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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사서교사와 사서의 소통과 협력을 위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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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6-11 00:28 조회 7,6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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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주 서울 송곡여고 사서교사
 
최근 몇 년 사이 학교도서관계의 굵직굵직한 행사에서, 특히 국회 토론회에서 학교도서관 운영 주체들 간에 소통과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도서관 관련 종사자 중 전문가 집단이자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는 전문 인력 집단인 사서교사는 사서교사대로, 사서는 사서대로 움직이고 두 집단이 협력보다는 경쟁과 견제를 하는 모습은 학교도서관을 함께 세워 나가는 더 큰 주체들인 학부모, 독서문화운동 단체, 출판계등 범도서관운동권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분열된 모습만 봐도 국민 여론을 환기시키고 정치권을 움직여서 제도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결국 학교도서관진흥법 개정이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규직원 확충 등의 획기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사서교사는 고작 한 해 약 10명~20명 확충, 비정규직은 인원 동결, 비정규직 사서 임금 약 10만원~20만원 개선 등 약간의 성과가 있었다고 안위하고 있다. 왜 이 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일까? 전체 공무원 확충이 어려워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에? 문제의 주원인을 이처럼 외부탓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우리 자신도 성찰해 봐야 한다.
사서교사 100명, 비정규직 사서 700명 등 힘이 훨씬 더 열악하던 시절에도 학교 독서교육의 문제, 학교도서관 환경의 낙후, 인력의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을 얻어 내면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 지금은 15년 전보다 약 7배에 달하는 인적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난조직을 주도하는 일부 사서나 사서교사들이 갖고 있는 소통과 협력의 부재, 정보 공유의 원칙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중요한 원인중 하나라고 본다.
 
사서교사들의 입장들, 이해들
사서교사들은 어떤 아픔들이 있을까? 간혹 비정규직 사서들과 대화 중에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사서교사가 월급이 다른 것 외에 무슨 일을 더 하는 지이다. 질문자가 호의적으로 물어도 듣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이다. 난 일일이 나열하기보다 간단하게 답한다. “비정규직이어서 못하던 일, 교사가 아니어서 못하던 일을 웬만큼 다 할 수있다고 보면 됩니다.”
때때로 어느 학교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를 구하는 공고가 떠서 공고문을 자세히 보면 준사서 이상을 요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직 사서교사와 사서의 공식적인 용어차이도 잘 구분 못하는 학교 현장과 관리직들을 보면 갈 길이 멀었다고 본다. 도서관 밖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도서관을 잘 모르니까 하고 이해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학교도서관에서 몇 년씩 근무한 사서가 사서와 사서교사가 무엇이 다르냐고 하는 말에는 그야말로 어이상실이다. 더 이상 토론이나 답변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사서교사들은 믿음이 있었다. 학교도서관 담당교사가 도서관을 열심히 운영하다보면 도서관 관련 일은 더 이상 교과교사가 업무로 담당하면서 학부모나 도서부의 힘으로 운영할 수 없다고 동의해 줄 것이라는 걸. 그들은 믿음대로 그렇게 사서교사 확충과 배치를 요구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학교회계직 사서도 학교도서관을 열심히 운영하다 보면 역시 학교엔 사서교사가 있어야 시스템이 안정되지, 행정직으로서는 어려움과 한계가 많다고 동의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학교도서관 진흥법 제정 싸움에서 사서교사들은 졌다. 그렇게 반대하던 ‘사서’ 조항이 삽입되었다. 공공도서관 출신의 행정직 사서나 그것을 지지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사서교사 또는 사서’ 를 배치할 수 있다로 법은 만들어졌다. 학교도서관엔 사서교사여야 한다는 법적 당위성과 정당성이 무너진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사서교사들은 엄청난 무력감과 배신감 등을 경험해야 했다. 간호사가 보건교사가 되고 영양사가 영양교사가 되는, 또한 상담교사가 배치되는 교육계의 흐름에도 완전 역행하는 악법이었다.
