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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읽기+]그림책 속 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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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1-24 12:29 조회 7,67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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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지난 호에 실린 글을 읽은 후 그림책마다 어떤 앵글을 기본으로 장면 연출에 적용했는지 살펴보셨나요? 각 그림책마다 일정한 앵글만 사용한 것이 있고, 서사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인 앵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앵글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앵글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식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적용된 것입니다. 어색하지 않게 앵글을 바꾸며 자연스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림책을 만드는 데 있어 일반적인 과정입니다. 이번에는 그림책 표지나 각 장면들에서 그림처럼 활약하는 글자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글이 일정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
보통 글이 놓이는 자리는 작가의 의도에 따르거나, 디자인 편집 과정에서 수정되기도 합니다. 어느 자리에 글이 놓이느냐에 따라 그림이 하는 이야기가 살아날 수도 있고 글과 그림 모두 신통찮아 보이게 되기도 합니다. 여러 방법 중에, 글 자리가 그림과 별개로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글은 내용만 바뀔 뿐, 그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일정한 자리에 반복적으로 놓입니다. 이는 그림을 먼저 읽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글자는 그저 검거나 회색 덩어리로 인식 될 것이므로, 글이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놓인 것입니다. 이때 영화 자막처럼 깔리는 글은 책을 읽어 주는 사람의 몫이 됩니다.
많은 그림책들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앉힌 사례를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정해진 위치에 놓인 글은 그림을 읽는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방해할 정도로 넘쳐 나는 글들을 그림의 빈자리 어디든 일정한 규칙 없이 채워 넣은 경우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독자가 그림에도 글에도 주목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뿐 입니다. 그래서 편집이나 디자인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 디자이너의 감각, 편집자의 조정 능력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그림책 작가들은 글이 들어갈 자리를 미리 계산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글이 그림과 어우러져 표지를 돋보이게 만드는 경우
 
거짓말 같은 이야기』강경수 지음|시공주니어|2011

 
『민들레는 민들레』김장성 지음|오현경 그림|이야기꽃|2014
 
자, 이제 그림책 속에서 글 텍스트가 그림과 어우러져 이야기를 살리거나 그림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림책 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옆의 표지들은 그림 속에서 분명한 의도를 가진 글 텍스트들을 발견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민들레는 민들레』의 경우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모양을 따라 글자도 물결치듯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홀씨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번식을 하게 되는 민들레의 생태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해 가능한 글의 모양입니다. 또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가는 글자는 민들레를 모르는 독자에게도 충분히 전달력이 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표제 글을 기존 활자를 쓰지 않고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려서 내지의 그림들과 어우러지게 구성했습니다. 전체 이미지에 걸맞은 타이포그래피의 좋은 사례입니다. 또 작가의 이름을 세로쓰기로 배열해 지금 독자가 주목해야 할 주제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들도록 했습니다. 뚜껑이 반쯤 열린 맨홀 속에서 만나게 될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글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 역시 세로로 만들어 낸 ‘선’을 따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 입니다. 이것 역시 누구라도 짐작 가능한 연출입니다.
한 편의 긴 시로 만들어진 『고래가 보고 싶거든』의 표지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제목 글씨의 위치와 색깔이 만들어 내는 연상 작용을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입니다. 제목의 글은 바다 깊숙이 고래가 살고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글씨의 색깔은 내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고래의 색과 같습니다. 한국판 표지는 제목 글을 한 줄로 배열했지만 원서의 표지를 보면 더 분명해집니다. 고래와 같은 색의 글자들이 만들어 내는 잔상이 깊은 바다 속 고래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는 고래를 보게 될까요?
『소피 스코트 남극에 가다』는 남극에 관한 빼곡한 정보들과 함께 쇄빙선 선장인 아빠를 따라 남극으로 가게 된 아홉 살 소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책입니다. 소피가 섬세한 관찰로 쓴 남극 일기는 아이다운 정보를 담고 있어 깨알 같은 재미를 줍니다. 표지를 보면 글씨들이 마치 쇄빙선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부서진 빙하처럼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글씨체와 직선을 벗어난 배열이 빙하의 느낌을 더 살아나게 합니다. 제목 글씨가 표지 그림과 잘 어우러져, 글이면서 동시에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낸 사례입니다.
 

