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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함께 [사서샘의 테마수필] 재능기부와 참고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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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3 15:10 조회 6,91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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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숙 동두천 송내중앙중 사서. 수필가

재능기부의 기회가 이따금씩 찾아온다. 그때마다 재능을 땅에 묻어두지 않고 사용하는 쪽을 택한다. 경기도 학교도서관 DLS서평단으로 위촉돼 매월 테마 서평을 써온지도 3년째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올해는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좋은 책을 발견하고 추천하는 일이 사서의 일이며 사서의 전문성과도 연결된다. 깊이 있는 참고봉사도 전문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참고봉사의 연장선에서 재능기부를 생각하니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도서관 안에서의 참고봉사가 일상 속으로 확장돼 해석된다.

4년차 사서로 일하면서 두 번째 재능기부 기회가 왔다. 재능기부자가 없어서 사서 부스가 없어질 수 있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사서 부스를 맡아야 했다. 사서의 존재감을 지켜내야만 하는 사명감마저 생겼다. 뜻을 같이한 사서 샘 셋이 이 일로 퇴근 후에 만났다. 수많은 직업과 직종 중에서 사서가 선택된 게 어디냐고 생각하면서.

2013년 9월의 첫째 토요일 오후 동두천 시민회관에서 ‘제2회 동두천시 청소년진로체험박람회’가 열렸다. 한수이북에서 청소년 대상 진로체험 박람회는 최초라 한다. ‘내일에 거는 희망’이 주제다. 부모가 자녀에게 희망하는 안정적인 직업으로서의 공무원과 교사가 아이들 모두의 꿈이 돼선 안 된다. 정규직이 꿈이라는 대답도 있다. 아이들에게 직업 탐색의 기회를 주고 내 꿈 찾기의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봉사시간 준다고 해서 찾아왔지만 박람회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뭔가 띄엄띄엄이라도 읽고 느낄 것이다. 스탬프 5개 찍으러 다니면서 보고 듣는 게 있을 것이다. 2,000명 중에 몇 명이라도 진로 발견의 기회로 자리매김 되길 기대하면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최고가 되지 못하면 최초가 되라는 말이 있다. 기존 직업에서 최고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겠고 또 다른 직종을 만들어 최초가 되기도 할 것이다. 진로체험 박람회는 이런 저런 가능성의 장이다. 꿈의 틀이 꿈틀거리고 내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는 기회의 장이다. 작년에 어떤 여학생이 학교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다가 우연히 청소년 진로체험 박람회에 왔다가 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아 지금은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미용사의 재능기부가 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가출했던 아이가 사서의 꿈을 가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서가 되겠다는 그 아이 꿈을 지켜주고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재능기부와 참고봉사가 더 좋은 상황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기원하면서 뛴다. 올해는 어떤 아이가 어떻게 경험담을 들려줄 지 궁금하다.

45개 직업 부스가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자기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스 안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몰입하면 빠르게 느껴진다. 재능계발을 위해 다니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참고봉사로 다가가고, 내 재능이 필요한 곳엔 재능을 기부하면 된다. 청바지에 회색티를 맞춰 입고 ‘나는 사서다’ 목걸이를 걸었다.

연봉이 얼마냐는 등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질문에 대한 긴장감보다는 왠지 기대가 컸다. 그 어떤 질문이라도 답을 하려 했다. 아이들의 진로 고민이 질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서도 사서 나름이고 연봉도 그에 따라 천차만별이니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문헌정보과를 가고 싶다는 여중생이 월급이 얼마냐고 묻는 게 아니라 월급 자체를 받느냐고 물었다. 사서인 우리를 자원봉사자로 여겼나 보다.



문헌정보학과를 가서 사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나처럼 국문학을 전공했을 경우 사서교육원을 다니면 된다. 국문학을 전공했기에 도서실에서 인문학적인 접근과 함께 참고봉사의 여지가 많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활동과 진로상담에 집중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거리감을 두고 우리 부스를 바라봤다. 행사장에 들어서면 사서 부스가 눈에 띈다. 중앙에 작은 도서관 하나와 사서 샘 셋이 보인다. 풍선 장식과 함께 우드락을 이용해 사서와 도서관을 소개했다. 어떻게 하면 사서가 될 수 있고 어떤 도서관이 있는지 게시했다. 영상으로도 보여주면서 동기부여를 했다. 사서 정보를 담은 책 만들기 체험을 거친 후 띠 라벨 붙이기를 했다. 사서와 도서관에 관련된 도서도 별도로 전시했다. 책갈피와 투명 파일을 선물로 주고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를 물었다. 중학생이 거의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포스트잇을 주면서 자기 학교 사서 샘에게 한마디 써서 붙이라 했다.

작년엔 천여 명이 참여했는데 사서 샘 혼자 감당하기 벅찼겠다. 그나마 그 샘이 부스를 지켰고 반응이 좋았기에 기회가 넘어올 수 있었다. 혼자가 아닌 세 명의 사서 샘이 호흡을 맞춰 사서 이미지를 만들기까지 자원하는 물밑 수고가 있었다. 서로 잘하는 부분을 맡다 보니 재능의 재발견을 통해 재능기부자들의 유대관계도 깊어진다. 이메일과 카톡으로 밑그림을 그려가면서 완성도를 높인다. 적은 비용으로 질 높은 행사를 도서실에서 치르다 보니 재능기부에도 순발력이 드러난다. 참고봉사도 이동도서관처럼 움직이면서 동선을 그린다. 재능기부가 참고봉사의 영역처럼 다가올 때 거부감이 없다.

다른 부스보다 화려하게 꾸며진 채 중앙에 위치했는데 정작 아이들이 외면하는 부스라면 어떡하나. 사서나 사서 직종이 아이들의 관심권 안에 얼마나 있을지도 궁금했다. 관계자들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부스마다 탐색하는데 우리 부스만 썰렁하면 어쩌나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괜한 걱정이란 건 뚜껑을 열어보면 안다.



제빵사와 바리스타, 미용사 쪽에 몰릴 것 같다는 추측과 함께 뚜껑이 열렸다. 반전은 아이들이 우리 쪽으로 무리 지어 왔다. 그중에는 우리 학교 아이들도 있다. 먼저 아는 체 하며 다가오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립서비스 해도 별 반응이 없는 아이도 있다. 사서 샘에게 한마디 써서 붙이라 했더니 장난기 많은 성민이는 내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학교 밖에서 만나는 사복 입은 아이들이 낯설면서 새롭다.

아이 손을 잡고 온 엄마도 진로 체험을 한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서 반겨 주길 바라던 아이가 어느 날 엄마는 왜 직장 안 나가냐고 물은 모양이다. 아이가 아닌 엄마 자신이 사서가 되고 싶단다. 서른아홉의 내가 보였다. 어린이집 종일반에 아들을 보내고 성대 사서교육원을 다녔었다. 십대의 진로체험은 서른, 마흔에도 계속된다.

시립도서관에서 KDC를 빌렸다가 되돌려주는 사서 샘에게 사서직 공무원이 한마디 한 모양이다. 평소 언니 동생 부르는 사이를 감안해서 들어도 씁쓸하다. 재능 기부하는 그 시간에 차라리 공무원 시험 준비해 정규직이 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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