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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읽기+] 몽타주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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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1-16 22:27 조회 8,7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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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저부터도 마찬가지지만 대개 어른들, 아니 글자를 배운 거의 모든 이들은 그림책을 글부터 읽습니다. 그림책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굳이 ‘그림책은 세 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글과 그림을 같이 읽어라’, ‘그림에 주목하라’라고 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이야 그림부터 눈에 담겠지만 문자의 힘은 너무 커서 글을 읽을 수 있다면 글자에 눈이 가는 걸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림책인데도 그림이 제대로 읽히지 않게 되는 경우가 늘 생깁니다.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은 자신이 읽을 수 있는 글자를 더듬더듬 찾아가며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글자의 배경이 되고 있는 그림을 유심히 살피게 됩니다. 글과 그림을 대조해 보며 내용을 이해합니다. 여기에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적합한 그림책을 고를 수 있는 작은 팁이 생깁니다.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어쨌거나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잘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앞선 글들을 통해 그림책을 읽을 때 좀 더 주의를 기울여 보았으면 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 호에서 다루었던 직선과 사선, 수평선을 의식하면서 그림책을 펼치셨다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선부터 의식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림책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영화이론으로 정리된 ‘몽타주(montage)1)’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몽타주와 그림책
 
 
                               <전함 포템킨> 포스터들


『서커스』(블라디미르 레베제프, 1925) 표지        『나는 커서 무엇이 될까?』 표지(니손 시프린, 1932)
 
