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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고통과 소통의 내러티브_ 『나의 작은 인형 상자』정유미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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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09-21 15:44 조회 9,02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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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면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햇살의 부드러운 유혹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만남을 갖기 위해 자신과의 외로운 대화를 시도하는 소녀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림책으로 건너간 애니메이션을 통해 독자와의 다양한 채널을 시도하는 정유미 작가. 책 밖에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책 속 소녀들을 만났다.
 
인터뷰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이선미 인천 경인여고 디자인교사
김은진 인천 경인여고 영상디자인과 3학년
이하연 인천 경인여고 영상디자인과 3학년
 
정리 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그녀의 그림 상자, 볼로냐를 만나다
왕지윤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2년 연속 라가치상을 받으셨습니다. 라가치상은 어떤 상인지,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수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유미 볼로냐 라가치상은 아동문학상이고, 네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픽션과 논픽션, 뉴호라이즌과 오페라 프리마죠. 이 상들은 개인이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스에 참가한 출판사에서 출품합니다. 작년에 수상한 『먼지 아이』는 뉴 호라이즌 부문 대상으로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나라의 책에 수여하는 상이었어요. 『나의 작은 인형 상자』는 이야기가 강렬해서 픽션 쪽으로 지원했는데, 올해 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선미 애니메이션을 통해 여러 채널로 인지도를 넓혀 오셨는데, 이번 수상으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그리고 국제적으로 독자를 갖게 되셨는데 인기를 실감하시는지요.
정유미 그런 일은 별로 없고요. 수상 전후로 인터뷰를 많이 하고, 일상적인 작업을 이어나갔습니다. 지나간다고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웃음) 이번처럼 상을 받으러 나갈 때 아니면 작업실이자 집인 이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전보다는 작업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긴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던 작업들에 도움을 주니까요. 또한 수상 소식이 다음 책 출간을 수월하게 합니다. 만약에 이번 책이 충분히 팔리지 못하면 다음 책 출간하는 기간을 당길 수 없을 테니까요. 다만 책으로 출간하는 작업은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습니다.
왕지윤 혹시 라가치상 수상이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았는지요.
정유미 언론 노출이 많이 된 편임에도 불구하고, 기대만큼 판매로 이어지진 못했어요. 라가치상은 아동문학상인데, 저희 책은 전형적인 아동문학이 아니다 보니 시장이 약간 애매했던 모양입니다. 원래 제 작품을 좋아하셨던 분들과 제 연령대 여성분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이를 둔 어머님들을 잘 공략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요. (웃음)
김은진 소장하고 싶은 아름다운 책인데, 책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웠어요.
정유미 저도 아쉬워하는 점입니다. 좀 더 대중적인 책을 내야 하는데, 포맷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DVD도 있고 양장을 하니 그 과정에서 제작 비용이 많이 상승했습니다. 소장하시려는 분들을 배려하는 준비도 고민 중입니다.
이하연 제 나이 때 작가님은 어떻게 보내셨을지 궁금해요.
정유미 입시 준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미술 쪽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진로를 결정했는데, 정신이 없었고 조금 더 내향적으로 변했다고 할까요. 사춘기 때고 꽤 힘든 시기를 보내서 다시 겪어야 한다면 못 할 것 같습니다. 그림 그리기는 좋아했지만 전공으로 선택하려 했던 건 아니었죠. 주변에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는 좋아하셨지만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불안해하셨어요. 어머니의 영향인지 준비하면서도 저 역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김은진 학생이다 보니 부모님 반대와 경제적 수입에 대해 고민을 안 할 수 없어요.
정유미 그 점에 대해서 선뜻 괜찮아, 라고 말해 주긴 힘들어요.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알지도 못합니다. 저도 미대에 가서 공부를 했지만 졸업 후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친구들은 소수고, 나름대로의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어머님이 용돈을 끊으셨는데, 제가 서양화 전공이다 보니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어요. 공부하는 동안 계속 알바를 병행했죠. 그러다 보면 기회가 생기는데, 그 기회를 잡으면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죠. 길게 보면 버티기 힘들지만 그렇게 해나가야 해요.
이하연 힘든 생활을 하다 보면 슬럼프가 오지 않나요?
정유미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심한 슬럼프가 왔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지고 고민이 길어져 6개월 정도 지내고 보니까 ‘아 이건 답이 없구나. 하루하루 생각하면서 해야겠다.’라는 자연스런 깨우침이 생겨났어요. 그렇게 마음먹은 후로 심적으로 많이 편해졌습니다.
 
연필로 그려진 내면의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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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나의 작은 인형 상자』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듣고 싶네요.
