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앞잡이 길잡이 [게으른 사서의 띄엄띄엄 책 읽기]책 읽기의 욕구 5단계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1-13 14:09 조회 6,428회 댓글 0건

본문

이영주 서울 연가초 사서교사
 
‘매슬로우의 욕망 5단계’처럼 삶의 굴곡을 따라 책 읽기의 욕망이 변해가는 걸 경험해 왔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어떤 이론에 근거한 게 아니라) 책에 대한 욕망의 변화를 단계별로 정리해 보았다. 단계별로 오르락내리락하기도 하고 한꺼번에 충족되기도 했다.
 
1. 즐거운 책 읽기–놀이로서의 책 읽기 : 그냥 재미있고 덜 유익한(?) 책
나의 놀이로서 책 읽기의 시작은 계몽사의 ‘어린이 세계의 명작’ 동화였다. 한 장 한 장의 그림들이 어찌나 황홀하게 다가왔는지 그 황홀함에 빠져 구름 위를 날아다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명작 동화를 시작으로 『캔디 캔디』 같은 소녀명랑소설, 루팡 홈즈 시리즈, 시드니 셀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 『드래곤볼』, 『북두신권』을 넘어 순정만화로 넘어갔는데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돌려 보며 책 읽기가 우정을 쌓아가는 매개가 되었다. 과자도 예쁜 옷에도 관심 없고 1년 365일 명절 빼곤 거의 매일 평일은 만화방, 주말에는 꽤 먼 거리의 공공도서관에 출석을 했었다. 그때 지금 같은 학교도서관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시절이 나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완전무결하게 책에 몰입했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좀 더 좋은 책들을 다양하게 읽지 못한 게 참 아쉽다.
즐거운 책 읽기가 제도권의 교육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모든 게 애매해진다. 사서교사로 있으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나는 스스로 모순의 본보기가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즐거운 책 읽기에 ‘유익함’을 더하려 하면 많은 역효과를 동반하게 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데 학교에서 정책적으로 열심히 독서교육을 한 결과, 책 읽기를 싫어하게 된 학생들을 무수히 봐 왔다. 그래서 독서교육에 대해서 모순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좋은 독서교육은 어쩌면 독서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서교사로서 그냥 읽어 주거나, 스스로 읽게만 두는 걸 지지한다. 좋은 책을 구비하고 환경을 조성하고 좋은 책으로 안내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좋은 독서교육은 한 권의 책을 온전히 함께 읽고 내 것으로 재구성하고 다른 사람의 재구성과 나의 재구성을 서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독서는 완성된 사람을 만들고, 담론은 기지 있는 사람을 만들고,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는 베이컨의 명언처럼.
두 가지 입장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나의 독서교육은 이랬다저랬다 일관성이 없다. 그 두 가지 입장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게 나의 과제이다.
 
 
 
04.JPG
 
2. 칼이자 방패로서의 책 읽기–나를 지켜 주고 삶을 버티게 해 주는 책 읽기 :
인문학
사서교사 초창기에 모든 면에서 혼란스럽고 마음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때 나를 지키기 위해 책을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단짝 친구와 ‘독서대학 르네21’을 다니게 되었다. 르네21은 일주일에 한 권의 인문학 책을 선정하고 그 책의 저자가 직접 강의를 하는 대중적 인문학 부흥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 얼마 전 다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쉽게도 모두 폐강이 되었다.
“영주, 그때 르네21이 나를 살렸어. 일주일에 한 번 강의를 듣고 오는 게 일주일을 살게 해 주는 생명수였어.” 당시 우리 둘은 학교도서관이 외로웠고 갈 길을 찾지 못했고 나약하고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 줄 흔들리지 않는 무엇이 필요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들으며 귀동냥으로 한 문장 얻으면 그 한 문장으로 다음 일주일을 버텼다.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된 한 노숙자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게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인문학 공부를 하고 나서요.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전에는 말로 설득할 수 없어서 주먹이 나갔는데 이젠 말로 내 생각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도 그 노숙자의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 중독이나 폭력 등 잘못된 방향으로 해소하며 살고 있을까.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해야 하는 이유가 그 노숙자의 말 속에 있다. 나 역시 인문학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을 설득할 말주변까지 얻진 못했어도 나 자신을 설득시키는 힘은 얻은 것 같다. 어느 책에서 “도망갈 수 없는 사람은 배운다.”라는 문구를 봤다. 도망갈 수 없어서 울면서 버텼던 학교도서관에서 내가 찾은 출구는 인문학 책 읽기였다. 인문학 책을 읽으며 나와 타인을 더디게 이해하게 되었다. 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사람 알기가 결국은 인문학이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을 아는 것이 세상을 아는 것이다.
 