예술이란 현대에 와서는 무엇이라고 개념 정리하기도 어렵게 되었지만 예술 창작의 근원은 ‘부분’과 ‘부분’을 잘 엮어서 창작자가 의도하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많은 업적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아직도 유효한 저서 『시학』에서 한 말입니다. 몽타주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짜깁기’, 다른 의미로는 ‘영화나 사진 편집 구성의 한 방법. 따로따로 촬영한 화면을 적절하게 떼어 붙여서 하나의 긴밀하고도 새로운 장면이나 내용으로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든 화면.’입니다. 단편적인 장면을 예술적으로 구성하는 이 방법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영화 예술을 급속도로 발전시켰습니다. 몽타주란 말에 영화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사람은 세르게이 M. 에이젠슈테인(Сергей Михайлович Эйзенштейн)입니다. 구소련의 영화감독이었던 그가 맨 처음 몽타주에 관심을 둔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잘 정리하고 유효하게 만든 장본인임은 분명합니다. 그림책 이야기를 하다가 웬 영화 이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분과 부분을 엮어 의미를 창출한다.”라는 말과 에이젠슈테인의 “어떤 두 개의 필름 조각도 나란히 병치되면 새로운 개념이 된다.”라는 말이 ‘낱장과 낱장의 그림을 책으로 묶어 서사를 갖게 되는 것이 그림책’이란 말과 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몽타주보다는 영화의 ‘쇼트shot2)’ 개념이 그림책에 더 잘 맞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그림책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여러 특징적 변화들을 감안할 때 몽타주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을 전공했고 사진 몽타주를 좋아했으며 연극과 오페라에 참여했던 에이젠슈테인이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한 계기는 한자를 배운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입 구口’자와 ‘새 조鳥’자가 합쳐져 ‘울다’라는 뜻의 ‘명鳴’자가 되는 한자의 제자 원리는 에이젠슈테인에게 몽타주 이론을 정리할 색다른 사고방식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후 에이젠슈테인의 연구와 노력은 그의 영화에서 발현되었고, 영화 자체가 가진 예술로서의 가치도 확고하게 해 주었습니다.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이론을 설명해 주는 영화와 그 대표적인 장면은 그가 1925년에 발표한 <전함 포템킨>3)에 나오는 ‘오데사의 계단’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비슷한 연출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활용되고 있는 기념비적 장면이 되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열악한 환경에서 자막도 없이 본 무성영화였지만 전혀 따분하지 않았고 그 장면이 왜 중요한지도 몰랐지만 충격적일 만큼 놀라운 장면이었습니다. 지금은 DVD로도 출시되어있고 관련 영상도 많으니 꼭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전함 포템킨>의 당시 포스터입니다. 그 포스터의 그림들이 1920년~1930년대에 활발했던 어린이 그림책의 이미지들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당시 그래픽 아트의 흐름을 발견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조각에서 의미로
몽타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편집, 즉 구성에 관한 부분입니다. 잘 그려진 낱장의 그림을 책의 형태로 묶어 놓는다고해서 다 그림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 관건은 ‘어떤 순서로 묶는 것이 의미 전달에 효과적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은 영화에 비하면 훨씬 더 제한적입니다. 그 사이 어디쯤에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에서도 몽타주는 효과적인 도구가 됩니다. 만화의 몽타주는 영화 몽타주와 달리 프레임(칸)의 크기와 위치로 감정을 조절합니다. 칸의 크기는 특정 장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규제하기도 한다는 점이 만화 몽타주의 두드러진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간예술인 만화가 시간을 표현하는 방법은 칸의 면적이나 개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확히 계산된 구성이라야 효과적일 것입니다. 만화는 칸 속에서 시간을 표현하게 되고 그림책은 24, 32, 36 등 40쪽을 넘지 않는 제한적 공간 안에서 시간을 표현하는 예술이므로 몽타주 기법이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 가지를 놓고 본다면 그림책이 가장 제한적입니다. 제한된 면, 제한된 크기에 몽타주까지… 하지만 그림책은 제한된 조건에서 여러 방식의 몽타주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간단한 장면 구성을 한번 떠올려 볼까요?
맛있게 잘 차려진 식탁이 보입니다. 그 옆에 식탁을 바라보는 꼬마가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다음 장면에 꼬마가 부른 배를 두드리며 얼굴에 밥풀을 묻힌 채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글이 없어도 간단한 서사가 전달되고 있습니다. 두 장면의 순서를 바꾸어도 결과적으로 의식하게 되는 내용은 같아집니다. 두 장면으로 보게 되니 너무 단순할 것 같아 앞뒤로 덧붙여 보겠습니다.누군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있습니다. 장바구니 가득 식재료가 들었습니다. 다음 장면은 식탁, 그 다음 장면은 미소 짓는 꼬마, 다음 책장을 열면 울고 있는 두 동생! 행복해 보였던 꼬마가 실은 악동이었습니다. 좀 유치한가요? 여기에도 간극이 중요합니다. 설명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지만 독자가 유추해 낼 만큼의 간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극을 좁히거나 넓히는 문제는 독자 대상을 누구로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 내용 역시 글과 그림의 관계와 함께 지난번에 다루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구성으로 그림을 그려 넣을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시각적 디자인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각 그림들을 연결해서 책으로 묶어 낼 때는 구성이 또 달라질 것입니다. 파편화된 그림, 불연속의 그림을 연속화시켜 연결되게 만드는 것은 실, 풀, 본드, 스테이플러 등을 사용해 물리적으로 묶어내는 것과는 달라야 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행위, 앞뒤 장면에 따라 기본 한 장이었을 때 가졌던 고유한 의미들이 계속되면서 새로운 의미들이 만들어지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 그림책입니다.
이제, 간단하거나 몇 컷 되지 않아도 결정적인 의미를 전달해 주는 몽타주가 세련되게 적용된 그림책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백장미』에는 반복해서 철조망과 로즈 블랑슈, 군인들의 이미지가 교차되어 등장하면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고조됩니다. 그러다 마지막 두 장면으로 이야기의 참혹한 전말과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백장미』크리스토프 갈라즈 지음—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아수명 옮김ㅡ아이세움—2003
 

