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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모순과 분열을 끌어안은 아름다움 시인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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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03 17:30 조회 8,9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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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고독을 일궈시에 닿다
박성우 간만이네요. 형.
손택수 응. 잘 지냈는가. 귀한 시간 빼줘서 고맙네.
박성우 미안해요 형. 6월말에 시집 냈는데, 이제야 얼굴트네요. 우선 사인부터 좀 해줘요. 『나무의 수사학』 반응 좋지?

손택수 (정성껏 사인을 하며) 그게, 7월 중순에야 나왔어. 평론하는 손모 형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6월 30일까지는 해설 원고를 넘겨준다고 했는데 못쓰겠다고 약속을 어기데. 할 수 없이 판권은 6월 30일로 해놓고 다른 해설자를 찾다가 늦어지게 된 거지. 사람들이 덕담을 해주긴 하는데, 워낙에 시집을 읽지 않는 시절이라 그런지 반응은 그냥 그래.
박성우 무슨 소리. 내 주위에선 다들 좋아하던데. 시집 내고 많이 바빴을 것 같은데? 실천문학사 주간 일도 그럴테고요.

손택수 별로 그런 일도 없어. 우리가 워낙 기질적으로 자폐적인 인간형들이 아니던가. 사람 많은 데 가면 그냥 피곤하기만 하고 그렇지 뭐. 그래도 숨어서 술은 좀 먹었지. 밤새 술동이 안고 자다 출근이 늦을 때도 많았고. 아마 일반 회사 같으면 잘려도 수십 번 잘렸겠지. 그나마 실천문학사나 되니까 나 같은 못난 위인을 안고 가는 거겠지.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들어.
박성우 형이 서울생활 한지는 얼마나 되었지? 아마 꽤 되지요? 서울생활 적응기 좀 들려줘요.

손택수 벌써 6년이 지났네. 삼십대 중반에 결혼을 하면서 올라와 마흔을 넘었으니. 30년 가까이 산 부산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어. 문학 때문에 서울 올라올 이유는 전혀없었어. 문학이야 어차피 변방에 있을수록 더 잘 되는 거니까 긴장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이런 촌놈 의식이 있었거든. 서울 올라온 건 순전히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었지. 처음엔 학원 강사도 하고 여기저기 대학들 보따리 장사 하고 다니고 그랬어. 일산에 짐을 풀었을 때가 기억나는군. 사람들이 호수공원을 야단스럽게 얘기 하길래 어떤 곳인가 하고 가봤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생각해 봐, 남태평양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살던 사람에게 논 위에 만든 인공호수가 성이 찼겠나?
박성우 천연호수인들 성이 찾을까.

손택수 나무들은 약발로 겨우 뿌리를 내리고 있었고, 물도 약품 처리를 하지 않으면 비릿한 악취를 풍기더군. 그런데 사람들이 그 냄새를 못 맡는 거야. 개탄스럽더군. 이게 서울식 삶인가 싶더군.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는 다른 생각이 들었어. 여기에 이만한 여백이라도 없으면 얼마나 더 팍팍할 것인가. 그거라도 지키면서 삶을 견디는 이들이 짠하게 다가오더군. 그렇게 나도 동화가 되어간 거 같아. 그러면서도 약품 처리를 하는 물과 약발로 푸른 나무들을 잊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 잡았어. 시인은 어차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공과는 얼마쯤 불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박성우 매일 같이 일찍 규칙적으로 출근하고 야근하고 출장 다니면서 대체 시는 언제 써요? 원래 시 쓰는 사람들이 얽매이고 그러는 거 오래 못 버티잖아요. 형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손택수 시인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일상 속에 만들 줄아는 특별하고 독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지. 고독하지 않곤 시에 닿을 수가 없거든. 우리의 일상은 고독을 방해하고, 고독해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좀처럼 허락하질 않지. 강태공이 찌를 응시하듯이, 찌를 통해 온 호수의 기운을 다 감지하듯이 잠자코 가만히, 골똘하게 뭔가를 뚫어져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는 것은 거의 전쟁과 같아. 약간 엄살이긴 하지만, 누군가 그러더군. 시인은 엄살을 대신 떨어주는 사람이라고(웃음).



