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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만화 책을 읽다가 초능력자: 책에 관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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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8 23:00 조회 7,14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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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해서, 책이란 그냥 얇게 저민 죽은 나무에 언어를 새겨 넣어 묶어놓은 하나의 매체에 불과하다. 핵심은 그런 물리적 형태가 아니라, 양질의 정보와 사고, 감성이 담긴 내용물을 일정하게 정제된 품질과 분량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저 종이책을 사서 들고 다닌다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정보취득 습관에 대한 함의를 담게 된다. 하지만 독서에 관한 그런 식의 세부적 고민보다는, 정기적으로—특히 가을철 무렵이면—항상 온갖 언론지면에 나오는 이야기가 얼마나 한국인들이 책을 적게 읽는지에 대한 푸념이다. 그것도 거의 기계로 뽑아낸 것처럼 천편일률적이다. 일본 등 다른 ‘선진국’이 얼마나 일인당 연간 독서량이 많은지 이야기하고, 독서시간에 비해 다른 비생산적인 짓을(그 악역은 별다른 고민도 없이 보통 게임, 인터넷 등이 차지한다) 얼마나 많이 하는지에 대한 개탄이 이어진다.
 
그리고 책을 읽어야 깊이 있는 사고를 얻을 수 있다는 몇몇 전문가의 발언 인용이 덧붙여지고, 마무리는 박스 같은 별첨 코너로 도서추천목록 정도가 장식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누군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리가 만무하다. 독서가 후진국이 되지 않기 위한 거창한 명분이어서야 무슨 공감을 하겠는가. 책을 읽는 것이 왜 재미있을 수 있는지 각자 자신의 맥락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주고, 무엇보다 책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풍부한 매력을 풍기도록 만드는지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 관한 만화를 몇 편 소개하고자 한다. 독서권장 캠페인 광고를 담은 문화부에서 찍어낼 법한 작품이나 무슨 문학전집을 요약한 만화전집 같은 것들 말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책이 흥미로운 중심 소재가 되어주는 작품들 말이다.

책이 곧 세계
책에 관한 가장 극단적으로 분방한 상상력을 보이는 방식이라면, 책이 곧 세계관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혜성을 닮은 방』(김한민, 세미콜론)에는 ‘에코북’이라는 책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이 하고 다니는 무수한 혼잣말과 스쳐가는 생각들이 담겨지게 되는 책이다. 각자의 혼잣말인 에코어를 기록한 에코북을 모아놓은 것은 바로 에코도서관이고, ‘아즈하’라는 나라에 있다. 책은 종이를 평평하게 묶어놓은 묶음이 아니라, 페이지들이 마치 털처럼 나선형으로 삐져나온 생물체의 모습에 가깝다.

앞뒤가 없고 문자가 아니라 내용 자체가 담긴 그 기록매체는 읽을 수도, 혹은 심지어 차로 끓여서 흡수할 수도 있다. 생각의 균형이 깨지면 책의 모양도 어그러지고, 혼잣말이 흐려지면 책도 사라진다. 책이 중심이 된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책으로 된 작품 속에서 책 속의 책이 표면으로 나오고, 책과 이야기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야기의 기본틀은 마치 『어린 왕자』처럼, 주인공 무이가 자신만의 작은 공간을 타고 움직이며 다른 기이한 공간들과 조우하는 로드무비식 전개를 따르고 있다.

다만 선명한 선형적 줄거리보다는 꿈을 꾸는 듯한 비약적 의식의 흐름, 관념적 언어와 기이한 공간성 탐험으로 흐른다. 친절하지 않은 실험적 작품임은 틀림없는데, 책을 들고 있는 동안 각 부분을 감상할 때는 묘한 몰입감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책이 곧 세계라는 설정에서 마치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세상의 중심, 책
아예 하나의 세계를 책에 맞추어 구성해내는 정도가 아니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실은 책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음모론을 이야기로 만들어볼 수가 있다. 『R.O.D.』(쿠라타 히데유키 원작, 야마다 아키타로 만화,학산문화사)라는 작품은 원래 라이트노벨(일본식 주류 애니/만화 취향을 따르는 장르소설의 일종)로 시작하여, 독특한 매력의 설정에 힘입어 애니메이션 및 만화를 통해 이야기를 더욱 확장시킨 경우다. 이 작품에는 궁극의 책들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파괴할 힘이 있고, 대영도서관이 이들을 관장하는 비밀조직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 조직의 핵심 요원이 되는 사람은 책의 가호를 받아 종이를 활용하는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종이로 방패를 만들고 상대를 공격하며, 종이를 타고 날아다닐 수 있다.

