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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나의 청소년문학] 나는 ‘밥상’ 말고는 ‘상’자 붙은 것을 받아 본 적이 별로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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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6-14 16:16 조회 5,72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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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소설가
 
얼마 전, 올해 ‘사계절문학상(13회)’의 수상작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문학상에 응모한 이들은 수상 여부에 촉각을 아주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기에 수상작을 내지 못하면 심사위원들도 맘이 편치 않다. 그런 때에는 자조적으로 밥값을 못해서 저녁 먹기가 미안하다고 말한다. 최종 심사 사정이 끝나면 대개의 경우 출판사 대표가 와서 저녁을 산다….
13년 동안 사계절문학상의 수상작을 내지 못한 해가 몇 번 있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밥상 말고는 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근데 밥상을 제대로 받으려면 상을 제대로 주어야 하는 이치를 심사를 하면서도 알았다. 상을 제대로 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좋은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는 일일 터.
사계절문학상이 처음 제정되던 때부터 직간접으로 인연을 맺었기에 사계절문학상 소식에 무감각할 수 없는 처지이다. 그간 10년 넘게 예심을 비롯하여 본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심사를 하지 않는다. 사계절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이 이젠 중견으로 활약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심사를 맡겨서 상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 무엇보다도 의미가 있을 것이기에…. 또 같은 사람이 어떤 문학상의 심사를 오래 하면 응모자들에게 괜스런 선입견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물론 종신심사위원도 있어서 그 상의 처음과 끝을 다 책임지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부담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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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사계절문학상 때에는 대상이 없었다. 아마도 청소년소설을 대상으로 한 상이 처음 제정되어서 응모하고자 하는 젊은 작가들이 쉬이 갈피를 잡지 못한 까닭이 컸으리라. 그래서 응모작 대부분이 사계절출판사의 ‘1318문고’에 들어 있는 내 청소년소설 『봄바람』의 너비와 깊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공연한 ‘업계’의 비밀이지만 심사자는 자기 작품을 뛰어넘지 못하는 작품은 절대로 뽑지 않는다! 나아가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말처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작품은 뽑지 않는다. 그때 나는 예심을 보았는데, 내게 배당된 작품 가운데에 내 소설과 비슷한 소재나 주제를 담은 작품은 본심에 올리지 않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이재민의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이 뽑혔다. 다만 대상으로 밀기에는 여러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 본심위원들은 ‘우수작’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사슴벌레 소년의 사랑』은 서정성이 뛰어나고 이성에 막 눈을 떠가는 소년의 심리와 자연에 대한 묘사가 유려한 문체에 실려 있었다. 그래서 내려놓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대상의 영예를 안기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했다. 그럼에도 그날은 심사위원들 모두 저녁을 당당하게 먹었다. ‘시작이 반이다’ 하면서….
다행히 제2회 사계절문학상에선 대상작을 냈다. 수상작은 이옥수의 『푸른 사다리』. 『푸른 사다리』는 도시 빈민들의 이야기이다. 도시, 그 가운데에서도 대한민국의 심장이라는 서울 한 지역의 이야기이다. 바로 서초동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 촌! 묘한 느낌이 든다. 강남으로 상징되는, 법으로 상징되는 지역 바로 앞의 비닐하우스 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묘한 공동체이다. 있는 이, 가진 이 처지로 바라보면 ‘묘하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삶 또한 보통 사람의 삶과 마찬가지이다. 부부가 싸우고, 아이들은 겁먹고,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라고…. 『푸른 사다리』는 그곳에서 자라는 한 아이의 성장을 그려 냈다. 어느 곳에서든 아이들은 자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의 성장담이다. 단순하게 성장담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곳곳에 능청스러운 유머도 담겨 있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을 통해 그곳 사람들의 삶과 아이의 성장이 통찰력 있게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푸른 사다리』가 나온 다음 해엔 사계절문학상 수상작이 없었다. 그랬기에 심사위원들은 밥값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해하면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 다음 해엔 브레이크 댄스에 빠진, 비보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신여랑의 『몽구스 크루』가 당선작이 되었다. 『몽구스 크루』는 제목만큼이나 낯선 세계를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 춤에 빠진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긴하지만 독자들을 춤의 세계로 이끌었다. 청소년문학에서 잘 다루지 않던 소재. 그 소재를 통해서도 아이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작품이다. 아이들은 외쳤다. “우리는 춤을 원한다!”라고. 아이들의 욕망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은 작품이라고 여겨졌다.
