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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조건 금지는 무조건 금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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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9-10 17:59 조회 5,8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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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문 서울관광고 사서교사
 
『레 미제라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984』, 『율리시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양철북』, 『채털리 부인의 사랑』, 『파우스트』,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대부분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고전’이나 ‘세계 명작’의 반열에 올라 권장되는 책들이지만 책이 발간되었을 당시, 또는 어떤 시기에는 ‘금서(禁書)’였다는 점이다. 금서로 지정해 읽지 못하게 막은 이유는 책마다 제각각 다르겠지만 그것을 금서로 정한 사회의 도덕과 풍속의 이면을 드러내어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정면으로 마주할수록 그 불편함을 이겨 내고 개선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금지한다는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이유가 타당한지 아닌지는 따져 봐야 할 문제이지만 왜 그런 이유를 들어 금지했는지를 우선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 모든 학교도서관에서 금지하도록 정한 책 목록은 따로 없다. 하지만, 각 도서관에는 금지되는 책들이 저마다 존재할 것이다. 앞서 금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렇게 각 도서관에 꽂히지 않는 책들에 대해서도 짚어볼 필요는 있겠다. 불필요한 책들을 예산을 들여 구입할 이유가 크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학생들의 관심과 수준을 고려한다면 목록 선정에 조금 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으므로.
학교도서관에 장서를 구입하는 절차에는 자료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게 되어 있다. 도서관의 목적에 맞는 자료를 구입하기 위해 위원회가 심의를 하고 심의에 통과된 책들만 구입한다. 장서의 질을 확보하고 기관의 목적에 맞는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제도이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구입도서 목록만 보고 위원회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마지막 입맞춤』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아내가 또 다른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1년 동안 저자가 기록한 그림일기이다. 제목에 ‘입맞춤’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자료선정위원회에서 구입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 역시 같은 이유로 제외되었다. 책의 내용에 대한 고민보다는 굳이 학교도서관에 키스, 살인, 죽음 등이 포함된 책을 넣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건강한 가치관 형성을 위해 좋은 책들을 고르고 좋지 못한 책들은 배제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일이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제목만으로 목록을 심의할 것이 아니라 내용과 가치를 따져보고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알아가야 할 시기에 다양한 책들을 접하게 하여 좋고 나쁨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 저자의 메시지가 내 가치관과 만나 충돌하는 지점에서 생각이 커 나가고 사유하는 힘이 생긴다.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게 하는 독서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읽어야 한다. 학생마다 독서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책을 읽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서는 판타지 소설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협소설, 판타지 소설, 로맨스 소설이 무조건 나쁘다고 제외할 것이 아니라 수준이 낮은 책들을 통해서라도 책 읽기에 즐거움을 느끼다 보면 더 좋은 책들을 찾게 될 것이다. 『나니아 연대기』, ‘해리포터 시리즈’ 등도 판타지 마법소설 아닌가.
 
내가 처음으로 읽고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졌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이다. 동성애와 섹스, 담배가 등장하는 야하고 불량한 책이었지만 주인공 와타나베의 사고방식과 말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 하루키의 책을 다 찾아 읽게 되었다. 고3 때 읽은 야한 책을 통해 책 읽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게 돼 사서교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고 진로까지 바꾸게 됐다. 일반적인 예는 아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책, 나쁜 책이 아니라 덜 좋지만 그 책을 통해 좋고 나쁨을 알 수 있게 되고, 더 좋은 책을 찾아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아닐까? 만화라서 안 되고, 판타지라 안 된다는 무조건 금지보다는 다양한 수준의 독서 능력과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진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을 수 있고, 좋은 글을 찾아 읽는 안목과 지적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한 독서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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