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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여름 방학 그곳 이 책_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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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0-23 14:13 조회 5,88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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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홍유릉 뒤편에 누워 있었다 덕혜옹주묘
이동환
북칼럼니스트, 『친절한 과학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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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릉은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으로 이뤄져 있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왕후 민씨의 능이며, 유릉은 순종과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가 함께 묻혀 있다. 내가 그곳에 간 목적은 홍유릉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능의 울타리 바깥에 있는 한 무덤을 보기 위해서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옹주다. 그녀는 후궁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덕혜옹주(1912~1989)다, 그녀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조선은 일본과 강제로 합병이 되었다. 그러니 그녀는망국의 옹주로 태어난 것이다. 고종은 9남 4녀를 두었으나,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3남 1녀로, 그녀는 고종의 유일한 딸이다. 그러니 순종은 그녀의 큰 오빠다. 그녀가 태어날 때 아버지인 고종의 나이는 환갑이었다. 늦은 나이에 얻은 딸이니 얼마나 예뻐했을까. 홍유릉에서 오른쪽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왼쪽에 쓸쓸해 보이는 무덤이 하나 보인다. 바로 덕혜옹주묘다. 묘는 울타리로 막혀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울타리 바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아마도 묘를 보호하기 위함으로 보이는데, 언제 울타리를 걷어 내고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처음 덕혜옹주묘에 가게 된 이유는 한 도서관의 견학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유릉에 사전 답사를 가게 되었다. 릉의 입구에 홍유릉 일대의 지도가 그려 있었고, 덕혜옹주묘가 홍유릉 뒤편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마 소설 『덕혜옹주』를 읽지 않았다면 그냥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의 목적 장소였던 홍유릉보다는 덕혜옹주묘에 더 관심이 갔다.
그 이후 나는 가끔 그녀의 묘를 찾게 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조선의 왕실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곧바로 시작한다. 먼저 일제는 영친왕을 일본의 왕족 이방자와 정략결혼 시킨다. 그리고 영친왕은 일본육사를 졸업한 후 육군 중장에 이른다. 그러나 허울뿐인 장군이었다. 덕혜옹주는 일본의 요구에 따라 도쿄에 보내지고, 이곳에서 일본 귀족이 다니는 여자학습원에서 수학한다. 그리고 1931년 대마도 도주인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한다. 이듬해 딸 소 마사에를 낳는다. 그러나 이 시절 그녀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병세가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으며 결국 1955년에 이혼한다. 그리고 1962년에 이덕혜라는 이름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한다. 이후 창덕궁 낙선재 안 수강재에서 거주하다가 1989년 4월21일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나이 77세였다. 최근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녀가 어린 시절에 입었던 궁중의상 7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난 이후 90년 만에 그녀의 채취가 묻어 있는 옷이 돌아오는 셈이다. 또한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도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하니 빨리 보고 싶다.
덕혜옹주묘를 뒤로 하고 홍유릉으로 다시 돌아오는 산책로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일본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홀로 무덤에 누워있지만, 자신의 아버지(고종), 오빠(순종)의 무덤이 있는 곳에 있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무덤이 개방되면 꽃이라도 들고 찾아가야겠다.
 
『덕혜옹주』
권비영 지음|다산책방|2009
덕혜옹주의 일생을 그린 소설로, 그녀는 궁에서 태어났고 궁에서 죽었건만 그녀의 생은 조선이란 나라의 슬픈 운명을 빼닮았다. 왕녀의 화려한 생활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비극을 읽을 수 있다.
 
