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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어떤 절망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권정생 삶과 문학을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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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7-09 15:23 조회 7,1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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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가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권정생 문학
 
통일이 언제 되니?
 
우리나라 한가운데
가시 울타리로 갈라놓았어요,
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 울타리 이쪽저쪽 총 멘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권정생, 『꽃이파리가 된 나비』 36쪽
 
우리 땅, 우리 겨레가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남북 분단을 해결해야 한다.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고 싸우겠다고 버티고 있는세상에서는 남과 북 백성들이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그 피해는 그 백성들 가운데서도 가장 힘없고 약한 자리에 있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어디 가서 한마디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 무역 총량 10대국이고, 한 재벌 기업이 수십조 이익을 내는 경제력도 있다. 그런데도 점심도 어른들 마음대로 주었다 뺏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오직 입시교육 경쟁으로 아이들 인생을 몽땅 다 빼앗고, 수천 년 겨레가 이어온 우리 말과 세계에서 가장 좋은 논리와 철학을 담아 만든 글자를 바르게 쓰도록 배우는 시간보다 다른 나라 말과 글자 배우느라 더 많은 시간을 빼앗겨야 하고, 가난에 치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마음대로 어린 자식을 죽여도 동반자살이라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사는 아이들이 어디에 가서 한마디 항의할 곳마저 없는 나라꼴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근본 원인은 남북 분단을 자기들만의 권력과 경제활동에 악용하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이다.
권정생은 그렇게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권정생은 평생 몸이 아파서 다른 일은 못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오직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했고, 기도하는 틈틈이 글 쓰는 일을 했다. 그 기도는 제발 내 몸이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고, 내 몸보다 더 아픈 우리 겨레 병을 낫게 해 달라는 것이고, 그 속에서 서러움과 고통 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기도를 바탕으로 어려운 아이들한테 위로와 격려가 되고,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음을 지키고 기를 수 있는 글쓰기에 온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쉬운 밋밋한 시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현실성이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쪽 붉은 무리 오랑캐가 언제든 쳐들어와 우리를 모두 죽이고 빼앗으려고 눈을 벌겋게 번뜩이고 있는데, 그걸 막을 수 있는 총을 버리라고? 더구나 북쪽 병사들도 같이 버리면 된다고?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도 하지 않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담임할 때 시 맛보기를 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시를 한 편 골라서 종이에 옮겨 쓰고 그림 그리기를 할 때였다. 1학년 어린이가 학급 문고에 있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에 실린 이 시를 골라서 시화를 그려서 발표하였다. 그 발표를 들은 1학년 아이들이 손뼉을 치면서 서너 명이 “맞아, 맞아.”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안 되냐고 하였다. 그 순간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양쪽이 모두 총을 놓으면 싸우지 않고 통일할 수 있다는 이 시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울 공립학교 교사인 나는 아이들 마음을 모르고 있었는데, 시골 교회 주일학교 교사인 권정생은 어린이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수한 어린이 마음을 지키고 길러 주는 일이 바로 교사가 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 뒤로 이 시를 천천히 읽고 다시 읽으면서 권정생이 얼마나 어린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고, 그런 세상을 위해 어린이 마음을 지키면서 어린이로 살아가는 길을 실천했는지 깨달았다. 권정생은 항상 어린이보다 낮은 자리에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세상을 보고, 그런 세상이 지켜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좋은 동화 한 편을 쓰기 위해 온 힘을 다한 권정생
 
동화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어린이들이 즐겨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나 거짓말을 쓰면 안 되지요. 거짓말을 만들어 진짜인 것처럼 들려주면 어린이든 어른이든 저절로 거짓말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하지만 참말을 전해 줘야 한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거기 거짓이 들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읽지 않고 듣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권정생, 『짱구네 고추밭 소동』 ‘작가의 말’ 가운데서
 
