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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금서와 학교도서관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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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9-10 17:51 조회 6,1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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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 <기획회의> 편집주간, 『금서의 재탄생』 저자
 
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금서, 즉 금지된 책은 고금동서(古今東西)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왔다. 인간 세상은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는데, 책이 담고 있는 진보적 지식은 권력자들에게 불편한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다툼의 원인이 되었던 정치권력은 인쇄술 탄생 직후부터 숱한 금서를 만들어 내며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았다. 종교권력, 특히 중세 유럽의 교회는 『성서』마저 민중이 읽을 수 없는 금서로 만들면서까지 기득권 사수에 전력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성’ 역시, 이른바 외설이라는 이름으로 금서의 한 잣대가 되었다.
 
금서를 만들어 내는 필연적 구조 가진 정치
정치는 금서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진보적 사상을 담은 책은 권위에 도전하는 사상과 철학의 못자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앙리 2세는 무허가 인쇄업자를 무조건 사형에 처했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런던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지역 외에는 인쇄기 설치를 불허했다. 중세 유럽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는 학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했고, 조선에서도 신세계·이상향을 지향한 『홍길동전』이나 신사상을 전파한 『열하일기』 등을 금서 목록 첫 자리에 올렸다.
숱한 조선의 금서 중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른바 개혁 군주로 알려진 정조는 『열하일기』를 세상 민심을 호도하는 주범으로 생각했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탕평책을 적극 추진했고, 이덕무·박제가·유득공 등 서얼을 등용하며 조선 사회를 새롭게 하고자 몸부림쳤다. 가히 조선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는 세간의 평은 허튼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조는 조선 역사에서 세 번 있었던 ‘반정’ 중 하나인 문체반정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나머지 두 반정은 알다시피 왕이 바뀐 반정, 즉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었다.
반면 문체반정은 문체를 정통고문(正統古文)으로 되돌리고자 하는 정신사적 반정이었다. 당대 진보적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패관소품체(稗官小品體) 혹은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가 요사스러운 문장으로 민심을 자극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조는 패관소품체가 조선 지식인들에게 널리 퍼진 주범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지목했다.
패사소품체는 짧고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일, 즉 누항(陋巷)의 잡사(雜事)를 통해 세상 이치를 이야기하는 글이다. 쉽게 말하면 학문적 글쓰기가 아닌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였다. 정조는 세상과 소통하는 글 자체가 두려웠을 것이다. 패관소품체는 명말청초 정통 성리학의 이념과 가치를 상대적 관점에서 해석하거나 부정한 양명학자와 고증학자들이 즐겨 썼던 문체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 조선에서 패관소품체 때문에 명나라가 망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정조는 패관소품체를 단속할 수밖에 없는 한 나라의 왕, 즉 권력을 지켜야 하는 사내일 뿐이었다. 정조와 박지원 그리고 『열하일기』를 상세하게 다룬 이유는 그만큼 정치와 금서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권력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그런 점에서 정조와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패턴은 정치와 금서의 관계를 규명하는 가장 극명한 방식이다.

종교가 금서를 만든 이유
종교가 금서를 양산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권력이다. 종교가 추구하는 권력의 양상이 다양하지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모두를 가지려고 했다. 중세 유럽으로만 시간을 한정하면 종교, 특히 기독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라틴어 성서를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윌리엄 틴들을 처형한 것이 1536년이다. 틴들이 성서를 영어로 번역한 이유, 즉 “모든 신자들이 자기 나라말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주장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자기 나라말로 성서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면 이런 대답이 적격이다. 말과 글로써 무지한 민중을 통치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고. 당연히 라틴어 성서를 고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고집 자체가 결국 권력을 지키기 위한 아집이었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의 집단을 통해 나오던 시절, 중세 유럽을 암흑기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 세종 당시 한글 창제를 한사코 막았던 양반네들의 심리도 이와 상통한다.
정치권력을 지키기 위해 종교는 과학적 발견과 진보 역시 한사코 막으려고 했다. 사실 종교가 막고자 했던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이었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싸움이 대표적이다. 기독교가 천동설을 지지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구에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태어났고, 십자가 수난과 죽음, 이어지는 부활의 환희를 이뤄 냈다. 이렇듯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기에 이에 대항하는 지동설은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사상이다. 그는 “성서 자체는 진리이지만 그 해석에서 오류를 범하기 쉽다.”라는 말로 당시 종교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도미니크 수도회를 자극했다. 성서의 해석을 두고 왈가왈부했던 갈릴레이는 평등사상을 가진 과학자였다. 당시 종교권력자들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땅의 것을 멸시하고 하늘의 것을 추구해야 마땅하다는 이율배반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늘은 땅보다 고귀하고 영생불멸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때문이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하늘이 고귀하다면 결실과 수확을 가져다주는, 또 재스민 꽃을 피우는 땅도 고귀하다.”라는 말로 하늘과 땅의 차별을 경계했다. 이처럼 위험한 사상을 가진 갈릴레오의 과학적 발견과 주장은 금지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지금은 다양한 학문 발전의 밑받침이 되고 있는 진화론도 새로운 세계관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창세기의 해석에 도전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떨어뜨린 사람”으로 비난받았다. ‘진화’라는 말을 사용한 순간 창조의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성과 금서
금서를 규정하는 세 번째 키워드인 ‘성’ 이야기로 가보자. ‘성’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여기서 성은 ‘욕망’의 다른 말인데, 사회규범 등이 나락으로 떨어진 사회, 즉 병든 사회일수록 건전한 육체적・물리적 욕망을 정죄한다. 조선이 바로 그런 사회였다. 경제력 없는 양반 여성들이 신분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권력자들은 개가 금지에 대한 반대급부로 이혼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조선 양반들은 공식 이혼 대신 ‘출처’ ‘소박’을 일삼았고, 축첩이나 기방 출입으로 성적 욕망을 해소했다. 일탈을 밥 먹듯 하면서도 아내와 딸에게는 정숙과 순결을 요구하는 게 조선 양반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지배층은 물질적 부를 독점하기 위해 피지배층의 건강한 욕망을 억제했다.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던 귀족들은, 스스로는 성적 일탈을 거듭하면서도 무지렁이 백성들에게는 성을 자녀 생산의 거룩한 방법이라고 전파했다. 건강한 자녀를 낳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설파했지만 기실 그들 눈에는 노동력이 증가하는, 하여 재산의 증가를 가져오는 도구일 뿐이었다. 역사 이래 성을 종족 번식을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 이유는 바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전략 중 하나인 셈이다.
 
학교가 금서를 대하는 방법
화제를 학교로 바꿔보자. 학교가 권력의 주체는 아니지만 때론 금서를 지정하는 주체 중 하나였던 것만은 사실이다. 학교에서 금서가 된 책들은 대개 영미권 현대소설들인데, 주디 블룸의 『포에버』나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이 대표적이다. 『포에버』의 경우 미국 여러 주의 학교에서 욕설과 자위행위, 피임 등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학교도서관에 비치될 수 없었다.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주인공의 음란성과 혼전 관계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학교도서관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다.
학교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금서(아닌 금서)를 지정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몸과 정신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사고와 행동에 책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방 충동이 높은 시기임을 감안하면 적절한 수서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세간의 평에 의지한 무분별한 금서는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도서관을 포함한 모든 도서관의 장서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수서되어야 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작정 금서로 지정하기보다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 작품들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해당 도서의 함의를 밝혀 보는 것이 훨씬 교육적이라는 사실이다. 말뿐인 독서교육이 아닌 세심한 독서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도서관이 금지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을 지향할 때 학생들은 더 많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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