『조선왕릉, 잠들지 못하는 역사』
이우상 지음|다할미디어|2014
소설가 이우상이 조선 왕릉 모두를 직접 답사하고 쓴 왕릉 소개서다. 왕릉의 주인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와 관련된 야사,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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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문학마을, 정릉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내가 태어난 곳은 정릉이다. 정릉은 성북구에 있는 사적으로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능(陵)이다. 이곳에서부터 북한산국립공원 쪽으로 들어가는 인근에 있는 동네가 행정구역상으로 정릉동이다. 나는 이곳 정릉 중에서도 3동, 산 1번지, 거북바위가 내려다보이는 한 집에서 태어났다.
국립공원은 물론 청와대와도 인접한 정릉은 오래전부터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고층아파트나 빌라가 없는, 서울에선 거의 유일하게 아직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소로 남았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30분만 나가면 종로, 광화문에 닿을 만큼 시내와 가까운 곳이다. 지금은 마을 입구까지 길이 잘 정비됐지만 일단 정릉골에 들어서고 나면 밭이 있고 그 둘레로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길이 즐비한 과거 같은 마을을 보고 다들 놀라게 된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지금 정릉에 살지 않지만, 복잡한 도시 생활에 지칠 때면 힘을 얻기 위해 내가 태어난 곳, 그래서 어머니 같은 마을 정릉에 다녀온다. 정릉에 가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래서인지 오래전 이 마을에는 문인과 화가들이 여럿 살았다. 정릉골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토지』를 쓴 작가 박경리가 1965년부터 1980년까지 살았던 집이 있다. 그 집은 지금 서울시 정책에 따라 근현대 유산을 발굴 및 보존하는 계획에 포함된 곳 중 하나이다. 박경리는 마당이 넓은 이 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토지』를 썼다.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시인 임화(林和, 1908~1953)는 여름이 되면 이곳 정릉에 와서 더위를 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곳에서 나던 약수는 맛도 있지만 병을 치료한다는 소문이 있어 여러 곳에서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다녀갔다. 『백치 아다다』를 쓴 작가 계용묵(桂鎔默, 1904~1961)도 1954년부터 별세하기 전까지 정릉에 살았다. 정릉은 도시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몸과 마음을 쉬게 해 주는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은 ‘생명평화마을’로 통한다.
정릉으로 들어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다. 북악터널을 지나 배밭골 건너 청덕초등학교 쪽으로 난 길은 석불사와 수녀원을 지나 높지 않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 들어가야 한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려면 정릉시장에서 내려 시장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된다. 그대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국립공원 입구인 청수장인데, 여기서 곧장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길이 있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세 곳 모두로 길이 통한다.
무더위에 잠시 하루 땀을 식히기 위해서든, 박경리나 임화의 흔적을 찾으러 가든, 아무래도 다 좋다. 조용히 동네를 산책하다 우연히 만나는 고양이에게 눈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평화로워질 것이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최예선 지음|정구원 그림|지식너머|2014
산책이라고 하면 고즈넉한 시골길만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전혜린과 대학로 학림다방에 얽힌 이야기부터 시인 기형도의 종로 3가, ‘구보씨’ 박태원이 걸었던 경성의 산책길을 엿볼 수 있다 .
 
『권기봉의 도시산책』
권기봉 지음|알마|2015
서울을 그저 복잡한 도로, 출근 전쟁, 치솟은 고층빌딩 만으로 기억한다면 그건 서울의 겉모습만 본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서울에 숨어 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재미있고 유익하겠다.
 
『상아탑』
계용묵 지음|그림책|2014
『백치 아다다』를 쓴 계용묵 작가의 수필집. 1950년대에 나온 수필집을 근래에 다시 복간한 책이지만 아름답고 정감 어린 작가 특유의 문장 때문에 언제 읽어도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작가가 정릉에서 겪은 일을 쓴 글이 한 꼭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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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수성동 계곡의 물소리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여름에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은 곳 중에 수성동 계곡이 있다. 경복궁역에서 멀지 않은 울울창창 깊은 산 속에서 볼 수 있다. 인왕산 동쪽에 자리한 수성동 계곡은 그 소리가 맑을 뿐 아니라 소리가 크다 하여 이름이 수성(水聲)이다. 1971년 지어졌던 옥인시범아파트가 2010년 철거되며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 ‘수성동’ 속의 기린교가 발견되어 이 일대가 그림 속 그 모습을 되찾았다.
서촌 일대는 인왕산을 끼고 있고, 청계천의 상류 역할을 하는 청풍계, 백운동천, 옥류동천 등의 계곡이 있어 경치가 뛰어나고 경복궁과 가까워 왕족들이 살았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태종과 태종의 셋째 아들인 세종이 태어난 곳이 서촌이다. 지금도 서촌의 정식 명칭은 세종마을이다.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도 옥류동 물길의 상류인 수성동 계곡에 비해당이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 안평대군은 서른 살 때,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을 잊지 못해 안견에게 그리게 했는데 이것이 <몽유도원도>다. 꿈이란 현실의 재구성이니 ‘몽유도원도’ 속 풍경은 아마 안평대군이 살았던 수성동계곡 근방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어느 해 여름 장마에 물이 불었다는 소식을 인편으로 듣고 수성동 계곡에 가 보았다. 물소리가 듣기 좋았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앉아있기도 했다. 계곡 주변을 따라 걷다 철거되었지만흔적을 보존해 놓은 옥인아파트 자리에도 잠시서 보았다.
인간의 감각이란 한이 없어서 듣고 보자고 하면 아주 작은 것도 느낄 수 있다. 일테면 빗소리, 물 흐르는 소리, 바람 소리가 귀를 열면 들린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 아무 때나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음악소리 같은 것들에 넌덜머리가 날 때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작은 기척과 움직임에 귀를 기울여 본다. 막 세수를 한 맑은 얼굴처럼 온몸과 마음이 청량해진다.
서울은 오래된 도시다. 수성동 계곡에 있으면 공간 속으로 시간이 흘러간다. 겸재 정선의 산수화 속에 등장하는 선비들이 기린교를 건너는 게 보이는가 싶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중인 지식인들이 글을 지으며 풍류를 즐기러 오는 것도 같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수성동 계곡에는 물소리가 남았다.
 
『오래된 서울』
최종현, 김창희 지음|동하|2013
한양대 도시공학과에 재직했던 최종현 씨가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드문 오래된 역사도시 서울의 흔적을 찾아 살피는 책이다. 서울의 서촌 즉 경복궁 서쪽에서 사직단에 이르는 동네의 옛 흔적을 걸으며 꼼꼼하게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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