 개인 및 단체 관람객들에게 전시를 설명해드렸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를 이번 전시에서 처음 만져 본다는 비장애 어린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를 따라와서 전시 설명을 듣던 한 자폐 어린이는 “점자, 엘리베이터에 있어요!” “청각 장애인, 수화로 얘기해요!” 하고 냉큼 대답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촉각책과 팝업북, 수어를 가르쳐 주는 책(주인공은 청각장애인인데, 수어로 외계인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자폐 어린이를 위해 개발한 픽토그램과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보완대체의사소통자료)로 이루어진 책들은 장애를 공부한다는 나조차도 평소 얼마나 비장애인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상대를 이해하는 일

전시에 선보인 책들은 26개국 21개 언어로 되어 있어서, 언어적 다양성을 확인하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덕에 보고 들은 풍월이 있어서 웬만한 글자들은 어느 나라의 어떤 언어인지 대충이라도 분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리랑카에서 사용하는 싱할라어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보았다. 너무 귀엽고 아름답게 생긴 글자였는데, 관람객들도 다들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어 가곤 했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정도였는데, 그 외의 언어들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일단 영어로 번역해서 읽어 본 다음에 관람객들에게 책 내용을 설명해드렸다. AI 번역기 덕을 이렇게나 톡톡히 보다니!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자폐 혹은 난독증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책들이다. ‘아기 돼지 삼형제’ 같은 짧은 이야기는 물론이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같은 장편 서사도 픽토그램이나 위젯 기호를 이용해 재구성한 것을 보면서, 책이라는 매체를 문자언어의 테두리 안에서만 사고해 왔던 나의 짧은 식견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장애아를 가르치거나 양육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자폐나 난독증을 ‘치료’해야만 하는 ‘비정상’으로 여기거나 장애를 한 사람의 정체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 또는 대안적인 교육방식이 사회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는 비장애인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국제회의에서 통역사가 통역을 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면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맞춤형 의사소통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한다. 이런 뿌리 깊은 비장애중심주의(ableism)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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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서는 오역 없는 매끈한 번역을 지향하며 살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타인과 소통할 때면 삐거덕거리곤 한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상대를 이해하려고 드는 일이다. 손가락 끝으로, 손짓으로 말하는 수어로, 그림과 기호로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나와 어딘가 다른 존재들이 나의 세계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확장시켜 준다는 것을 ‘모두를 위한 책’들이 절실히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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