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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그림책 읽기 ╋]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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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5-17 23:31 조회 4,97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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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의 장면에 나타나지 않거나 그림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이야기 흐름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존재가 간혹 있습니다. 이들은 평면의 그림이라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확장된 장면을 연상하게 해 줍니다. 이것은 순전히 그림 작가의 몫이라 생각되는데요, 이를 그림책 만드는 과정에 비추어 살펴보겠습니다.
 
그림에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뚜렷한 존재감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기획 단계에서 생각한 이야기를 글로 쭉 써 보게 됩니다. 간단한 그림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물론 이렇게 쓴 글이 다 그림책의 텍스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써 놓은 글을 계속 들여다보며 고치고, 그림으로 묘사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쳐냅니다. 이제 전체 이야기를 몇 개 장면으로 나눌 것인지 고민하고, 1차로 스케치를 간략하게 해봅니다. 글을 확실하게 축약했다면, 이 단계에서 하는 스케치는 대부분 설명적인 그림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림도 축약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전부 다그려서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어느 부분은 안 그리는 것이 오히려 독자의 시선을 머무르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때 그림을 꼼꼼히 살피면서 각각의 요소들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배치도 바꿔봅니다. 더 들어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략해도 좋을 것은 없는지 신중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기본 스케치가 지나치게 축약된 것이면 다른 요소를 더하거나 장면 전체를 좀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상황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명적이라면 빼거나 확대하고, 다른 방식의 표현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일단 그려놓고 보면, 설명을 위해 반드시 장면 안에 구성되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요소도 발견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글을 다시 수정해야 합니다. 간단한 글을 첨가함으로써 그림에는 보이지 않아도 마치 등장한 것처럼 만들 수도 있는 단계가 이 단계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맥스 엄마입니다. 목소리만 들리지요. 아니, 엄마의 말이 글로 쓰여 있습니다.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그림에 그 모습이 등장하진 않지만 존재감은 확실합니다. 게다가 맥스를 방 안에 가두기까지 하니까요. 맥스가 노려보는 방향의 문짝 뒤 어디쯤에 분명히 엄마는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앤서니 브라운의『터널』입니다. 여기서 엄마는 손만 등장합니다. “둘이 같이 나가서 사이좋게 놀다 와.”라며 오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요. 밖으로 나가는 두 아이의 그림자는 엄마에게로 이어져 있습니다. 엄마의 손은 앞
페이지에서 티격태격 다투는 장면에 튀어나온 오빠의 손과 이미지 기호로, 관계를 설명해 준다는 면에서도 짝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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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부분만 그려 놓았지만 이야기 안에서 중요한 의미가 되도록 그린 장면들도 있습니다. 『뱀이 좋아』인데요, 뱀을 좋아하는 딸의 열망에 부모님은 뱀이 애완용이 될 수 없다는 대답만 계속하게 됩니다. 아이는 왜 자기가 뱀을 좋아하는지, 사람들이 뱀에게 가진 편견은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설명합니다. 부모는 결국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는데, 이장면에서 뱀을 사주는 아버지의 모습은 슬리퍼의 앞 코 부분으로만 슬쩍 보일 뿐입니다. 아주 작은 일부분으로도 많은 것을 설명해 주는 그림이지요. 앞서 아이가 뱀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장면과 같이, 설명하듯 아빠의 모습이 다 드러났다면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대체한 경우는 역시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맨 마지막 장일 것입니다. 맥스는 긴 여행 끝에 자기 방으로 돌아왔고, 돌아온 자기 방에는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었지.” 사실 여기서 끝나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을 넘기면 나오는 한 문장, “저녁밥은 아직도 따듯했어.”라는 말은 맥스에게, 그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돌아와서 다행이다.’라고 마음을 다독이게 해 줍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 곁에서 따듯한 저녁을 먹으며 여행담을 들려주는 장면으로 그려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선택한 것은 한문장, “저녁밥은 아직도 따듯했어.”였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엄마 곁에서 따듯한 저녁을 먹으며 여행담을 들려주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이렇게 보면 글과 그림은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가 명작인 이유입니다.
 
 
그림책 장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제 몫을 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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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장면 안에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지만, 제 몫을 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장면안에 드러나는 대상을 어디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주목하면 그 존재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의 시선을 따라 가면 이야기는 더 넓고 깊어집니다. 그림책 『나무』 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표지에서 알아차린 독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표지의 큰 나무는 어디서, 누구의 시점으로 본 것일까요?책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큰 나무 옆에 작은 나무 하나가 자라고 있습니다. 주변의 다른 큰 나무들이 다 사라져도 작은 나무는 꿋꿋이 버텨냅니다. 긴 시간이 흘러 마침내 자신도 큰 나무가 되어 곁에서 피어난 작은 생명을 보살핍니다. 이처럼 돌고 도는 생명의 여정은 비단 나무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물론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은 그 이치를 따릅니다.
여기서는 거의 전 장면에 걸쳐 유지되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에 주목해야 합니다. 눈높이가 사람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작은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숲에 사는 들쥐, 호랑나비같이 아주 작은 생물들입니다. 흙 속에 사는 더 작은 생물일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그들과 비슷한 눈높이였습니다. 책을 좀 더 살펴볼까요?
작은 싹은 어느새 작은 나무가 되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가 묵묵히 곁에서 보살핍니다. 함께 눈부신 아침 햇살을 담뿍 받아들이고 천둥과 비바람도 견뎌 냅니다. 내내 이 모습을 지켜보는 건 숲의 작은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숲에 들어가면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존재들이지만 분명히 숲에 살고 있는 생명들입니다. 미미한 존재로 생각되지만 그것은 크기의 문제이지 비중이 작다거나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바라봅니다. 눈비 내리고 바람 부는 숲을 지키고, 쓰러지는 큰 나무와 사람들에 의해 사라지는 숲과도 함께합니다. 살아남은 작은 나무가 마침내 커다란 나무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다시 숲을 살리러 온 손길들도 맞아줍니다. 사실 그림에는 막 씨앗이 싹을 틔울 때 잠깐 등장할 뿐이라서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깜빡 잊게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유지하는 그 낮은 시선이 책을 보는 동안 독자들도 몸과 눈을 낮추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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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알아가며 좋은 그림책을 가려내는 독자
앞서 다룬 내용들을 토대로 그림책의 특징을 정리해 본다면, 우선 그림책의 그림이 글의 내용을 충실히 따라가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작가들은 글에 나와 있지 않고 글이 묘사하지 않는 부분을 그림이 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글과 그림의 적절한 안배를 ‘책’이라는 구조 속에서 조정해야 비로소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림책이 되려면 글은 없어도 되지만 그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림은 글의 보조적인 기능인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림 작가들의 태도 역시 좋은 글이 있어야 자기 그림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입장은 그림책의 그림을 더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림책 한 권 안에서 그림이 글을 완전히 배제하고 저 혼자 독주를 할 일도 아니지만 제 역할을 잊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자신이 쓴 글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식의 태도라면 읽을 것 없는 그림만을 양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이게 만들고, 볼 수 없는 것에 다가가게 해주며, 아주 작은 요소만으로도 전체를 가늠하게 만들어 주는 그림책의 소중함이 더 절실한 때입니다. 느긋하지만 단호하게 그런 그림책을 가려내고 그런 작가들을 기다리는 것도 독자들의 할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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