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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 박진숙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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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7-02 14:31 조회 5,2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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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두었나요?
 저는 20대부터 NGO에서 활동했어요. 1990년대에는 장애 어린이들이 있는 시설에서 일했는데, 30대에 접어들어선 건강이 안 좋아져서 일을 그만뒀어요. 그즈음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줌마네’에서 활동하며 글쓰기 과정을 공부하고 자유기고가로 일하다가 대학원에 갔어요. 대학원에서 중2 학생들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면서 청소년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 대부분 아이들이 중2 즈음에 진로를 결정한다는 걸 알았어요. 스스로 애쓰지 않기로 결정한 아이들에게 학교는 그냥 자는 곳이 되더라고요. 그로부터 1년 후에 청소년을 주제로 석사 졸업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하자 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여 관찰을 하러 기획 회의에 갔어요. 연금술사 프로젝트는 대학에 가지 않은 청소년과 청년의 사회적 자립을 돕는 1년 과정의 진로교육 프로그램으로, 2009년 9월부터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연금술사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난 청소년들의 인상은 어땠나요?
 1기로 참여할 청소년들을 찾아다니는 게 제 일이었어요. 인터뷰도 해야 하고, 시설 상황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초기 연구를 오래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청소년들을 오래 만나면서, 시설 청소년들만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안학교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졸업생 이런 식으로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모집 범위를확장했어요. 시설 청소년들을 위한 직업 훈련 학교 같은 곳에 갔는데, 중학교 2학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경험을 했어요. 스무 살짜리 아이들이 다 자고 있더라고요. 그 아이들에게 왜 자고 있냐고 물어 보니까 “어차피 대학 가야 하니까 자고 있다.” 라고 말하더군요. 대학에 가서도 공부할 테니까 직업 훈련 시간에 잔다는 거예요. 직업훈련 방식이 실제 교육 현실과 맞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2009년 혹은 2010년즈음이었는데, 당시는 대학에 안 가면 아무런 돌파구가 없는 것처럼 깜깜했던 시기였어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갑갑하겠더라고요. 주변 어른들이 대학 외의 다른 길을 믿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아이들의 직업 훈련이 얼마나 관행적이었겠어요.

청소년들이 대학 진학 외에 진로를 고민할 방법이 없다면 쉽게 좌절했을 것 같아요.
 제가 만났던 청소년들은 좌절하지 않았어요.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우리 세대는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없겠구나.’ ‘이 친구들은 새로운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점이에요.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게 어떤 상태인지 아예 모르니까요. 무언가를 위해 애쓰지 않고, 희망을 갖지않는 세대를 본다는 게 저한테는 약간 충격이었어요. 2010년쯤이었는데, 그때는 ‘꿈꾸지 않는 청소년’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을 무렵이에요. 제가 한 논문을 통해 알게 된게 있는데, 경기 침체가 왔을 때 영국의 한 마을을 연구한 사례가 있어요. 마을 전체가 한 공장에서 일했는데, 그 공장이 폐업을 하자 마을 사람들의 직업이 모두 없어졌대요. 그 마을에 인류학자들이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을 것 같아요? 먹고살기 위해 소일거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정서적으로 우울할 것 같고 희망도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살더래요.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예요. 행복감도 느끼고 불행하기도 하면서 말예요. 그 사람들에게도 일상이 있었던 셈이죠.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마을 사람들은 ‘내일’을 꿈꾸지 않았대요. 제가 그 글을 읽고 나서야 지금 청소년들의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저는 청소년들이 왜 낄낄대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가볍고, 진지하지 않고, 낄낄대며 자기 인생을 내놓은 것처럼 청소년들이 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기보다는 뭘 걱정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예요. 어른들은 당장 내일 먹고살 것에 대해 진지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기력하다고 하면서, 아이들이 웃고 울며 일상을 이어나가는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어요. 제가 7년 넘게 아이들과 같이 있었지만 여전히 다 이해할 순 없어요. 여러 부분이 저와 다르기에 그 상태를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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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가게에서 노동을 공부하며 일하는 삶이 새롭게 느껴져요.
