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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책 읽는 부모]말의 힘, 어린이책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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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10-31 14:42 조회 6,27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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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충격 중 하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충실하게 따른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급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안내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는 ‘말’을 할 때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싶다. ‘말’이 힘을 갖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야 하다니 정말 아득하다.
‘말’이 힘을 갖지 못하는 사회는 곧 폭력 사회이다. 말이 힘을 잃으면 말을 대신해서 신뢰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서류를 만들고 보증인을 세우고 공증을 받는 것도 역시나 말로 하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말이 힘을 잃으면 약속이 의미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 힘센 사람의 말이 곧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말이 힘을 잃는다는 것은 곧 교육의 위기다. 교육이란 의미를 공유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르치려는 사람의 말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서 반응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교육이 이루어진다.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며 말의 힘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 세 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대화의 시작은 아이의 말을 잘 듣는 것부터
 
『침 튀기지 마세요』
박문희 엮음|이오덕 풀이|고슴도치|2000

제목부터 아주 당돌한 느낌이다. 『침 튀기지 마세요』는 유치원 아이들의 마주이야기◆1를 쓴 책인데 아이들의 이야기가 부모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대화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출발하고 교육은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엄마! 안 사줘도 되니까요, 한 번 보기만 하세요.”
“너 또 인형 사 달라고 하면 매 맞을 줄 알아! 알았어?”
“근데 엄마! 제 얼굴에 침 튀기지 마세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부모의 대화다. 아이는 안 사줘도 되니까 엄마에게 한 번 보기만 하란다.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아주 잘 아는 아이다. 그런데 엄마에게 왜 보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엄마에게 보여 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던 걸까? 혹은 엄마가 보고서 얼마나 멋진지 알면 사 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중학생인 아들은 이 글을 보고서 단번에 “사고 싶다는 얘기네.”라고 말했다. 어릴 때 자기도 그런 마음이었다면서.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참 단호하다. 조금의 여지도 없다. 사 줄 수 없다면 아이의 기대를 애초에 꺾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지만 매번 일말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마음조차 가지지 말라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만약 아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면 엄마의 대답에 그런 마음을 쏙 접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엄마의 냉담하고 위협적인 반응에 굴하지 않고 아이는 “근데 엄마! 제 얼굴에 침 튀기지 마세요.”란다. 이런 당돌함이 엄마의 위협을 덜 폭력적이게 만든다. 상대를 겁먹게 해서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당돌하게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는 아이 덕분에 부모의 말은 폭력에서 거친 대화로 격상되었다. 물론 “침 튀기지 마세요.”라는 아이의 말을 회피하거나 삼켜버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듣고 반응할 때만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도 힘이 있다.
“목하고 엉덩이 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목이 아프면, 목에다 주사를 맞아야 되는 것 아니야. 목하고 엉덩이하고 상관이 없으면, 목이 아픈데, 왜 엉덩이에다 주사를 맞는 것이야”, “우리 형아는요, 참 이상해요. 자기가 라면 끓여놓고요 할머니 보고요 잘 먹겠습니다. 하거든요.” 아이들은 어떤 상황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생각하고 궁금해한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궁금해 하고 질문한다. 그런데 이런 궁금함을 어른들은 그저 귀여운 표현이라고 웃어넘기고 대화로 이어가지 않는다. 아이의 말을 ‘말’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이의 말을 자세히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느껴보자. 그럴 때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아이의 바람은 ‘혼나지 않는 것’
 
『혼나지 않게 해 주세요』
구스노키 시게노리 지음|이시이 기요타카 그림l 고향옥 옮김|베틀북|2009

만날 혼나는 나는 며칠 전에 “엄마, 그렇게 화내면 얼굴에 주름이 생겨.”라고 말했다가 엄마에게 또 혼난다. 동생한테 화내고 친구를 한 방 먹이고, 혼날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소원 쪽지에 “혼나지 안케 해 주 새요”라고 썼을 때 선생님은 한참을 그 쪽지를 들여다보더니 울면서 “선생님이……, 늘 혼내기만 했구나. 미안해. 참 잘 썼네. 정말 좋은 소원이구나.”라고 말한다. 이렇게 빨리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놀랍다. 네가 이렇게 하니까 내가 혼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을 덧붙이거나 하지않는다. 아이가 소원하는 말이 그대로 선생님과 엄마에게 전해진다.
 
아이들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친구랑 싸웠어!』
시바타 아이코 지음|이토 히데오 그림ㅣ이선아 옮김|시공주니어|2006
 
‘친구랑 싸우고 온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라는 생각으로『친구랑 싸웠어!』를 읽는다면 전혀 다른 질문과 만나게 된다. 다이는 친구 고타와 싸우고서 고타가 사과를 하는데도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사과하지 말란 말야!”라며 사과를 거부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싸우면 사과를 부추기기 마련인데 사과를 거부하다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직 분이 안 풀렸는데 사과를 받아야 하다니 사과하지 말라는 다이의 마음에 확 공감이 간다. 사과를 부추기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다이는 왜 이렇게까지 분한 걸까? 고타는 다이보다 힘이 세서 다이가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고 달려들어도 끄덕도 안한다. 오히려 다이는 고타한테 채이고 나자빠지는데, 그때 다이는 고타에게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한다. 고타는 바로 멈추질 못하고 다이의 어깨를 팍 밀치고, 다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그래서 다이는 화나고 분했다.
책을 읽으면서 다이가 고타의 주먹과 발길질을 참을 수도 막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하는 다이가 참 당당해 보였다. 다이는 힘이 약해서 맞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지 않고 “싫다.”라고 말한다. 다이와 고타 모두 그 순간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 걸 안다.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싫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이것 좀 먹어봐” “싫어!”, “숙제부터 해.” “싫어!”, “문제집 좀 풀어라.” “싫어!”, “피아노 연습 좀 해라.” “싫어!”, “이것부터 하고 놀아야지.” “싫어!” 이럴 때마다 싫다는 말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하는 말마다 싫다고 대답하니 답답하겠지만 아이 입장에서 보면 싫은 것만 하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게다가 싫다는 대답이 매번 먹히질 않고 무시당하거나 다시 부모에게 설득 당했다면 ‘싫어!’라는 말은 힘을 잃게 된다. ‘싫어서 어쩔 건데 싫어도 참아!’ 하면 그만이다.
학교라는 말을 떠올릴 때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폭력이란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계속하면 폭력이 된다. 그런데 ‘싫어!’라는 말이 힘을 잃었으니 폭력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다.학교폭력이 사건화되었을 때 학생들은 장난이었다거나 상대가 그렇게 싫어하고 힘들어하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곧 폭력이라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감수성이 일상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부터 가장 쉽게 무너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다이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한 것처럼 아이들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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