요원은 ‘더 페이퍼’라는 별칭을 받는데, 책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자신이 책을 너무나 사랑해야 한다. 작품의 주인공인 요미코 리드먼이라는 젊은 여성이 그런 요원인데, 건물 하나를 통째로 서재를 빙자한 책 창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늘 책을 들고 읽으며 다닌다. 즉 전형적인 오타쿠를 연상시키는 모습을 오히려 세계 최고 비밀요원의 설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책을 거의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멋진 캐릭터의 요소가 되도록 만든 셈이다. 그쪽 장르물들이 보통 그렇듯 과도한 설정 비틀기로 인해 줄거리 전개가 꼬이는 대목도 적지 않지만, 책이라는 소재에 관한 유쾌한 상상력의 직선적 활극을 즐기기 좋은 작품이다.



인류의 경험과 지식을 현재로 이어주는 책
굳이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세계관이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다가 거대한 제국을 통솔하는 최강의 장군이 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무려 역사적 사실이다. 『히스토리에』(이와아키 히토시, 서울문화사)는 단시간 내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대한 마케도니아 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제의 서기관, 에우메네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다. 에우메네스의 정식 직책은 도서관을 관리하고 왕의 행적과 기타 기록들을 담당하는 것인데, 그의 경우는 황제의 휘하에서 대군을 통솔하며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 작품은 그런 역사적 인물의 과거를 역사적 설정과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인간의 지식과 야만이 어떤 식으로 제국을 만들고 인간 사회의 선악을 구성하는지를 세부적으로 관찰한다. 작품의 핵심이 그런 관찰이다 보니, 책 - 아니 고대 그리스를 무대로 하니 서판과 양피지 - 에 심취하여 인간 역사와 철학을 계속 되새기며 현재를 바라보는 서기관이 주인공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작품에서 책은 인류 전체의 경험과 지식을 현재의 장면에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그것을 활용할 줄 알기에 주인공은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거치고 더욱 파란만장할 서기관 장군의 직책으로 유라시아를 누비게 된다.



책의 세계는 현실적 산업으로서 출판
한 단계만 더 현실적으로 내려오면, 초능력이나 대장군은 되지 못해도 책을 좋아함으로서 인기 작가가 될 수는 있다. 『바쿠만』(오바 츠쿠미, 오바타타케시, 대원CI)은 일본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주류 소년만화잡지 가운데 하나인 <소년점프>에 만화를 연재하는 창작자들과 제작진에 관한 이야기다. 그저 만화가의 길에 대해 교훈을 얻고 싶다면 『G전장 헤븐스도어』등 다른 좀 더 직설적으로 창작자의 꿈과 용기를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있지만, 『바쿠만』은 출판물을 만드는 과정과 여러 난관들을 현실감 넘치게 묘사한다. 회사는 여러 작품들을 연재하며 경쟁에 붙이고, 편집자와 작가는 서로 갈등하면서 협업을 하며,

까다롭고 고된 노동작업의 결과로 한 주 한 주의 출판물이 나온다. 줄거리를 이끄는 갈등은 만화를 작업하는 방식의 차이, 작품 안에 담아내는 내용 요소들의 차이가 어떻게 치밀한 계산에 따라서 움직이는지에 따른 성공과 실패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그려내는 책의 세계는 현실적 산업으로서의 출판이고, 마음이 담겨있는 좋은 작품 같은 것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전체의 극히 일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현실적이고 비정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꿈과 우정 같은 전통적인 구식 감동요소들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특이한 작품이기도 하다.

책 을 소개하는 만화 딱히 책을 좋아함으로서 무슨 대단한 존재가 되는 이야기를 완전히 벗어난다고 해도, 좋은 책을 좋아하기에 책을 소개하는 사람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소개 역할이 잘 해내면 무척 멋지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연재중인 <워리의 북렐름>(워리)은 “카툰으로 보는 책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책을 소개하는 만화다. 서평을 만화로 펼친다는 것은 자칫하면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는 집착에 빠져서 잡다한 추억이나 가벼운 감상 또는 단순한 줄거리 소개로 빠지기 쉽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그런 함정을 가볍게 우회하는데, 우선 소개하는 책의 폭이 소설부터 인문철학서, 사회 및 자연과학 교양서 등 넓다. 내용에 대한 소개 역시 소소한 사연으로 잔재미를 부각하려 하기보다는 각 책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 매력으로 거의 곧바로 파고든다. 만화로 서평을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평을 만화로 풀어내는 식이다. 덕분에 주욱 읽다보면 좋은 서평가의 추천목록을 가득 얻어낸 느낌이 든다.

물론 실제로 자신이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사람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책을 좋아하다 보면 멋진 서평가, 더 나아가면 인기 작가, 더 파보면 대장군, 나중에는 초능력, 결국에는 세계 그 자체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이미 책을 즐길 만한 이유고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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