『터널』앤서니 브라운 지음ㅡ장미란 옮김—논장ㅡ2002

앤서니 브라운의 여러 작품에서 몽타주 방식을 찾을 수 있지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책은 『터널』입니다. 혼자 집 안에서 책만 읽던 여동생과 축구를 좋아하는 오빠의 화해가 면지만으로 설명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남매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앞면지와 터널을 빠져나온 뒤 나란히 놓인 책과 축구공이 그려진 뒷면지 구성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사건의 전후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은 만화, 컴퓨터그래픽 기법이 혼용된 책입니다. 엄마가 외출한 어느 날, 주인공은 친구 나단이 가진 금붕어가 갖고 싶어서 어처구니없는 거래를 합니다. 금붕어 두 마리와 자기 아빠를 바꾼 것입니다. 뒤늦게 아빠를 찾아 나서지만 나단 역시 주인공의 아빠를 전기 기타와 바꿔버린 뒤였습니다. 결국은 아빠를 되찾아오지만 ‘아빠’라는 존재가 아이들에게 금붕어, 전기 기타, 고릴라 인형, 토끼 등 여러 가지 물건들과 바꿔 버려도 상관없는 존재라는 점이 이 책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를 찾아온 주인공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지만 뒤이어 뭔가 다른 속셈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그림이 등장합니다. 여동생을 두고는 어떤 맹세도 하지 않았다는 글과 함께 마지막 장을 넘기면 앞 장면에 있던 여동생 그림 바로 뒤에 금붕어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누구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바로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을 읽으면 작가가 의도했건 아니건 책 안에 심어놓은 디자인적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어떤 것은 혼자 알기 아쉬워 아이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려주곤 합니다.
그럴 때 반응은 여러 가지인데, 같이 즐거워해 주기는커녕 ‘무슨 소리야?’하고 뜨악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에는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전달을 잘못한 걸까 아님 내가 잘못 본 걸까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는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지를 수 있어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몽타주 기법 역시 좀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그림책들을 펼쳐 차근차근 그림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그림책에 간단하게라도 몽타주가 적용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는 영화의 말하기 방식과 함께 만화와 그림책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닐 게이먼 지음—데이브 맥킨 그림ㅡ윤진 옮김—소금창고—2002

 
1) 몽타주 이론 : 몽타주(montage)는 프랑스어로 ‘짜 맞추다’, ‘마무리하다’,‘결합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1920년대에 영화에 있어서는 촬영된 필름의 단편을 편집하는 기술용어였다. 몽타주의 중요성을 최초로 강조한 사람은 러시아 이론가 레프 블라디미로비츠 쿨레쇼프(Lev Vladimirovich Kuleshov)다. 그의 제자 프세볼로트 푸도프킨(Vsevolod Pudovkin)은 영화예술의 핵심은 쇼트들의 병치(juxtaposition)와 조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 기술(Film Technique)』이라는 저서에서 “영화는 찍히는 것(shot)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built)이며, 마치 벽돌을 쌓듯이A+B=AB로 shot의 결합을 통해 제3의 상징적이고 감성적인 의미”를 창출한다고 했다. 에이젠슈테인은 미국에서 번역·출간한 『영화 형식(Film Form)』이란 저서에서 “촬영(shot) 그 자체는 단지 ‘몽타주의 한 조각’에 불과하고 이러한 조각들은 ‘충돌’과 ‘갈등’을 통해서 변형을 일으킨다.”라고 주장했다.
2) 쇼트(shot): 촬영의 기본 단위로서 한 번에 촬영한 장면. 쇼트의 분류 체계는 프로듀서나 연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쇼트를 분류하는 기준은 피사체 크기와 숫자, 피사체를 바라보는 각도, 카메라 움직임, 피사체를 포착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기구 등이 있다. 영화의 구성요소에서 쇼트(Shot)는 영화의 최소단위로, 카메라가 한 번 돌아가는 동안 찍힌 영상의 ‘내용’이다. 이 쇼트들이 모여 ‘무슨 무슨 장면’이라는 씬(Scene)을 이룬다. 씬(Scene)은 연극에서의 장(場)과 비슷한 개념이다. 씬(Scene)들이 모여 이야기인 시퀀스(Sequence)가 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시퀀스 여러 개가 모여 한 편의 영화가 된다.
3) 1905년 1월, 러시아에서 최초의 혁명이 일어난다. 곧이어 같은 해 6월14일, 포템킨호의 해군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사건의 시작은 부패한 고깃덩이에 대한 항의였지만, 이 작은 시초가 이후 오데사 항구에서의 반란으로 이어진다. 4부가 가장 유명한 ‘오데사 계단’ 에피소드다. 수많은 사람이 포템킨호에 식량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총을 든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무차별 사격이 시작되고, 오데사 계단의 민중은 총살당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포템킨호가 육군의 근거지인 ‘오데사 극장’을 포격하지만 이미 늦었다.(<테마로 보는 세계영화작품사전 500> 역사에 휩쓸린 인물을 다룬 영화,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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