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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왕샘의 교단독서일기]상벌제, 서열, 그리고 전쟁-하일권의 『방과 후 전쟁활동』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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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3-17 19:40 조회 7,12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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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상벌제의 그늘
학생의 지갑을 습득한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대개 학생과나 방송실로 가져가는데, 이름이 나와있어 담임선생님인 나를 찾은 모양이다. 어디서 어떻게 습득했는지 물으려 했는데 ‘상점’을 주냐고 먼저 물어 온다. 나는 그럴 거 같다고 대답하면서도 마음 한 편이 불편해졌다. 아이가 상점을 받기 위해 물건을 가져왔을 리 없는데도, 어쩐지 아이의 선한 행동이 훼손된 느낌이 들었다. 상점을 입력하는 프로그램에는 물건을 습득한 행동에 대해 몇 점을 부여할 수 있는지 제시되어 있었다. 비슷한 불쾌감은 벌점 부여에서도 계속 된다. 수업 중에 화장을 한 행위와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가 걸린 것이 어떤 근거에서 동일한 벌점을 받는지, 그리고 이런 행동을 두번 반복한 행동이 어떻게 교내 흡연과 동일한 점수로 처리되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대등하지 않은 행동들을 단순하게 계량화시키고 부여한 벌점의 공정성은 허약하다. 더욱이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학부모에게 자동으로 문자메시지가 발송되는 시스템 역시 감정 교류가 중요한 학부모와 학교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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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열, 내면의 지옥
『방과 후 전쟁활동』은 성동고등학교 3학년 2반 아이들이 단정하게 열을 이루어 수업을 받는 풍경으로 시작된다. 쉬는 시간에 반짝 돌아오는 아이들의 생기는, 수능을 132일 앞둔 고3 교실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단조롭고 견고한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 건 외계인의 출현이다. 하늘에 나타난 보라색의 미확인 구체로 인해 전시동원체제로 전환되면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언되고, 전국의 모든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예비군 대대로 편제된다. 4주간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서악산으로 투입되기까지 35명의 반 아이들은 소대와 분대로 나뉘어 병영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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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전쟁활동』(전5권) 하일권 지음|재미주의|각권 300쪽 안팎ㅣ2013~2014
 
“이건 안 하는 사람이 바보야. 전국 2000개 고등학교 다하는 거거든. 그리고 예비군 1년 하면 내년 수능에 ‘대학 입학 가산점’을 줄 거야. 올해 수능은 당연히 없고, 1년 후에 원상 복귀되면 가산점 챙겨서 대학 가면 돼. 그러니까 대학 가고 싶으면 무조건 참여해. (중략) 이제 입소식도 했으니까 앞으로의 군생활 평가 다 기록될 거야. 태도 불량하거나, 명령 불이행 시에 벌점으로 기록되고, 벌점 20점 되면 바로 퇴소다. (중략) 퇴학이라고 생각하면 돼. 퇴소당하면 가산점 무효돼서 대학 못 간다고 봐야 돼. 그러니까 말들 잘 들어! 알 냐???”(1권, 40쪽, 67~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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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선생님과 군대에서 파견된 소대장은 마치 보충수업을 권유하듯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소대로 묶어 준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혼란을 비집고, 대학입학 가산점을 볼모로 한 유혹과 테두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협박이 동시에 전달된다. 다수의 선택에 기대어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아이들에게 ‘벌점제에 의한 퇴소’ 조치는 혼자 고립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담보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을 한꺼번에 열거함으로써 불안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소수가 단체를 제어하는 학교의 또 다른 방식이다.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심리적으로 병약하고 우울하게 캐릭터화된 국영수의 비극은 이러한 상벌기제를 통한 강박관념에 기인한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과 잠깐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는 조바심이 영수의 내면에 가득했다. 수능과 가산점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를 보며, 같은 반에서 2년 동안 함께 지내 온 일하는 그를 괴롭히고 짜증내며 하찮은 상대로 여겼고, 자신을 응큼한 시선으로 몰래 훔쳐보는 영수의 눈빛을 발견한 소연은 영수를 차갑게 외면한다. 안팎으로 고립된 영수는 전쟁 전부터 이미 혼자만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가를 통한 서열화와 수치화는 영수의 내면에 그릇된 위계질서마저 심어 준다. 졸업해도 미달되는 대학교에 갈 같은 반의 일하보다 자신이 살아남는 게 사회적으로도 이득이라고 여기는 영수의 합리화는 그동안 점수를 통해 어떤 행동의 보상과 처벌을 강화한 교육평가시스템이 아이 내면의 무엇을 파괴했는지 반성하게 한다.
학교와 군대는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원했지만, 아이들은 수평적인 자리바꿈을 통해 친구들을 얻어갔다. 평소에 짝사랑하는 나라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순정남 치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의 곁을 지켰고, 평소에 묵묵히 존재감을 지우고 있던 장수나 미아가 누구보다 든든한 이끎이 역할을 수행한다.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던 애설은 전혀 다른 타입의 보라와 가까워진다. 그들의 변화한 교우관계는 기록병 경우의 인터뷰나 선생님의 가산점 기록정리에 기록되지 못했지만, 전우애와 동료애라는 전혀 다른 보상으로 돌아왔다.
담임선생님과 군대에서 파견된 소대장은 마치 보충수업을 권유하듯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소대로 묶어 준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혼란을 비집고, 대학입학 가산점을 볼모로 한 유혹과 테두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협박이 동시에 전달된다. 다수의 선택에 기대어 심리적 안정을 꾀하는 아이들에게 ‘벌점제에 의한 퇴소’ 조치는 혼자 고립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담보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을 한꺼번에 열거함으로써 불안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소수가 단체를 제어하는 학교의 또 다른 방식이다.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심리적으로 병약하고 우울하게 캐릭터화된 국영수의 비극은 이러한 상벌기제를 통한 강박관념에 기인한다.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과 잠깐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다는 조바심이 영수의 내면에 가득했다. 수능과 가산점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를 보며, 같은 반에서 2년 동안 함께 지내 온 일하는 그를 괴롭히고 짜증내며 하찮은 상대로 여겼고, 자신을 응큼한 시선으로 몰래 훔쳐보는 영수의 눈빛을 발견한 소연은 영수를 차갑게 외면한다. 안팎으로 고립된 영수는 전쟁 전부터 이미 혼자만의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평가를 통한 서열화와 수치화는 영수의 내면에 그릇된 위계질서마저 심어 준다. 졸업해도 미달되는 대학교에 갈 같은 반의 일하보다 자신이 살아남는 게 사회적으로도 이득이라고 여기는 영수의 합리화는 그동안 점수를 통해 어떤 행동의 보상과 처벌을 강화한 교육평가시스템이 아이 내면의 무엇을 파괴했는지 반성하게 한다.
학교와 군대는 수직적인 위계구조를 원했지만, 아이들은 수평적인 자리바꿈을 통해 친구들을 얻어갔다. 평소에 짝사랑하는 나라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순정남 치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라의 곁을 지켰고, 평소에 묵묵히 존재감을 지우고 있던 장수나 미아가 누구보다 든든한 이끎이 역할을 수행한다.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던 애설은 전혀 다른 타입의 보라와 가까워진다. 그들의 변화한 교우관계는 기록병 경우의 인터뷰나 선생님의 가산점 기록정리에 기록되지 못했지만, 전우애와 동료애라는 전혀 다른 보상으로 돌아왔다.
 