민중서사적시, 치열함 끌어안은 시인
박성우 『나무의 수사학』얘기 좀 할까요? 『호랑이 발자국』,이 2003년 초에 나왔고 『목련 전차』가 2006년 6월,그러니까 세 번째 시집인 이번 『나무의 수사학』이 4년만이죠? 그러고 보니 앞에 두 시집은 부산에 있을 때 나왔고, 이 시집은 서울생활 하면서 나왔는데, 감회가 좀 다를 것 같아요.

손택수 서울살이 하면서 마흔 넘어서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 주변에서 유혹도 있었지. 시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시인으로선 죽음체험과 같은 거지. 그런 과정 끝에 나온 시집이니 성과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울컥, 한 데가 있지. 2년 동안 부순서를 바꾸는 데 서른 번쯤 뒤집기를 반복했고, 60편쯤 발표작들을 버린 뒤에 새로 10편을 썼지. 그리고 실린 작품들 중 거의 절반 이상 퇴고를 새로 했어. 왜 로트렉 같은 화가는 전시회장에서도 자신의 그림 앞에 앉아 덧칠을 했다지 않던가. 물론 그렇게 조몰락거리다가 더 망가진 것들도 있지만. 그러고 나서도 마음에 차지 않아 1년 쯤 더 묵혀볼까도 싶었는데 여기서 그만 정리를 해야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바닥을 쳤다는 느낌이야.

박성우 그렇게 애정을 갖고 퇴고를 하니 형의 시는 사랑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첫 시집 『호랑이 발자국』이세상에 나오면서부터 형은 ‘민중서사적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데요. 저 역시 그 말에 동감하구요. 아마 독자들도 동감하지 않을까 싶어요. 첫 시집을 낼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기억을 좀 더듬어 주시죠.



손택수 이시영 시인께서 붙여준 꼬리표야. ‘민중서사적시인’이라는 말 중에 서사는 소설을 썼던 경험하고 닿아있는 거 같아. 어릴 때 시는 좀 가벼워 보이더라고(멋쩍게 웃음), 짧아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거 같았어. 아무생각 없이 누구나 카메라 셔터를 누르듯이 말이야. 그때는 잉크 한 방울로 온 바다를 물들이겠다는 도저한 꿈을 이해하지 못했지. 거기에 비해 소설은 일단 길이 부터가 기니까 아무나 달라붙지 않아서 좋더군. 그래서 고등학교 다닐 때는 혼자서 소설 습작을 꽤나 했지. 고3 땐가 전상국 선생께 처음 쓴 소설을 보여줬더니, 단칼에 이건 소설이 아니야 그러시더군. 그때 나는 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얼굴표정 압권) 그러고 나서도 유재용 선생 같은 분의 강의를 들었어. 현대문학이 양재동에 있을 땐데 부산에서 거기까지 수업 빼먹고 들으러 가곤 했지. 아마 그런 경험이 시에 서사성을 심어준 게 아닌가 싶어. 물론 그 서사성은 단순한 이야기 요소가 아니라 오랫동안 유전되어 온 공동체의 기억과 관련되지. 첫 시집 제목이 『호랑이 발자국』인 것도 잃어버린 농경문화적 공동체에 대한 기억 그리고 설화적 시간에 대한 회복의지 같은 걸 배경에 깔고 있기 때문이지.
박성우 그래서 자연스럽게 ‘민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온 게 아닌가 싶군요. 여기에 80년대 문학의 세례도 빼놓을 수 없겠죠?



손택수 80년대 리얼리즘시의 주요한 미학 가운데 하나가 ‘이야기시론’ 아닌가. 신경림, 최두석 이런 시인들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이런 미학이 90년대 접어들면서 낡은 것으로 낙인찍힌 감이 없지 않아. 시인들은 미학적 자율성과 개인의 가치, 거대담론에 의해 타자화 되어 있던 감각들의 귀환 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기 시작했지. 환상, 생태, 여성, 하위문화, 이런 타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치 하에 들끓고 있었지.

