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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지금 어린이·청소년에게 권정생 읽기를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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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7-09 15:02 조회 6,11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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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월례 아동도서평론가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겨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선뜻 권정생 선생님 동화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겪었거나 겪음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쉽고 아름다운 말, 따듯하고 감성적인 언어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특별하게 내세울 것 없는 보통 사람들을 저마다 삶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무엇을 주장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작품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온 이야기이고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권정생 선생님을 읽어야 할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지금 우리의 어린이․청소년들에게 권정생 선생님 읽기를 권하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선생님 생애의 염원, 평화
선생님 동화를 관통하는 정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평화’라고 할 수 있겠다. 선생님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은 모든 사람이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평등하게 일하면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자면 훌륭해지지 말고, 남의 것에 욕심내지 말고, 많이 벌어서 남을 도와주지 말고, 저마다 자기 빛깔을 발휘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정신은 땅속을 기어가는 지렁이 한 마리조차 함부로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황소 아저씨』에서 찬바람 부는 한겨울, 외롭게 지내는 황소 아저씨가 춥고 배고픈 생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 생쥐들은 재롱을 피우며 한겨울을 외롭지 않도록 한다. 둘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서로의 것을 나누
는 평등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서로 자존심을 잃지 않으면서 공생하는 관계, 공존의 질서를 지키는 관계, 그것이 선생님이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자존심과 당당함을 만나고 싶다면
선생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착하고 어질다. 먹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풀들에게 미안해서 하루 종일 먹이를 찾지 못한 『하느님의 눈물』에 나오는 돌이토끼, 『용구 삼촌』에 나오는 새처럼 맑고 투명한 용구 삼촌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된다. 1896년 경북 안동 남쪽 화전민 마을을 배경으로 이름 없는 민중들의 눈물겨운 삶을 서정적인 민족의 대서사시로 엮어낸 『한티재 하늘』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 『훨훨 간다』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에 나오는 고지식한 용칠이 아버지 등 누구도 욕심이나 거짓됨 없이 풀처럼 꽃처럼 어질고 착하다.
그들은 저마다 수난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지만 결코 꺾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존심을 잃지 않고서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용기 있고 의연한 이 땅의 사람들이다. 시대가 달라도, 사는 방식이 달라도, 자존심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언어예술의 진수를 맛보고 싶다면
‘코가 빨갛게 된 강아지 똥’, ‘배가 빵그랗게 된 생쥐들’, ‘곰실곰실 기어가듯 자라는 채송화’, ‘족두리처럼 예쁜 채송화 꽃’, ‘합죽합죽 웃는 할머니’, ‘송진내가 새뜻하게 풍기는 소나무 새순’ 등 선생
님은 그 상황이나 대상을 살갑게, 친근하게, 생생하게, 애틋하게, 따듯하게 표현한다. 생생한 묘사와 살가운 대화를 읽다 보면 그 장면 속에 있는 듯 여겨져, 혼자서 빙긋이 웃게 되고 모난 마음이 사라진다. 동화를 읽으면서 말과 글을 배우는 낮은 연령 아이들은 선생님의 동화를 통해서 순우리말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감칠맛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다. 선생님은 동화에 살아오면서 써 온 말들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글로 우리에게 다가와 공감을 이끌어 낸다. 문학을 언어 예술의 꽃으로 만나고 싶다면 선생님 작품을 읽어볼 일이다.
 
사람답게 인간답게
선생님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은 사람답게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작품에서 국가나 집단, 개인의 폭력의 부당함을 말한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그래서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선생님의 사상 때문이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농담처럼 선생님을 불온한 사상가라고 했다.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은 선생님의 이러한 사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탐욕과 허영심이 가져온 비인간적인 작태를 멈추고 인간답게 사람답게 살자는 선생님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일깨
우는 죽비소리처럼 냉철한 이성을 일깨우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의 움직임에 대하여 관심을 둘 겨를이 없는 우리에게 사회 곳곳의 환부를 드러내어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게 한다.

 
용기와 희망을 얻고 싶다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20여 년을 두고 일 년에 한두 차례씩 선생님을 만나왔다. 선생님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 왔느냐고 꾸지람만 듣고 올 때도 많았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힘든 일에 맞설 용기가 생기곤 했다. 선생님 집은 둘만 앉아도 무릎을 맞대야 할 만큼 작았다. 그러나 방문을 열면 너른 사과나무 밭이 한눈에 들어오고, 마당에 가득한 온갖 풀과 꽃들이 가득했다. 집을 감싸 안은 빌뱅이 언덕은 쇠약한 몸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선생님과 참 잘 어울렸다. 마을과 외따로 떨어진 집에서 가족도 없이 외로울 것 같다가도 녹두죽을 쑤었다고 가져오는 할머니, 벌레 먹은 과일을 깨어진 바가지에 담아오는 할머니, 함께 살자고 넌지시 프로포즈했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선생님이 그렇게 외롭지 만은 않게 여겨지기도 했다.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와 다시 동화를 펼치면 거기에는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똥,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다리 하나 없는 강아지, 홀로 한겨울을 견디는 외양간의 황소, 볼품없는 깜둥바가지들, 햇빛을 모르고 땅속을 기어 다니는 두더지 등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세상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너도 어딘가에서 필요한 존재일 거야.’라는 말로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그건 마치 나를 위한 말인 듯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곤 했다.
 
