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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만난 작가]박건웅 만화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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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7-03-27 10:32 조회 5,28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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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만화 작업
왕지윤
작가님께서는 1990년대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신 걸로 아는데 학생회장도 하셨더라고요. 그 즈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박건웅 제가 대학에 다니기 시작할 즘에 여러 시국 사건이 생겼고 분위기가 흉흉했어요. 우연찮게 선배들에게 끌려가서 명지대에서 시위를 한 적이 있었어요. 다 끝나고 학생들하고 함께 뒤풀이를 하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명지대 신입생이라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다함께 노래도 부르고 술도 마시고 집에 돌아왔어요. 일주일 뒤, 학교 정문에서 누
가 호외라고 뿌리는 전단지를 봤는데 그 친구 사진이 인쇄되어 있더라고요. 91학번 강경대라고 말예요. 전단지는 강경대가 경찰 쇠파이프에 맞아 시위 도중 죽었다는 기사를 다루고 있었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죠. 순간 친구의 죽음에 대한 분노보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했을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이후 3~4개월 동안 거리에서 시위했어요. 그걸 ‘5월 투쟁’이라고 부르는데 최루탄을 얼마나 터트렸는지 신촌 바닥이 눈꽃처럼 하얗던 기억이 나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참 세상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고 돌이켜 생각하게 됐죠.
강경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해 준 나름의 계기가 되어준 거네요.
박건웅 맞아요. 모든 구조에 ‘왜?’ 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됐어요. 이후로는 학생운동을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하면서 공부를 했어요.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역사에 대한 문제였어요.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살펴보면서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사 책에도 짧게 기술되어 있거나 누락된 부분이 많더라고요. 권력자의 관점으로 기록된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의구심이 들었죠. 그렇게 공부를 해나가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어요. 그중에서도 6·25 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관심이 높았어요. 언젠가는 이걸 만화로든 그림으로든 표현해 보려고 했어요. 얼결에 미술대 회장도 맡으면서 여러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소영 본래부터 만화가가 꿈이셨나요?
박건웅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고흐처럼 유명한 화가가 되어서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순수한 미술학도였지요. 그러다 대학을 마치고 군대에 갈 때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그 이야기를 담은 제 첫 작품이 『꽃』인데, 감옥에 갇힌 비전향 장기수가 죽음의 순간에 자기 삶을 생각하는 이야기예요. 그림의 표현 방식을 고민하다가 서점에서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를 발견하고 많이 배우게 됐죠. 군대 가서 콘티를 다 짰고 2부부터는 대사를 써서 표현했어요. 제대 이후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3~4년 동안 작업했어요. 1980년대 미술 운동은 곧 목판화 운동이었어요. 그래서 목판화로 찍은 것 같은 그림도 많이 그리고 걸개 그림도 많이 그렸어요. 자주 그리다 보니 패턴 이 만들어져서 만화에도 적용했고요.
왕지윤 목판화 작업을 하실 때는 실제 나무에 새기는 건가요?
박건웅 직접 나무를 파서 찍은 목판화는 아니고요, 목판화 느낌으로 표현한 거예요. 어차피 판화는 복제 작업이잖아요. 만화도 복제 인쇄물이고요. 효과만 차용하면 깎든 깎지 않든 별 의미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목판화를 선택한 이유는 ‘어둠 속에서 빛을 파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였어요. 이 작업이 역사물이기 때문이
기도 했고요. 어두운 곳에서 밝은 쪽으로 무언가를 하나씩 파내는 작업을 해보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요.
강경인 컬러와 흑백 작업을 모두 하시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나요?