나는 변화된 문학장의 분위기 속에서 좀 더 낡은 방향을 선택했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내 기질 상 딱 질색이었거든. 좀 더 낡아서 아예 묵은 상태로 발효되어 버리자,이런 고집을 부리다 보니 청탁 받기도 어려웠고, 또 시집 낼만한 곳도 찾기가 어려웠지. 첫 시집도 투고를 한지 3년을 기다려서 나왔어. 이렇게 까지 해서 시집을 내야 하나, 자괴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긴 고통의 시간들 속에서 오히려 숙성이 되었다는 느낌이야.
박성우 요새 시집내면 대부분 초판 나가기도 힘든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호랑이 발자국』은 이미 10쇄를 넘겼고, 『목련전차』도 8쇄를 넘겼어요. 대중적인 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손택수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도와줘서 그렇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추천도 해주고 그래서 그 정도 된 거야. 특히 첫 시집은 이창동 감독이 장관으로 있을 때 문화관광부 직원들하고 노 대통령께 추천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지. 꿈인가 생신가 싶더군.
박성우 원래 좋은 거는 나누는 법이니까요. 요새는 연작시가 잘 안 나오는 것 같은데 요번 시집 『나무의 수사학』에는 「나무의 수사학」 시편이 6편이나 되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

손택수 요즘 시인들이 연작시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써보는 거지. 매사가 그래. 남이 하지 않는 걸 하자! 성우도 아무도 하지 않는 성장시를 썼잖아. 모두가 성장소설만 떠드는 판에 성우가 있어서 청소년 문학의 장르 불균형이 상징적으로나마 균형을 찾은 거 아닌가. 요즘 우리또래들 중에 서사시 쓰는 사람 없잖아. 나는 그쪽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해.
박성우 형이 서사시를 쓰면 왠지 잘 쓸 것 같아. 이번에 낸 시집 읽어보니까. 지난 시집에서 보여줬던 시와는 좀 다른 도시적인 시편들이 많은 것 같은데, 역시 수도권생활을 직접 체험해보고 거기에 시적상상력을 덧붙인 거겠죠?

손택수 장자 ‘천지편’에 이런 얘기가 있어. 한 마을에 노인이 채소밭에 물을 주는데, 물동이를 안고 웅덩이 안으로 들어가서 힘들게 물을 길어 올리고 있었거든. 자공이 그걸 보고 딱하다는 듯이 용두레라는 기계가 있음을 알려주지. 용두레가 아마 양수기 비슷한 거였나 봐.
박성우 양수기랑 비슷한 건 아니고 비슷한 기능을 하지. 김제 김유석 형이 농사짓는데 가면 전시용이긴 하지만 지금도 볼 수 있고요.

손택수 그러니까 듣고 있던 노인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쉽고 능률적인 것만을 쫓아가다 보면 마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오. 기계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운용하는 기사가 있고, 기사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재주를 부리는 기교로운 기심이 있기 마련이오. 그러면 도를 지키기 어렵소. 내가 용두레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로 마음이 부끄러워 쓸 수 없을 뿐이오.” 우리 시대 문명을 진단할 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얘기지. 물을 길어 나르면서 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생명들을 생각하는 노인의 관점이 내게는 ‘오래된 미래’ 같은 거야. 내가 내 자신이 되는 순간이란 그렇게 순결한 노동을 통해서 몸과 대지와 우주가 딱 하나가 되었을 때지. 근본적으로 나는 그 노인의 손자야. 이번 시집의 3부, 그중에서도 「물통」 같은 시가 그 영향권 하에 있다고 할 수 있겠군. 그렇다고 해서 자공의 관점을 아주 내버릴 수는 없지.

자공의 기심을 떠나서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우리 아닌가. 그러니까 내경우는 노인과 자공 사이에 기우뚱하게 걸쳐져 있다고 할 수 있겠네. 그건 심각한 모순이지. 나는 그 모순을 아름다운 모순으로 만들고 싶어. 그것이 모순이고 분열이라면 그 모순과 분열까지 다 끌어안으면서 살아내고 싶어. 이번 시집의 도시 공간은 그렇게 이해해주면 고맙겠네. 나는 문명적 조건에 대한 긍정과 부정 보단, 그 간극을 인식하면서 기록한 천지편의 제삼의 눈에 더 근친이야. 그것이 내 시 속에서 알뜰히 육화되고 있는가에 대해선 자신이 없지만 말이야.



육화된 언어의 진정성으로
박성우 형의 시가 사랑 받는 이유는 다른 취향의 시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시’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또한, 어떤 진지함이나 진정성 혹은 사람얘기 해주는 거 아닌가요?

