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정_ "최랑이 이생을 엿봤다니까" (평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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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5-22 10:56 조회 12,053회 댓글 67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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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과서에 실린 작품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이생규장전>을 주목했다. 우리 고전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춘향은 정절을, 심청은 효성을 대표한다고 꼽는다. 이생과 사랑을 나누는 ‘최랑’을 혹자는 ‘정절’의 모델로 삼지만, 김시습이 형상화한 최랑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주체적인 삶’으로 돋보이게 할 만한다. 그리고 최랑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살았던 조선 여인들의 글도 재조명했다. 책은 야옹샘의 도움을 받은 세 친구들의 흥미로운 대화로 짜여 있다. 문맥의 흐름도, 재미난 만화 삽화, 원문 다시 읽기, 연표 등은 누구나 단단하게 <이생규장전>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 책의 내용
<친구와 함께 읽는 고전> 여섯 번째 책은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에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을 야옹샘과 세 친구가 함께 읽는다. 열여섯 살 최랑(최씨 낭자)과 열여덟 살 이생(이씨 선비)의 사랑 이야기이다. 책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 집단과 집단의 충돌, 그리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벽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당당히 자기 삶을 펼친 주체적인 여성, 최랑에 주목하였다. 특히 김시습이 형상화 했던 최랑이 소설 속 인물에 머물지 않고, 임윤지당, 강정일당 등 성인과 군자로 추앙받았던 조선 시대 여인들의 모습이었음을 살펴본다.
‘최랑’의 주체적인 삶 ... 단테 《신곡》의 ‘베아트리체’처럼
김시습은 소설 첫 대목에, 이생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어느 날 담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고 적는다. 이생이 최랑이 사는 별당을 엿본 것으로 제목 <이생규장전(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의 풀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은 최랑의 시에서 ‘길 가는 저 도련님 뉘 집 도련님인가? … 구슬 드리운 발 걷어차고 담장 넘어갈거나.’라며 담장 안을 엿보는 이생보다 ‘담장 밖으로 뛰어넘어 가겠다’는 최랑의 적극성이 돋보인다. 책은 이런 최랑의 주체성, 적극성에 초점을 두고 해석한다.
사랑도 최랑이 이생을 리드한다. ‘의심치 말길, 어두워지면 만나리’(46쪽), ‘꾸지람은 제가 감당하겠습니다’(52쪽), ‘함께 정분을 맺도록 합시다’(62쪽) 등 최랑은 직진이다. 반면 이생은 ‘좋은 인연인가 안 좋은 인연인가’(42쪽)라며 망설이고, ‘이 봄소식 새 나가면’(49쪽)이라고 눈치 보고, ‘잘못 들어온 무릉도원’(55쪽), ‘앵무새 알게 하지 마오’(56쪽)라고 자책한다.
최랑과 이생이 나누는 시와 상황 묘사를 꼼꼼하게 살핀 세 친구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에 이르는 두 인물의 태도를 인생관까지 확장하여 해석해 볼 수 있다.
최랑과 이생은 세 번 헤어진다. 이생이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 언질도 없이 시골로 쫓겨 갔다. 반면, 최랑은 식음을 전폐하고 부모에 호소하여 이생과의 인연을 허락받고 마침내 혼인에 이른다. 책은 최랑이 부모로 표현되는 전통 사회의 관념을 극복하는 데 주도적이였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 헤어짐은 최랑이 겁탈하려는 홍건적의 잔당에 맞서다 죽임을 당한다. 개인과 한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전쟁이자 재난이다. 최랑은 후일 ‘하늘로부터 받은 인격의 자연스러움을 따랐기에 가능했’(134쪽)다고 이생에게 전한다. 책은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의미인 ‘정조’ 때문이란 기존의 해석을 넘어서, 최랑이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자 죽음에 맞섰다고 해석한다. 귀신이 되어서도 최랑은 적극적이다. 대화 중 뭉술이는 ‘단지 시체를 수습해 묻어달라는 게 아니라 같이 살자는 거잖아?’(139쪽)라고 죽은 최랑의 적극성을 인정한다.
세 번째는 김시습의 생사관이 펼쳐놓은 저승의 법도다. 최랑의 영혼은 흩어진다. 최랑은 이생의 연인이자 스승으로 이생을 완성한 후에 흩어졌다. 지은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까지 경험했던 것처럼, 최랑을 이생의 베아트리체, 나아가 한국 문학의 베아트리체로 높이 평가한다.