박건웅 현재는 흑백, 과거는 컬러라는 의미를 담았어요. 최근엔 흑백만화 위주로 작업하고 있어요. 흑백이 무언가를 재발견하게끔 하는 부분이 있어요. 예를 들어 ‘빨강’은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색을 인식하게 하잖아요. 그런데 흑백으로 그리면서 흰색을 남겨두면 독자들이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가 남게 돼요. 그린 사람이 컬러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
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들이 감정 이입을 통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겨요. 전 컬러가 오히려 상상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봐요. 흑백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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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삶이 모인 숨은 역사를 그리다
왕지윤
어떤 계기로 『제시이야기』를 그리게 되었나요?
박건웅 막연하게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 같은 분들의 일대기를 만화로 다루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분들보다 덜 알려진 독립운동가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 우연히 상해 영사관에 계셨던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독립기념관을 찾아가 보고, 관련 연구를 하시는 박사
님과 이야기 나누다가 책 몇 권을 추천 받았어요. 그중 하나가 『제시의 일기』라는 책이었어요. 실제 있던 이야기들을 쓴 담담한 기술들이 마음에 와닿았고 특히 육아일기 부분이 좋았어요. 감동적이더라고요. 그래서 일기 형식을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을 하게 됐고 『제시이야기』를 작업하게 된 거예요.
이소영 중국에서도 취재하셨다고 들었어요.
박건웅 상해도 가고 장사도 갔어요. 상해 영사관에서 따로 준비해 주셔서 독립기념관에 계신 박사님과 같이 중국에 가서 독립운동가들이 계셨던 곳도 답사하고, 여러 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들을 직접 보고 왔어요. 그래서 이야기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었고요.
강경인 『제시이야기』를 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의 거처에 대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꽤 많아요.
박건웅 저도 조사하기 전까진 잘 몰랐어요. 임시정부는 상해에만 있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가는 곳마다 대개 다 있더라고요. 중국 정부가 임시정부 청사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고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죠. 개발의 논리로 다 없애거나 다른 걸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잘 보존해뒀더라고요. 당사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면에서 한국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왕지윤 『제시이야기』가 이전 작품과는 분위기가 달라요. 아무래도 따님을 키우시니 감정을 몰입하실 수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건웅 맞아요. 아이가 자라난 과정을 부모의 시선으로 보게 돼요. 어느 곳이나 부모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했어요. 또한 그렇게 힘든 와중에서도 아이는 성장하지요. 당시에 아이가 하나의 생명임과 동시에 나라나 조국에 대한 은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아이가 귀했기에 더 없는 사랑으로 조국의 미래를 이어나갈 수 있는 희망의 상징으로 보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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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그래서인지 밝은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전체적으로 따스한 느낌이 들었어요.
박건웅 책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폭격 있는 흐린 날을 좋아하고 맑은 날에는 사이렌이 언제 울릴까 불안해 하잖아요. 그런 일상이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된다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어요. 이 대목을 그리면서 역사라는 것이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느껴지길 바랐어요. 마지막 장면은 죽음을 의미하는 장면으로 읽힐 수도 있지
만, 제시가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 밝은 공간에서 함께 가족과 포옹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답니다.
왕지윤 작가님의 작품을 살펴보면 때로는 참담한 장면이 있어서 벅차기도 하는데 작업하시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지 않으셨는지요?
박건웅 처음엔 그랬어요. 너무 방대한 작업들이기도 했고요. 정리가 전혀 되지 않은 현장에 찾아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날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되묻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쓰라렸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고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이런 현장에 찾아가서 함께 기억해 주고 햇볕을 나눠 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들이 금세 잊히거나 또 반복될 수 있거든요. 또 한 번의 고통이 우리에게 오기 전에 누군가는 진위를 가려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행복한 작업이에요.
