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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쟁 토론(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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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12-05 11:15 조회 7,05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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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겨루지 않고도
넉넉히 토론하는 법

이미경 서울 영등포중 사서
 
 
토론은 경쟁이다?
아이들에게 ‘토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것들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토론은 말싸움이다.”
“토론은 찬성 반대이다.”
“토론은 반박이다.”
“토론은 재미없다.”
“토론은 100분 토론이다.”
토론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어떤 문제에 대해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하는 것이다. 반면 학생들이 위와 같이 이야기한 토론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도 상대의 생각을 비난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TV에 비춰진 논객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주로 봐온 토론의 이미지란 상대방을 이기고자 하는 경쟁 방식인 것이다. 경쟁에 익숙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 또한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학창시절에 필요한 것은 경쟁이 아닌 소통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비경쟁 토론은 모두가 즐겁게 대화에 참여하는 소통 형식의 토론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먼 길을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경쟁자를 제치고 혼자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함께 가야 한다. 주어진 질문에 정해진 답을 맞히는 단순한 사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영등포중학교 도서관에서는 경쟁과 승패를 우선시하는 독서토론이 아닌 소통과 화합, 더불어 함께하는 재미를 체험할 수 있는 비경쟁 독서토론을 학생 독서동아리 활동의 발대식과 발표회, 방학 캠프, 1학년 자유학기제 그리고 학부모 워크숍 등을 통해서 했다. 여러 형태의 비경쟁 독서토론 방식 중에서 도서관에서 진행한 두 가지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경쟁 독서토론의 두 가지 방법
1. 첫 번째 토론 방법
모둠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게 이야기 나누며, 가르치려 하지 않고 생각을 공유하
는 대화 형식의 토론 활동이다.
진행 방법
① 각 테이블에 4∼6명이 모둠으로 앉는다.
그중에 모둠지기(호스트)를 정하고 모둠지기는 이동하지 않는다.
② 정해진 책에 대한 소감을 자유롭게 10분 정도 이야기 나눈 후, 모둠에서 한 가지의 공통 질문을 전지에 적고 일어난다. 함께 이야기할 책은 그림책 등을 PPT로 읽어 주어도 된다.
③ 다른 테이블에 적힌 질문들을 보고 그중 마음에 드는 테이블에 앉는다. 호스트는 새로운 모둠원에게 앞서 나눈 이야기와 질문에 대해 설명한다. 1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두 번째 공통 질문을 적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이동한다.
④ ③번 과정을 반복하여 세 번째 질문을 적고, 처음 모둠으로 이동하여 토론을 한 후에 든 내 생각이나 소감을 나눠 준 종이에 적는다. 호스트가 모둠원들와 전지를 들고 공유한 내용들을 발표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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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 번째 토론 방법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경청하고 다름을 인정하여 학생들의 창의성과 사
고의 확장을 지향하는 토론 활동이다.
진행 방법
① 분위기 전환(아이스브레이크): 각 테이블에 4∼6명이 모둠으로 앉는다. 편안하고 활기찬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간단한 게임을 진행한다.
② 느낌 나누기: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을 나누어 준 프리즘 카드에서 선택하여 그 이유를 서로 이야기한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카드에 공감 스티커를 붙이고 가장 많은 스티커를 받은 카드를 소개한다.
③ 토론하고 질문 만들기: 모둠원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각자 포스트잇에 질문을 적는다. 그중 공감스티커로 토론할 질문을 선정하여 4절지에 적는다.
④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테이블에 놓인(벽에 게시된) 4절지의 질문에 각자 생각하는 답변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붙인다.
⑤ 모두 질문에 답을 붙인 후, 각 모둠별로 답변에 대한 토론하고 공감스티커로 하나를 골라서 발표한다.
⑥ 성찰과 실천: 토론과 활동을 통한 배운 점, 느낀 점, 실천할 점을 각각의 포스트잇에 적는다. 모둠 안에서 성찰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학생과 학부모의 소감
“처음에는 묵직한 분위기로 토론을 하는 줄 알고 겁먹었는데 노는 것처럼 해서 좋았다.”
“경쟁하지 않아서 좋고,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존중 받아서 좋았다.”
“내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고 몰아세울 필요가 없다. 어느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냥 서로의 생각을 들어도 된다. 여러 사람들의 다른 생각 덕분에 나는 다른 다양한 해석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드러내고 타인의 의견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최고의 대화 방법!”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사고를 넓히는 토론
사실 ‘토론’하면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독서지도를 공부하면서 모둠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열심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의 반박을 했는데, 상대방은 굉장히 기분 나빠 했다. 토론이 끝나고도 어색한 분위기는 한참을 풀리지 않았다. 토론 주제와 관련해서 상대방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주장했을 뿐이었는데, 상대방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으로 느꼈던 것이 문제였다.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을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찬반을 위한 토론으로 진행하다 보니 어떻게든 나의 주장의 합당함을 내세우고 상대의 의견의 약점과 비논리성만을 찾으려고 했고, 토론의 의미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저 토론이란, 이겨도 씁쓸하다는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작년 초에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비경쟁 독서토론 워크숍에 참여하고 그동안 가졌던 토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해진 논제를 가지고 하는 토론이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앉은 4∼5명이 책에 대한 소감을 자유롭게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질문을 만들어 내는 방식이 새로웠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한 음악도 귀에 들어오고 자신의 생각을 친구에게 하듯이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귀에 들리면서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고 나도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내 말이 틀릴까봐 걱정하거나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허점이나 틀린 것을 찾으려고 할 필요조차도 없었다.
‘그래,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듣게 되고 새로운 경험에 행복해 하면서 모임을 마쳤다. 이후 비경쟁 독서토론에 대한 자료들도 찾아보고 동영상을 보고 다른 연수들도 들으면서 직간접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경쟁 독서토론을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경험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경쟁 독서토론을 처음 접한 학생들은 반응이 좋았다. 앉아서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의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활동이 재미있고 신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학생들의 조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학부모 독서동아리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는 비경쟁 독서토론을 통해 소통과 경청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다툼은 나만을 고집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쓴 메리 올리버의 글처럼, 불통과 일방통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청을 통해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알아갔으면 한다. 주어진 질문에 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는 능력을 비경쟁 독서토론 속에서 더 많은 이들이 경험하기를 바란다.
 
