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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잡이 길잡이 아이들을 보내며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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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6 23:17 조회 7,1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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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3학년 아이들만 체험학습을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교육복지실이 텅 빈 것 같지요. 1, 2학년 아이들이 오긴 하지만 3년 내내 정이 든 아이들이 없으니 마음이 허전합니다. 아마 이 아이들이 졸업을 하고 나면 더 그런 기분이 들겠죠? 매년 졸업을 시키는데 이번 아이들은 1학년 때부터 봐서 그런지 더 정이 많이 갑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우리 아이들이 갈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 중 대부분은 중학교 때가 좋았다고 하거나 더 이상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투덜거리거든요. 이런 경우 고등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님께서 많이 신경을 못 써주시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알고, 아이가 읽은 책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해주신다면 학교가 조금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이 글에 나오는 모든 학생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진혁이가 갈 인문계고등학교 선생님께!
공부도 해 본 적 없고, 학교는 오고 싶은 시간에 오고, 교복을 제대로 입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없이 예쁜 아이입니다. 저와 같이 선뜻 가정방문도 나서주고, 가출한 친구를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라고 직접 설득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일 아버지가 다른 동생을 어린이집에서 찾아오는 일도 합니다. 가끔 제 고민 상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 동안 새아버지 때문에 가출도 해볼 만큼 해보고, 친엄마가 미워서 말썽도 부릴 만큼 부려보았습니다. 잘살고 싶은 꿈도 생긴 아이입니다. 함께 대화를 해보시면 그렇게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해본 적이 없어서 수업 시간에 계속 엎드려 잘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진혁이가 할 수 있는 숙제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도 기초가 없어서 고등학교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그냥 자게 놔두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참 힘들게 돌아온 아이입니다. 대학은 꿈조차 꾸지 않은 아이라 성적이 나쁘지만 이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그리고 너무 노는(?) 아이들과는 좀 떨어져 있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인문계를 선택하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1학기, 장기 가출을 끝마치고, 버스를 타고 2시간이나 걸리는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학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습니다.

얼마 전에 새아버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상황이 좋아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진혁이는 이제 잘할 자신이 있다고 했습니다. 쉼터에서, 학교에서 좋은 어른들을 많이 만났고, 자신도 많이 건강해졌다고 했습니다. 새아버지가 때려도 욱하는 성격을 죽일 수 있고, 때릴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참 살가운 아이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나 친구들의 이야기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 놓습니다. 좀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너무 아쉬운 아이입니다. 믿는 만큼 크는 아이이기도 합니다. 한 번 웃어주시면 한 발짝 다가오는 아이입니다. 제발 그렇고 그런 아이(사실 그런 아이는 없지만)로 보지 말아주세요. 한 번만 불러서 웃어주시고 격려해주시길 빕니다.



미진이와 소희가 갈 특성화고등학교 선생님께!
미진이는 손재주가 많은 아이입니다. 졸졸 쫓아다니며 선생님을 챙겨주는 것도 좋아하는 예쁜 딸 같은 아이입니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친구도,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도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합니다. ‘내가 네 옆에 있을 거고, 널 잊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가끔 해주면 좋을 아이입니다. 예쁘고 능력이 많은 아이인데 자존감이 많이 부족합니다. 공부를 하면 될 것 같은데, 머리도 나쁘지 않은데 미진이 말로는 4학년 이후로 공부는 손을 놓았다고 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할아버지 집을 나오면서 미진이의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부갈등이 심했던 엄마는 할아버지 집을 나오면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신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여기저기 일을 하느라 바쁘셨고, 형제가 없었던 미진이는 방과 후에 혼자 지내는 날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에서 얼굴이 예쁜 미진이를 남자 아이들이 심하게 쫓아다녀 심하게 왕따도 당해보고, 고생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소희도 손재주가 많은 아이입니다. 미진이와는 반대로 씩씩해 보이는 아이입니다. 오히려 좀 차가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5년 전,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정말 씩씩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제게 엄마가 집을 나간 날 자기도 따라 나가지 못한 그날을 가장 후회한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긴 세월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 이야기를 제게 하던 날, 소희의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여자가 되어가고 있는 아이에게 그렇게 엄마가 얼마나 필요한지 몰랐습니다. 잘 있다고 해서 그냥 넘기지 마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꼭 더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엄마 같은 분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주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제법 반찬거리 이야기가 잘 통하는 아이입니다. 미진이가 소희네 집에 자주 가는데 그런 날이면 소희가 과자도 구워주고, 볶음밥도 만들어준다며 제게 자랑했습니다. 그렇게 이 두 아이들이 엄마의 빈자리를채워가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참, 소희는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직접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며 특성화고등학교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사실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인 아이입니다. 글쓰기 대회가 있으면 참가시켜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너무나 현실적인 아이입니다.





