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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그림책 읽기+]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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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3-16 22:39 조회 7,82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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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지난 호에서는 그림책의 글자가 의미를 가진 텍스트로서 기능하게 한 책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림책 속 문장을 이루는 글자들은 대부분 회색 덩어리로 한자리를 차지하거나 평범한 글줄로 읽고 지나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타이포그래피를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지와 함께 글자 모양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기 시작합니다. 알파벳은 타이포그래피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어 여러 가지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한글의 경우 글자 하나를 구성하는 데 적어도 두 개의 요소(음소), 즉 자음 1개와 모음 1개가 필요합니다. 거기에 받침 한두 개가 더 붙으면 최대 4개의 음소를 가진 글자 하나가 완성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디자인은 좀 더 까다로워집니다. 그런데도 한글 타이포그래피는 점점 더 많은 연구 성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다채롭게 타이포그래피를 적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글자체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우리 그림책들에도 그것을 잘 운용한 사례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에는 그림책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특정 그림을 보고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취향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이 좋다, 저 그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그림책의 그림을 보면서 어떤 그림이 그림책 안에서 훌륭하게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은 잘 그린 그림 여러 장을 묶어 놓은 화보집이 아니니까요.
 
글에는 없는 이야기 전달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표현해 내야 합니다. 글과 그림을 협업으로 진행하게 되는 경우, 글의 비중이 생각보다 더 크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림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그림책인데도 여전히 긴 글에 딸린 삽화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획 초기 단계에서 그림책의 글은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 한 편의 얼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림책에 들어 갈 글이니 짧고 함축적으로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해도 막상 보면 턱없이 설명적이고 긴 글이 됩니다. 그런 글을 토대로 기획 단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며 그림으로 장면을 구성하겠지요. 이 단계에 이르면 작가는 글의 설명적인 부분과 넘치는 묘사들을 덜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부분 외에는 거의 다 덜어 내고 수정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이기 때문에 이런 과정은 당연한 일입니다.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다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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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김영진 지음|길벗어린이|2014

위 장면은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의 그림 작가 혼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펴낸 책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의 첫 장면입니다. 오른쪽을 보면 꽤 긴 글이 상황묘사는 물론 각 캐릭터 간 대화 내용까지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림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한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월요일 아침의 짜증스런 상황, 그 안에서 캐릭터 간의 감정 표현, 시간에 따른 캐릭터들의 행동 변화 등등이 그림 안에 빼곡하게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묘사하고 설명한 부분은 그것 자체만 보아도 그 시간의 상황들이 그대로 읽힙니다. 그 또래 독자들은 자신이 매일 겪는 일이어서 더더욱 공감 백배일 것입니다. 그림만 보고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집니다. 같은 주제이면서도 다소 설명적인 글과는 결을 다르게 접근한 일러스트레이션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글 따로 그림 따로 읽어도 각각의 완성도에는 문제가 없으면서 둘이 만나 더 풍성해진 이야기가 독자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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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 허은미 지음|김진화 그림|웅진주니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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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운동화』 앨마 풀러턴 지음|캐런 팻카우 그림|이미영 옮김|내인생의책|2014
 
위의 장면은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의 두 장면 입니다. 글의 내용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름대로 해석한 그림의 좋은 예입니다. 감정선을 충분히 살린 또 하나의 이야기가 그림 속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글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훼손하지도 않습니다. 전체 주제를 관통하는 장치로 붉은 실타래를 활용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림만으로 앞뒤 상황과 현실적인 문제까지 관심을 집중시키는 장면도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정부와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고통 받는 우간다 아이들의 현실, 그 안에서 소박하게 이뤄지는 공정한 거래를 지켜볼 수 있는 『춤추는 운동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굳이 상황을 설명하려 하지 않은 것은 그림이 할 몫을 최대한 배려한 것입니다. 앞 장면들에서 다소 설명적인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 하나로 이 책을 만든 두 작가의 협업이 꽤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강조하여 시선을 집중시키느냐에 대한 일러스트레이터의 고민이 엿보이는 장면입니다. 흙 묻은 반바지와 티셔츠, 상처 입은 다리지만 꽃 한 송이와 바꾼 새 운동화들은 운동화 주인들과 함께 한바탕 신 나게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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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사는 나라』 모리스 샌닥 지음|강무홍 옮김|시공주니어|2002 
 