정유미 어릴 때 인형 상자를 직접 만들었어요. 제가 인형을 굉장히 좋아하고 인형놀이도 좋아했는데, 언니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제 친구들 중에는 언니 것을 물려받은 아이들이 많았는데 저는 엄마 아빠가 사주지도 않았죠. 상자 속에는 잡동사니들을 모아 두었어요. 그런데 책에 나온 것처럼 어느 날 친구들이 보여 달라고 하는데, 그 순간 너무 창피해진 거죠. 제가 만든 거니까 예쁘지도 않고. 그래서 안 보여 주었는데 그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서 작품을 만드는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이선미 애니메이션 작업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정유미 대학에서 서양화 전공을 하고 있었는데, 졸업하는 해에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영화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2년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졸업작품으로 만든 것이 .<나의 작은 인형 상자>였습니다. 작업 기간은 길지 않았어요. 심사 제도가 있어서 심사를 통과해야 진행할 수 있었는데, 심사에 몇 번 떨어지면서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졌어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고민할 틈 없이 시간에 맞춰 끝내야 했으니까요. 이후에 애니메이션을 몇 편 만들었고, <먼지아이>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2000년에 책을 만들고 나서 나머지 작품들도 책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왕지윤 『나의 작은 인형 상자』의 경우 『먼지 아이』보다 선이 훨씬 풍부해지고, 입체감도 뚜렷해진 느낌입니다. 그림에 의도적으로 어떤 변화를 담으려 하신 건가요?
정유미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사실 『먼지아이』는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대로 가져와 작업을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배경을 섬세하게 작업하지만 움직이는 것들은 많이 그려야 하니까 심플하게 그리게 돼요. 그러다보니 선택한 스타이일이고요, 그걸 책으로 옮기다 보니 인물들은 평면적으로 되었죠. 그런데 『나의 작은 인형 상자』의 경우는 다시 중요한 이야기를 만든 콘티를 짜고, 거기에 맞추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비록 페이지가 많기는 하지만 묘사에 있어서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왕지윤 『먼지아이』와 『나의 작은 인형 상자』 모두 공간 배열이 사건보다 중심에 놓인 느낌을 받습니다. 작품에서 공간 이동을 배치할 때 염두에 두는 건 무엇인가요?
정유미 이야기 구조를 짤 때 공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져서일 듯해요. 공간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편하고 재미있으니까요. 이후에 만든 <연애놀이>는 고정된 공간에서 그려졌듯, 계속 변화해 가는 과정이 있긴 할 겁니다. 다만 공간이 주는 느낌이 있으니까 이야기를 만들기도 좋고 제가 그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거죠.
왕지윤 연극 무대처럼 양끝이 비스듬히 펼쳐져 있는데 가운데 놓인 물건들은 비스듬히 틀어져 있어서 원근감이 일그러지는 기묘함도 보입니다.
정유미 사실적인 투시를 만들지 않고 그려서 그렇습니다. 그림도 사진 같은 것보다는 투시를 틀리게 그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예를 들면 민화 같은 데서요. 묘사의 디테일은 사실적인데 그런 것들이 틀어져서 생기는 효과가 사실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느낌을 가지게 하는 거죠.
김은진 유진이가 방을 나설 때마다 인물들이 사라지는 이유가 궁금해요.
정유미 그 부분에서는 책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보완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방 안의 공간을 유진이가 지닌 내면의 공간으로 보았을 때, 각각의 인물은 유진이가 지닌 성격의 일부이죠. 각자가 내면의 불안을 지녔는데 주인공이 그것을 직면하게 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는 셈이죠.
이하연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재미도 있어요. 외출을 위해 유진이가 열어 본 옷장 안에 걸려있는 옷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인물들의 복장인 듯합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벽에 걸려 있는 거북이도 인상적입니다.
정유미 맞아요. 옷장 안에 좀 더 상징적인 것을 담고 싶었는데 시간상 다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거북이는 제가 이 배경 집을 디자인 할 때 참고한 자료들이 7, 80년대 일본과 한국 주택 이미지였다 보니 그 영향을 받은 거예요. 그 당시 여러 집에서 거북이로 집 안을 장식했더라고요.
왕지윤 마지막 장면에서 세 아이를 만나는 것은 불안감을 이겨 낸 이후의 시간인가요?
정유미 마지막에 인형이 밖으로 나온 것과 동시에 유진이도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니까, 여행의 끝에 친구들을 만난 셈입니다.
이하연 애니메이션 <나의 작은 인형 상자>에서 목소리는 성우 한 분이 연기한 건가요?
정유미 연기자라서 가능했지요. 집안의 인물들은 가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유진의 모습으로 살고 있기에 한 사람이 역할극을 한 셈이죠. 졸업작품으로 영화아카데미에서 작업할 때 기사님과 성우 분과같이 작업을 했어요. 다행히 영화아카데미는 영화학교다 보니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제작비도 지원해 주고 영화진흥위원회의 기사님들이 계시고 졸업할 때는 필름으로 레코딩 지원도 받을 수 있었죠.
