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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왕샘의 교단독서일기]불면의 밤,먼지를 닦아내는 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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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9-29 00:19 조회 7,7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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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잠 못 이룬 아이들
불면의 밤을 보낸 아이들이 교실에는 꼭 있다. 모든 아이들이 잠드는 사유를 일일이 점검할 수 없지만, 수업 때마다 상습적으로 엎드리는 아이에게는 그 이유를 묻게 된다. 몸이 아파서 힘들었던 경우도 있고, 밤새도록 게임이나 채팅을 하느라, 혹은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귀가가 늦었거나 친구 집에서 자다가 잠을 설친 경우 등등. 날이 밝아올 때쯤에야 잠들었다가 지각을 하고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피로를 교실이나 보건실에서 만회하려는 아이들. 침대가 모자라 정작 아픈 아이들이 보건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 아프다고 해서 무조건 쉬게 할 수도 없어 씁쓸하다.
수업시간 내내 정수리만 보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사로서 안쓰러움을 느껴야 자연스러울 테지만, 대개 그것이 교실 전체의 분위기로 전염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불안이 조바심으로 바뀔 즈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석에 이끌린 듯이 엎드린 아이의 책상으로 다가선다. 미처 잠기운을 털어내지 못하고 눈가와 입가에 짜증을 그리는 학생과 실랑이가 벌어진다. 짜증으로 멍든 아이의 마음과 눈에 힘을 주었던 나의 머릿속은 함께 헝클어지고 만다.
무거운 생각들로 어지러운 마음은 쉬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마음속에 내려앉은 더께는 손에 잡히지 않는 먼지와 같다. 칠판 가득 써 놓은 판서를 지우는 일이나 휴지통에 담긴 쓰레기를 비우는 일처럼 뒤엉킨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 뒤편에 서서 사물함에 기대어 고집스럽게 자신의 고단함을 정당화하려던 아이의 삐딱함이 다시 떠오르자, 나는 주섬주섬 책상 위를 정돈하기 시작했다.
 
2. 청소는 힘이 세다
 
『먼지 아이 Dust Kid』
정유미 지음|CULTURE PLATFORM|2012

 
책을 펼치면 겨울 한밤중에 긴 머리의 소녀가 눈을 뜬다. 이불로 온몸을 돌돌만 채 창가로 다가간 그녀는 창문을 열고 오가는 이 없는 창밖의 골목 풍경을 응시한다. 조용히 창문을 닫고 침대로 다가간 소녀는 침대 한 편에서 그녀의 손가락보다도 작은 나체의 소녀가 잠자고 있는 걸 발견한다. 주인인 그녀를 닮은 먼지, 바로 책의 제목이 되는 먼지 아이(dust kid)다. 짧은 도입부를 지나 계속되는 이야기라야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청소를 하는 소녀와 방 안 곳곳에서 나타나는 먼지 아이의 출현이 전부다. 좁은 방 안을 오가며 비슷한 패턴의 청소가 이루어질 뿐 별다른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기묘한 위로의 느낌을 전해 준다.
청소는 힘이 세다. “더럽거나 어지러운 것을 쓸고 닦아서 깨끗하게 하”는 청소는 눈앞에 보이는 공간에 새로운 윤기를 전해 주고, 동시에 청소에 공들이는 마음마저 상쾌하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심지어 청소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누군가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도 바꾸어 준다. 책 속의 소녀가 방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내 기분을 소녀가 청소해 주는 듯한 흥미로운 착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도 청소가 그런 아름다운 힘을 지닐까? 청소시간이 학교생활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사물함과 책상 속을 정리하고 환기를 시키며 휴지로 가득 찬 쓰레기통을 비우는 교실 청소는 매일 이루어진다.그러나 행사활동 후에 이루어지는 잠깐의 휴지줍기가 봉사활동으로 기록되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학생에게 화장실 청소를 시키는 일은 청소를 보상이나 처벌로 여기게 만든다. 특정한 청소 역할을 자신이 골라서 하려는 아이들의 행동에는 청소가 위생적인 공동생활을 위한 공적인 행동이라는 자각이 결여되어 있다.
 
 
When I am at home alone, I sit silently and mull over many things. As I think, my brain fills with pointless worries and anxiety. That’s when I start to clean my room. As I clean busily, wash the dishes and do the laundry I’ve been putting off, my anxiety disappears naturally. Before I know it, the depression I thought would never end is gone. But I don’t think my worries are gone forever. Like the dust that will gather again where I’ve just cleaned up. I might find myself plunged, all of a sudden, into more anxiety I never even expected. Then I’ll make another effort and start cleaning up again.(221쪽,아티스트 노트)
 
불면의 밤, 소녀가 발견한 먼지아이는, 샤워실 머리칼이나 전등갓에 뽀얗게 쌓이는 작은 알갱이면서 우리 내면에 끊임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걱정과 불안이라는 마음속 먼지임을 작가 노트는 말해 준다. 그제야 나는 방 안 곳곳에 발견되는 먼지 아이가 방주인인 소녀를 닮은 이유와 자취생 소녀의 적막하고 간결한 생활공간이 소녀의 꿈 혹은 내면 풍경임을 이해한다. 청소를 마쳤다고 해서 내 마음 속에 있는 걱정과 불안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에 또 다른 노력과 다시 청소를 시작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도.
생활의 먼지를 제거하는 일과 마음속의 먼지를 청소하는 일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두 가지 모두 비슷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다시 먼지가 생겨난다고 해서 청소를 멈출 수 없고, 주의를 주어도 학생의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해서 주의와 당부를 멈출 수 없고,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라고 해서 바꾸어 보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처음 소녀에게 발견되어 시선을 회피하고 숨으려고만 하던 먼지 아이들이 차츰 시선을 맞추기 시작한 건, 소녀가 자신의 걱정과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진지하게 의식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3. 내 안의 먼지 아이를 보라
학생들이 떠난 후, 책상 줄을 맞추고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마포자루를 쥐고 물청소를 시작했으며, 창문을 활짝 열어 공기를 바꾸어 봤다. 아이들도 매일 청소를 하지 않고 지금 나처럼 이따금 청소를 하게 한다면 혹 청소가 가져다주는 안온함을 만끽할 수 있을까.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는 건 청소의 힘이 아니라 자신의 먼지아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일이다.
나는 그제야 오늘 책상에 엎어진 아이를 차분히 응시할 수 있게 된다. 어젯밤 아이를 잠 못 이루게 한 먼지 아이는 무엇이었을까. 불면의 밤은 육체적 피로로 이어졌을 것이다. 책상에 엎드린 그 아이가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고 해서 그 아이의 피로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면 나 역시 내 안의 먼지 아이를 닦아내지 못한 것이겠지. 어쩌면 먼지 아이는 누군가의 잠을 못 이루게 하는 수만 가지 이유의 다른 이름일 지도 모르겠다.
 
서늘한 표정에 담긴 따뜻한 주제의식
서울시 산하기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의 제작 지원 작품으로 선정된 『먼지 아이』는 2009년 깐느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어 첫 상영을 가졌던 단편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수차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이력의 주인공이 올해 33세의 젊은 작가임이 눈에 띈다. 2012년경 출간되었던 이 책은 특히 지난 3월 <2014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 대상을 받으면서 다시 회자되며 재출간되었다.
섬세한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진 소녀의 다소 무표정한 얼굴은 호러 독립영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작가의 소박한 주제의식이 전하는 묵직한 위로가 따스하게 다가온다. 부록으로 첨부된 DVD가 10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이어서 학생들과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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