글에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들 중 가장 익숙한 예는 바로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첫 장면을 보면 “그날 밤에 맥스는 늑대 옷을 입고 이런 장난을 했지.”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옆쪽의 그림은 맥스가 했던 장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너무 자주 듣는 예라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합니다. 간결한 문장에 구체적이고 풍성한 묘사가 담긴 그림이 실린 이 책이 지난 50여 년 간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까닭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간결한 글은 시선을 제대로 끌어들여 독자로 하여금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펼쳐지는 그림을 더욱 면밀히 살피게 됩니다. 아래의 그림은 『근사한 우리가족』의 한 장면으로 최소한으로 줄여 놓은 글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을 정도의 세심한 장면 묘사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글로는 가족의 특징을 설명하되 주인공 자신(화자)과 관련된 사례를 간략히 알려 줍니다. 그 배경으로 보이는 장면 묘사는 등장하는 캐릭터에게 뚜렷한 성격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장소에 대한 면밀한 관찰의 힘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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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우리가족』 로랑 모로 지음|박정연 옮김|로그프레스|2014
 
 
귀, 코, 손에 남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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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터널』 앤서니 브라운 지음|장미란 옮김|논장|2002
2. 『짜장면 더 주세요!』 이혜란 지음|사계절출판사|2010
3. 『비가 오는 날에…』 이혜리 지음|정병규 그림|보림|2001
4. 『가방에 뭐가 있을까』 안은영 지음|사계절출판사|2013
5. 『시계 탐정 123』 서영 지음|책읽는곰|2014
 
그림책을 읽을 때 분명 인쇄된 종이 책인데도 맛이 느껴진다거나 냄새가 나는 것 같거나, 몸이 직접 닿는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벽을 예로 든다면, 똑같이 평평해 보이는 벽이라도 벽돌로 된 면인지, 아크릴 판처럼 매끈하고 광택이 있는지 눈으로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까끌까끌하다거나, 미끄럽거나, 부드럽거나, 거친 느낌을 그림을 통해 눈으로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눈으로 보고 있지만 다른 감각을 자극하게 되는 지점에 일러스트레이션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런 그림을 통해 독자는 그림책을 한층 다양하게 즐길 수 있게 됩니다.
『터널』의 도입부에 있는 장면입니다. 비슷한 데라곤 하나도 없이 딴판인 남매의 특징을 알려 주는 것으로 배경의 벽면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이 서 있는 집안의 벽에는 화려한 무늬의, 한때 유행하던 포인트 벽지가 붙어 있습니다. 벽지그림은 인쇄된 것이지만 약간의 요철이 있어서 손으로 만지면 느껴질 정도입니다. 오빠가 서 있는 바깥 벽은 붉은 벽돌로 되어 있습니다. 익숙한 벽돌담의 질감은 몸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두 그림은 실내와 실외라는 차이도 있지만 서로 다른 질감에서 느껴지는 차이도 있습니다.
그림2는 코를 자극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아래 장면은 『짜장면 더 주세요!』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중국 음식점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와 주방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듯한 느낌은 당장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싶게 만들어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게 만듭니다.
빗소리가 들리는 일러스트레이션도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책이 다 끝날 때까지 빗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리시나요? 그리는 대상의 질감을 살린 것과 달리 그림 자체로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일러스트레이션도 있습니다. 그림4는 『가방에 뭐가 있을까』의 본문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겹쳐 붙인 색지들끼리도 서로 다른 두께와 질감을 가진 것이어서 그것들을 직접 만지는 것과 같은 촉감을 눈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헝겊과 바느질 기법들을 이용하여 천 조각의 질감과 바늘땀 하나하나가 손에 잡히듯 표현한 책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위의 영유아 그림책 『시계탐정 123』은 그림 중간에 나오는 글자들까지 바느질로 표현하여 독자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으로 만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았는데요. 그저 예쁘다거나 친숙한 그림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글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어떤 표현방법을 썼는지, 글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얼마나 세심하게 구현했는지 의식하면서 그림책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호에서는 ‘친절한 그림책 번역’에 대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마치 관행처럼 아이들 책이니까, 뭔가 교훈을 주어야 하니까,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하니까, 눈길을 끌어야 하니까 하면서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 구조는 물론 주제마저 달라진 사례들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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