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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책 그리기]아이들이 주운 것은 쓰레기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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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09-27 17:42 조회 4,64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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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쓰레기 더미에서
우연히 주운 지갑이었다

주인공 라파엘과 그의 친구 가르도, 래트는 베할라라고 하는 쓰레기 처리장 근처에 사는 아이들입니다. 베할라의 모든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 대신 쓰레기 산으로 향합니다. 생계를 위해 쓰레기 더미에서 팔 만한 것들을 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쓰레기를 뒤지던 라파엘은 낡은 가죽지갑 하나를 발견합니다. 주인은 호세 안젤리
코. 거기에는 돈 1100페소와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세 아이들은 그 가방을 조용히 숨깁니다. 이 일로 인해 앞으로 세 아이들에게 어떠한 일이 닥치게 될지는 전혀 상상도 못한 채 말이죠.
그 가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날 밤 베할라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찰이 들이닥칩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찾습니다. 세 아이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경찰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 가방에 담긴 미스터리를 풀기로 합니다.
래트는 가방에 있던 열쇠가 지하철 사물함의 열쇠임을 단번에 알아차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열게 된 사물함에는 단 한 장의 편지가 있었습니다. 편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가브리엘 올론도리스 앞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숫자로 된 암호 같은 것이 적혀 있었습니다. 세 아이는 베할라 지역의 미션스쿨에서 근무하는 천사 같은 올리비아 선생님을 앞세워 가브리엘에게 면회를 갑니다.
가브리엘은 변호사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변호사였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부통령인 자판타의 부정과 비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기소당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힘없고 약한 노인이 되어버린 가브리엘은 가르도로부터 자조치종을 듣습니다. 그리고 성경책에 암호를 풀 수 있는 힌트가 숨어 있음을 알려 줍니다. 가방의 주인인 호세 안젤리코와 가브리엘 둘만의 암호였던 셈이죠.
호세 안젤리코는 누구일까요? 호세는 바로 비리 부통령 자판타의 오래된 집사였습니다. 자판타의 부정과 비리를 목격하고 오랫동안 그에게 신임을 산 호세는 수년에 걸쳐 자판타가 부정으로 취득한 재산을 국민들에게 돌려줄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계획이 실행되는 날, 자판타의 600만 달러를 비밀 장소에 묻어 놓고 경찰에 잡혀가게 됩니다. 그 잡히는 순간에 힌트가 담긴 가방을 쓰레기차에 버렸을 것입니다.
세 아이들은 성경에 숨겨진 암호를 풀어나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호세가 돈을 묻어 놓은 장소를 알아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쫓기고 라파엘은 경찰에 잡혀 어린아이임에도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그러나 결국 아이들은 승리합니다. 셋은 힘을 합쳐 돈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돈이 숨겨져 있던 장소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호세의 일곱 살난 딸인 피아 안젤리코와 만나게 됩니다. 돈을 발견한 이들은 이 돈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국민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베할라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돈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쓰레기장을 향해 돈을 뿌립니다. 내일 아침, 쓰레기를 주우러 나온 아이가 쓰레기가 아니라 돈을 주울 수 있게 말이죠.
여러분은 결말이 마음에 드시나요?
아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찾은 600만 달러를 베할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쓰레기장 꼭대기 벨트 위에서 마을을 향해 뿌립니다. 여러분은 이런 결말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돈은 엄밀히 말하자면 자판타가 빼돌린 돈을 호세 안젤리코가 빼돌렸으므로 그 상속권은 호세의 딸인 피아 안젤리코에게 있습니다. 피아는 평생 부유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고 각자 부유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마을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국제구호 기금에 위탁하여 더 많은 공동시설을 만들 수도 있고 학교를 지을 수도 있죠. 베할라에는 미션스쿨이 있고 줄리아드 신부님과 올리비아 수녀님도 있었으니 믿을 만한 어른들에게 부탁하여 좋은 일에 이 기금을 사용하도록 맡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이 작품은 책과 영화의 결말이 다릅니다. 책에서는 아이들이 돈을 찾고 뿌리는 것으로 끝나고 올리비아 수녀님은 중간에 가르도를 데리고 교도소를 방문한 것이 문제가 되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올리비아 수녀님은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미션스쿨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경찰서에 잡혀가기 전, 이 일과 관련하여 아이들의 인터뷰를 녹화하던 비디오가 계속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비디오에는 아이들의 증언 및 경찰이 들이닥쳐 올리비아 수녀님을 잡아가는 장면까지 그대로 녹화되어 있었습니다. 올리비아 수녀님과 줄리어드 신부님은 이 동영상 파일과 함께 아이들이 찾은 비리 장부의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합니다. 이로 인해 부통령(영화에서는 브라질 리우의 시장)의 비리는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고 결국 부통령은 검찰에 잡혀가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결말은 시청자의 흥미와 권선징악의 스토리 전개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된 것일 테지요. 여러분은 책과 영화의 결말 중 어떠한 결말이 더 마음에 드시나요? 각자가 원하는 결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도둑질한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정당한가?