손택수 ‘좋은 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다양해서 뭐가 좋은시인지 헷갈릴 때가 많지. “묵죽을 그리는 데는 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법이 따로 없는 것도 아니다.” 추사의 말을 보면 결국 좋은 묵죽은 자신만의 방식에서 나온다는 건데, 그 말은 곧 ‘자신의 호흡으로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데서 좋은 시가 나온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지. 언어가 자신의 몸과 시대를 관통해야 해. 언어에 숨결과 고유한 체취가 묻어나야 해. 그게 진정한 육화아니겠어? 나는 그런 시와 사람들이 좋더라. 내가 그런 줄은 잘 모르겠고.

박성우 저는 솔직히 좀 촌스러운 듯한 시들이 좋은 것 같아요 형. 너무 세련되면 좀 그래.
손택수 자신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배신하는 즐거움이 시인에겐 있지. 촌스러움은 내용이고, 세련됨은 형식일텐데, 촌놈이 아무리 세련되어 봤자 그 속에 있는 근성을 감출 수는 없을거야.

박성우 형의 시를 읽다보면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져요. 바로 구체성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알 듯 모를 듯한 그야말로 애매모호한 시를 읽다가 형의 시를 읽으면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들이 참 선명하게 그려지곤 하는데요.
손택수 왜 애매성에 대한 유혹이 나라고 없겠어. 김수영식으로 말하자면,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나가는 게 시인이라고 할 때, 무의식과 우연성, 어떤 의미의 덧칠도 가지 않은 무의미야말로 시의 곡창지대라고 할 수 있겠지.

문제는 그게 내 체질이 아니라는 거지. 나는 언어를 도구로 한 예술가이면서 그 언어를 가장 의심하는 존재거든. 프리즘의 현란한 굴절보단 햇빛을 모아서 한순간에 먹지를 뚫는 돋보기가 내 체질에 가까워. 시를 한 편 쓰면 제일 먼저 아내에게 보여주고, 그 다음엔 문학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에 보여주는 버릇이 있네. 그들이 별로라고 하면 굉장히 상처를 받지. 내 시들 중에 평론가들이 좋아하는 시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야.

박성우 제가 서울에 왔을 때, 그러니까 제가 서울에 좀 눌러서 살아보려 한다고 했을 때 저를 제일 처음 불러내서, 엄청 비싼 회도 사주고 소주도 사주고 했잖아요? 아마, 그때 형의 밥벌이도 시원치 않았을 텐데?
손택수 김관식은 시골서 올라온 신경림, 조태일한테 자신의 방을 내줬다 하더라. 월급날 되거나 원고료 타면 후배들하고 한 잔씩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런 풍류도 드물게 되었어.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대단히 선량한 시인인 줄 알겠다.



박성우 그때 또 이런 얘기도 했었어요. 벌써 서울촌놈 같이 술 마신다고 뭐라고 했었죠? 저는 솔직히 지하철도 잘 못타고 길 잃어버릴까봐서 조심스러웠던 것뿐인데, 제가 그때 삐질까 하다가 형이니깐 안 삐졌다니까요.
손택수 그랬군. 하긴 처음에 나도 그랬는데.

박성우 그리고 형은 같이 술 먹고 나면 술값이야 형이니까 낸다고 치고. 나한테, 꼭 택시 잡아 주고 또 택시비를 쥐어주는데……. 고맙긴 하지만 너무 촌티를 내는 거 아니야? 저야 솔직히 눈물겹고 감동적이지만. 그래서 형은 형인가 봐.
손택수 술 취해서 기억이 안나(이래서 예술가는 거짓말을 잘한다고 함).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짓이니 편히 생각해.

잃음, 시쓰기로 이끌다
박성우 참, 이런 대담하면 꼭 빠지지 않는 질문 있잖아요.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뭐죠? 이러니까 좀 대담을 하는 것 같네. 형, 그거 좀 얘기해 줘요. 네.