3. 전쟁에서 살아남는 일

“니들 고생 많이 한 거 알어! 힘든 것도 다 알고. 친구들 잃은 슬픔도 알아! 잘했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잘한 거야. 근데 다시 학교 돌아가면 공부하랴, 수능 보랴, 또 힘들어질거야. 근데 으짜냐??? 고등학교 졸업하면 더 힘들 걸? 대학 졸업하면?? 더더 힘든데?? 그래서 나는 딱히 니들을 위로해 줄 말이 별로 다. 그냥 다시 학교 돌아가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졸업하고 어른이 돼서도, 누구랑 싸우는지도 모르는 전쟁을 또 겪게 되더라도,”(5권, 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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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된 학교에서 수능을 맞은 소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건넨 말은 사사건건 경쟁구도를 만들어 온 어른으로서의 미안함과 사선을 넘어오며 서로를 보살폈던 아이들에 대한 소박한 격려였다. 점점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에게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일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비판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이나 조직사회에 맹종하며 가산점으로 가치를 환산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양성할 순 없는 일이다.
상벌점제는 체벌 대체 효과로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학교를 운영해 교육의 신뢰도를 제고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학생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통제수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는 학생에게도 벌점이 부여된다면, 그것은 교화가 아닌 판정이 되고 만다. 보상을 기대하며 보여 주는 활동에 대한 상점이나, 공개적으로 압박감을 과시하는 벌점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려는 아이들의 동기 부여를 차단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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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생명체의 의미
처음 전쟁이 유발한 공포의 중심에 놓여 있던 외계 생명체는 차츰 존재감을 잃어 간다. 마치 봉사활동이나 체험활동처럼,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자연스럽게 수행되는 수업처럼 아이들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미션이다. 타인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사격 훈련은 외계생명체를 지워 나가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에 비유되고, 기록병을 맡은 친구에 의해 진행되는 인터뷰 녹화 영상은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겹쳐지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문다. 외계인의 침공 전부터 아이들은 대학입학이라는 거대한 암묵적 화두를 머리 위에 띄워 둔 채 공부에 매달려왔다. 방과 후 전쟁활동의 미션은 살아 있는 외계의 세포를 파괴하는 일이었지만, 어쩌면 생기 잃은 표정으로 수업 교실에 앉아있던 학생들의 눈빛이야말로 통제와 위협으로 이미 숨쉬기를 멈춰 버렸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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