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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책 읽는 부모] 어린이와 어른, 구별하기보다 배움의 동반자로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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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1-24 12:02 조회 5,55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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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아이들의 자기표현이 불편한 어른들
부모나 교사로서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그 나이 때 이런 걸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생각에 아이를 위해관심과 간섭을 아끼지 않는다. 인생의 선배로서 진심과 사랑을 담아서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는데, 이런 행동이 아이 입장에서 고맙거나 달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부모의 관심을 거부하고 자기 방으로 꼭꼭 숨어드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낯설지않다.
인간관계에서는 상호성이나 수용자의 감정과 태도가 중요하다. 호의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도 상대가 반기지 않으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고,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면 좋을 때도 있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거부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보통의 인간관계와 달리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는 어른인 부모나 교사의 의도의 윤리성이나 정당성이 더 많이 작용한다. 우리는 지금 어린이나 청소년이 부모나 교사 같은 어른의 관심, 사랑, 배려, 충고 따위를 거부할 자유나 권리에 대해서 말하기 쉽지 않은 사회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드러내고 부모나 교사가 시키는 일을 ‘그냥’ 하지 않고 ‘이유’를 따져 묻기 시작하면 어른들은 불편해 한다. 학교 가는 아이에게 학교 끝나고 곧장 집으로 오라고 했더니 왜냐고 되묻고, 야채를 골고루 먹으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냐고 대꾸하는 아이와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고 묻는 것에는 이미 그런 지시에 동의할 의사가 없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어른들은 불편해진다. 자기를 표현하기 시작하는 사춘기가 되면 아이의 성장을 축하하고 반기기보다 반항하기 시작한다며 오히려 문제아 취급하기 일쑤다.
“숙제해야지.”라고 했는데 “게임 한 판만 하구요.”라거나 “피곤해서 좀 쉬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면 반항하느냐고 반응하는 어른들이 꽤 많다. 또, “주말에 역사박물관 예약했어.”라고 했는데 “친구랑 영화 보러 가기로 했어요.”라거나 “박물관은 지겨워요, 야구장에 가요.”라고 대답할 때도 아이에게 물어보지 않고 예약한 걸 후회하기보다 오히려 왜 물어보지도 않고 친구랑 약속을 잡았냐고 따지거나, 박물관이 야구장보다 좋은 이유를 나열하며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는 아이를 나무라는 부모의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린이와 청소년이 스스로 자기 일을 결정하는 걸 지켜보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어른으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아이가 부모 말을 잘 들을 때 순응력이 뛰어나고 수용적인 아이라고 하지 않고 착한 아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자기 생각을 감추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중2병’이라는 말로 문제아 취급하기도 한다.자연스러운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정상이 아니라고 간주하여 ‘병’이라고 지칭하는 사회에 사는 부모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이해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옛 문헌을 통해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를 성찰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최기숙 지음|열린어린이|2013
 