기홍이가 갈 자율형사립고 선생님께!
기홍이의 합격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좋아서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기홍이가 붙었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공부 못하는 애가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겠냐며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 너무 좋아서 며칠만 더 좋아하려고 합니다. 사실 기홍이가 특성화고등학교에 떨어지고, 인문계고등학교도 붙을 수 없는 형편없는 성적이라서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저 역시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기홍이는 특성화고등학교에 떨어지고 정말 세상을 다 산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기홍이는 웃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 아이인지 모릅니다. 그 웃는 모습이 예뻐서 실없는 농담까지 건네곤 했거든요. 학교에서 본 우리 기홍이의 평상시 모습은 항상 우울했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공부로 돌아오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가르쳐보면 머리가 좋은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초 상식이 전혀 없다는 것도 같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기홍이는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을 들락거리는 엄마와 지방 트럭운전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와 군대에 간 형이랑 살고 있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간 날 밤이면 항상 혼자 지내야했습니다. 밥이라고는 학교에서 급식 먹는 것이 하루의 식사량 전부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아직 기홍이를 특성화고등학교에 보내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기홍이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는 아입니다. 혼을 내시기보다는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를 해주세요. 잘 알아듣습니다. 위협 상황이 되면 받아들이거나 부딪히기보다는 피하는 성향의 아이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은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일을 잘 못합니다. 가끔 엄마 입원한 병원에 가느라 학교를 빠지는데 제발 고등학교 때는 그런 일이 없게 되길 빕니다. 한 번 그렇게 빠지기 시작하면 바로 며칠을 빠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반 친구들이 뭐라고 지적하고… 다시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기를 빕니다. 우리 기홍이는 남자인데도 참 예쁘게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자 아이들이 좀 못살게 굴기도 합니다. 그런 것도 잘 봐주세요! 기홍이가 좋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피하지 말고 부딪혀 이기는 법을 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울성향도 있습니다. 우울증세가 심해지면 제게 연락주세요! 정말 거듭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말씀대로 이렇게 공부 못하는 아이를 ‘사회적배려대상자’라서 성적에 관계없이 보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저처럼 우리 기홍이의 웃는 모습을 보시면 마음이 바뀌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 아버지는 야간 운전을 하시기 때문에 아침에 주무시고 오후에 나가십니다. 그래서 전화를 하실 일이 있으시면 저녁에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오전에 전화했는데 그게 아버지의 잠을 깨웠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성희가 갈 기숙대안학교 선생님께!
별로 웃는 일이 없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주변의 눈치 보지 않고 아니라고 이야기할 아이입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에게 잘난 체한다고 미움을 받기도 하고, 따돌림을 당해보기도 했습니다. 무엇을 도와주어도 고맙다고 한다거나 자신이 도움을 주어도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을 무척이나 쑥스러워합니다. 그러면서 청소할 때는 살짝 게으름을 부리기도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도 많고요.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는 그게 아니라도 강한 어투로 강요하기도 합니다. 대안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친구들을 많이 보셔서 저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해주시고 잘 대해주시겠지요. 그런데 자꾸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리 성희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평범한 아이들의 몇 배를 노력해야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와 비교해서 정말 많이 변한 것이 이 정도입니다. 성희는 교사가 부탁하는 것을 잘하는데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서 누구보다도 심적 부담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 조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잘 설명해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하는 아이는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의 지식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속에 넣어두려고 노력하는 아이입니다.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 선생님이 노력하셨는데 부정적 평가만 이야기하여 속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진심은 통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는 성희도 알고 있습니다. 꼭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성희에게 혼자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관계에 누구보다도 에너지를 많이 써야하는 아이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긴장하지 않고 지낼 시간을 주셔야 합니다.

이제까지 이런 스트레스들이 쌓여 과호흡증이라는 병을 만들었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니 다른 건강은 걱정 없는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생각을 하니 이 병이 여전히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조별 모임을 하는데도 잘하고 좋아하긴 하는데 성희가 과하게 감정을 쓰지 않도록 개입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또 성희는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책을 워낙 많이 읽는 아이이니 성희가 있는 책 중 한두 권 정도는 읽고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많은 부탁을 드려서 미안합니다. 성희는 분명 맞는 교사가 있다면 최고의 학생이 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교사가 있다면 마냥 부담스러운 학생이 될 것입니다. 매일 보는 성희를 더 키워서 보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학교생활을 하며 많이 속상함을 느낀 아이입니다. 그래서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했을 때 도와주었고, 합격했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3년, 길지 않은 기간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성희가 자신을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편지를 쓰고 나서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읽은 책 5권만 목록을 보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나와 읽은 책도 있지만 중학교 생활 중에 재미있게 읽은 책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로 책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이제는 마음이 잘 통해서 즐겁기도 했지만, 학교에서 보는 것은 이제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우리’가 된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에 (내가 고등학교에 보낸 것도 아닌데) 뿌듯하고 대견했습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이 매일 매일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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