손택수 참, 국어 선생님한테 첫사랑 얘기해달라는 여고생 같네. 유년시절에 고향을 잃었고, 한참 성장기엔 사랑에 실패하고, 이십 대는 실패의 연속이었지. 실향과 실연 그리고 실패, 이것들이 시를 쓰게 한 거야. 뭐라도 끄적거려야 견딜 수 있었던 시절이었거든. 자꾸 끄적거리다 보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이 좀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바라봐지잖아.
박성우 저는 형의 시를 무척 좋아하고 자랑질도 많이 하지만, 형이 2006년에 낸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이책을 너무 좋아해요. 이 책에 관한 얘기 좀 해줘요. 이 책이 교과서에 실린 걸로 알고 있는데.

손택수 「말미잘은 말똥구멍」이란 꼭지가 모 출판사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그러대. 원래부터 청소년용으로 기획한 원고라 그럴 거야. 출판 기획일 하던 장철문 시인(지금은 순천대 문창과에 있지)이 한참 빈둥거리고 있을 때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리라이팅 해보라고 그러더군. 놀고 있는 주제에 가릴 형편은 아니었지만 『목민심서』가 괜히 딱딱한 인상을 주더군.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야. 그래서 얘기했지. 이왕이면 정약용의 형이 쓴 『자산어보』가 어떻겠느냐고? 남들이 안한 걸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이 양반이 대뜸 너 알아서 해봐라, 그러더라고. 속으로 식은땀이 흘렀지. 맡기는 맡았는데 실은 그때까지 나도 이름만 들어봤지 『자산어보』구경도 못해봤었거든.
박성우 글 구성이 좀 특이하던데요. 자산어보를 시적 상상력으로 풀어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한 그러한 형의시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어떻게 자산어보를 시로 풀어낼 생각을 하셨는지?
손택수 내가 시를 써서라기보다는 자산어보 자체가 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

나무를 여행하고, 하늘을 읽고
박성우 형, 참 『난 빨강』 어떻게 봤어? 내가 보내드린 것 같긴 한데. 청소년 시집이라는 얘기가 좀 어색하긴 하지?
손택수 시집 받고 충격이 컸지. 내가 먼저 하고 싶었던 작업이었거든. 실제로 <청소년문학>이라는 잡지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성장시 특집을 몇 차례 기획했었거든. 청소년문학의 장르 불균형이 지나치다는 얘기가 한참나올 때였으니까. 해서 이 특집들을 공부 삼아 내가 먼저 성장시들을 써봐야겠다, 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성우가 먼저 일을 저지르고 말았더군. 여간 원통한 게 아니었어.

박성우 청소년들 있잖아.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요. 요샌 오히려 배회하고 방황할 시간도 부족한 것 같고요. 그야말로 악몽이랄까? 형의 청소년기 시절 좀 얘기해줘요. 도서관 학교 집 이런 거 밖에 몰랐다 이런 얘기 빼고요.

손택수 콤플렉스 덩어리였지. 공부를 잘 하나, 운동을 잘 하나, 그렇다고 무슨 예능 기질이라도 있나. 내가 할 줄아는 건 그냥 혼자 있는 거였어.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요즘 말로는 ‘왕따’나 다름없었지, 물론 나는 ‘자발적 왕따’라고 우기지만 말이야. 그런데 혼자 지내다 보니까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데.

그게 그냥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는 거였고, 혼자서 뭘들여다보는 거였지. 그게 여행이 되고, 독서가 됐어. 여행이나 독서나 결국 같은 거잖아. 그러다 보니까 제도교육 속에서 받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게 된 거 같아. 요즘 학생들은 여행할 시간이 어딨고, 독서할 시간이 어딨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여행하고 독서가 별 게 아니에요. 나무를 여행하고 하늘을 읽고 이러는 거지. 그럼 가장 먼 여행지와 가장 재미난 책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돼.

박성우 일전에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서울 모여고에 있는 도서실에 가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뭐랄까. 전혀 딱딱하지 않고 발랄하고 자유롭고 하는 가운데, 정말이지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랄까.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런 사서선생님을 만난 아이들은 참 행복할 거란 생각도 들었어요. 형도 청소년 관련 잡지 편집위원을 하고 있잖아요.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독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가요?

