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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게으른 사서의 띄엄띄엄 책 읽기]살‘맛’ 나게 하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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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01-22 16:41 조회 6,14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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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서울 연가초 사서교사
 
탐식의 시대
나는 진짜 많이 먹고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다가도 피로가 몰려오고 컨디션이 저조할 때면 요리책을 즐겨 본다. 완성된 요리를 보며 그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는 걸 무척 즐긴다. 요리책뿐만 아니라 『미스터 초밥왕』 같은 요리 만화책들 그리고 <카모메 식당>, <식객>, <초콜릿>, <바베트의 만찬> 등 음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영화도 아주 좋아한다. 약속이 있을 때 맛집을 검색하는 일도 즐겁다. 심지어 만화책이나 삽화로 나오는 음
식 일러스트도 특별히 좋아한다. 그러니 지금 내 몸무게가 20대에 비해 20kg이나 늘어난 건 당연한 결과이다.
나 같은 증상을 두고 ‘푸드 포르노’에 중독되었다고 표현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얼마 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한국의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하는 방송)은 푸드 포르노라고 하면서 쓴소리를 한 게 화제가 되었다. 특히 백종원에 대한 황교익의 평가는 결국 효율이냐 본질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바쁜 현대인에게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편하게 대충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센스 있게 전하는 요리 연구가이자 사업가인 백종원과 원재료의 인류학적·사회학적 맥락에서부터 본질을 파악해서 예리하게 따지는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를 보며 이런 현상은 현재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 만연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 역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유행(행사, 시험 대비 목적의 도서관 좌석 점유)과 지켜야 할 본질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 그것이 본질이다. 맛있는 걸 먹으면 살맛이 날까? 아니다. 그 순간뿐이다. 둔해진 나를 살 ‘맛’ 나게 했던 책들을 모아 보았다.
 
밥상 위의 쾌락
밥상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에는 먹는 즐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노동(요리)하는 즐거움, 건강을 다지는 즐거움, 밥 한 끼 함께 먹으며 어울리는 즐거움 등 다양하다. 많고 많은 요리책이 있지만 그중 나에게 요리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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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식탁』 타샤 튜더 지음|공경희 옮김|윌북
우리 집 냉장고에는 동화 작가인 타샤 할머니의 사진이 붙어 있다.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타샤 할머니의 요리는 그녀가 일상의 삶 자체를 예술로 조화시키고 있는 걸 보여 준다. 타샤 할머니의 요리책에 나오는 요리 자체는 개인적으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런데 보면 행복하다. 왜? 직접 텃밭을 가꾸고 자신의 손으로 생산해서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 마냥 즐겁게 요리하는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동경하게 하고 꿈꾸게 하는 힘이 있어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소녀같이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예쁜 앞치마를 두르고 즐겁게 요리하고 싶어진다.
요리가 어른의 영역일까? 불, 칼 위험한 도구들이 가득한 주방이지만 본능적으로 요리는 인간의 놀이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어린이 요리책이 많이 출판되고 있고, 도서관에서도 요리책을 즐겨 보는 아이들이 많다.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지음|레나 안데르손 그림|오숙은 옮김|미래사
이 책은 어린이 요리책인데, 엘리엇이 스텔라 할머니로부터 요리를 배워 나가는 이야기이다. 엘리엇은 할머니를 통해 감자 요리를 할 때는 감자의 역사를 배우고 달걀 요리를 할 때는 암탉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등을 배운다. 더 나아가서 음식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서 어떻게 되는지부터 채식과 육식의 문제까지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한다.
요리학원을 통해서 전문 자격 과정을 이수하는 시대에 할머니를 통해 배우는 요리와 그 요리를 통해 우정을 쌓아가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게 되는 모습이 많은 걸 고민하게 한다.
 
 

밥상 위의 철학
개인의 밥상은 그냥 개인의 취향이자 자유일 뿐일까? 밥 한 끼에도 나의 양심과 철학과 책임이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한 끼의 무거움을 논한 책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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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은 밥상』 서정홍 지음|우리교육
우리 집 앞에 마트가 생겼다. 농산물 가격이 싸도 너무 싸다. 마트 건너편에 싸다고 소문난 시장도 그 마트 때문에 상권이 죽었을 정도다. 농민은 뭐 먹고 살라고 싸게 사는 것도 죄짓는 일 같아 어디에서 사도 마음이 불편하다. 이 책에는 어느 농부가 쓴 시가 소개되었다.

