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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왕샘의 교단독서일기] 시선의 감옥을 탈출한 외톨이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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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4-13 22:35 조회 7,81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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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시선의 감옥
초임교사 시절, 아이들을 인상적으로 대하는 부장 선생님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 큰 소리로 호통을 친다든가 매를 드는 것도 아닌데, 그야말로 아이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다. 조곤조곤 잘못을 짚어주며 이야기할 때마다 평소 괄괄하다 못해 칼칼한 목소리로 대들던 아이들이 다소곳이 고개를 조아리며 공손히 얘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부장님에게 걸려서 꾸지람을 듣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심 ‘고소하다’는 부도덕한 쾌감마저 느끼면서, 한편으로 나는 언제 저런 능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며 비법을 알고 싶었다. 내 질문에 부장님은 대답 없이 웃음만 짓기에, 한 번은 부장님에게 혼났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냥요. 선생님이 저를 쳐다만 보시는데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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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은 아이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타인의 시선을 지옥이라고 말했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일은 불편함을 넘어서서 극도의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창피, 모욕 혹은 비판의 기억이 틀어진 교우관계에서 발생하게 되면 학생들은 이를 회피하거나 공격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진위를 떠나 자신을 바라보며 친구들이 수군거린다는 느낌을 받는 아이들은 급격히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잃어버린 채 학교생활, 혹은 누군가와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된다.

2. 관계의 도미노
“오늘은 크리놀린 원피스를 입기에는 너무 춥다. 겨울은 갈 줄을 몰랐다. 눈치 없고 무례한 손님처럼. 셔부르크 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꼭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나 혼자만의 상상일까. 앤은 이제 나랑 같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 사라도 마찬가지다. 클로에도. 혼자서 버스를 탄 지 꽤 됐다. 헬레네는 100킬로그램이 넘는대라는 낙서가 돌기 훨씬 전부터. 그 애들이 이런 낙서를 쓴 다음부터. 헬레네하고 말하지 마. 이제 걔는 외톨이.”(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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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l 천미나 옮김|책과콩나무
 
캐나다 퀘백주 몬트리올의 셔부르크 거리에 있는 학교, 화장실 안에 외톨이 헬레네가 서 있다. 잠시 후 자신을 흉보는 낙서를 화장실 문에서 확인한 헬레네는 끊임없이 자신을 흉보는 제네비브와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바짝 웅크린 표정으로 학교를 빠져나간다.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헬레네의 마음은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학까지 꼭 두 달이 남았지만, 영원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헬레네는 샬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를 꺼내든다. 상상의 덩굴로 울타리를 치고 숨어 있던 그녀에게, 마흔 명의 학생 전원이 참가해야 하는 자연캠프 소식은 아찔하기만 하다.
새로 고등학교에 들어온 여학생들의 교우관계는 입학 후 한 달 정도 지나 차츰 윤곽을 드러낸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경우도 있지만, 동아리를 선택하듯 자신이 함께 머물 무리를 찾는 탐색전이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맺어진 교우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견고해진다. 이 시기에 자신을 어필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학교생활 내내 외톨이로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 애초에 사교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친구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어울리던 아이들에게 사소한 계기로 절교를 당하는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듣는 질책과 비난으로 인해 이중으로 힘든 시간을 겪는다. 허술한 결속력으로 별다른 소속감 없이 무난하게 어울리는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에게 함께 어울릴 친구가 없다는 건 조금 과장해서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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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톨이들은 전학을 통해 학교를 바꾸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반 아이들을 바꾸려 한다. 학기말이 가까워 오면 선생님들이 반 편성을 위해 협의회를 가진다는 사실을 짐작한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절대 같은 반이 되선 안 될 아이의 이름을 알려 주는 경우도 있다. 공식적으로야 교무업무시스템에 내재된 프로그램을 통해 석차 순으로 자동 배정되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비슷한 학업성취도를 보인 아이들끼리 맞바꾸기도 한다. 다만, 아이들의 교우관계는 단순히 일대일로 짝지어진 함수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아이의 교우관계를 고려한 조정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다른 아이들의 비틀어진 교우관계를 건드리는 지뢰가 될 수도 있다.
불편해진 친구들의 시선으로 심약해진 헬레네는 엄마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자신을 위해 재봉틀에 앉아 크리놀린 원피스를 만들어 주었던 엄마, 까맣고 칙칙한 수영복을 권하며 사과하듯 탈의실로 밀어 넣던 엄마가 헬레네는 고맙고 미안하며 슬프다. “엄마는 내가 창피했을까” 라고 말하던 소녀의 마음 한 편에는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엄마와 가난을 부끄러워하는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무너진 자존감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들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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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니 브리트 글|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l 천미나 옮김|책과콩나무
 
