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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글 읽기 사람 읽기]인문학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_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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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12-30 15:21 조회 8,0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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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너도나도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할 것 없이 인문학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고 있다. 이제는 인문학이란 말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유행가 가사처럼 소비되는 인문학 바람이 불기 전에, 인문학이란 창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보라고 외친 이가 있다. 지금은 틈만 나면 책상이 아닌 밭에 나가서, 호미와 삽을 들고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며 온몸으로 인문학을 실천하고 있는 김경윤 자유청소년도서관장을 만나보았다.
홍주리 기자
 
자유+청소년+도서관?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을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도서관 문을 연 지는 한 5년 되었어요. 도서관 문을 열기 전에는 논술 강의를 했는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입시 논술책을 쓰기 위해서 사무실을 얻은 것이 시작이었죠. 그런데 문득 논술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논술은 글쓰기 시험이에요. 인문학을 소재로 글쓰기를 누가 잘하나 시험하는 거죠. 교양이나 삶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글쓰기 기술을 익히는 공부였어요. 학생들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기술만을 원했기 때문에 깊이있게 강의를 할 수 없었지요.
게다가 논술 강의는 비쌉니다.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저는 교육의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논술시장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부유한 아이들이 더 양질의 교육을 받게 되죠. 저는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은데 결과적으로 부유한 집 아이들만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회의가 들었지요.
한편으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양질의 인문학 책들을 저 혼자 읽기에는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했는데, 주변에 어린이도서관은 많은데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관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유청소년도서관’을 열게 되었습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도서관과는 좀 다른 듯한데요?
학생들이 책을 많이 빌려가지는 않아요. 강의 들으러 오는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빌리는 정도죠.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들의 방과 후 놀이터가 될 수 있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이곳이 방과 후 놀이터가 될 수 없어요. 대부분 ‘학원-학교-집’이기 때문에 주중에는 여기에 올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주말에는 몇몇 청소년들이 와서 인문학 강의를 듣고 토론도 하고 책도 빌려갑니다.
 
어떤 강의를 하시나요?
도서관을 시작할 때부터 정기 강좌를 해야겠다 싶어서 매주 월요일에 학부모,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습니다. 토요일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열었고요. 인문학이 유행하기 전부터 강좌를 시작했는데 유행을 타니까 사람들이 더 오긴 해요. 공부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모들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었어요. 자연스럽게 그 학부모들의 아이들이 제 강의를 들으러 왔어요.
기억에 남는 강의는, ‘서울대 추천도서 100선’을 함께 읽은 거예요. 그 목록을 보면 서울대 교수들도 다 읽어봤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요, 대체 어떤 책들인지 맛이라도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대부분 어려운 책들이라 고전을 만화로 정리한 책도 읽고, 제가 요약 정리한 프린트로 읽기도 했어요. 책 자체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서요. 그렇게 마라톤 같은 읽기를 끝내고, 그동안 저도 머리를 너무 쓴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몸 쓰는 일을 해 보려고 머리 좋은 아이보다 몸 잘 쓰는 아이가 대접받는 ‘청소년 농부학교’를 구상했습니다. 이는 밭에서 배우는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청소년과 인문학
도서관에서 강의를 듣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여기서 만나는 아이들은 이전에 학원에서 만났던 아이들과 달라요. 제 강의는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학원의 특강이나 시험 기간에 제 강의가 있으면 절대 오지 않습니다. 여기 오는 것은 과외활동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생전 학교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 여태껏 한 번도 고민하지 못했던 주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거니까 재미있어하긴 해요. 저는 인문학 강의로 어떤 대단한 결실을 맺으려 하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씨를 뿌린다는 마음으로 강의를 합니다. 그 씨앗들이 기억 속에 묻혀 있다가 10년, 20년 후에 문득 떠오를 때가 있더라고요. 제 경험을 반추해 보면 그래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선생님이 무심코 던진 이야기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아이들에게 살면서 중요한 가치들을 별거 아닌 것처럼 사소한 이야기 속에 담아 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가치들이 아이들의 삶에 중요한 지침으로 떠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장 열매를 맺겠다는 마음보다는 언제 싹을 틔울지 모르는 씨를 뿌린다는 마음으로 강의를 합니다.