미친놈처럼
미친놈처럼
울고 싶은 밤이 있다
농사철도 끝나
서리도 내리고
사방 첫눈에 얼음 얼어 오면
미친놈처럼
갚아야 할 농자금에
차곡차곡 쌓인 공과금하며
그동안 밀린 교육비하며
                                             –「미친놈처럼」 중에서
 
귀농이 가십처럼 되어 버린 요즘이지만 대부분의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은 고되고 먹고 살기는 힘들다.
『부끄럽지 않은 밥상』은 밥상 위의 문제부터 시작해 교육과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삶에 대한 태도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자고 순박하게 손 내미는 책이다. 이처럼 정직하고 올곧게 뿌리내리고 있는 농부 시인의 삶이 비 온 뒤처럼 내 마음을 정갈하게 씻겨 주었다. 또한 동시에 참담함을 느끼게 했다. 에어컨이 빵빵한 커피숍에서 이 책을 감탄하며 읽기는 참 쉬운 일이지만 내 삶 속에서 이러한 가치를 올곧게 지키며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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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대 죄악, 탐식』 플로랑 켈리에 지음|박나리 옮김|예경
로마가 멸망할 즈음을 다룬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쾌락의 절정에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즐기기 위해 맛만 보고 뱉어 버리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요즘 먹방, 쿡방을 보며 그 다큐와 몇 년 전 훑어본 이 책이 떠올랐다.
유일하게 비교적 죄책감 없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마음껏 쾌락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이 먹는 것이 아닐까. 365년경 저명한 수도자는 사탄이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이용하는 여덟 가지의 목록을 작성한다. 제일 첫 번째가 바로 ‘탐식’이다. 그는 탐식이 다른 죄악을 유발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탐식을 원죄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과거부터 수도의 규율은 무엇보다도 탐식을 근절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탐식을 죄로 보던 문화에서 식도락 문화는 발전을 거듭했고 17세기부터는 교양 있는 식도락이 프랑스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식도락 예찬 문화는 음식을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일반인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공평한 사치의 영역이 ‘음식’이라고 한다. 상류층의 영역이었던 식도락 문화까지 접수하며 대중은 가장 쉽고 빠르게 ‘평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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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헬렌 니어링 지음|공경희 옮김|디자인하우스
이 책은 단순한 요리책이 아니다. 저자는 “요리를 많이 하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으시길.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빨리, 더 빨리, 이루 말할 수 없이 빨리–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데 쓰자.”, “사과든 토마토든 풀 한 포기든 먹으려면 그것을 죽여야 한다. 우리가 무슨 권리로 자연의 경이를 소비할까. 우리는 지상의 모든 것에 연민을 갖고, 최대한 많은 것에 유익을 주고, 최소한의 것에 해를 끼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요리법이 거의 없는 요리책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요리들은 정말 맛없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박한 요리들은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해 주고 내 삶에 질서를 부여해 준다.
 
밥상 위의 시대정신
우리는 살기 위해 먹는다. 먹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자세와 가치관을 1차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타샤 할머니처럼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즐겁게 먹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싶기도 하고 헬렌 니어링처럼 생명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대한 간소하게 먹고 최소한으로 해를 끼치며 살고 싶기도 하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의 문제는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까’의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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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수프』 하야시바라 다마에 지음|미즈노 지로 그림|정미영 옮김|문학동네
먼저 토끼가 똑똑 문을 두드리고, 다음에는 여우가, 차례차례 동물 친구들이 맛있는 수프 냄새를 맡고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든다. 모자랄 것 같아서 “너를 위한 수프는 없어!”라고 말하는 동물들에게 할머니는 “나누어 먹으면 되지”라며 아주 많은 동물 친구들과 수프를 나누어 먹는다는 단순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우리 몸을 녹여 줄 뜨거운 수프처럼 경직된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 준다.

『돌멩이 수프』 마샤 브라운 지음|고정아 옮김|시공주니어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게 너무도 귀해서 우리 식구 먹을 것도 부족한 때에 어떻게 해야 굶주린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답은 ‘돌멩이 수프’에 있다. 군인들이 떠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에겐 배고플 일이 없을 거예요. 돌멩이 수프를 만들 줄 알게 되었으니까요.”
제 몫 챙기고 제 앞가림하기도 너무 벅찬 시대이다. 사실 어느 시대나 그래왔을 게다. 먹방이 전성기를 맞은 것은 제 몫만 챙기기에도 너무도 급급한 조급함이 극에 달해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나누자.” 누구도 믿을 수 없어서 외롭고, 미래가 불안해서 두렵고, 사는 게 바빠서 여유가 없고, 모두 약간의 강박증을 앓고 있는 우리는 모두 나누는 사회라는 사회적 안정망이 필요하다는 외침으로 가장 쉽고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먹방, 쿡방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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