손택수 우리나라에 수많은 추천도서들이 있잖아. 이거 어른들의 시선으로 고른 게 대부분이지. 물론 어른들의 시선이 다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어. 그 어른 안에도 잃어버린 아이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모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알려준 길 잘 닦인 길로만 가지않고 꺼칠꺼칠한 비포장도로나 풀숲에 묻혀버린 길,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 빙 둘러가야 하는 길, 이런 길들을 다녀볼 필요가 있어. 수많은 관광지들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발견한 풍경이 최고의 명소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해질녁에 아주 보잘 것 없는 나무 하나만 우두커니 서있던 도시의 어느 골목을 내가 발견한 진경산수라고 생각해. 책도 마찬가지지. 여기에 기준 역할을 하는 게 흔히 말하는 고전들이야. 고전을 읽다 보면 시공을 뛰어넘는 감식안 같은 게 생겨. 자기 식으로 책을 읽게 되는 거지. 체 게바라는 게릴라전을 펴는 전투 현장 한가운데서도 괴테 전집을 읽고, 네루다의 시집을 읽었지.


박성우 형도 청소년 관련 책들을 직접 만들고 기획도 하고 그러는데요,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애정이 있을 것 같아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같은 거 없나?
손택수 으음, 사랑하자고. 고통이 오면 고통도 사랑하고, 절망이 오면 절망도 사랑하고. 그런 것들이 다 부처고 스승이거든. 그때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지. 나는 최고의 거울이 책이라고 생각해.

아이들의 마음에 시가 닿도록
박성우 형, 예전에는 왜 청소년 시절에 시집 한 권씩 들고 다니지 않았나. 저는 누나가 셋이나 있어서 그런지, 누나들이 꼭 그런 시집을 들고 다녔던 것 같아. 시집 책갈피에 네잎 클로버랑 은행잎 단풍이 뭐 꽃잎 같은 것도 끼워 놓고 하면서 말이야. 형이 청소년기에 만났던 시집이나 시인 얘기 좀 해줘요.
손택수 내가 만난 첫 시집은 중학교 1학년 때 고물상 폐지더미 속에 버려져 있던 누군가의 필사본 시집이었어. 볼펜으로 또박또박 눌러 써서 복사를 한 거였지. 그 무명시인의 시가 내 출발점이야.

박성우 시인을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손택수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이과적인 인물이아니잖아. 인문 쪽에서 자연이나 생물하고 가장 가까운 게 문학이었어. 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고. 음- 기억나는 계기가 한 가지 있긴 해. 맹인들에게 책읽어주는 남자로 지낸 적이 있지. 그때 맹인학교 갓 졸업하고 안마시술소에 실습을 나온 영미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틈만 나면 책을 읽어달라고 했어. 내가 걔의 인조눈도 씻어주고 끼워주고 그랬거든. 그만큼 각별했지. 영미가 어느 날 그러더라고. 오빠는 자기에게만 책 읽어주는 남자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라고. 그래서 뒤늦게 스물다섯 나이에 국문과에 가고 어쩌다가 시를 쓰게 된 거지.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 영미가 만지는 점자 같은, 그런 간절한 말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이야.

박성우 형, 요새 청소년들이 제일 경멸하고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시잖아. 잘 알지? 다른 건 달달 외우거나 좀 이해하려 들면 이해도 쉽게 되는데, 시는 그게 좀 힘든 것 같아.
손택수 시처럼 논리적인 게 없어. 논리에 바탕 해서 논리를 초월하는 게 시니까 논술 잘 하려면 시를 봐야해. 재밌는 시도 얼마나 많은데.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시들이 많다는 얘기지. 접근할 루트들을 더 열어놓았으면 해.

시 교육에도 문제가 있어. 어떤 백일장 심사를 나가 보니까 한 학생은 자신이 쓴 시에 주제와 상징까지 적어놓았더군. 한국시교육이 지나치게 의미중심적이야. 주제가 뭐냐, 의미가 뭐냐? 이런 이성중심주의로 어떻게 몸과 우주와 사랑을 이해할 수 있겠어. 학교에 가서 물어보면 학생들은 이상이 좋다고 하거든, 그런데 선생님들은 난감해해. 이상을 의미중심주의로 풀고 들어갈수록 이상해지지. 애들이 그 많은 의미들을 다 이해하겠냐고. 몸으로 아는 거지. 그런 감수성을 길러줘야 하는데 자꾸 이성의 관점에서만 따지고 든단 말이야. 웃기는 시,의미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있는 시, 그림이 그려지는 시,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시. 으음 또,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시들을 접하다 보면 학생들도 변하지 않을까.