법적 취지에 맞게 학교도서관에 행정직 공무원 사서를 임용하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볼 때는 사서 노조도 정규직 공고와 시험을 절대 요구하지 않는다. 현재의 계약직 신분을 전제로 정규직 공무원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신분 보장과 대우를 요구할 뿐이다. 정규직 공무원 사서 배치가 현재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존권의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오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모든 사서교사들은 학교도서관진흥법 제정 국면에서 일정 부분 패배의식을 갖고 있다고 본다. 사서교사들에겐 진흥법이 아니라 학교도서관망침법이었다. 효과는 그대로 나타나서 사서교사 임용 동결, 열악한 근무 여건의 비정규직 사서 증가로만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비정규직 사서의 증원마저도 중단된 상황이다.
이외에도 사서교사들도 인사 문제, 방학 문제, 연수 문제, 출퇴근 시간, 승진과 수당 등에서 차별문제를 겪는 등 많은 아픔이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아픔도 갖고 있다. 그래도 정규직이고 그래도 교사인데, 비정규직 사서에 비하면 큰 권한과 안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고작 그런 생활의 불편에 불과한 사소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느냐는 비난에 직면할까봐 조심스럽게 우리들끼리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도 지금의 사서교사들은 상처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현행법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학교도서관 운영의 파트너로 사서교사들보다 몇 배 많은 숫자의 사서에 의해 운영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무기계약직이 되었든 교육공무직이 되었든 옆 학교에 있는 사서도 그 학교를 정년 때까지 담당하고 갈 것이다. 그렇게 된 이상 이분들이 보다 확고한 도서관 운영 권한을 갖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보다 공고한 정규직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각 지역에선 사서교사와 사서가 서로 협력하고 대화할 수밖에 없고 일부 지역에서는 함께 연구 모임 등을 갖기도 한다.
 
사서교사와 사서의 협력과 소통을 방해하는 것
그런데 이런 협력과 소통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있다. ‘수업’에 대한 것이다. 나는 지난 2월 27일 학교도서관저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노조, 특히 전학사련과 교육공무직본부에서 학교 회계직 사서도 ‘수업’을 하고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투쟁 및 선전 방법에 대해서 전략상 오류라는 지적을 한 바 있다. 유독 지엽적인 것 같아 보이는 이 문제를 지적한 이유는 그만큼 지금의 사서와 사서교사 간 여러 곳에서 얽힌 대화의 고리를 풀어가는 데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회계직 사서가 ‘수업‘을 한다는 것은 위법 내지는 편법이기에, 해당시간에 공식적으로 수업을 맡은 교사나 그 학교의 관리자가 문책을 당할 일이다. 그런 문제를 회계직 사서가 전면에 내걸고 홍보할 때, 그것은 그나마 사서교사의 영역으로 구분된 부분까지 동일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서교사들은 소위 말하는 동업자인 사서들에게 사서와 사서교사는 직무의 범위가 다르다는 인정을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 인정이 어렵다면 그것은 또한 사서교사들에게 상처가 된다. 이런저런 상처가 쌓이면 마음의 문을 닫고 소통과 표현을 중단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고 집단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교육계의 상식을 벗어나고 위법의 소지를 따질 예민한 표현인 ‘수업’ 대신 ‘교육활동’이라는 표현을 쓰길 권한다. 도서관에서 떠드는 아이에게 주의사항을 알려 주고, 권장도서를 들고 오는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해 주고, 때론 책 찾는 법을 알려 주는 등 학교도서관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여러 교육적 행동을 ‘교육활동’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사서교사들과 불필요한 갈등, 소통을 막는 경쟁을 피하면서 사서들의 주장을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일차적 책임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있다고 본다. 사서교사들은 학교도서관진흥법 통과 후 시행령에 사서교사와 사서의 직무 범위를 현실에 맞게 설정해 줘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무시하고 시행령을 사서와 사서교사의 직무 범위 구분 없이 두루뭉술하게 해 놓았기에 여러 업무들을 관리자 편의대로 사서, 사서교사 구분 없이 주고, 특히 교장이나 교사들이 주는 업무를 거부할 권한이 없는 회계직 사서들이 무리하고 부당한 일을 맡게 되는 것이다. 또한 시행령에서 명확한 구분이 없더라도 교육청에서 현장 경험이 있고 학교 상황을 아는 정책 담당자들이 적절히 직무 범위를 조정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당연한 정책적 행동들이 교육청 단위에서 없었기 때문에 사서교사와 사서 간 불필요한 오해와 소통의 단절을 가져왔다고 본다.