 사람들은 “경쟁하는 건 나쁘지. 경쟁하는 대학생들은 보기 흉해. 오히려 이렇게 사는청소년들이 더 좋지.”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게 다 관념이에요. 관념 속에 갇혀서 “이런 친구들이 훨씬 더 잘 살지.”라고 하는데, 그들에게 실제로 이렇게 사는 청소년들을 주변에서 본 적 있는지 물어보면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이런 청소년들이주변에 없다는 건, 이 청소년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말과 같은 거예요. 내 옆집에 이런 청소년들이 없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대학에 가려고 노력하고, 저희와 같은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거든요. 그렇기에 발견을 못하는 거죠. 모든 청소년들이 대학에 가야 한다거나 다 좋은 곳에 취업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계선 안에 있다는 뜻 이에요.

소풍가는 고양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열다섯 명 정도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일 년 과정을 다 마친 청소년들은 서너 명밖에 안 됐어요. 아이들이 왜 이렇게 중도하차를 많이 하는지 원인을 분석하니, 프로그램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이 청소년들과 끝까지 과정을 함께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때 졸업한 청소년들이 “우리에겐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생계가 정말 중요했던 거죠. 스무 살이 넘었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사회로 나가는 사람을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해야 하는 사람’과 같은 말이라고 여겼던 거예요. 그런데 청소년들이 생각하기에 교육을 받는다는 건 온전한 성인이 아니라는 뜻인 거예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가장 힘든 일이었어요. 학교를 그만두면서 온전하게 생활비를 버는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교육이라는 걸 통해 그걸 계속 유예시키고 있던 거죠. 그래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직접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고, 돈 버는 행위가 교육이 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대개는 교육 이후에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저희는 “돈을 벌면서 교육하자.”가 되어 가게를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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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가게 일을 하면서 어떻게 달라졌나요?
 도시락 메뉴를 개발하는 등 수동적이던 청소년들이 조금씩 바뀌었어요. 그렇게 하는 데에도 수년이 걸렸지요. 소풍가는 고양이가 하지 않은 건, “결과물을 내라.”라고 말하는거예요. 요리학원을 다니게 되면 대부분 메뉴를 개발하게 되지만, 우리 가게에서 메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청소년들마다 결이 다른데다가 적극적으로 가게에 열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적극적이지 않은 사람도 있기에 일하는 관계에서 갈등이 많았어요. 그런 청소년들이 가게를 직접 하면서 조금씩 능동적으로 변하는 과정들이 의미 있었어요.

책 속에서 단미가 “저희가 지금 노동하는 거예요? 아니면 교육을 받는거예요?” 물어보는 대목이 나오는데 어떻게 대처했나요?
 그 질문을 한 청소년이 속했던 기수가 연금술사 프로젝트 2기거든요. 가게를 창업한 청소년들이 2기에 속하는데, 5월부터 12월까지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했어요. 1년 후면 소풍가는 고양이를 나가는데, 당시 소풍가는 고양이는 교육의 형태를 띤 가게였어요. 저희는 청소년들에게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도시락 가게와는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 3개월 정도 일했더니 너무 힘들었어요. 밤늦게까지 일하고 새벽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니 노동의 강도가 강했던 거죠. 당시 하자센터에서 교육비 명목으로 청소년들에게 50만 원을 지급했는데, 모두가 이 돈을 받으면서 노동을 한다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해도 몇시간만 일하면 50만 원 넘게 받는데, 소풍가는 고양이에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하루 종일 일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셈이죠. ‘매일 설거지하고 밥하고 도시락 싸는 것밖에 없는데, 배움이라는 게 뭐지?’ ‘배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50만 원씩 받으면서 종일 있는데, 대체 내가 뭘 배우는 거야? 그럼 이게 노동이야? 교육이야?’라는 생각을 청소년들이 하기 시작했어요. 단미의 질문은 굉장히 건강한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을 함으로써 청소년들에게도 변화가 생겼어요. 교육과 노동을 분리해내기 시작한 거죠.