 
 
 
정직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독자 되기
‘정질토’ 3단계 비경쟁 독서토론 이야기

 
이효재 창원 중앙여고 국어교사
 
 
문제의 발견
1990년, 독서동아리 아이들과 나누었던 독서토론은 읽었던 책도 모였던 아이들의 이름도 잊었지만 행복했다. 왜 그랬을까. 아이들은 서로 약속한 시간에 만나서 책을 읽고 생각과 삶을 나누었을 뿐이지만, 나눔 속에서 혼자 간직했던 열정을 주고받고 아픔을 치유하기도 했다. 욕심이나 구속 없이 함께 읽는 행위로서의 독서토론은 행복이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독서교육은 독서에 교육의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을 통해 독서활동을 부추기던 때부터 목적 지향적인 하나의 활동이 되었다. 독서의 양을 중요시하여 다독이 강조되었고, 주류의 누군가가 책에 부여한 의미는 확정적 해석이 되어 책 속에 길이 되었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캠페인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발상은 책 읽기에 빠져보지 않은 이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을 책 읽는 개별 독자로서 존중하지 않고 책 읽는 학습자로 요구했다
는 것이다. 더욱이 독서토론은 책에 대한 충분한 감상이나 이해를 바탕에 두고 발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이뤄져야 하지만, 많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디베이트 방식은 독서가 아니라 토론에 방점을 찍게 되니 책은 그저 토론을 위한 근거에 머물렀다. 그래서 함께 읽기의 정점에 있어야 할 독서토론은 동아리 활동의 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프로그램 설계를 위한 준비
새로운 독서토론의 설계를 통해 그 옛날 나누었던 책과의 대화, 함께 읽는 이들과의 대화를 회복하고, 개인적인 활동인 독서를 통해 공동체 의식과 민주적 삶의 태도를 키우기 위해 개별 읽기에서 토론까지 3단계의 과정을 계획했다. 이 과정의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는 두 가지였다. 아이들을 당당한 독자로 맞이하는 것, 그리고 ‘차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로잡는 노력.
당당한 독자의 시선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독서의 범위를 책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넓혀서 보려 했다. 책 표지만 들여다봐도, 목차에 고개를 갸웃거려도 어여쁜 독자로 여기고,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언제든 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완독하는 것은 그대로, 부분만 읽었다면 그대로 우리는 그를 함께 나누는 이로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 언제든 독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독자로서도 그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좋은 책은 스스
로가 원하는 책이고, 좋은 책은 거저 얻어지지 않으므로 열심히 읽어서 구하는 것이라고 알려 주어야 한다. 자신이 읽어야 할 책을 선택하는 훈련이 부족하면 아이들은 베스트셀러와 서평 등 친절을 가장한 무의미한 데이터에 의지하게 된다. 이
런 경우 그들을 당당한 독자에서 뒷걸음치게 한다.
또한 우리 자신이 ‘차이’를 사랑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아이들 중 누군가 독후활동에서 말했다. 자신이 읽은 책에서 ‘공동체’라고 쓰고 ‘경쟁자’라고 읽는다는 내용에 크게 놀랐다고.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무척 외로웠다고 한다. 내 곁에 있는 이들에 대해 같은 편이면서 경쟁자로 두고 끊임없이 겨루기를 하거나, 나와 너무 달라서 외면하거나, 같은 공동체에서 밀어내거나 하는 어떤 상황 들은 우리를 외롭게 한다. “차이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다른 것을 만났을 때 그것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킨다.”라는 질 들뢰즈의 의견은 설계의 바탕을 견고하게 받쳐 주었다.
비경쟁 3단계 독서토론 설계
독서토론은 개별 독서, 함께 나눔, 책과 독자 그리고 독자와 독자 사이의 질문과 답변, 독서 후 삶에서의 문제의 발견 등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분석한 독서토론의 과정을, 비경쟁을 전제로 하여 3단계로 설계했다. 그 각각의 과정은 정직한 독자과정, 질문하는 독자과정, 토론하는 독자과정으로 명명해 각 단계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각 과정은 개별 활동, 모둠 활동, 전체 활동으로 진행했다.
1단계: 정직한 독자과정
‘정직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다.”이다. 비경쟁 독서토론의 첫 단계인 제대로 읽기 과정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이 낱말이 지금의 독서 상황에서는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우리는 완독, 다독을 진리처럼 추구하는 독서에서 벗어나 어떻게 읽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책과 만나는 매 순간의 환희와 궁금증과 의문을 드러낼 수 있어서 즐거운 나눔의 과정이 정직한 독자과정이다. 조급할 이유도, 정답을