캐나다 퀘백주 몬트리올의 셔부르크 거리에 있는 학교, 화장실 안에 외톨이 헬레네가 서 있다. 잠시 후 자신을 흉보는 낙서를 화장실 문에서 확인한 헬레네는 끊임없이 자신을 흉보는 제네비브와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 바짝 웅크린 표정으로 학교를 빠져나간다. 함께 어울렸던 아이들이었지만, 그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헬레네의 마음은 겨울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학까지 꼭 두 달이 남았지만, 영원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헬레네는 샬롯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를 꺼내든다. 상상의 덩굴로 울타리를 치고 숨어 있던 그녀에게, 마흔 명의 학생 전원이 참가해야 하는 자연캠프 소식은 아찔하기만 하다.
새로 고등학교에 들어온 여학생들의 교우관계는 입학 후 한 달 정도 지나 차츰 윤곽을 드러낸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경우도 있지만, 동아리를 선택하듯 자신이 함께 머물 무리를 찾는 탐색전이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맺어진 교우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견고해진다. 이 시기에 자신을 어필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처할 경우 학교생활 내내 외톨이로 지낼 각오를 해야 한다. 애초에 사교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친구를 만들기도 힘들지만, 어울리던 아이들에게 사소한 계기로 절교를 당하는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듣는 질책과 비난으로 인해 이중으로 힘든 시간을 겪는다. 허술한 결속력으로 별다른 소속감 없이 무난하게 어울리는 남학생들과 달리, 여학생들에게 함께 어울릴 친구가 없다는 건 조금 과장해서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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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톨이들은 전학을 통해 학교를 바꾸거나, 학년이 올라갈 때 반 아이들을 바꾸려 한다. 학기말이 가까워 오면 선생님들이 반 편성을 위해 협의회를 가진다는 사실을 짐작한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와 절대 같은 반이 되선 안 될 아이의 이름을 알려 주는 경우도 있다. 공식적으로야 교무업무시스템에 내재된 프로그램을 통해 석차 순으로 자동 배정되지만,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비슷한 학업성취도를 보인 아이들끼리 맞바꾸기도 한다. 다만, 아이들의 교우관계는 단순히 일대일로 짝지어진 함수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아이의 교우관계를 고려한 조정이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다른 아이들의 비틀어진 교우관계를 건드리는 지뢰가 될 수도 있다.
불편해진 친구들의 시선으로 심약해진 헬레네는 엄마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자신을 위해 재봉틀에 앉아 크리놀린 원피스를 만들어 주었던 엄마, 까맣고 칙칙한 수영복을 권하며 사과하듯 탈의실로 밀어 넣던 엄마가 헬레네는 고맙고 미안하며 슬프다. “엄마는 내가 창피했을까” 라고 말하던 소녀의 마음 한 편에는 어쩌면 자신이야말로 엄마와 가난을 부끄러워하는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타인의 시선에 의해 무너진 자존감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들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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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당당하게 바라보기
“제 몸이 커지고 있어요. 몸이 자라는 거야. 넌 정상 체중이란다. 그래도 조금 뚱뚱한 편이죠. 아니. 아주 조금은요. 아니. 뚱뚱해요! 그렇지 않아. 아니에요, 저는 소시지예요. 미식축구공이에요. 오렌지 주스 병이에요. 새끼 돼지예요. 포크 쿠션이에요. 저만 보면 남자아이들도, 여우도 다 달아나요. (중략)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니? 2층 화장실 문에서, 파란계단에서, 운동장에서, 내 사물함 문에서. 그래도 엄마한테는 입을 꾹 다문다. 괜히 엄마를 안타깝게 만들고 싶지 않다. 더구나 내 입으로 어떻게 그 말을 옮긴단 말인가? 차츰 깨닫는 중이다. 내가 생각을 덜 할수록 그 말들은 나에게서 멀어진다는 걸.”(87~89쪽)
헬레네에 대한 제네비브의 부당한 비난은 그녀의 체형과 몸무게, 외모 비하에 집중되어 있다. 진위 여부와 관계없는 비난이 수군거림이 아니라 여러 아이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터트려짐으로써 헬레네는 전의를 상실하고 제네비브가 내린 판결을 받아들인다. 정상 체중이라는 체르니 박사님의 객관적인 판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다. 정당한 근거가 있는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반성의 자양으로 삼아야겠지만, 자신을 타인이 함부로 평가하는 것을 쉽게 허락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평가는 것 역시 경계할 일이다. 엄마의 질문에 자신을 비난하는 아이들의 이름 대신 캠프에서 만난 친구 제랄딘의 이름을 대는 순간, 헬레네는 이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로체스터 씨를 사랑하게 된 제인에어를 닮게 된다.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버린 우리 자신을 꺼내 줄 수 있는 열쇠는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누군가의 시선 속에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책 속의 해피엔딩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믿게 된 헬레네처럼, 타인에게 스스로의 존재 증명을 맡기지 않는 당당함이, 지금 외톨이들의 외로운 관계방정식에 필요한 아름다운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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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에어와 외톨이 여우
마음이 창백해진 헬레네의 눈에 세상은 잿빛이고, 책 속 『제인 에어』의 세상만이 비현실적인 선홍색과 화려한 녹음(綠陰)을 펼쳐 보인다. 책 속의 제인 에어는 영리하고, 날씬하며, 지혜로운 여인으로 자란다. 헬레네가 이 책에 빠진 이유는 제인 에어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외톨이였으며,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인 에어가 자신을 괴롭혔던 외숙모의 자기규정에 용감하게 맞선 반면 헬레네는 제네비브의 비난에 쩔쩔맸지만 헬레네가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 헬레네의 현실 역시 본래의 빛깔을 돌려받는다.
이 작품에서 여우는 두 번 등장한다. 제인 에어가 로 체스터 씨를 만나는 순간, 서가 위에 여우가 보인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제인 에어 자신이 괴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헬레네가 외톨이들의 텐트 앞에서 만난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어린왕자』의 사막여우를 떠올리게 한다. 매혹적인 빨간 털과 동그란 눈을 가진 여우는 제랄딘이라는 멋진 친구가 나타날 것임을 미리 귀띔해 주는 듯하다. 여우의 등장은 제인 에어와 헬레네의 세계를 이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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