 
『고래가 보고 싶거든』줄리 폴리아노 지음|에린 E. 스테드 그림|김경연 옮김|문학동네|2014
 

 
『소피 스코트 남극에 가다』앨리슨 레스터 지음|엄혜숙 옮김|천개의바람|2014
 
면지와 내지에서 글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경우
 

 

 
『경극이 사라진 날』야오홍 지음|전수정 옮김|사계절출판사|2011
 


『배고픔 없는 세상』프랑수아 데이비드 지음|올리비에 티에보 그림|전미연 옮김 단비어린이|2012
 

『얀의 엄청난 하루』안나 피스케 지음|나명선 옮김|책읽는곰|2014
 
『늑대보다 더 무서운 책』카트린느 르블랑 지음|샤를로트 데 리느리 그림|임은경 옮김|좋은꿈|2014
 
이제 면지와 내지에서 활약하는 글자들을 만나 볼까요?
옆쪽에 보이는 책은 ‘한중일 평화 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인 중국 작가 야오홍의『경극이 사라진 날』입니다. 이 책은 전체 서사도 놀랍지만, 면지와 내지에 활용한 글 텍스트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앞면지의 오른쪽에는 작가의 어머니와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 대한 헌사가 실려 있습니다. 뒷면지는 앞면지와 똑같은 장면 이지만 헌사가 빠져 있습니다. 앞면지를 보며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했다가 책을 다 읽고 나자 제목처럼 경극은 정말 ‘사라진’ 것입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앞뒤면지에서 단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흐르는 강물 속과 같은 위치에 글이 있다는 것, 강물 같은 세월은 흘러 흘러 경극도 사람들도 모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 책의 몇몇 장면에서 글 자리를 강물의 흐름에 맞추어 배치해 놓은 것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 대신 맨 처음 나오는 장면에서 물결같이 배열한 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때 아이의 시선은 서사 방향과는 반대로 글 문단을 향하고 있는데요, 난징 친화이허 강가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머물렀던 아홉 살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임을 밝히는 장면입니다.
글을 물결처럼 배열한 장면은 이후 두 번 더 나옵니다. 첫 번째는 이른 새벽 경극 배우였던 샤오 아저씨가 연습을 하는 장면입니다. 유명한 배우의 새벽 연습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을 사람들이 건너편 강가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의 아이와 샤오 아저씨 사이에서 강 물결처럼 배열된 글이 있습니다. 며칠 후 샤오 아저씨가 웬일인지 연습을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으러 나온 사람들로 꽉 찬 강가 풍경에 역시 글이 물결을 따라 배치됩니다. 샤오 아저씨는 그날 저녁 난징을 떠납니다.

 
『스톤헨지의 비밀』믹 매닝 지음|브리타 그랜스티룀 그림 서남희 옮김|소년한길
 
『스톤헨지의 비밀』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스톤헨지에 관한 정보 그림책입니다. 속표지를 보면 스톤헨지는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고 그 아래 땅속 깊은 부분은 온통 검정색입니다. 검정 바탕에 옅은 노란색으로 제목이 배치되었는데요, 스톤헨지 아래 묻혀 밝혀지지 않은 비밀에 대해 말해 주는 듯합니다. 밝혀지지 않은 고대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까닭은 어린 독자들이 앞으로 그 비밀을 밝혀내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의도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 몇 사람은 고고학자나 역사학자의 꿈을 키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글자의 배열이나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과 함께 주제를 전달하는 의도가 담긴 오브제로 글을 표현한 책이 있습니다. 『배고픔 없는 세상』입니다. 이 프랑스 작가들이 제안한 단어놀이에는 알파벳의 첫 글자 ‘A’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배고픔(FAMINE)에 이어 A, M, E를 제외하고 나오는 끝(FIN)이라는 단어 역시 인상적입니다.
옆 그림들은 스웨덴 작가 안나 피스케가 만든『얀의 엄청난 하루』의 몇 장면입니다. 모험을 즐기는 얀은 집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책에는 그 엄청난 사건들과 모험을 거의 대부분 그림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글은 최소화하여 얀의 말풍선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글은 그림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얀의 기분이나 상태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합니다. 얀의 시선과 말풍선의 방향이 그림 안에서 이야기의 진행을 도와주며 독자들이 그림을 따라갈 수 있도록 이끕니다.
아주 간단하게는 『늑대보다 더 무서운 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는 늑대의 목소리는 글자체를 점점 크게 만들어 소리가 점점 커지는 느낌을 전달합니다. 꼬부랑길이나 파도치는 모습을 따라 글씨를 배열하는 방식도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 안에서 글자만으로도 전체 이야기의 주제나 분위기를 말해 주는 예는 꽤 있습니다. 특히 타이포그래피의 역사가 오래된 알파벳을 쓰는 나라들에서 글자를 그림처럼 사용하는 예는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글자의 활용이 자연스럽고 적절할 때 그림책의 이야기는 더 풍성해집니다. 글자가 그림 안으로 들어올 때 단순한 배열의 문제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림 안에서나 밖에서 그림을 방해하지 않고 그 자체로 그림처럼 기능하거나 기존 그림을 더 살리는 방식이라야 합니다. 타이포그래피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한글의 글자체를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지 고민한 그림책들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에는 그림책의 그림은 어떠해야 할지, 잘 그린 그림이면 다좋은 것인지 등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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