 
‘수업’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들
학교회계직 사서나 사서 노조 안에는 크게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학교도서관은 상시적으로 교육적 활동이 수반되기 때문에 사서교사 자격과 지위를 얻는 쪽으로 운동의 방향을 잡아가자는 것이다. 둘째는 사서교사 자격증이나 사서교사 직위 없이 현재 준사서 이상의 자격증이나 1, 2급 정사서 자격증만으로도 정규직이 되거나 정규직과 동등과 신분 보장과 지위 급여를 보장받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즉 설령 사서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고 한들 어느 세월에 사서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서교사가 되겠냐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개의 운동 방향이 각자의 이해관계나 소신에 따라 평행선을 그리며 대립하고 있다고 본다.
사서교사들 사이에서도 ‘수업’에 대해서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두 개의 방향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입장은 사서교사가 교사로서 갖고 있고 행할 수 있는 ‘수업’이란 영역을 독자적인 수업, 독자적인 교육과정, 독자적인 교과서, 독자적인 수업 시수를 확보해서 진행하는 쪽으로 발전하는 방향을 잡고 있는 쪽이다. 즉, ‘단독수업’이 사서교사가 비교과교사로서 갖고 있는 학교 사회 내 차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회계직 사서와 비교해서도 사서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드러내는 중요한 방법으로 추구되는 것이다. 이 경우 사서교사는 사서교사의 정체성을 다른 교과교사와의 비교에서 찾는다. 사서교사는 학교 수업 시간 중에서 창의적체험활동 중 일반적으로 보통 사서교사에게 부여되는 특별활동만을 맡는다. 그러나 ‘단독수업’을 추구하면 그 시간 외에도 진로시간이나 자율시간 등의 수업시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한다. 심지어는 다른 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을 경우 그 교과수업을 담당하기도 하고 담임업무를 맡기도 한다. 이런 방법과 전략이야 말로 사서교사들이 학교 교육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인정을 받는 방향이라서 노력하고 있다. 최근 창의적체험활동이 어렵다면 사서교사가 하기 좋은 방과 후 수업이라도 맡아서 아이들을 직접 단독으로 지도하고 수업하는 방향을 추구하는 흐름이 사서교사들 가운데 있다.
다른 방향은 사서교사가 직접 수업을 하기보다는 다른 수업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서교사는 본인의 교과서를 직접 가르치지 않고 다른 교과의 교과서를 갖고 하는 수업을 지원한다. 사서교사 단독으로 진행하는 수업시간표를 갖지 않고 다른 교사들의 수업시간에 들어가거나 일부 개입을 해서 그 교사의 수업을 지원한다. 이런 방향은 ‘협력수업’을 추구한다.
 
‘단독수업’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 소통을 가로막는 진원지
나는 사서교사 사이에서 사서와 차별화되고 사서교사의 교사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단독수업’이라고 해서 ‘단독수업’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교사들과 폭넓은 소통과 협력을 할 수 있는 ‘협력수업’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서가 ‘수업’에 대한 강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란 슬로건으로 표현되는 동일화 전략을 추구하게 되면, 사서교사들도 보다 더 사서교사가 갖고 있는 법적 지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단독수업’이란 전략에 집중하게 된다.
‘단독수업’이나 ‘협력수업’이나 사서교사의 수업은 사서교사의 교권 확립을 위해서 필요한 전략은 아니다. 그 평가나 기준은 학교의 학생들에게 더 필요한 교육방법이 무엇이냐일 것이다. 선진국의 여러 사례에서 이미 사서교사의 단독적인 수업보다 사서교사가 일반 교과교사들의 수업에 녹아들어서 진행하고 도와주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정리되고 있다.