꼭 필요한 만큼만
선생님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고,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힘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빌뱅이 언덕 아래 세상에서 제일 작은 집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입고 살았다. 그러면서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사는 것도 과분하다고 했다. 작가로 이름이 알려지고 꽤 수입이 들어온 후에
도 선생님은 예전과 다름없이 가난하게 살았다. 그것이 모든 사람이 고루고루 잘사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려면 많이 벌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질 거라고 했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바람과 세계
라고 했다. 절대 천 원짜리 지폐나 하나 손가방이 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선생님 글은 더 많이 갖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많은 내 것을 갖기 위해 허덕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훌륭해지지 말고, 꼭 필요한 만큼만 갖고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했다. 그래야 세상의 평화가 온다고 했다.
 
자연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해
선생님은 청년시절에 시골교회 작은 문간방에서 살다가 마을 청년들이 빌뱅이 언덕 아래에 조그만 흙집을 지어 주어서 이사를 한다. 그곳에서 처음 4년 동안 전기 없이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밤이면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과 달빛이 좋았다. 계절마다 알아서 피고 지는 꽃들과 자지러지게 우는 벌레들 소리와 소나기가 지나가면 찾아오는 개구리와 함께 살면서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해에 건너편 산 중턱을 가로질러 도로가 놓이기 시작했다. 도로 위로는 밤새도록 차가 오갔고, 가로등 불빛 때문에 하늘의 별빛 달빛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도로를 내느라 거기에 살던 산짐승들, 벌레들, 나무들, 꽃들이 짓밟히는 것 때문에 오래오래 마음 아파했다. 산에 나무가 우거지고 강물이 깨끗해지고 거기서 새들과 산짐승과 강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함께 살아갈 때 우리 인간의 삶도 건강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생님 동화는 첨단 문명을 누리기 위해 자연 속에 살아가는 숱한 목숨들을 짓밟아야 했던 인간의 탐욕과 폭력에 눈뜨게 한다.
동화에서도 시에서도 산문에서도 소설에서도 한결같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이 인간의 폭력에 의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가를 누누이 말한다. 벌레 한 마리조차 함부로 하지 않았던 선생님의 삶과 글은 자연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풍자가 살아 있다, 익살과 유머가 살아 있다
어느 해 선생님 댁을 방문했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어머니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내 동화가 너무 어둡다고 이제는 밝은 이야기를 써 달라고 했다.”라고. 그 어머니가 어둡다고 말했던 동화는 미루어 짐작컨대 『몽실 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점득이네』, 『무명저고리와 엄마』,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어요』 등 전쟁의 폭력을 겪으며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님의 동화가 어둡게 여겨지는 것은 선생님 동화의 일부분만 봤기 때문이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보면 선생님 스스로를 빗대는 ‘마흔이 넘어도 장가도 못가는 말라 비틀어진 양파대가리 아저씨’와 ‘어른에게 꼬박꼬박 바른말 해 대는 생쥐’ 와의 포복절도할 만큼 익살스러운 대화가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 내용에는 국내외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과 부패한 한국 기독교에 대한 성토와 남북 분단의 현실을 풍자한다. 삼형제 톳재비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분단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풍자하는 『팔푼돌이네 삼형제』나 6.25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힘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그려 보이는 『밥데기 죽데기』 등에 담긴 재치 있는 풍자는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권정생 동화는 무거움 이전에 풍자와 유머와 익살을 보아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권정생, 이 땅에 온 마지막 예수
선생님은 젊은 시절 찾아온 병마에 몸을 내주고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다. 돌봐 줄 가족도 투정부릴 상대도 없이 혼자서 며칠이고 앓다가 웬만해지면 스스로 일어나 아랫마을에 가서 새끼 명태를 사다가 국을 끓여 훌훌 마시고는 일어났다. 알고 보면 자신이 가장 서럽고 힘없고 버림받은 버리데기였다. 그런데도 늘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다 말하곤 했다. 전쟁통에 아들을 잃은 이웃집 할머니가 불쌍하고, 도시로 돈 벌러 나간 부모 대신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품을 통해 그렇게 서럽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인물들은 서로 진심을 다하여 사랑하고, 나누고 기대어 가며 애틋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따듯한 온기가 살아있는 선생님의 작품은 어느 것을 읽어도 절망적이지 않다. 버려진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온 마지막 예수처럼 약한 자들에게 저질러지는 세상의 폭력에
분노하면서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 보인다. 선생님 동화 상당 부분에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는 반전, 평화의 정신도 결국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기대어 함께 살아가자는 호소이다. 이런 선생님의 동화는 불편하지만 진실과 마주하는 기회가 된다.
올해는 선생님이 세상 여행을 마친 지 여덟 해째가 된다. 그러나 지금도 빌뱅이 언덕 아래 선생님이 머물던 조그만 흙집에는 선생님의 향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곳곳에서 사람들이 선생님을 찾아온다.
선생님 작품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읽히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우스개 이야기를 하는 책에 길들여져서, 무엇인가를 직접 가르치는 ‘학습동화’를 읽느라 엄마들이 사준 전집을 읽느라,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를 가까이하지 못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을 먼저 읽어서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와 역사, 언어예술의 진수를 만나고 유머와 재치와 익살이 주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는 결코 권정생 선생님처럼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 꿈꾸는 세상, 곧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위하여 저마다의 자리에서 가능한 작은 실천들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 스승으로서, 한국 아동문학의 자존심으로서, 시대를 꿰뚫는 사상가로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았던 존재로서 선생님을 빛내는 길이다. 또한
극한 자본주의 시대에, 첨단문명의 시대에 인간다운 삶에 목마른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따듯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인간의 탐욕에 치쳤다면, 위로와 용기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읽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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