강경인 정말 만화를 통해 보여 줄 수 있는 힘이 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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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그럴지도 몰라요. 제가 길을 가다 죽은 고양이를 본 적이 있어요. 죽은 상태로 그대로 두면 썩거나 곰팡이가 슬잖아요. 그러면 냄새가 나니까 누가 그 시체를 천으로 덮어놓았더라고요. 그런다고 근본적인 원인은 없어지지 않지요. 누군가는 그 천을 들춰낸 다음에 그 시체를 깨끗하고 양지 바른 땅에 묻어 줘야만 죽은 고양이가 꽃으로든 뭐든 다시 피어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 작업을 단순한 만화 이상으로 보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금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 내는 작업으로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풍경들 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죠. 제가 그린 『노근리 이야기』나 『짐승의 시간』은 모두 실제 사건을 뒷받침할 증거가 별로 없어요. 이게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사건들을 겪은 사람들의 말과 기억이에요. 저는 그 말들을 이미지로 표현해서 보여 주는 역할을 해요. 아무것도 아닌 작업일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변화함으로서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거죠. 그게 만화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왕지윤 작가님의 작업이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나 증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박건웅 그 경험을 내 삶과 동일시하면서 너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한 사람이 기억하고 아는 것만 해도 엄청난 힘이에요. 몰랐던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기억하는 일도 힘들거든요. 세월호도 ‘기억하자’라고 말하잖아요. 세상에 진실을 기억하는 힘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자는 거지요. 제 작업도 결국 ‘기억하자’는 거예요. 어떤 교수님은 ‘기억 투쟁’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기억하기 위해 싸운다고요. 이 세상은 계속 잊으라고 얘기해요. 기억하기 위해서는 투쟁이 필요해요.
왕지윤 저도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면서 아이들한테 책 소개를 하곤 하는데 작가님 작품은 제가 읽어도 힘든 부분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추천하기 고민되곤 했어요. 그런데 작가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반성하게 되네요.
박건웅 저는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너무 어렵고 무거운 책만 볼 것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가벼운 작품들도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애소설도 보고요. 다양한 걸 봐야 사고의 영양분이 풍부해져요. 편식을 하지 않고 여러 영양소를 받아들여야만 건강한 생각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책도 보고 저런 책도 보는 게
자기 사고의 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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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이 독자와 마주하기
강경인 작가님의 활동 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요. 여러 분야에 걸쳐 삽화도 많이 그리시더라고요.
박건웅 <경향신문>을 통해 개설한 블로그에 만평을 올리기도 해요. 그 블로그에 올리면 경향신문 SNS 계정으로 바로 연동이 돼요. 처음엔 풍자만화를 할 생각이 없었는데, 광우병 시위에 나갔다가 머리를 맞아서 다친 뒤로 풍자만화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웃음)
왕지윤 광우병 시위 때 경찰과 대치하는 와중에 다쳐서 뇌진탕 증세를 겪으셨다고 들었어요.
박건웅 경찰에게 맞아서 넘어졌는데 집단 구타를 당했어요. 엎드린 상태에서 머리를 보호하고 있다가 군홧발에 맞아서 땅바닥에 부딪혔고, 이후에 정신을 잃었죠. 병원에 이송됐는데 피도 안 나고 멀쩡해 보였지만 일단 엑스레이를 찍었어요. 의사가 뇌진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이런 현장에선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젊었을 때는 그런
현장에서도 몸싸움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시위가 아닌 다른 여러 활동도 저항의 상징이니까요.
강경인 이오덕 선생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이오덕 선생님』은 어떻게 작업하시게 되었나요?
박건웅 누군가의 소개로 이오덕 선생님을 알게 되어 그리게 됐어요. 『이오덕 일기』라는 5권 분량의 책도 읽어가며 오랫동안 살펴보았죠.
이소영 이름을 가렸으면 이 책이 작가님 작품인 줄 몰랐을 거예요. 내용만큼 형식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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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저는 이야기에 맞춰 그림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번 다른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표현 기법이 무엇인지 찾고 만드는 거죠. 『노근리 이야기』는 한국 전쟁 이야기에다 배경이 여름이니까 피난 가는 동안 모시적삼이 땀에 젖는 느낌을 담아 보고 싶어서 그림을 번지는 느낌으로 담았어요. 『짐승의 시간』은 1980년대풍 작화 느낌이 나게 붓으로 작업했고요. 목판화 느낌보다는 필력을 살리려 했죠. 이야기에 맞춰서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해요.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왕지윤 발표하신 작품들을 살펴보면 ‘집단의 기억에 관한 일기’를 쓰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게감 있는 장편을 다수 발표하면서 어떤 소명감을 가지고 계시지 않나 싶었어요.