내가 되도록 사서교사의 ‘단독수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독수업’을 하는 순간 일반적으로 다른 교사들의 수업을 종합적으로 보고 지원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단독수업’을 하는 순간 나는 ‘사서교사’라기보다 ‘담당교사’와 같은 존재가 되기 쉽다고 본다. 사서교사조차도 학교 내에서 정보 공유와 교수학습 지원과 협력을 하는 교사가 아니라 한 명의 교과교사가 되고 만다. 한 과목의 교과교사를 지향하는 흐름이 사서교사를 배치하게 한 사람들의 의도는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사서가 기여하는 많고 많은 교육활동 중에 하필 ‘수업’을 강조하는 사서 집행부의 주장이나 ‘단독수업’을 유독 강조하는 사서교사들의 분위기를 매우 경계한다. 이 두 세력은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서로 의존한다고 본다. 그들은 마치 극좌파와 극우파가 서로 기대어 성장하는 맥락과 비슷하다고 본다. 일부 사서교사들 사이에서 사서가 현행법상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수업’을 강조하는 것을 볼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교육활동에 대한 자료를 주어서도 안 되고, 학교설명회 때면 설명이 되어 학부모도 다 알고 있는 교육과정에 대한 연수도 해서는 안 된다는 담론이 형성된다. 그런가 하면 사서들 사이에선 사서교사들이 사서를 이렇게 무시하는데 우리도 저들이 하는 것들은 다 할 수 있고, 다 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왜곡된 경쟁을 하게한다. ‘수업’을 매개로 벌어지는 사서와 사서교사 간 반목과 갈등은 학교도서관 운영자료 공유와 서로의 소통을 가로막는 매우 중요한 진원지 중 하나다.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 가자
학교도서관 종사자들 사이에 정보 공유의 가치가 무너져 있다. 소통하고 협력하지않는 폐쇄적인 모습이 부각되면서 시민사회나 정부 관료들에게 과연 이들이 도서관을 운영할 때 정보 공유의 가치를 우위에 놓는 제대로 된 전문가들인가 의구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간혹 나타나는 내용적 자격이 없는, 자격증만 갖고 있는 껍데기 사서들에 의해 빚어지는 도서관의 사유화나 폐쇄적 운영으로 인한 민원이 오버랩 될 때 이런 의구심은 단정과 확신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서교사와 사서는 지역에서 서로 협력하고 자료와 연수를 공유하는 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도서관을 살리는 교사들’이라는 다음 카페에선 수만 명의 사서, 사서교사, 학부모, 독서운동가들이 수십 기가의 자료를 공유하면서 협력하고 있다. 이것이 일상의 모습이고 주류의 모습이 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사서나 사서교사 내부의 일부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학교도서관계의 큰 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학교도서관의 운영 철학과 배치되는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도서관의 외형이 발전하고, 임금이 오르고, 신분이 안정되고, 다양한 학교도서관 서비스가 개발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으로 인해 정보의 공유와 소통 그리고 협력이 잘 일어나는 문화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나눔, 공유, 소통, 협력 등은 최근 강조되는 인성교육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지만, 근대 도서관 발전의 역사와 도서관 철학이 갖고 있는 중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에 근무하는 선배 사서, 사서교사들이 이런 도서관다운 문화와 가풍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조직의 단합과 견제를 위해 회원가입과 정보 공유를 차단하면서 학교도서관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외면받기 쉽다. 학교도서관 종사자들의 소통과 성찰, 협력과 대화의 채널이 계속 유지되길 바라고, 각자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을 하면서 상대를 배격하고 외면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이제 학교도서관 사서, 사서교사 단체들이 나서서 제2의 토론회, 공동의 연수, 자료의 공유, 공동의 카톡방 등을 통해 서로 갖고 있는 앙금들을 풀어나가며 협력과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사서교사와 사서가 불통과 오해가 있었다면 그 일차적 책임은 교육부와 교육청에 있다. 그들이 조장하는 노노갈등 이간책에 갇혀 있거나, 그런 심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지도력을 세우는 전문가 단체나 노조가 없어야 한다. 교육운동 전문가 집단은 교육부나 교육청의 잘못된 행정틀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스스로 이런 한계를 넘어 왔다. 사서교사와 사서 각 단체의 대표들은 만나서 소통해야 한다. 서로 쌓인 앙금들이 많이 있겠지만 만나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과 좋은 교육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서교사와 사서의 배치를 요구했고 지금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학부모, 시민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힘을 합쳐 지금의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한다.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교육이 달라야 한다고 하는 이들에게 학교도서관이 어떻게 질문이 있는 교실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인성이 망가져서 문제라고 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학교도서관이 대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은 말이나 논리나 통계가 아니라 사서교사와 사서가 서로 소통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답게 우리 안에 있는 비판성과 지혜, 함께 공감하는 능력을 펼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런 사서교사와 사서의 진정한 모습은 학교 교육을 잘 지원하고 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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