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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왕쌤의 교단독서일기]깨진 거울에 비친 열여섯의 일기장–『나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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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8-20 16:14 조회 7,75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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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1. 나쁜 친구는 누구일까?
담배를 피다가 걸린 아이의 부모님이 학교를 방문하셨다. 우리 학교는 학생이 담배나 라이터를 소지하다가 걸리거나, 담배를 피운 사실이 발각되면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학생부에서 지도를 받는 교칙을 가지고 있다. 직장에 다니시는 부모님이 자신의 일로 시간을 내어 학교에 오게 된다는 사실이 어떤 종류의 자제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조치다. 아직 아이들과의 면담도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학부모와 이런 일로 처음 전화 통화로 맞대면을 하는 일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세밀하게 살펴보면 아이들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개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한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모든 것이 친구를 잘못 만나 생긴 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자식을 잘못 키운 자신의 불찰이며 누구를 원망하겠느냐는 한숨이 뒤따른다.
이야기를 듣던 중 문득 어떤 아이가 나쁜 친구인지 궁금했다. 만약 친구라는 말에 ‘나쁜’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다면, 그 아이는 ‘친구’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서 곁에 있는 어리숙한 친구를 비슷한 일탈로 내모는 영화 속의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떠오르지만 그건 어른들의 눈에만 보이는 구별법이 아닐까.
선생님인 나에게 나쁜 학생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가 가장 미워했던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라는 것에 생각에 미쳤다. 그리고 그게 좀 무서워졌다. 선생님으로서 아이를 위한다는 마음이 너무 앞서 분통을 터뜨리며 혼내게 되는 일 말이다. 아이들은 마음에서 멀어졌고 때론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책 속의 주인공인 정애에게 편지를 쓰며 그 아이들에게 다시 말을 걸고 싶어졌다.
 
 
 
 
 
『나쁜 친구』
앙꼬 지음|창비|2012

2.학교 밖의 아이,학교 안의 아이
안녕, 정애야. 책 속에서 진주와 함께 있는너를 보며 내가 학교에서 만났던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겹쳐졌어. 담배를 피우고 눈빛으로 누군가를 제압하기도 하며 기약 없는 가출에서 돌아와 단단해진 표정으로 모든 것들을 시시하게 바라 보던 친구들을 말이야. 결국 학교에 찾아오신 어머니께서는 너희를 대신해 자퇴원을 제출하며 원망과 안쓰러움으로 학교생활을 끝내게 된 아이의 앞길이 걱정스럽다는 말과 함께 교무실을 나서시곤 했지. 당사자가 없는 헤
어짐 이후에 안부를 듣게 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고. 그때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의 문을 이렇게 편지로 써 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책 속의 너를 통해 그 아이들을 다시 불러 본다.
너의 방에서는 여자애들이 고스톱을 치고,다른 방에서는 남자 아이들이 문신을 새겼다. 엄마랑 열다섯 살밖에 차이 안 나는 친구, 아버지가 머리가 터져 죽었는데 경찰에게 사인이 심장마비였다고 들은 친구, 새 엄마와 자기가 열두살 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엄마’라고 부르라고해서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다는 친구까지. 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진주는 자신이 너무 평범해보이는 게 창피했다고 말했어. 비애의 주인공 내지는 특별히 불쌍한 존재가 되고 싶었으나, 그런 사연이 좁아터질 것 같은 너의 방에 모인 아이들 사이에선 너무 흔한 일이었지. 학교 안에서 너는 나쁜 친구들의 정점에 서있는 듯했어. 복도에서 부딪힌 진주에게 “눈깔똑바로” 달고 다니라고 윽박지르고,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가르친다며 화장실 바닥에 꿇어앉힌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헤어지자고 말하는 영만 오빠 때문에 울다가 학교에서 나가 버리고, 가출을 한 뒤에는 짙은 화장을 한 어른 흉내낸 친구를 만나 모텔에서 머물며 친구의 돈벌이 방법을 따라 하는, 너는 그런 아이였지. 그러나 학교 밖에서의 너는 초라했다. 아빠는 한물간 건달로 술만 먹으면 동생에게 소리 지르고 너에게 손찌검을 했다. 그리고 너는 ‘지겨운 인생’이라는 말을 내뱉었어.
아이들만의 세상에서 너희들은 삐뚤어진 심성의 가해자들로만 보였지만, 학교 밖의 너희들은 누군가의 폭력 앞에서 피멍드는 또 하나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진주와 너의 이야기 속에서 어른들은 철저하게 억압적인 존재로 그려져 있어. 적당하게 너희들을 따뜻하게 대하거나, 걱정해 주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아. 아버지의 종교적인 신앙심마저 딸을 정신적으로 순결하게 만들겠다는 집요함으로 보여 징그럽더라. 예외적인 장면이 있긴 했지만, 폭력적인 장면에서 가해자들은 대부분 등을 보인다는 걸 알게 됐어. 표정 없는 그들의 등 너머로 매를 맞는 아이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어.
너희들의 힘든 마음이 만져진다 해도 나는 여전히 너가 선택한 길을 지지하진 못하겠다. 견고하게 비도덕적인 어른들을닮고싶지 않다고 비웃으면서도, 너희는 나쁜 어른들처럼 행동하고, 때론 너희들의 다른 모습일 수 있는 아이들 앞에서 우쭐해 했으니까. 다만 그것이 너희가 선택한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구나.
 