청소년들을 교육생으로 볼 건지, 노동자로 볼 건지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 거네요.
 그래서 하자센터, 청소년들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어요. 저는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봤어요. 수동적이던 청소년들이 각자 지금 자신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 적절한 보상을 받는지 질문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때 저희는 독립을 결정했어요. 6개월동안 소풍가는 고양이의 프로그램을 노동으로 볼 건지, 교육으로 볼 건지 하자센터와 교사들이 열심히 의논을 했어요. 만약 소풍가는 고양이를 교육의 방편으로 본다면 이 프로젝트는 하자센터 소속이에요. 그러면 하자센터가 계속 교육비를 주고, 교육이 끝나면 청소년들은 교육의 대가를 받고 나가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고 한다면, 가게의 매출이 청소년들의 몫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독립을 하는 게 낫겠다고 결정했어요. 저도 하자센터에서 퇴사해서 제 월급이 없어졌으니, 도시락을 팔아 월급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어요. 그 당시 독립은 저희 모두에게 큰 결정이었어요. 생계를 가게에 거는 걸로 방향을 바꾼 거니까요.

‘청소년 주식 소유제’를 그 무렵에 만들게 된 거예요?
 그때가 2012년쯤이었는데, 협동조합법이 없던 무렵이었어요. 저는 그때 ‘협동조합 같은 주식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주식회사를 만들었고, 주식회사를 협동조합처럼 만들려면 출자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같이 주식을 소유하자.”라고 얘기하고 돈을 받고 소유권을 줬어요. 주식회사는 자기가 낸 돈만큼 소유권을 가지는 방식이에요. 돈을 많이 낸 자는 많이 갖고 적게 낸 자는 적게 가져요. 그런데 협동조합은 내는 돈이 일정하거나 똑같아요. 내는 돈이 더 많거나 적다도 해도 각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1표밖에 없어요. 그게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다른 점이에요. 저희는 주식을 동일하게 소유했고, 이윤배당도 같은 방식으로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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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게의 기본 원칙을 언급하셨는데, ‘이기적인 손익계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항목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손익계산법이라는 건 실제로 내가 투자한 돈보다 더 높은 효용가치를 내야 하는 거예요. 투자금이 배가 될수록 좋은 거잖아요. 그게 장사 세계의 논리예요. 대개 자신이 천 원 투자하면 삼천 원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알력이 생기는 거예요. “당신은 볼펜을 천 원에 팔지만, 결국 원가는 삼백 원 아니야?” 그러니 손님들이 자꾸 싸게 달라고 이야기하게 돼요. 이윤을 빼달라는 이야기거든요. 예를들어 한 회사에서 사람을 고용해요. 상식적인 회사라면 어떤 사람을 고용할까요? 일을 잘하는 데다가 월급보다 훨씬 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원하겠죠. 백만 원이 월급이라면, 보통의 기업은 삼백만 원만큼의 생산성을 요구해요. 그런데 저희는 청소년들을 입사시킬 때에 그 계산을 하지 않았어요. 제가 청소년들에게 월급을 백만 원 준다고 해도 초기에는 백만 원만큼도 일을 못할 거예요. 그러면 그때부터 가게는 마이너스가 나겠죠. 그런 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게 손익계산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 사람의 노동력이 얼마짜리인지 계산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경제적 쓸모는 결국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돈을 벌어 주느냐에 관한 문제인 거예요. 학력, 기술, 젊음 같은 것들이 생산성을 측정할 때의 보통 기준이었던 거예요. 이 모든 논리에 대해 저는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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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일기에서도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고유성까지 경제적 쓸모로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는데,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것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다고 느꼈어요.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손해가 있어선 안 돼요. 그런데 저희는 그것을 손해라고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제가 교육에서 출발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실천하려고 생각도 못했겠죠. ‘고졸에도 미치지 못하고, 기술도 없고, 능동적이지 않은 청소년이 사회에 나가면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면 대부분 먹고살기 힘들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이때, ‘그렇다면 그 청소년들이 왜 경제적 쓸모가 없느냐?’