주체적인 삶을 산, 여인들 ... 조선의 여자 선비들
책은 <조선 여인들에 대한 오해>라는 덧붙이는 글에서, 조선 시대 여성들이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 나서지 못한 한계는 있었지만, ‘가치’라는 측면에서 ‘성인과 군자’라는 남성의 영역에 침투했다고 말한다.(216쪽) 《윤지당유고》를 지은 임윤지당이 ‘시퍼렇게 날 선 칼’에 새긴 호연지기(218쪽)를 지녔고, 조선 성리학의 주요한 논쟁에 자신의 학설로 도전했으며, 송능한의 부인 한씨를 비롯하여 당대 여성 인물을 발굴하는 전기를 남기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또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강정일당의 기록 《정일당유고》에서 예학에 대한 주장, 진리 앞에서 남녀 구별이 없다며 남편을 매섭게 나무라며,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마음공부의 기록들을 인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문으로 경지를 이룬 조선 여인들을 들고 있다. 삼종지도, 부부유별 등 성차별적 해석이 풍문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며 조선 여인이 쓴 다양한 기록들을 접해 보고 새롭게 알아보기를 권한다.
김시습의 생사관을 읽는다
<이생규장전>은 죽음 이후를 무대로 한다. 책은 ‘저승이 존재할까?’라고 질문한다. 공자는 ‘삶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 수 있는가’라고 불가지론을 펼치고, 칸트는 이 세상에서 실현되지 않은 정의가 저 세상에서는 실현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며, ‘요청으로서의 신’(165쪽)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지은이 이양호는, 김시습의 생사관은 죽음 이후에 죄를 씻을 행위가 필요하지만, 결국은 흩어지는 것이라고 전한다. 최랑이 죽어서 귀신으로 이생과 살게 되는 이유를 김시습의 생사관(生死觀)을 통해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앗, 한시(漢詩)가 이렇게 멋지구나
원본 한문소설에는 한시(漢詩)가 많다. 특히 최랑의 다락방에 걸린 두 폭의 그림에 딸린 한시와 사계절의 심상이 잘 담긴 16편 한시가 절정이다.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쌓인 산 봉우리’라는 뜻의 <연강첩장도>와 ‘그윽하니 텅 빈 묵은 나무’란 뜻의 <유황고목도>를 공간과 시간으로 해석해 가는 세 친구의 대화가 나온다. 전통적인 동양화를 감상하고 그에 어우러진 한시의 맛을 음미하며, 소설적으로 최랑이 갖춘 주체성의 근원으로 확장하며 해석한다. 동양화와 한시 감상에 대한 본보기로 추천할 만하다.
::: 구성의 특징
- 발췌식 고전 읽기에서 벗어난, 통으로 읽는 원문
- 다각도로 원문을 해석한 ‘대화’
- 등장인물의 역할 나누어 읽기
-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흐름도
::: 독서 토론을 위한 10가지 질문
1. 책의 첫 대목에 이생이 버드나무 아래에서 ‘담장’의 안을 슬쩍 들여다봅니다. 그리고 이생과 최랑이 담장을 사이에 두고 편지로 마음을 확인하고 이생이 담을 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생의 마음과 최랑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언행과 시의 구절이 나옵니다. 이 언행과 시 구절을 뽑아서 누가 더 적극적인지를 비교해 보고 그 이유를 말해 봅시다.
2. 이 책의 첫 장인 <이생, 담장 너머로 최랑을 엿보다> 뒷부분을 보면, 야옹샘과 세 친구가 ‘집안 살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조선의 여자선비들은 ‘생명을 키우는 일’로, ‘마음을 닦는 일’로 집안 살림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에 비해 서양의 전통은 ‘집안 살림’을 직접적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노동’으로 노예나 하녀가 하는 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집안 살림’에 대한 오래된 생각들의 차이를 살펴보고, 한 인간으로서 ‘집안 살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고 ‘집안 살림’에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생각의 문제점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3. 이생이 최랑을 따라 올라간 다락방에는 두 폭의 화첩이 걸려 있습니다. 하나는 연강첩장도(煙江疊嶂圖, 안개 낀 강 위에 첩첩이 쌓인 산봉우리)이고 다른 하나는 유황고목도(幽篁古木圖, 그윽하니 텅 빈 묵은 나무)입니다. 야옹샘과 세 명의 친구들은 두 폭의 그림을 ‘공간과 시간’, ‘자연과 문명’ 나아가 ‘우주’로까지 의미를 확장하여 살펴봅니다. 이와 유사한 동양화 작품들을 찾아서 함께 보고, 그 작품에서 ‘책에 있는 시 구절’과 어울리는 요소를 찾고 나름대로 느낀 점을 이야기해 봅시다.