조선시대 어린이 인문학』은 어린이의 관점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게 한다. 『사소절』이나 『격몽요결』 같은 조선시대의 문헌에 기록된 어린이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어린이 교육이 인문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런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린이와 관계 맺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새롭게 정리할 수 있다.
선비의 소소한 예절이라는 뜻의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은 선비의 모범이라는 사전(士典), 여자의 의례라는 부의(婦儀), 어린이를 다룬 동규(童規), 이렇게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선비가 지켜야 할 예절과 주의해야 할 지침을 담은 사전이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여성에게는 배우고 익히는 일을 강조하지 않았고, 어린이 사이의 인간관계는 다루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사소절』을 통해 어린이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
동규가 상정한 모범적인 어린이는 장난치지 않고 위험한 것을 멀리하는 어린이, 예의 바르고 정직하며 우아한 어린이, 한마디로 어른스러운 어린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어린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무리한 것 들을 요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작가는 조선시대의 어린이를 보여 주는데 그치지 않고 조선시대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를 비교해서 보여 준다. 동규가 상정한 어린이와 요즘 어른들이 어린이를 대하고 어린이에게 요구하는 바가 다르지 않다는 거다. 조선시대의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어른스런 인품과 태도를 요구했다면, 현대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남다른 능력과 자질을 요구한다는 점을 비교해 이야기한다. 게다가 『사소절』은어린이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기대하면서 어른인 남자와 여자에게도 그 이상을 요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어른을 어린이에 비해 완벽한 존재로 상정하지 않았고, 어린이는 무조건 배우는 대상이고, 어른은 모두 교육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는 전제를 두지 않았단다. 어른과 어린이 모두를 배우고 익혀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이에 비해 지금의 어른들은 스스로는 공부에 대해서 면책권을 부여한 채 아이들에게만 벅차고 부담스러운 공부를 요구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대조적으로 말한다. 아이를 야단치기 전에 어른 스스로 먼저 반성하고, 아이에게 공부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는 어른이 드물다는 것 이다. 이를 어린이에 대한 어른의 특권의식이라고 꼬집어 말한다.
한편 동규는 “놀기만 즐기고 구속받기 싫어해서, 항상 어른이 집에 없기를 바라는 것은 착한 마음씨가 아니다.”라는 구절처럼 어린이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여 가르치기도 하지만, “장기와 바둑을 일삼는 집의 아이는 글을 전혀 모르고, 과거 공부만 일삼는 집의 아이는 의리를 전혀 모르니, 이것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일이다”라는 구절처럼 어린이에게만 좋은 것을 따르고 나쁜 것을 피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환경을 만드는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어른과 아이의 서열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데 아이가 어른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성찰하게 한다. 명나라 사상가인 이지는 동심의 보존을 강조하고 동심의 속성인 천진함, 순수함이야말로 인간의 진정성을 보장하는 인문성의 자질로 보았다. 근대 이후이성을 중심으로 한 지식 사회에서 지식이나 정보의 총량을 기준으로 서열화를 하면 어린이는 영원히 어른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지만 감성과 순수한 마음을 기준으로 본다면 어른과 어린이의 서열은 달라진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지면 어린이와의 관계가 달라진다. 어린이를 어떤 존재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교육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달라진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여자와 남자뿐 아니라 어린이와 어른에 대해서도 차별이 심했을 거라는 편견을 접고 조선시대 문헌에 드러난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지금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나갈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보기, 이해하기
 
『따로 따로 행복하게』배빗 콜 지음|보림|1999

『따로 따로 행복하게』는 어린이의 관점에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림책이다. 부모의 이혼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귀여운 두 아이들에게 서로 눈곱만큼도 맞지 않는 엄마와 아빠가 있다.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서로 맞지 않는 그림책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사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아는 것 만으로도 상당 부분 서로 소통할 수 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차이인지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차이인지 아는 것과 나못지않게 상대방도 그 차이 때문에 힘들어 한다는 걸 아는 것은 중요하다. 또, 이런 차이가 함께 사는 데 큰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걸 아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이렇게 서로 눈곱만큼도 맞지 않는 엄마와 아빠가 왜 결혼했는지 아이들은 궁금해 할 것 같다. 원래는 아주 예뻤고 잘 생겼던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미워하다 보니 얼굴도 미워졌단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싸워서 슬픈 두 아이는 엄마 아빠 때문에 골치 아픈 친구들에게 모이자고 제안한다. 아이들이 엄마아빠 때문에 골치 아파한다니 어른들이 상상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표현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구름같이 몰려들었고 엄마 아빠가 다섯 살배기 어린애처럼 구는 게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을 낸다. 정말 씩씩하고 주체적인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끝혼식을 제안했고 부모님은 이번만큼은 마음이 딱 맞았다. 그리고는 집도 두 개, 부모님도 두 분, 뭐든지 두 배가 되었다고 아이들은 말한다. 엄마 아빠는 지금 아주 행복하다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두 아이도 엄마 아빠처럼 행복할까? 책에는 그저 두 집에서 살게 되어 뭐든지 두 배가 되었다고 말할 뿐 이다. 물론 활짝 웃는 두 아이의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는 한다.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은 싸우지 않으니 아이들의 표정이 밝은 건 당연해 보인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wo of Everything’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따로따로 행복하게’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처음 이 제목을 봤을 때, 이혼에 대한 명쾌한 정의이고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따로따로 행복하게 사는 거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함께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다만 서로 눈곱만큼도 맞지 않으니 따로따로라도 행복하길 바라게 되었고, 모든 것이 두 배인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따로따로 행복하게’는 부모의 입장이고 ‘모든 것이 두 배’는 아이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로 살면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어른인 내 생각으로만 아이를 대하기 쉽다. 어른인 부모의 입장에서 쓴 책으로 어린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어린이의 관점에서 쓴 책을 읽는 것은 어린이를 이해하는 시작일 것이다.
배움은 어린이만의 몫이 아니다. 성장을 멈춘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지 않는 어른만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기보다 배움의 동반자로 함께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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