박건웅 학생운동을 겪으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느꼈고 무겁게 시작했어요. 내가 아니면 안 돼, 그런 마음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제가 그 소명에 깔려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좀 더 자유롭게 하고, 만화의 영역을 근현대사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더 큰 영역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나 제가 좀 더 하
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내가 정말 묻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뭐지?’ 이런 식으로 질문하면서 확장시키려 하고 있어요. 어떤 틀 안에 이야기를 가두면 제가 스스로 커 나갈 수도 없고, 답답해서 제대로 못하기도 하니까요.
왕지윤 『짐승의 시간』을 보더라도 당시 고문의 증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작가적 시선도 함께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박건웅 저는 제가 겪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이것과 유사한 다른 작품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 하고 쉼 없이 질문해요. 내가 어떤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지, 어떤 관점에서 이걸 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중요해요. 관점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예전보다는 자유롭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작업 연출도 좀 더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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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시대에서 벗어나
왕지윤
출판만화 쪽에 무게를 두고 작업을 하시는 편인데, 작업하는 시간이 꽤 길 것 같아요.
박건웅 평균 8시간 정도는 작업하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는 책을 읽거나 생각을 하거나 메모도 하고요. 작업은 주로 낮에 해요. 요즘에 밤샘 작업은 되도록 안 하려고 해요. 밤새 일하면 그 다음날엔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 하더라고요. 아예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듯이 일하는 게 효과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로 낮에 작업하려고 해요.
강경인 작가님의 만화를 읽는 저희 또래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박건웅 예전에 누군가에게 “세상에 없는 일을 할 때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할 때, 세상은 당신을 먹여 살려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게 그 사람뿐이니까요. 그런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게 중요해요. 그런 일들이 나와 잘 맞아떨어지면 더 좋은 거죠. 그 와중에 자신의 길을 찾는 것도 중요한 거고요. 돌이켜 보면 사람마다 그런 시기가 있어요. 때때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내 삶이 아니었던 것 같고,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산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나의 삶이니까,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까, 한 30살 되어서 알면 너무 늦으니까, 지금이라도 누구든 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봐요. 대학에 들어갈 정도
면 세상 돌아가는 거 이미 다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이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소영 힘들고 의미 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음)
박건웅 저야말로 이렇게 독자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일이 즐거워요. 저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버는 일 이 세 가지가 모순 없이 맞아떨어진다면 정말 행복한 삶이라고 봐요. 그런 면에서 저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행복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분도 모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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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아까부터 작가님 손을 유심히 봤는데, 먹이 많이 물들어 있더라고요.
박건웅 먹으로 작업을 많이 해서 그렇기도 하고요. 제가 긴장되면 손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서 굳은 살이 생기기도 했어요.
강경인 이명박 정권 시절에 『삽질의 시대』라는 작품을 쓰셨어요. 현재 시국도 어지러운 상황인데 지금은 어떤 시대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박건웅 촛불, 탄핵 정국 일어나기 전까지는 ‘망각의 시대’라고 생각했어요. 지도자가 자꾸 까먹으니까요. 세월호 문제도 그렇고요. 현 시점에서는 보면 망각의 시대는 아닌 것 같아요. 망각에서 깨어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이번에 저도 놀랐어요. 모든 사람이 놀라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속에 있던 분노가 터지고, 몸에 있던 항체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들이 터져 나온 거죠. 설마 탄핵이 될까 생각했는데 탄핵도 됐잖아요. 사람들의 그런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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