책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은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보다는 왜 책 읽기가 부담스러운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기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고, 자기의 삶을 더욱 진지하게 풍요롭게 만드는 책이라면 읽지 말라고 해도 읽을 것 같은데요? 부담스럽다는 말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에는 해당되지 않아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즐겁다고 하지요. 고생을 고생으로 보지 않는 거죠. 게임할 때 아이들을 보세요.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서 게임을 하지만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잖아요. 자기의 삶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좀 더 정확히 해석해낼 수 있는 활동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만화 인문학이나 게임 인문학, 대중가요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의 삶과 관련된 인문학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만화나 게임이나 음악 등을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는 책 말이에요. 책이 아니어도 괜찮지만 책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그리거나, 노래 가사를 쓰는 것도 인문학적 활동이 되겠지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 나서는 거예요. ‘읽기’에서 ‘하기’로 넘어가는 거지요.
 
요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책도 많이 출간되고 학교에서 인문학 관련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데요,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학교 활동이 그만큼 폭넓어졌다는 점에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학교 공부 위에 얹혀 강제로 책을 읽고, 또 그것을 독서이력철에 기록해야 하는 의무로 머문다면 인문학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문학 공부가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쉽습니다. 학교 안에서 텃밭 가꾸기, 동네 알기, 소외된 이웃 지원하기 등 인문학적 활동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해요. 인문학 책을 읽어야 인문학적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삶 자체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교육 방법이나 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출판사에서도 인문학 서적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인문학과 관련된 책의 내용을 요약하거나 압축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들이 대부분이죠. 마치 입시를 위해 다이제스트로 공부하는 요약 책처럼 말이에요. 인문학이 삶의 깊이를 다루는 것이라면 이러한 박학다식형 책보다는 하나의 주제라도 깊이 있게 접근하는 인문학 책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지식확대형 인문학이 아니라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인문학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고전을 재해석하는 데 탁월하신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저는 제 문제의식을 확장하기 위해서, 제 삶을 보살피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읽으니까 어려운 개념 하나에 붙잡히지 않고 넘어갑니다. 보통은 어려운 개념에 잡혀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그렇게 어려운 개념은 넘어가면서 결국 글쓴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찾아냅니다. 그러
면 글쓴이가 처음 가졌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어려운 개념들을 가져다 썼는지 알게 되고, 그 개념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되면 책이 쉽게 읽힙니다. 저는 사람들이 일부러 어려운 책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태를 좀 더 섬세하게 보려고 어렵게 쓴 거죠. 저는 섬세한 결까지는 못 가더라도 섬세한 태도까지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언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읽어 나가는 거죠. 소설을 읽을 때만 감정이입을하는 게 아니라 인문서를 읽을 때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항상 언어를 현대화하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게다가 저는 글을 어렵게 쓰는 재주도 없고요. (웃음)

최근 연달아 출간한 ‘탐 철학 소설’ 시리즈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묵자·양주, 로봇이 되다』, 『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는 한 번 들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게 탐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주로 고전을 남긴 사상가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인데 형식은 무한히 자유롭습니다. 옛 인물을 현대적 배경에 놓고 써도 되는 자유로운 콘셉트입니다.『스피노자, 퍼즐을 맞추다』는 스피노자적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지역아동센터에서 그의 철학을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주인공이 아이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데, 책을 쓰던 당시 제가 텃밭에 재미를 붙일 때라 그런 것 같아요. 『박지원, 열하로 배낭여행 가다』는 마부 창대가 화자인데 이미 그전에 창대를 화자로 한 그림책도 나와 있었어요. 그 책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쓴 거라 너무 쉬워서 ‘열하일기’의 정신을 다 담아내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역시나 제 책은 청소년들에게 반응이 좋더라고요. 『묵자·양주, 로봇이 되다』의 경우 워낙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서, 21세기 로봇과학의 미래를 붙여 복합주제로 갔는데 의외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이 책을 주제로 한 강연 신청도 꽤 많습니다.

