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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그림책 읽기+] 시선과 방향으로 읽는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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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9-29 00:01 조회 10,27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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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일러스트레이터
 
지난 호에서는 그림책 안에서 각 요소들의 움직임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한 장면 안에서 비례와 구도는 보이지 않는 눈금을 그어 놓은 듯 작동하여 안정적인 장면을 만들어 주고 그것이 이야기의 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가까운 곳에 놓인 그림책들에 적용해 보신 분들이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꼭 알맞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요소들을 발견하셨나요? 그림책 표지에서부터 주요 인물의 위치를 가늠해 보면서 다시 읽어 보셨다면 예전에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작가들은 정작 자신이 왜 그 위치에 주인공을 앉혀 놓았는지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철저히 규칙을 세우고 정확히 계산하여 요소들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 자연스레 그려진 것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림책 안에서의 글의 역할과 그에 따른 글의 위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그림책에서 ‘시선과 방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글과 그림, 따로 혹은 같이
그림책에서 글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일관된 서술을 위해 사건과 사건들을 연결해 주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주의를 기울일 방향을 제시하며 해석을 제공하기도 하고 그림 이미지의 틀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기능적인 면에서 그림책의 글은 그림과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거나 혹은 일치하는 부분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적절히 섞인 형태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림과 글의 서술이 일치하는 경우는 다시 세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그림을 그대로 재현, 설명해 놓은 글입니다. 이런 경우 장면 안에 글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집니다. 두 번째는 그림이 서술하는 내용의 핵심 문장을 하나 혹은 둘 정도만 서술한 글입니다. 이때 글은 그림이 묘사한 바를 일일이 서술하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동작이나 행동, 즉 움직임에 대한 디렉팅의 기능을 합니다. 주어와 동사 두 단어 정도로만 연결한 문장 하나가 장면 전체를 아우르게 됩니다. 나머지 하나는 앞의 두 가지가 섞인 경우입니다.
그림과 글의 서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그림이 표현하지 않은 상황을 글이 서술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것도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지금 펼쳐 보고 있는 장면의 바로 앞이나 뒤에 나오는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경우 글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앞 장면에 대한 묘사라면 펼친 면의 왼쪽에, 뒤이어 나올 장면에 대한 글은 오른쪽에 자리 잡는 것이 적당합니다. 상하로 치우치는 정도는 때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앞뒤 어떤 장면에서도 묘사되지 않는 내용을 기술한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글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서술하게 됩니다. 마지막은 그 둘이 혼합된 상태입니다. 앞 장면에 나왔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현재 펼쳐놓은 장면의 그림에는 묘사되지 않은 내용을 서술하거나 현재 장면에 뒤이어 나올 것 같은 장면을 서술하고 있지만 책장을 넘겨보면 앞 장면에서 읽고 난 뒤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책에서 글은 앞에서 기술한 방식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림책을 읽을 때 서사적 감각을 깨우는 책장과 책장 사이의 간극, 공백을 메우는 것이 독자의 영역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할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가 읽어내고 해석하게 되는 그 간극은 독자의 해석 능력을 충분히 고려한 작가의 의도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지점입니다. 그 작용이 있어야 서사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시선과 방향
사람의 몸을 10이라고 한다면 그중 눈이 9라고 할 정도로 눈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책을 읽고 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눈’입니다. 눈으로 그림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시선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을 때 작동하는 시선은 몇 가지나 될까요?
그림책에서는 특히 독자의 시선 하나만으로는 의미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장면 안에 나타나는 캐릭터의 시선, 각 캐릭터 사이에 마주치는 시선, 캐릭터의 시선이 독자를 향하는 경우 등 개별적 시선과 여러 가지 시선의 상호작용이 장면을 살아나게 만듭니다.
다음의 두 장면은 겨울밤, 부엉이를 만나러 나간 아빠와 아이가 부엉이와 만나게 되는 장면입니다. 첫 장면에서는 이제껏 부엉이를 찾아 헤매던 아빠와 아이가 부엉이와 마주한 시선에서 캐릭터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으로 모든 움직임이 멈춰버립니다. 책 속 캐릭터들끼리 시선을 마주하고 이제껏 진행하던 이야기가 잠깐 정지되면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머리가 쭈뼛거리고 심장이 방망이질치는 순간입니다. 두 번째 장면은 첫 장면에서 등을 돌리고 있던 부엉이의 정면입니다. 부엉이의 시선은 아빠와 아이를 보는 것이겠지만 책을 보는 독자와 마주친 것 같기도 합니다. 평면 책에서 숲속 공간으로, 다시 그 공간을 넘어 책 밖으로 공간이 확장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가 더 놀랐을까요?
 

