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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엎고 영화에게 이단 옆차기]단 한 명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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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1-16 15:42 조회 3,6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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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루에도 서너 가지의 문제를 발견하곤 합니다. 학교 식당에서 비싼 급식비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식사를 제공한다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아이들을 괴롭히는 양아치 같은 놈 때문에 학교에 가기가 괴롭다면. 학원에 다니는 친구의 성적은 쉽게 오르는데 학교 수업만 열심히 듣는 내 성적이 계속 떨어진다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나 한 사람의 노력으로 주위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오문세 소설가
 
미래의 영국, 과거의 대한민국
오늘 이야기할 두 편의 영화는 각각 미래의 영국과 과거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양쪽 다 그렇게 희망적인 나라는 아닙니다. 미래의 영국은 제3차 세계대전과 정체불명의 전염병으로 인해 격렬한 존폐의 위기를 지났습니다. 백신을 개발, 보급하며 새로운 지도자로 떠오른 대법관 서틀러는 흔들리는 나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본격적인 철권통치를 시작합니다. 뭔가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정권 유지에 불리할 수 있는 정보들을 은폐하면서 영국을 국가 붕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나라로 만들지요.
이미 두 차례의 재앙을 겪은 뒤 서틀러를 통해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비록 공포에 질린 삶이라도 순순히 받아들이며 국가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갑니다.
과거의 대한민국에서는 12.12군사반란에 이른 5.17쿠데타로 부정하게 정권을 잡은 정부에 대항해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유신 정권에 이은 군사독재로 날을 세운 국가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피를 끝도 없이 빨아들이고 있던 때입니다.
영화는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 부림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데, 1981년 9월 부산에서 사회 과학 독서 모임을 하던 선생님과 학생, 회사원 등 총 22명을 정부가 불법적으로 감금, 고문해 법정에 세웠던 사건입니다.
내가 보는 것을 당신도 본다면
1605년 11월 5일의 영국. 신교도들을 탄압하는 국왕 제임스 1세와 국교회에 반발하여 일부 급진주의자들이 계획을 세웁니다. 폭탄을 짊어지고 하수도 밑으로 이동해 국회의사당을 폭발, 그 자리에 있는 왕과 귀족들을 살해하려 한 거죠. 그러나 이들의 음모는 내부 고발로 실패하고, 이 과정에 가담한 사람은 대부분 체포됩니다. 이때 직접적인 행동 대장역할을 맡았던 사람이 가이 포크스입니다. 영국은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날을 가이 포크스의 날이라 명명하고 국왕과 영국이 무사함을 기렸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브이가 뒤집어쓰고 있는 독특한 가면이 바로 이 가이 포크스의 초상입니다. 미래의 어느 11월 5일. 느닷없이 나타난 브이는 법원을 폭파하고 방송국을 점거해 정확히 1년 뒤, 1605년에 가이 포크스가 하지 못했던 업적을 이룰 것이라 선포합니다. “내가 보는 것을 당신도 보고,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느끼며, 내가 추구하는 것을 당신 역시 추구한다면, 1년 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나와 함께하십시오.”
제5공화국으로 들어선 1981년의 대한민국. 송우석 변호사는 힘겨운 고시 공부 끝에 판사를 거쳐 개업했습니다. 복잡한 세금 관련 업무를 대리로 맡아 처리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죠. 꿈으로 남겨 뒀던 집을 사고, 취미로 소박한 배를 하나 마련하고, 어려운 시절에 신세를 졌던 사람을 찾아갑니다.
세법 전문 변호사로 탄탄대로의 길을 걷던 송우석이 느닷없이 벽에 부딪히게 되는 건 부림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껄끄럽게만 생각했던 사건이, 점차 허위로 얼룩진 날조라는 걸 깨닫게 되죠. 충격 속에서 송우석이 묻습니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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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두지 않는 사람들
국회의사당을 폭파할 것이라고 예고한 직후 브이는 영국 정부의 표적이 됩니다. 방송국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직원이던 이비의 도움을 받고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은신처로 데려오죠. 브이는 자신이 온전하게 가이 포크스의 유지를 이어받을 때까지, 그러니까 1년 동안 이비가 은신처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이비는 브이의 손님이면서도 수감자일 수밖에 없는 묘한 상황에 처하는데,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속임수를 써서 밖으로 나가 도움을 청하죠.