3. 손잡아 주지 못한 미안함
정애 너는 진주에게 어떤 친구였을까. 어른들에게는 그저 학교를 그만둔 나쁜 친구로 보였는지 몰라도, 그 시간 속 진주에게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보다 더 의지가 되었던, 나이는 똑같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좋은 어른’의 모습을 가진 좋은 친구였겠지. 이야기 속에서 조금 물러나 너를 다시 바라보니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의젓한 모습이 보일 때도 있어.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제대로 된 어른이 필요했던 또래 친구였다는 걸 진주는 학창시절이라는 골목길을 벗어나고서야 알게 되었던 것 같아.
너가 진주의 곁을 떠난 후, 그 아이가 보여준 방황과 반항은 어쩐지 정애 너를 흉내 내며 허전함과 그리움을 메우는 방식이었어. 진주는 너처럼 될 수 없었고, 어느새 너의 이야기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만화가가 되어서 그 골목길을 빠져 나왔어. 은행원이 된 지영은 진주에게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살았다고 말하지. 은행 뒷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자신을 은행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지영이 말할 때, 나는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무언가를 감출 수 있는 표정을 가지게 된다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리고 학창시절 너희들은 모든 것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에어른들에게 더 많이 혼나야 했다는 아이러니를 느꼈어.
정애 너는 아무렇지 않은데 마치 너를 피해자나 희생자처럼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너에게 어떤 미안함을 전해야 할 것 같아. 아직도 세상엔 나쁜 친구보다 나쁜 어른이 더 많다는 사실과, 너와 친구들이 힘들 때 손잡아 주는 좋은 어른이 되어 주지 못한 걸 말이야. 어쩌면 너야말로 어두운 과거의 골목길을 서성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일지 모르겠다. 지연이네 엄마가 가졌던 분식집처럼 꿈꾸던 공간에서 좋은 어른으로 살고 있을 너
를 기대할게. 그럼 안녕.
 

 
 

★ 밤의 골목길을 응시하다
비교적 근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삼십 살』(앙꼬 지음, 사계절출판사)에서 저자는 오랜 시간 그림일기를 그려 왔으며, 스케치북 속에 자신의 일상과 글을 담아내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분히 사적인 내밀한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일상생활을 듣다 보면 무언가 애수어린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그리고 있는 자화상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어떤 어두운 골목길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걸 느끼게 된다. 2012년에 출간된 여성 만화가 앙꼬의『나쁜 친구』(창비)는 웃음기를 걷어 내고 보다 진지하게 어두운 풍경화를 담아낸다. 이미 『내가 살던 용산』(보리)의 「상현이의 편지」에서 차분하게 분노하는 방식을 보인 스케치는 그녀가 사적인 고민에 머무는 작가가 아님을 보여준 바 있다. 인디만화 특유의 어두운 그림체에도 불구하고 『나쁜 친구』가 아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건 이 만화에 담긴 솔직함과 진정성, 그리고 푸른 멍이 느껴지는 인물들에게서 가까운 이들의 상처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시절의 어둠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의 막막함이었다면, 스물세 살의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골목길은 기억 속에서 지웠다고 고백하지만 떠나지 못한 과거의 먹먹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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