© 존 쉰헤르, 『부엉이와 보름달』, 시공주니어

부엉이의 위치와 시선의 방향으로 봐선 그 누구도 부엉이만큼 놀라고 당황한 이는 없을 듯합니다. 자기만의 숲이라고 생각되던 시간에 플래시처럼 강력한 물건을 들고 자신을 위협할 것처럼 보이는 존재를 둘이나 한꺼번에 만난 부엉이는 극도의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창릉천에서 물총새를 만났어요』는 작가의 관찰하는 시선이 주된 것이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 결말로 갈 즈음에 등장하는 아기 물총새의 시선이 결정적입니다. 장마 후에 창릉천 주변의 새들이 걱정된 작가는 서둘러 그곳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다른 새들은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물총새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 후에 나타난 것은 어미 새를 꼭 닮은 아기 물총새였습니다. 아기 물총새는 콘크리트 제방에 앉아 어미 새가 VIP석인 양 앉아 쉬던 철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 장면에서 그림은 왼쪽 면에 치우쳐 있고 어미 새의 흔적 같은 철근은 더 왼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콘크리트 제방 끝에 위태로이 앉은 아기 물총새의 시선은 이야기가 흐르는 방향의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림책을 읽을 때 책의 방향, 즉 책장을 넘기는 방향에 캐릭터의 시선이 어떻게 맞춰져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살피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시선들은 시선이 작동한 대상의 위치를 규정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더 설득력 있게 도우며 서사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합니다.
 
© 정진호,『위를 봐요!』, 은나팔
 
시선과 함께 방향도 중요합니다. 대부분 주인공이나 핵심이 되는 사물의 시선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가 이야기의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위를 봐요!』는 제목에서부터 확실한 방향(위)과 시선(봐요)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표지에는 주변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인물이 제목이 담긴 말풍선을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시선이 말풍선과 독자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사실 독자는 책을 마주보거나 내려다보고 있게 마련입니다만 이 표지의 시선과 마주친 독자는 늘 아래를 내려다보는 주인공 수지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게 됩니다. 주인공의 시선과 일치하면서 동시에 심정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지요. 그것이 주변 인물과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 보는’ 것 같은 단 하나의 시선 때문이라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수지는 매일같이 베란다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봅니다. 걸을 수가 없으니 수지 혼자 밖으로 나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친구들을 만나 맘껏 놀 수도 없습니다. 수지는 집 아래 길거리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언제나 사람들을 위에서 내려다보자니 까만 머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은 개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강아지와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보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통 우산들만 오고갑니다. 바쁘게 길을 걷는 사람들은 늘 앞만 보며 가느라 다른 곳을 보지 않습니다. 가끔 하늘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만도 하건만 그런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어요. 아무라도 좋으니…… 위를 봐요!”
수지의 마음 속 외침이 길을 걷는 한 아이에게 가 닿습니다. 한 사람이 고개를 들자 주변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고개를 듭니다.
시선을 어디로 향하게 하는지에 따라 공간이 이토록 확장될 수 있다는 것, 시선 하나로 이야기 속 인물과 동일시된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시선을 돌리고 몸을 움직여 다른 자리, 다른 시선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그림책 속 시선에서 만나게 되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주인공 수지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뒷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존 버닝햄,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비룡소
 
지난 호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1/3, 1/2 위치에 선 인물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책장이 넘어가는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심 캐릭터들의 방향이 책장을 넘기는 방향이 아닌 쪽을 향하고 있다면 그들이 이야기에 순행하지 않으려는 의도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작가가 이야기의 메시지에 동의하지 않거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신호일 경우가 많습니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의 몇 장면은 부정적인 의사를 전달하는 데 방향과 시선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기차에 태워달라고 하는 동물들에게 이미 기차에 타고 있는 캐릭터들이 처음 하는 말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인데요. 이때 기차를 타려는 동물들은 왼쪽 면에, 기차에 이미 타고 있던 캐릭터들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캐릭터들은 이야기 진행 방향을 가로막고 나란히 서서 반대편 동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차에 태워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줍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런 구도는 지금 소개한 두 장면 말고도 새로운 동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 로베르토 인노첸티,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사계절출판사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는 액자식 서술 형식도 독특하지만, 사실 시선과 방향만으로 주제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책입니다. 장면마다 보이는 여러 가지 시선들이 이미 위험한 상황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초반
몇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주인공의 움직임은 책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표지에는 주인공 소녀가 책장이 넘어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도 얼핏 보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그려 놓았습니다. 아이가 가는 길에는 그쪽으로 가지 말았으면 하는 작가의 의도가 갖가지 기호나 표지, 아주 작은 낙서 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현대 도시 속에서 여자아이가 맞닥뜨릴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폭력에 대해 모든 이미지가 일관성 있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굳이 결정적인 말로 광고하지 않아도 어린 독자들은 충분히 해석하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들은 이 책 안에 빼곡한 위험을 알리는 요소들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책은 시선도 방향도 없이 진행하기도 합니다. 작가의 의도일 수 있겠지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의도가 있다면 충분히 헤아려질 것입니다. 자, 이 달에는 그림책 장면마다 시선과 방향을 찾으면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참,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학습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말해 주지 않아도 이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다음 달에는 수평선과 수직선, 사선이 두드러지는 그림책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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