이미 이비가 브이와 한패일 거라고 단정 지은 경찰은 이비를 추적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로잡힌 이비는 독방에 갇혀 고문을 받습니다. 브이의 은신처만 알려주면 적당한 선에서 끝날 거라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습니다. 마침내 사형을 선고 받고 죽음으로 향하는 날. “죽는 건 무섭지 않아요.” 이비가 말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졌군.” 간수가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너는 자유다.”
학생들의 변호를 맡은 송우석의 재판 과정은 예상대로 순탄하지 못합니다. 동료 변호사들은 적극적인 변호에 별다른 열의가 없고 검사는 판사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안기부 소속의 요원들은 송우석을 몰아붙입니다.
변호를 계속하며 송우석이 포기해야 되는 게 많아집니다. 세법 전문 변호사 일을 하며 쌓은 돈과 기회. 송우석을 믿고 따랐던 사무실 사람들. 가족의 안전. 송우석에게도 이비에게 건네졌던 것과 같은 회유가 들어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잘한 거다. 충분히 당신의 도덕성을 증명하지 않았나. 이쯤에서 그만두자. 그러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송우석은 변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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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가진 자는 누구인가
브이는 본인조차도 확신을 갖지 못했던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공포에 갇혔던 이비의 삶을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이비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여성이 됐습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브이에게 닥칩니다. 이비를 향한 마음이 깊어지기 시작한 거죠.
브이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뚜렷하게 믿는 사람입니다. 솟아오르는 곳이 있으면 가라 앉는 곳이 생기기 마련. 서틀러가 정권을 휘어잡기 위해 긁어모은 불법적인 행위는 그의 지위를 높은 지대 위로 올리는 한편 브이라는 거대한 땅 꺼짐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폭력적인 정부에 맞서서 브이가 택한 방법은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복수였지요.
인과율이 지배하는 세계를 사는 브이에게는 서틀러 일당에 대한 복수가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의 마지막으로 남겨둔 1년의 시간은 브이가 스스로에게 보낸 시한부 선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적극적인 저항을 통해 발현되는 자유의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이념과 충돌하는 비극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프로파간다 로맨스(?!)인 거죠.
갖은 고생을 해 가며 청년들을 변호하던 송우석은 마침내 공안 책임자 차동영을 증인석에 앉힙니다. 두 사람의 날카로운 대립이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차동영은 국가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국가 권력의 광범위한 적용을 옹호하는, 이른바 국가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이 사람의 세계에서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이 무조건적인 애국입니다. 무조건적인 애국에 딴죽을 거는 행위는 당연히 반국가적으로 읽히고, 반국가적인 행위는 국가의 주적인 북한을 돕는 일이니 반드시 박멸되어야 합니다.
차동영이 송우석을 향해 “국가가 뭔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행동한다.”라고 말할 때의 국가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 속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송우석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죠. 결정적인 순간에 송우석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명시된 사항을 들어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를 설명합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국가란 곧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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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내일
송우석의 변호는 절반쯤 성공합니다. 여론의 관심에 부담을 느낀 법원이 부림 사건에 연루된 피고인들의 형량을 2년 정도로 제한하는 선으로 마무리 지은 거죠. 그러나 이 작은 분쟁이 암흑기를 지나고 있는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꿔주지는 않습니다. 송우석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독려하며 인권변호사로서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한편, 브이는 국회의사당을 폭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억압과 폭력으로 엮인 구시대의 사람이고, 따라서 구시대의 종말과 함께 사라져야 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브이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수많은 폭탄의 스위치를 이비에게 넘깁니다. 여기서 이비는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보다 긍정적인 세상으로 향하는 자유의 불꽃은 당연히 다음 세대의 손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작중 브이는 단 한 번도 가면을 벗지 않습니다. 브이라는 이름 역시 죄수 번호에서 따온 가명일 뿐이죠. 결국 그는 누구였을까요?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단 한 명의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대단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우리는 모두 얼마쯤은 비겁하고, 얼마쯤은 창피하게 삽니다. 뭔가를 바꿔보겠다며 나서는 단 한 사람의 시도는 바다에 뿌리는 물감처럼 덧없게 보일 뿐이고요.
그러나 역사가 알려주듯, 오늘은 오늘보다 더 암울한 시기를 살던 단 한 명의 사람이 모여 만든 전보다 더 나은 오늘입니다. 그러면 내일은 오늘을 사는 단 한 명의 사람이 모여 만든 더 나은 내일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누가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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