막연한 미래가 쓰는 시
박성우 형은 시 말고 다른 장르의 작업은 안하나요? 동시는 요새 안 쓰나? 형이 동시 쓰면 정말 좋은 동시집이 나올 것 같은데……
손택수 신춘문예 당선될 때 시하고 동시하고 같이 됐었지. 내게는 동시가 풀어야 할 숙제야. 성우는 그 숙제를 일찌감치 풀었으니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이제 나도 찬찬히 준비를 해야겠어.
박성우 청소년 시집이나 청소년 소설 같은 거는요?
손택수 때가 되면 성장소설을 한 번은 쓸 생각이야. 부산을 무대로 해서.

박성우 형 요새 듣자 하니까 음악에도 심취해 있다며?
손택수 엉? 음악이라니.....(잠시 골똘해지더니 눈을 반짝이며) 아하! 오디오 말이군? 내 자전거 이름이 오디오야. 집사람이 오디오를 사고 싶다고 그랬는데 그 돈으로 내가 출퇴근용 자전거를 사버렸지. 그러고 나서 이름을 오디오로 붙여준 거야. 응, 일주일에 이틀 정도 오디오를 타고 출퇴근을 하지. 한강변 따라 망원역에서 고양시까지 느긋하게 가면 1시간 20분쯤 걸려. 가다 보면 새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가 매일같이 새로운 음역을 들려주지. 자전거 바퀴가 요즘 내겐 턴테이블이야. 분에 넘치는 호사지.
박성우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겠다던가. 계획 같은 걸 좀 듣고 싶은데요.

손택수 한 편의 시도 어떻게 될 줄 모르는데 어떻게 시를 설계할 수 있겠어. 그냥 쓰는 거지 뭐. 안으로 좀 더 깊어지고 넓어지다 보면 저절로 변화의 징후들이 포착되겠지. 의식적으로 프로그램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러다가 실패한 시인들을 수없이 봐왔으니까. 좀 더 읽고, 배우고 그럴 셈이네. 막연한 미래가 우리에겐 힘이야. 시는 어쩌면 우연성과 무의식의 바다 위에 말안장처럼 뗏목을 하나 띄워놓고 있는지도 몰라. 뗏목을 젓는 건 내노이지만, 젓는 노에 저항과 순응을 거듭하며 일렁이는 건 바다지. 바다의 일렁임이 근육신경을 따라와서 몸을 흔들고, 몸은 그 흔들림 위에서 노를 저어. 그러니, 그 위에서 쓰는 시는 절반은 바다의 것이지. 어린 날 내 조막만한 손을 쥐고 모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가르쳐주던 아버지처럼 누군가 백지의 망망대해 위에 뜬 내 손을 쥐고 있다는 믿음은 있어.

박성우 학교도서관저널 독자들께 한 말씀 해 주시죠?
손택수 세계일주여행을 떠난 장 콕토가 현해탄의 선상갑판에서 찰리 채플린을 만난 일이 있는 모양이에요.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두 예술가는 한 마디 말도 나눌 수가 없었지요.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았거든요. 보다 못한 채플린의 부인이 통역을 자청하고 나섰지요.

그런데 채플린이 조용히 부인을 가로막았어요. 통역이 되지 않는 상황, 한 마디 말도 주고받을 수 없는 그 상황이 그들을 더 간절하게 한다고. 그 간절함이 오갈 수 없는 서로의 내면을 오가게 하는 힘이 된다고요. 채플린이 참 대단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내 안의 숱한 나들사이, 세상과 나 사이, 그리고 지금 이 대담을 읽는 독자와 나 사이에도 통역이 안 되는 벽이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벽 때문에 좌절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벽이 있기 때문에 벽 너머와 벽을 둘러싼 세상을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으니까요.
박성우 와 너무 근사한 말인 걸. 긴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
손택수 아형도 애썼네.

손택수 1970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난 뒤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이 있다. 신동엽 창작상, 이수문학상, 오늘의젊은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박성우 1971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원광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거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면서 아동문학을, 2009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저작 및 출판 지원사업에 청소년시가 당선되면서 청소년문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거미』, 『가뜬한 잠』, 동시집으로 『불량꽃게』, 청소년시집으로 『난 빨강』이 있다. 신동엽창작상, 불꽃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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