라고 다시 질문해야 해요. 이건 소풍가는 고양이에 있는 모든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예요. 경제적 쓸모는 결국 생산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벌어 주느냐에 관한 문제인 거예요. 학력, 기술, 젊음 같은 것들이 생산성을 측정할 때의 보통 기준이었던 거예요. 돈을 벌어 준다고 했을 때, 그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저희 청소년들은 이 세상에 다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에게는 “그 사람이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냐?”라는 잣대를 자주 생각해요. 이 기준으로 보면 이 청소년들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취급받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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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생산성으로 판단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실천하기가 녹록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 안에 잠재된 논리가 늘 그래왔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그랬고요. 이 청소년들이 존재해도 되고, 이 청소년들이 쓸모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오래 고민했어요. 그 경제적 쓸모가 실제로도 작동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청소년들을 생산성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써야만 해요. 매번 흔들리는 부분이지만 실천의 논리는 또 다른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에 내가 손해를 보지 않아야 하고, 뒤통수를 맞지 않아야 한다는 걸 계속 생각해요. 이 모든 논리에 대해 저는 계속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소풍가는 고양이에서 함께했다가 다른 곳으로 가는 청소년에게 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면요?
 저는 아이들과 이별하는 게 매번 힘들었어요. 너무 어릴 때부터 만나 같이 일했거든요. 갓 스무 살, 십 대 시절부터 봐온 청소년들이 계속 어린아이 같아 보이고 미완성인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올해 초에 생각이 바뀌었어요. 한 청소년이 올해 퇴사하고 싶다고 저를 찾아왔어요. 그 아이는 이제 퇴사를 하면 뭘 하고 싶다, 그걸 위해서 3년 정도 일을
했고, 일정 금액을 모았다고 했어요. 저는 그때 너는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우리는 이제 이별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때 그 친구가 마무리를 잘하고 퇴사하면서 저한테 고맙다고 얘기하고 가더라고요. 이 친구가 제게 깨닫게 해 준 게 있어요. 이별이 영영 끝은 아니라는 거였죠. 이별은 관계가 변하는 거더라고요. 소풍가는 고양이에
서 제가 돌봐야 했던 청소년이 이제 스스로를 돌보겠다고 말한 거죠. 그리고 이곳에 머물렀던 청소년들도 여기에 기여한 것이 있기에, 소풍가는 고양이 역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 친구들이 기여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정당하게 보상하거나 말해 줘야겠다 싶어요. 그 청소년들이 늘 수혜자였던 건 아니거든요. 같이 만든 거였으니까요.

지금도 청소년들이 현장 실습을 갔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에 관해 교육 현장에 있는 어른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저는 사람들이 실습생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기에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IMF 이후에 생긴 것들이에요. 인턴 제도가 생겨 버렸고, 이 인턴 제도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실습생 제도가 생겼어요.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일자리가 없으니까 일자리 대용으로 생긴 거예요. 일자리가 아님에도 일자리 모양을 띠고 있는 거죠. 기업이 청소년들을 고용한 것처럼 행세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이 청소년들은 잠시 교육받으러 와 있는 건데, 이 기간에 마치 자신이 고용한 사람인 것처럼 청소년에게 혹독하게 일을 시켜요. 이게 왜 문제냐면, 그냥 싼 값에 사서 막 부려먹는다는 걸 아무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이들의 노동은 과연 싼 건가, 싼 가치밖에 없는 건가에 대해 우리가 질문해야죠. 단미처럼요. “이건 교육인가요? 노동인가요?”라는 질문을 해야 실습생 문제가 해결돼요. 학생 스스로도, 부모님들도, 선생님과 기업가도 질문을 먼저 시작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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