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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지은이가 독자에게] 책을 싫어하는 민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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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1-31 06:11 조회 6,6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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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소설가, 동화작가

민지야 안녕? 이 편지는 네가 나에게 보낸 이메일의 답장이란다. 내가 강연을 갔을 때 책이 소중한 거라고 여러 번 얘기하니까 맨 앞에 앉아서 짜증스러워하던 너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잖니.
“선생님, 왜 사람들은 책만 읽으라고 해요? 노는 것도 좋은데.”
그래 네 말도 맞아, 어른들이 입만 열면 책을 읽어라, 공부해라 그러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니? 충분히 이해한단다. 선생님까지 책 읽는 것이 좋다고 막무가내로 강조하고 싶지는 않아. 이런 건 스스로 느껴야 되는 거거든. 내가 『책 할아버지의 행복 도서관』을 쓴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야.
이 책의 실제 모델인 그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너무 바쁘게 지내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대. 그때 책 읽는 걸 좋아하던 아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다가 집에 불이 나서 죽고 말았다는구나. 책 좋아하던 아들에게 나중에 꼭 서점에 데려가 주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거야. 할아버지는 이때부터 아들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다시 살기로 결심했지. 그리고는 이 땅에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점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도서관 운동을 시작하신 거야. 호주머니를 털어서 도서관이 없는 곳에 책을 보내 주고, 지원해 주는 사업을 하기 시작하셨어.
그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나는 너무 감동을 받았단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게 되었지. 김수연 목사님은 그렇게 알게 된 분이야. 호탕한 목소리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는 책 읽기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하셨단다. 그 목사님의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는 지당한 것이었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어떤 일을 겪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미리 알려주는 책이 있다는 것이지. 책을 많이 읽는건, 학교에서 공부하는 걸로 친다면 예습을 많이 하는 거야. 운동선수로 친다면 연습을 많이 하는 거지. 책에는 수없이 많은, 이 땅에 먼저 왔다 간 선인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 적혀 있지. 그걸 미리 알고 길을 가면 얼마나 편리하고 얼마나 유리할까? 삶의 고민이 있을 때도 똑같은 고민을 먼저 했던 사람이 해결한 방법을 적어놓은 것이 바로 책이야. 책은 한마디로 우리 인간들이 모아놓은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지. 이러한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도서관은 바로 그런 지혜가 잔뜩 모여 있는 곳이란다.
내가 어렸을 때 책을 읽다 보면 엄마가 안방에서 밥을 먹으라고 불렀어. 그러면 나는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어서 도저히 밥을 먹고 싶지 않았어.
“엄마! 지금 톰 소여가 죽을지도 몰라요. 다 읽고 가야 돼요.”
부득부득 책을 다 읽고 안방에 가보면 동생들이 밥을 다 먹어서 이미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었지. 그래도 나도 슬퍼하지 않았어. 왜? 책은 마음의 양식이고 지혜의 양식이기 때문이야. 밥은 못 먹었어도 지혜를 가득 채웠다는 생각 때문이지. 몸의 양식은 먹으면 몇 시간 뒤에 또 먹어야 돼. 하지만 마음의 양식은 한 번 먹으면 평생 동안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기쁨과 지혜를 준단다. 이러한 마음의 양식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어.
책을 싫어하는 민지야. 책을 싫어하는 건 네가 지혜로워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란다. 다만 책을 읽는 훈련이 안 되었을 뿐이야. 텔레비전이나 게임은 내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눈앞에 그림이 펼쳐지지. 하지만 책은 달라. 내 스스로 읽으려고 애를 쓰고 노력을 해야 해. 한 줄씩 읽어서 스스로 머릿속에서 상상을 하고 그림을 그려야만 그 글이 이해가 된단다. 이런 과정이 요즘 어린이들에겐 너무 불편하고 힘든 일일 수 있어. 스마트폰에 더 익숙하고 게임도 즐거운데, 고통스럽게 앉아서 책을 읽어야 하다니.
하지만 고통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끈기를 기르는 삶의 태도가 있어야만 어른이 되었을 때 뭔가를 이루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훈련이 된단다. 생각해 보면 독서는 지혜를 줄 뿐 아니라 나를 끈기 있고,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훈련이고 연습이자 예습이지.
그러니 민지야. 책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도서관에 한번 가보지 않겠니? 수없이 많은 지혜가 있고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들려 주는 재미난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도록 하자꾸나. 물론 책 할아버지의 도서관에서 할아버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도 들으면 더욱 좋겠지? 그럼 또 만나자꾸나. 안녕



고정욱
성균관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문학박사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1급 지체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지만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고, 최근에는 장애인을 소재로 한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일기』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가방 들어주는 아이』는 MBC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도서가 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까칠한 재석이가 사라졌다』를 발간해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저서 가운데 25권이나 인세 나눔을 실천한 그는 210여 권의 저서를 350만 부 이상 발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과 이달의 나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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