4. 최랑과 이생의 사랑은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개인 간의 사랑이 가족과 집안이라는 사회적 관계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그러나 최랑이 죽음을 무릅쓰고 호소하여 혼인을 허락받고 이생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매쟁이를 통하여 이생의 아버지와 최랑의 아버지 사이에 말이 오갑니다. 이 말들을 살펴서 두 집안의 입장을 비교하여 보고, 지은이 김시습이 의도한 바를 이야기해 봅시다.
5. 최랑과 이생의 혼인 시절은 금세 끝이 납니다. 이번에는 고려 공민왕 때 벌어졌던 ‘홍건적의 난’으로 최랑이 죽임을 당합니다. 최랑과 이생이 살던 사회의 밖에서 전쟁을 걸어온 것입니다. 짐승 놈의 겁탈에 맞서 최랑은 저항합니다. 최랑은 이생에게 ‘하늘로부터 받은 인격의 자연스러움을 따랐다’고 말합니다. ‘정조’ 관념에 머물지 않은 최랑의 말을 통해, 생육신으로 살았던 김시습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가 말하고자 것은 무엇일까요?
6. 이생은 전쟁 통에 불에 타버린 옛집에 돌아와서, ‘모든 것이 한바탕 꿈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후로 이생은 달라집니다. 야옹샘과 세 친구들은 이를 ‘인식의 대전환’이라며, 플라톤의 ‘동굴 속 죄수’,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 등 적합한 비유를 찾고 있습니다. 어떤 비유가 ‘이생의 깨달음’을 잘 설명할까요?
7. 이생은 귀신이 된 최랑과 사랑을 나눕니다. 여기서 질문. 저승이 있을까요? 귀신은 무엇일까요? 인류는 오랫동안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했고 이를 생사관(生死觀)으로 체계화해 왔습니다. 야옹샘과 친구들은 공자, 칸트의 언명을 찾고 김시습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추적합니다. 공자나 칸트와 달리 김시습은 죽음 이후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또 여러분은 죽음 이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8. 세 친구들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생규장전〉은 이생과 최랑이 다 죽었는데도 ‘안도감’이나 ‘이루었다’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이 작품 속 ‘죽음’을 설명하는 여러 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망적이었나요, 안도감을 느꼈나요? 만일 죽음으로 ‘이루었다’면 무엇을 이룬 것일까요?
9. 김시습은 유(儒)·불(佛)·선(仙)의 사상을 혼합하여 이 작품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유교적인 것, 불교적인 것, 선(도교)적인 것을 찾는다면 어떤 대목일까요? 또 어떻게 혼합하여 김시습은 스스로의 관점을 세웠을까요?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의 다른 작품들에서 김시습은 또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10. 최랑은 주도적으로 이생을 깨우치게 하고 이끌었습니다. 최랑에게서 조선 여성을 읽을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책의 <덧붙이는 글>에 보면 조선 여인들에 대한 오해를 풀고자, 임윤지당, 강정일당 등이 남긴 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남편을 꾸짖는 편지글 외에도 학문적인 서술도 꽤 많다고 합니다. 조선의 여자선비가 쓴 글을 더 찾아 읽어 보고, 조선 시대를 살았던 여성의 삶을 이야기해 봅시다.
::: 저자 소개
지은이 이양호
나주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 들어가 3년 동안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배웠다. 이후 학생들에게 고전 읽기를 10여 년간 가르치다 독일로 건너가 만하임에 있는 발도로프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중고등 고전대안학교인 ‘다산서원’을 설립하여 동서양 고전을 강의했고, EBS 라디오 <순수의 시대>에서 신화와 민담을 해설했다. 현재는 다산독서클럽과 도서관 몇 곳에서 물음이 있고 자기 형성이 있는 고전 읽기와 글쓰기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 《맹자씨, 정의가 이익이라고요?》, 《만만파파식적과 간 뜯어 먹히는 용》, 《소크라테스는 한번도 죽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왜 탈옥하지 않았을까?》, 《진시황을 겁쟁이로 만든 단 한 사람》, 《삼국유사, 역사의 뜻을 묻다》,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한신》, 《장량》 등이 있다.
그린이 이진우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일본 국제원화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그린 책으로는 『물고기 소년 과학자 되다』, 『왜 법을 어기면 안 되나요?』, 『역사 속 우리 법 이야기』, 『한국사를 이끈 리더』, 『이해가 쏙쏙 쉬워지는 과학원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