아이들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도 끝내 가방을 넘기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신념’이라고 하지요. 아이들은 가방의 주인인 호세 안젤리코가 부통령 자판타의 돈을 훔쳤다가 잡혀갔고 고문을 당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호세가 자판타가 빼돌린 돈을 다시 훔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 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이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에게는 바로 이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이 생겨난 것입니다.
영화에서 올리비아 수녀님은 도움을 청하러 온 아이들에게 물어봅니다. “왜 이 일을 하는 거지?”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이게 옳은 일이니까요.” 아이들은 이게 옳은 일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게 옳기만 한 일일까요? 의도야 어찌되었든 호세 안젤리코는 자판타의 돈을 훔쳤습니다. 자판타 또한 국민들의 돈을 부정한 방법으로 빼돌렸지만 호세 또한 부정한 방법으로 자판타의 돈을 빼돌렸으니 이는 둘 다 부정하기 다름없습니다. 방법으로만 따지고 본다면요. 목적과 의도는 정당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수단이 잘못된 경우, 이를 과연 올바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훔치지 않고도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없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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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서술자-소설의 시점
소설 『트래쉬』는 다양한 서술자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주인공이 라파엘이 되었다가, 가르도가 되었다가, 래트가 되기도 합니다. 올리비아 수녀님과 줄리어드 신부님도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고백하듯 사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는 이를 중간 중간 인터뷰 방식으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그 인터뷰 비디오는 올리비아 수
녀님이 촬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여러 명의 서술자가 서술하는 것으로 진행될 때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같은 책을 읽고도 사람마다 느낌이나 감상이 다르듯, 같은 사건에 대해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이 다를 것입니다. 여러 서술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서술하면 우리는 이야기에 대한 ‘객관성’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므로, 각자의 성격이나 개성이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해지는 것이죠.
다만 서술자가 이렇게 달라지는 경우에는 자칫하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거나 이야기가 다소 산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한 명의 서술자가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과 여러 명의 서술자가 등장하는 것 중 여러분은 어떠한 것을 더 선호하시나요? 그리고 소설 속에서 어떤 캐릭터가 가장 공감이 갔나요?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
『트래쉬』의 원래 제목은 ‘안녕, 베할라’입니다. 베할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의 이름입니다. 영화 <트래쉬>의 감독은 이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마을 이름 외에 나라 이름이 밝혀지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브라질과 ‘리우’라는 나라와 도시명이 언급됩니다. 실제 원
작의 배경은 필리핀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는 실제로 필리핀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필리핀의 쓰레기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러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실제 브라질과 필리핀은 부패한 관료, 부정부패, 비리 등 사회적인 현상과 모습이 비슷합니다. 물론 어느 나라나 이러한 문제는 있겠지만 작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도가 심한 사회의 모습을 통해 비열한 어른들의 모습을 고발하고자 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작가는 부의 불균등한 분배에 관해서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보면 아이들이 공동묘지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묻어둔 돈을 찾기 위해서죠. 그곳에는 죽어서도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묘지가 부자 묘지와 가난한 묘지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부자 묘지는 관을 땅에 묻고 비석으로 묘비를 세워 만들지만, 가난한 묘지는 박스처럼 관을 층층이 쌓고 콘크리트로 벽을 세웁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돈을 찾으면서 알게 됩니다. 가장 밝은 빛은 가난한 곳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요.
“우리는 반대쪽을 찾아다녔어야 할 낮 시간을 이렇게 부자 묘지를 돌아다니며 보냈던 거야. 가장 밝은 빛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 쪽에서 나오고 있었어.”(223쪽)
부자 묘지는 쓸쓸하고 공허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의 묘지는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과 촛불로 가장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와 행복이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자판타의 어마한 저택과 쓰레기 마을의 대조를 통해 드러나는 부의 불균등한 분배, 부패한 정치인과 경찰들. 이러한 사회악을 해결하고 균등한 부의 배분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까요? 이는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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