찾아 나설 이유도 없으므로 정직한 독자는 제 안에 있는 바르고 곧은 자세로 주어진 글을 제대로 읽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그리고 함께 읽는 이들에게 기대어 책의 다양한 빛깔을 만나게 된다. 정직한 독자과정은 정직함이 존중받을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제대로 읽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독자 스스로 기울이는 활동이다.
2단계: 질문하는 독자과정
책은 대화이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나의 말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듣기만 할 때, 우리는 그것을 대화라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을 들으면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을 드러내고, 또 나와 다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과정
이 대화이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클 때, 우리의 질문은 얼마나 적극적인가. 책을 읽을 때도 그러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저자의 말을 수용하다가 어느새 ‘왜’, ‘무엇이 그것을 그토록’ 등과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질문 생성 이유를 쓰면서 질문하는 나를 들여다보면 내가 책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가 보인다. 이 과정은 독자인 ‘나’의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 부분은 오직 독자로서 유일한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3단계: 토론하는 독자과정
읽은 책으로 우리의 삶을 고민하는 과정이다. 책 읽기를 통해 ‘나’의 어떤 부분이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과정이다. ‘함께 읽기’의 독자가 결국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다. 책 읽기의 끝이 독서 행위에 대한 자랑이거나, 다른 이를 억압하기 위한 근거의 축적이라고 한다면 독서는 자기 편견의 강화이며, 소통과 공감을 막는 벽을 쌓은 행위가 될 것이다. ‘함께 읽기’의 독자들은 ‘질문하는 독자 과정’을 통해 충분히 소화한 책을 바탕으로 우리가 서 있는 삶의 현실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현실의 문제 발견과 문제 해결을 위해 실천의 첫 걸음을 떼는 과정이 바로 토론하는 독자과정이다.
실천과 효과
비경쟁 3단계 독서토론은 2010년 청소년 인문학 읽기 전국대회에서 시작했다. 그대회를 기획했던 분들도 경쟁 방식의 독서토론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대회 모형을 찾던 중, 학교 안에서 다양한 비경쟁 방식의 토론을 실천하던 나와 인연이 닿
아 지금의 비경쟁 3단계 독서토론의 첫 틀을 만들게 되었다. 첫 대회를 열기 전 교사 워크숍을 하며 비경쟁 토론의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고 걱정하시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다행히 아이들은 대회의 과정을 잘 소화했고, 올 여름 제9회 대회를
치렀다. 그리고 2015년부터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올해 3회째 운영했고, 경상남도의 각 교육지원청, 단위학교 등에서 이 모형으로 비경쟁 독서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정질토’ 비경쟁 독서토론은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 3시간에서 4시간 정도로 정하여 학교 행사, 혹은 연수 활동으로 가능하다. 각 단계를 주별로 진행해도 된다. 정직한 독자과정을 2, 3주 하고 난 뒤, 질문하는 독자과정 3주, 그리고 토론하
는 독자과정으로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다. 또 한 학기 한 책 읽기 프로그램에 접목할 수 있다. 지금 2년째 한 학기 한 책 읽기를 이 3단계로 운영하고 있는데 만족스럽다.
‘정질토’ 비경쟁 3단계 독서토론을 하면서 놀라게 된 것은 참가자의 연령에 관계없이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원생, 그리고 교사, 일반직 공무원, 학부모 등 다양한 참가자들이 보여 준 모습은 상호 신뢰와 두려움 없는
자기 노출이었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는 사실, 그리고 경쟁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일은 정말로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왜 독서토론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서현숙 강원 홍천여고 국어교사
 