3. 치유로서의 책 읽기–마음이 자라는 책 읽기 : 심리 철학 신화
원래 낮았던 자존감이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더 낮아지기 시작했고, 서른 언저리쯤 내 마음을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펼쳐 보니 너무나 형편이 없었다. 남루하고 초라한 내 마음을 꺼내 놓고 살피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까지 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환상과 착각을 걷어 내고 내 삶과 내 마음을 바로 보며 검토하기 시작했다. 사실 심리학 책보다 더 내 마음을 투영시킨 책은 ‘신화’였다. 신화의 매력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신화는 인간의 욕망 덩어리이고 염원이다. 신화 속 수많은 인물들 하나하나에 내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바로 보기’가 곧 치유였다. ‘바로 보기’는 ‘있는 그대로 보기’이다. ‘있는 그대로 보기’,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를 서른이 되어서야 처음 글자를
배우듯 짚어 가기 시작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가인 스캇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란 책에서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라고 말했다. 삶에서 마주치는 여러 곤란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냥 두는 것도 치유였다. 내가 선택한 비주류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다. 나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이제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더 이상 에너지를 쏟지 말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에 좀 더 에너지를 집중하기로 했다. 현실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삶을 누릴 줄 아는 현실 인물에 관한 다큐나 책을 좋아한다.
나의 삶을 보고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며 조금씩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성장하고 나면 이전의 고통은 이미 치유되었다. 물론 새로운 고통이 다가오지만.
 
05.JPG
 
4. 타인을 위한 책 읽기–자아의 확장 : 사회구성원으로서 책 읽기
『고민하는 힘』이란 책에서 저자 강상중은 현대 사회는 자아가 과잉된 개인이 너무도 많다고 한다. 그는 타자와의 소통 없인 개인도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결국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고 말한다. 자아가 내 안에서만 확장되면 병이 된다. 결국은 타인에게로 뻗어나가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안에 나만 가득 차 있어서 타인의 고통은 그저 타인의 고통일 뿐이었다. 이제 내가 소수의 자리에서 고통을 받아 보니 타인의 고통도 눈에 들어오는데… 그래서 신이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허락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곳곳에 많다. 인도의 위대한 문헌정보학자인 랑가나단이 일생 동안 헌신해야 할 사회적 사명을 도서관에서 찾았다고 말했듯이, 나도 나의 사회적 사명을 학교도서관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란 생각을 해 본다.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 학교도서관은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열정을 불태워 보고 싶다가도 도망가고 싶어진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06.JPG
 
 
5.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책 읽기: 종교
성경을 읽으며 가장 전율을 느꼈던 문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부분이다. 불안한 영혼을 가진 우리 인간은 한 말씀 붙잡기 위해 귀동냥하기 위해 책을 잡는다. 부처님의 말씀, 하느님의 말씀… 그 말씀이 우리 고달픈 인생을 살아내게 하는 동아줄이 되어 준다.
성경은 결국 로맨스이다. 불경에서는 자비를 말한다. 논어에서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종교의 종착지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만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길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 사서교사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일초도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아이들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학기 중에는 평일 하루 대출 반납이 1,000~1,800권을 넘나든다. 대출 반납을 처리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사소한 일들. 대출 반납 오류들과 그에 따른 민원들. 몇 시간을 정리해도 쉬는 시간 10분이면 초토화되어 버리는 도서관. 늘 정리와 초토화의 무한 반복이다. 수업을 하거나 행사를 하는 건 일도 아니게 느껴진다. 일상의 이런 무한 반복 때문에 울고 싶어진다. 매일 매일 종교 수행하듯 이 지치는 일을 겸손한 마음으로 반복해야 하는 게 감당해야 할 진짜 몫이구나 싶기도 하고, 스님이나 수녀님처럼 수행자의 마음이 아니면 가치를 지키며 해내기 힘든 것이 일상의 반복인 것 같다.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