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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도서대출이력, 문제의 심각성 인식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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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1-18 15:06 조회 5,8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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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근 포항 두호고 사서교사
 
#상황1
“사서선생님! 지난 1학기 우리 반 학생들 도서대출이력 좀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생기부(학생생활기록부) 작성에 필요해서요.”
“네, 도서대출이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니 유출에 유의하시고, 생기부 작성에 활용하신 후에 즉시 폐기해 주세요.”
 
#상황2
“선생님, 지금까지 제가 도서관에서 빌렸던 도서목록 볼 수 있어요?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1·2학년 때 빌렸던 책이 뭔지 잘 기억이 안 나서요.”
“그럼 당연히 볼 수 있지. 지난 3년간 빌렸던 책 목록 출력해 줄게. 잘 관리해.”

 
‘상황1’은 일반계 고등학교인 본교에서 매년 학기말이 되면 반복되는 담임과 사서교사인 나의 대화이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니 이제는 학기말이 되면 요청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각 반 담임선생님께 도서대출이력을 보내드리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2’는 입시철이 되면 도서관을 찾는 고3 학생들과 자주 나누는 대화이다. 이처럼 학기말이나 대입 준비 시즌이 되면 도서대출이력에 대한 요구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도서대출이력이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임에도 그 기록을 관리하는 기준이 없어서, 그동안 담임에게 자료를 주면서도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도서대출기록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현직 고등학교 사서교사로서 나의 짧은 소견을 밝히면 다음과 같다.
우선 ‘도서대출이력은 학생의 졸업과 동시에 삭제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도서대출이력은 누적 관리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도서대출이력 또한 개인의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고, 현재의 입시체제 하에서 그 필요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엄격하게 관리·활용한 후 졸업과 동시에 폐기되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학생이 졸업한 후까지 대출이력을 남길 이유가 없고, 만일 폐기를 원치 않는 학생이 있다면 삭제 전 별도로 제공하면 될 일이다.
또한 도서대출이력의 열람 범위는 학생의 동의를 얻어 담당교사와 담임교사에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정보라 할 수 있는 학생생활기록부도 담당자와 담임만 열람할 수 있다. 도서대출이력 역시 생기부에 준하는 열람 범위를 설정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물론 담임에게도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30여 명의 학급 구성원 전체의 독서 상황을 생기부에 입력해야 하는 고등학교 담임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열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상이 고등학교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바라본 입장이며, 초·중등의 입장은 이와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모여, 하루 빨리 도서대출이력에 대한 강력한 제도적 보호 장치와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도서대출이력에 대해 고민하며 느낀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학생들의 도서대출이력에 대한 인식이 너무 낮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도서대출이력을 누군가 엿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 대다수 학생들이 “별로 상관없어요.”라는 답변을 했다. 전화번호나 주소 등 개인정보 유출에는 민감하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 도서대출이력이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고, 그것이 사상의 검열 도구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말에도, “에이, 설마요.” 하며 전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비단 본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학생들의 인식제고를 위한 교육이 더욱더 시급한 상황이다.
 
“그 당시(미디어 검열을 정당화한 ‘양화법’을 제정한 시기)에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 이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 이런 세상(책과 미디어를 정부가 검열하고 통제하는 세상)을 물려준 것에 대해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하다.” –영화 <도서관 전쟁> 중에서
 
미디어 검열로 대중을 통제하려는 권력과 그에 맞서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 <도서관 전쟁>에 나오는 대사이다. 만일 도서대출이력 문제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언젠가 위 영화 속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이미 지난 5월 경기도교육청의 추천도서검열 논란 속에서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앞으로 더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전에 도서대출이력에 관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합리적 방안을 도출하고, 국가 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사상의 자유, 독서의 자유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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