 
“우리가 책을 고르고, 나누고, 시간을 모아 눈을 맞추고 독서토론을 하는 순간, 일상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일들을 다 잊고,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거잖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1)
내가 만나온 독서동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종잡을 수 없는 대상이다. 꽃인가 싶으면 구름이 되어 있었고 나무인가 싶으면 풀꽃이 되어 있었다.
살아난 그림으로~2)
2학년 학생들은 요즘 국어 시간에 ‘인생 독서토론’을 한다.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둠을 만들어서 한 가지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것이다. 화학, 의료, 인공지능, 생물, 예술, 교육 등의 특정 분야와 관련된 독서이다 보니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수업 시간에 독서토론을 하는 것은 정보를 나누기 위한 목적이 아니야. ‘나’가 없는 독서토론은 의미가 없어. 세상엔 한 학문만 독립해서 존재할 수 없고 모두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그러니 예술을 통해 역사를 보고, 과학을 통해서 사회를 보고, 의료를 통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해.”라고 당부하고 시작했다. 7반 예봄이네 모둠 아이들은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황영애)를 읽고 아래와 같이 독서토론 주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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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통해서 성찰하고 인생을 생각하는 주제들을 보며 ‘인생 독서토론 하기를 잘 했구나.’ 하는 생각을 슬며시 했다. 다음은 이런 주제를 정한 그녀들이 친구들과 눈을 맞추고 나눈 이야기 중의 일부이다. 책에서 배운 화학 용어를 이용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옹기종기 모인 마음들이 사랑스럽다!
 
은섭 나는 나의 삶을 이온 결합으로 표현하고 싶어. 이온 결합은 부족하거나 남는 전자를 서로 공유하는 화학 현상이잖아. 난 이 화학 현상을 보면서 친구들이 생각났어. 나는 친구들과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위로해 주거든. 이렇게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한다면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을까?
예봄 은섭이 말이 정말 공감된다! 그래서 나는 이온 결합의 짝이라고 할 수 있는 공유 결합에 나를 비유했어. 사람들은 서로 끊임없이 도우며 살아가잖아. 서로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세상이지. 인생 독서토론 활동을 마친 수현이는 이런 소감을 들려주었다. “한 학기 동안 수업 시간에 독서동아리 활동을 한 기분이에요.”
 
수긍이 되었다. 꿈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한 학기 동안 한 권을 읽고 독서토론 주제를 선정하고 독서토론을 한 후 보고서까지 제출한, 그야말로 제대로 된 독서동아리인 것이다. 독서동아리가 몸을 바꿔 우리의 수업에 스며들었다.
 