이외에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쓰셨는데, 꾸준히 집필을 하고 계신 건가요?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레시피』, 『처음 만나는 우리 인문학』, 『처음 만나는 동양 고전』은 5년에 걸쳐 썼어요. <삶이 보이는 창> 잡지에 무려 20년 동안 주제를 바꿔가며 지금까지도 연재를 하고 있어요. 제 글을 연재할 수 있는 잡지가 있어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가 자기가 쓰고 싶어 하는 글만 쓰면 무한정 게을러집니다. 왜냐면 작가들은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거든요. 마감에 쫓기지 않는 글은 명문이 없다고들 해요. 마감이 있어야 짧은 시간에 집중하게 되고 좋은 글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농사짓는 인문학자
책 쓰랴, 강연하랴 바쁘실 텐데 그 와중에 텃밭에서 작물을 가꾸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나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는 7년 되었습니다. 제 강의를 들었던 분이 남는 땅이 있는데 농사를 지어보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첫 해에 수확이 괜찮았어요. 꽤 먹을 만큼 수확을 하고 본격적으로 농사짓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두 번째 해에는 대안농법을 시도했는데 저 같은 초보가 할 만한 게 아니었어요. 결국 그 해는 망쳤지요. 그 후에 고양도시농부네트워크에서 하는 농부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고양시는 농사를 짓는 인구가 꽤 많습니다. 많게는 천 평 단위로 짓는 분들도 있고 조금씩 규모는 다르지만 도시농업 공동체가 꽤 많이 구성되어 있어요. 저도 거기에 끼어서 도시농업 선배들한테 농사의 노하우도 배우고, 품앗이도 다니면서 농사가 뭔지 알게 되었어요.
 
농사짓는 게 힘들지 않은가요?
밭에서 흘리는 땀은 헬스클럽에서 흘리는 땀보다 훨씬 좋은 땀입니다. 이 땀은 작물로 우리에게 보상해 주니까 일거양득이죠. 도시농업은 직장인들 같이 머리만 주로 쓰는 사람들에게 제일 좋습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면서 자기 몸을 인식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활동이지요. 텃밭은 치유가 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나서 성격이 좋아졌습니다. 까칠했던 사람들이 2~3년 농사를 지으면 땅의 기운, 생명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유순해집니다. 물론 100% 그런 건 아니고요. (웃음)
 
앞으로 펼치고자 하는 활동이 궁금합니다.
두 가지 목표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제 나이에 맞는 인문학을 계속 공부하는 겁니다. 늙어가면서 공부를 계속 해 나가는… ‘실버 인문학’이라고 저는 표현하지요. 늙음의 철학, 늙어감의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늙어가듯이 제 인문학도 나이가 먹어갈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사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그 혁혁
한 공을 세우는 것이 농사라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하고 농사도 짓고 술도 마시면서 늙어 간다면 늙음이 즐거워지지 않을까요. 또 다른 목표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굉장히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직 학교와 가정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테두리 안에 있지만 곧 불친절하고 위험한 사회로 내던져질 거예요. 지금의 3포, 5포, 7포 세대처럼요. 아이들이 지옥안에서도 놀 수 있는 몸과 정신을 생산해 내는 것
이 중요합니다. 살아남기보다는 즐겁게 살기, 그 즐거움은 이전 세대의 즐거움과는 조금 다르겠지요. 그리고 무릎 꿇지 않고 살기 또한 중요합니다. 자존감을 지켜나가면서 사는 것이죠. 전통적 의미의 공동체가 아니라 위험사회에서
같이 버텨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의 위계질서나 유교적 이념, 재산권으로 묶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을 돕고 그런 공동체를 가꿔나가고 싶습니다.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이든, 글을 쓰는 일이든, 농사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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