권정생 동화를 보면 『강아지똥』 같은 의인동화도 있고, 『몽실 언니』처럼 현실동화도 있고, 『랑랑별 때때롱』처럼 공상동화도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보면 한결같이 관통하는 흐름이 있다. 바로 주인공들이 자신의 참된 삶,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길을 지키고 찾아가는 힘든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곧 권정생이 말하는 거짓말과 참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을 보여 주는 이야기가 참말이고,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살아가는 길을 마치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인 것처럼 재미만 더해서 보여 주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그러다 보니 권정생 동화에는 우리 겨레가 살아낸 역사가 주인공들 삶에 오롯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느님의 눈물』에 실은 「가엾은 나무」, 「다람쥐 동산」 같은 의인동화 주인공의 삶은 오천 년 역사를 가진 우리 겨레가 남북으로 갈라져서 겪는 아픔을 보여 주고, 그 아픔을 이겨 내는 길을 어른 다람쥐가 아니라 어린 아기 다람쥐들한테서 찾고 있다. 『초가집 있던 마을』, 『점득이네』 같은 현실동화는 분단과 전쟁이 우리 겨레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처절하게 보여 주면서도 그 속에서 어린이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온힘을 다하는 모습을 또렷하게 보여 주고 있다. 『팔푼돌이네 삼형제』, 『밥데기 죽데기』 같은 공상동화에서도 1990년대 전후 통일 운동과 모든 전쟁 무기와 휴전선 철조망을 녹이고 평화를 꿈꾸고 있다. 그 가치에 견주어 덜 알려져 있는 『팔푼돌이네 삼형제』 주인공인 톳제비들만큼 우리 겨레 어린이들 현실을 잘 보여 주는 동화도 드물다고 본다.
권정생은 백 번의 설교보다 좋은 동화 한 편이 어린이 마음을 지키고 가꾸는 데 훨씬 더 큰 힘이 있다고 믿었다. “설교를 듣는 것보다, 한 권의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보다 푸른 하늘과 별과 그리고 나무와 숲과 들꽃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빌뱅이 언덕』 17쪽)라고 했다. 따라서 의인동화를 통해서 자신이 본 자연을 참되게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쓴 권정생 동시와 동화를 통해서 우리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유머와 익살을 보아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권정생 동화는 슬프다, 그러나 절대 절망적인 것은 없다
 
고통을 겪는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니다. 한 포기의 나무와 꽃과 풀도 끊임없이 시달리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억척같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기만의 빛깔로 세상을 밝혀 주고 있다.
–권정생, 『빌뱅이 언덕』 18쪽
 
권정생 동화 가운데는 슬픈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사과나무 밭 달님』에 실은 「사과나무 밭 달님」 주인공 안강댁과 팔준이는 사과나무 밭 위에 뜬 달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그 눈물이 달빛처럼 아름다운 눈물이라고 했다. 「해룡이」 주인공인 해룡이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소근네와 마침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다가 문둥병을 앓게 되어 집을 떠난다. 그리고 10년 뒤 눈 오는 날 밤중에 몰래 집에 다녀간다. 소근네 신발을 쓰다듬으며 “소근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고 속삭이는 해룡이 말은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이어가는 힘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특히 사회적 절대 약자인 어린이들은 시대를 구별하지 않고 그 시대 아픔을 가장 민감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 돈 좀 더 많이 벌겠다고 법을 어긴 사람들이 마음대로 바꾼 배, 그런 불법을 눈 감아 준 썩어 빠진 어른들 때문에 수백 명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도 1년 넘게 그 원인은커녕 배도 건져 내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 폭력으로 시달리고, 수 천 개 어린이 놀이터가 안전 검사에 들어가는 돈 때문에 없어지고 있다. 한 기업에서는 일 년에 몇 십 조나 이익을 내는데, 한 가정을 지켜야 하는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 수백 만 명이 단순히 임금 덜 주겠다는 생각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있다. 100여 년 전 어린이 해방을 외친 어린이 운동가들은 조선의 어린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했다. 일본제국에 억눌린 식민지 백성을 부모로
두었고, 그 부모들로부터 또 다시 억압을 받는 이중 억압 사회 구조의 맨 아래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21세기 우리 어린이들이 그런 상황으로 밀려가고 있다. 낭떠러지 끝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절망적인 사회라서, 어떤 절망 속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는 권정생 문학이 더욱 소중하게 와 닿는다. 교사와 부모들이 권정생 문학을 읽으면서 이렇듯 사회 구석으로 몰리는 사람들, 절벽 끝으로 내몰리는 어린이들 현실을 살펴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렸으면 싶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에서 1957년에 제정한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고쳤다. 굶주리는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는 조항을 없애기 위해서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의 창피라는 것이다. 나는 그 때 그 일을 주관하는 정부 기관 담당자와 취재하러 온 기자들한테 서울 변두리 1학년 교실인 우리 반에서 밥을 굶는 어린이들을 와서 보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기자들이 와서 보고 기사화하자, 정부에서 점심값을 주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한반도 북쪽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에서 경제난 때문에 수십 만 동포들이 중국 동북 3성으로 유리걸식을 하러 나왔다. 그때 동북 3성에 가서 거지처럼 떠도는 어린이들을 찾아서 구호 활동을 할 때도 대다수 조선족 동포들이 그런 아이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동북 3성 곳곳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도 그랬다. 곧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 어린이들이 내지르고 있는 저 아픈 비명을 보고 듣지 못한다면 교사나 부모가 될 자격이 없다. 그런 눈과 귀를 열어 줄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권정생 삶과 문학을 만나는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어린이 마음을 잃어가는 어린이들이 위로 받으며 사람다운 어린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권정생 동시와 동요와 동화를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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