이후 사계절문학상은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을 비롯해 박지리의 『합★체』, 이송현의 『내청춘, 시속 370km』, 홍명진의 『우주비행』, 김선희의 『더 빨강』, 최상희의 『델 문도』 등을 대상 수상작으로 세상에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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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문학을 사계절출판사 홀로 책임(?)을 져야 했던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중반이 지나고, 2007년 무렵이 되자 창비가 청소년문학 시리즈를 펴내기 시작했다. ‘창비청소년문학’이라는 문고 이름을 정한 뒤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을 필두로 야심차게 청소년소설을 펴내기 시작한 것이다. 더불어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여 제1회 수상작으로 김려령의 『완득이』를 선정하여 청소년문학의 ‘붐’을 일으켰다.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은 『완득이』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눈을 사로잡아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놓아 주지 않는다고 흥분했다. 과연 『완득이』는 심사위원들의 말마따나 재미와 감동을 같이 추구하고자 하는 젊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해 책으로만이 아니라,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했다. 주인공 완득이는 집도 가난하고 공부도 못한다. 하지만 싸움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청소년소설의 주인공들은 거개가 약간 칙칙하고 의기소침한 인물로 설정되었는데 완득이는 그런 인물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자신의 출신 성분과는 다른 매력을 풍기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기운이 펄펄 넘치는 아이였다.
그 다음 해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당선작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열풍도 만만치 않았다.
이처럼 사계절과 창비가 청소년소설을 통하여, 특히 문학상을 통하여 상당히 ‘재미’를 보자 여타 출판사들도 청소년 문학 판에 뛰어들었다. 얼른 손꼽아 보아도 지금은 열 군데가 훨씬 넘는 곳에서 청소년소설을 펴내고 있다. 시공사, 북멘토, 바람의아이들, 비룡소, 단비, 문학동네, 자음과모음, 다른, 뜨인돌, 한겨레, 탐, 실천문학사, 푸른책들, 문학과지성사…. 일일이 다 세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라 세는 걸 포기해야 한다.
이 가운데 비룡소, 문학동네, 자음과모음 등은 청소년문학상을 운영하기도 한다. 여러 출판사에서 청소년문학상을 운영하다 보니, 심사위원으로선 웃지 못할 일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가’ 출판사 청소년문학상에 떨어진 작품이 상금이 더 많은 ‘나’ 출판사의 공모에서 당선작이 되어 심사위원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였다. 그래도 이 경우는 더 잘(?) 되었다고 자위할 만하다. 하지만 정말 씁쓰레한 것은 ‘가’ 출판사 공모에서 본 작품이 별 수정 없이(혹은 제목만 바꾸어 달고!) ‘나’ 출판사에 응모한 경우이다. 이미 작품을 읽었지만, 어느 부분을 고쳤는지를 알기 위해 또 정독을 해야 한다. 그렇게 읽고 나도 거의가 “역시나….” 하는 소리를 뱉게 된다. 청소년문학상이 여럿 되다 보니 일정에 쫓겨, 혹은 요행을 바라고 여기저기 급히 응모하는 작가들이 적잖은 모양이다. 아기를 뱄을 때 먹는 것 따위를 미리 조심해야 건강한 아이가 나온다. 아기를 낳은 뒤에야 아기가 건강하지 못한 걸 알고 여기 치료하고 저기 치료하면 더 힘들다. 작품도 이와 마찬가지. 처음부터 잘 써야지, 대충 쓰고 나서 고치면 한계가 뚜렷하다. 이는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
청소년소설의 역사가 짧은 탓에 청소년소설가가 많지 않아 심사위원의 폭이 좁은 것도 문제이다. 그래서 일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심사위원으로 부르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 그렇다 하더라도 소설의 기본은 같으므로 응모자는 요행을 바라지 말아야 한다.
하여간 한동안 나는 이 출판사 저 출판사 겹치기 출연(?)을 많이 하였다. 동화까지 겸업을 하다보니 ‘가’ 출판사에선 청소년소설로 읽은 작품을 '나’ 출판사에선 동화로 읽어야 하는 곤혹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뜻밖에 많은 작품을 읽게 되는 행운(?)을 맛보기도 했다.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면 서평 대상이 되지 않고선 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동화와 소설의 문법은 다르므로 애초에 동화로 쓸 것인지 청소년소설로 쓸 것인지를 잘 정한 뒤 거기에 맞게 구성을 짜고 묘사 등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지 수위만 올린다고 동화가 소설이 되지는 않는 법이다. 가축이라는 점에선 소와 말이 같지만 소의 새끼는 송아지이고 말의 새끼는 망아지이다. 송아지와 망아지는 전혀 다른 짐승으로 태어난다. 동화와 소설도 마찬가지. 문학이라는 점은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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