철없는 낙서들로
책친구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계절별로 선생님과 책친구가 되어서 함께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5인의 책친구가 학교 어딘가에서 일 년 내내 이루어진다. 5人의 책친구는 화려한 이름(벚꽃리딩 봄날 5人의 책친구, 동그란리딩 여름날 5人의 책친구, 잎 지는 밤 가을날 5人의 책친구, 눈꽃 리딩 겨울날 5人의 책친구)을 가졌고 홍천여고 학생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다.
“국어 시간에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면서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일이 무척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친구들과 함께 독서토론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서 가을날 5인의 책 친구에 신청한다.”(1학년 허성은)
아이들은 수업이 아닌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선생님과 책친구가 되는 것이 인생의 특별한 추억이 된다는 것을, 독서토론이 친구와 함께 성장하는 밀도 높은 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학생들이 만든 한 줄 명언처럼 ‘독서토론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는 비밀’인 것이다. 그래서 벚꽃이 피었다가 질 때까지, 초여름 나무의 여린 잎이 짙고 깊어질 때까지, 교정의 국화 꽃 봉우리들이 활짝 필 때까지, 첫눈이 운동장을 하얗게 덮을 때까지, 5인의 책친구도 그렇게 수시로 피었다가 진다. 나는 이를 게릴라성 독서동아리라고 부른다. 이 역시 독서동아리의 몸바꿈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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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학년 장예지의 독서토론 소감 중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라는 말이 어찌나 귀여운지!
2) 이 글의 소제목은 모두 국카스텐의 노래 <변신>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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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채로 잡은 시(詩)로
예전에는 독서동아리만 독서동아리로 보였다. 지금은 독서동아리뿐 아니라, 수업 시간 독서토론, 독서토론카페, 독서토론파티, 5인의 책친구, 언니의 독서토론 워크숍, 낭독이 있는 저녁 모두 독서동아리로 보인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독서동아리가 휙휙 몸을 바꾸며 변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업 시간에 제대로 배운 독서토론의 즐거움이 학교 여기저기에 펼쳐진 다양한 ‘함께 읽기’ 놀이의 판에서 무한히 변신하고,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새로운 힘으로 계속 태어나며 더욱 커진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 보인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 다양한 판들이 네다섯 명이 모여서 같은 책을 읽고 토론 질문을 만들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힘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정을 넓히며 어디서든 토론으로
우리 학교는 비경쟁 독서토론만을 한다. 비경쟁 독서토론을 해 본 학생들은 대부분 함께 읽기를 좋아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던 날이었을까, 아니면 의심하던 날이었을까? 문득 2학년 7반 학생들에게 물어 보았다.
“함께 읽는 것과 혼자 읽는 것 중에 어떤 것이 좋아? 솔직하게 말해줘.”
“함께 읽는 거요!”
“그러면 함께 읽고 독서토론하는 것은 혼자 읽는 것보다 어떤 점이 좋아?”
“즐거워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돼요. 기억에 더 잘 남아요. 독서토론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열심히 읽게 되어요
.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다보면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친구들과 친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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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들려준 독서토론의 좋은 점 중에 친구들과 친해진다는 말에 나는 주목한다. 어른들은 독서토론을 주로 지적(知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는데, 아이들에겐 친구와 우정을 쌓는 비법인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이러한 반응에서, 다양한 기교는 없지만 자꾸자꾸 해도 지루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듭할수록 관계와 영혼의 작은 틈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비경쟁 독서토론의 위대한 힘을 발견한다.
“책을 읽는 내내 ‘독서토론 때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친구들은 이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라는 궁금증이 떠올라서 즐거움에 차있었어.”(2학년 장가빈)
“이야깃거리가 나뭇가지처럼 타고 연결되어 갔어. 이 과정에서 나는 교감 선생님이 얼마나 섬세하고 유쾌하신 분인지,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 어떤 멋있는 인생관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또 그러면서 나를 돌아볼 틈을 가지게 되었어.”(2학년 허유빈)
 
우리 학교 학생들 역시 대학 입학의 압박감에 찌들고 경쟁이 철저하게 내면화된 대한민국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독서토론과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설레게 할 수 있다. 또한 나를 성찰하게 하고 내 옆의 사람들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그래서 이야깃거리가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게 만든다. 그것이 비경쟁 독서토론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를 읽고 친구들과의 책 대화에서 주현이가 한 말이 마치 우리들의 독서토론을 염두에 두고 건넨 듯하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상대방과 교류하고 소통하잖아. 그래서 외부의 진동이 자신의 진동과 일치하면 진동이 점점 커지는 공명 현상 같아. 작던 나의 진동이 너를 만나서 점점 커지고, 서로 어우러져 우리 모두 더 큰 존재가 되어가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독서토론을 사랑하게 되었다. 독서토론은 ‘가장 사랑 받을 수 있는 완벽한 대화3)’이다. 함께 읽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함께 읽으면 기쁨도 함께 슬픔도 함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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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생들이 만든 한 줄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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