이선미 연출을 하신 작가님이 직접 목소리 연기를 하고 싶지 않으셨나요?
정유미 그렇게 되면 두 번 다시 보기 힘들어지죠. (웃음) 저는 성우 분이랑 하는 작업이 좋았지만 대사를 하는 것이 불편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대사 없는 작업을 했는데, 배우가 아니라 그림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어서 따로 놀기도 하고 유치해지거나 어색해질 수도 있습니다. 예민한 영역이 있어 컨트롤 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고 신중을 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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껴안고 싶지 않던 나에 대한 연민
왕지윤 <먼지 아이>는 왜 옷을 입지 않았나요?
정유미 처음에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 먼지아이에게 옷을 입혀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옷을 입으면 좀 더 캐릭터가 생기잖아요. 옷에 따라 캐릭터가 만들어지니까 캐릭터가 없는 존재여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선미 『먼지아이』의 소녀가 주저 없이 먼지아이를 구기거나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유미 사실 먼지아이라는 캐릭터는 주인공 소녀가 싫어하는 모습이에요. 변하고 싶고 거부하고 싶은 모습이라서 억압하거나 ‘내가 아니야’라며 자신과 분리하며 더 미워하기도 하는 부분이죠. 그걸 엔딩에서 수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싫지만 그것을 포용하고 좀 더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 만들고 싶어서 가차 없이 버리다가, 자신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싶었던 거죠.
김은진 작품에 내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작가님은 내면을 가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유미 사실 저라는 개인의 내면은 정서적으로 안정 되어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요. 그래서 내면의 평화에 관심이 많지요. 그게 저의 작업과도 밀접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게 작업을 하는 에너지와도 관련이 있어요. 나이가 들면서 질문과 고민이 생기는데, 그걸 곰곰이 생각해 보는 거죠.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외부에서 어떤 상황이 닥쳐왔을 때 그걸 바라보는 제가 변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고, 제가 변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작업의 주제가 됩니다. 다행히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것을 조금씩 풀어나가는 듯해요.
왕지윤 책도 다양하게 읽으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책을 선호하나요?
정유미 융 심리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령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의 로버트 존슨 작가의 책이나 그 책을 번역한 고혜연 씨의 책도 좋아합니다. 고혜연 씨가 팟캐스트에서 한 꿈에 관한 강연은 공감도 가고 흥미로웠습니다. 제 관심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왕지윤 두 책의 표지를 보면 인물들이 모두 눈을 감고 있는데, 의도하신 건가요?
정유미 표지를 선택할 때는 그냥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제가 의식하지 못한 의미가 있었던 듯합니다. 고민과 스트레스가 쌓여서 갈등이 생기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저는 잠으로 푸는 편이고 잠에서 깨어나면 어떤 변화를 느낍니다. 그리고 잠에서 일어났을 때 행동으로 옮기죠. 깨어 있지만 잠자고 있는 상태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각성하고 심리적인 변화를 목격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적인 삶에 지치면 별 생각 없이 살게 되는데 힘든 일을 겪는 순간,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도 무의식적인 선택이었지만, 영화의 시작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나 봅니다.
이하연 자신의 작품 중에 어떤 엔딩이 기억에 남나요? 엔딩 작업에 남다른 고민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정유미 엔딩은 제가 하려던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참 중요하죠. 다른 느낌의 엔딩일지 몰라도 비슷한 성장의 순간, 시작의 순간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라 여겨져요. 어떤 것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변화와 성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될 듯해요. ‘누군가가 어떤 갈등과 변화를 겪게 된다면?’ 이런 엔딩을 고민할 것입니다.
이선미 작가님의 의도와 다른 독자의 해석이나 반응을 만난 적 있나요?
정유미 이렇게도 생각을 하시네 싶을 때가 있는데 굉장히 어긋났다고 여겨질 때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발견 못한 걸 얘기해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면서 제 생각도 발전을 하게 되고 무의식적인 면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의견을 통해서 제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작업에 영향을 끼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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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변해야 할 이유
왕지윤 관찰에 대한 습관이랄까요, 평소에 사람을 살피시는 편인지요?
정유미 이미지를 관찰하는 건 굉장히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영화나 사진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편견 없이 보고 모으죠. 그런데 사람에 대해서는 제가 변해 가야 할 영역인 것 같은데, 제가 그렇게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듯해요. 어릴 때 조금은 내향적이고 오랜 사춘기를 겪었고, 대학 때까지도 제가 혼란스러워서 제 내면에 몰두하다 보니 다른 사람을 살필 여유가 없었어요. 거기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가 그런 세계에 머물 수는 없잖아요. 계속 변해야 할 이유도 생기고 조건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전엔 고집스럽게 내 안에 머물려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바꾸려고 의식합니다.
이선미 작업은 오래 하시는데, 공들인 노력에 비해 사람들은 짧은 순간에 감상해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나요?
정유미 대부분 십 분도 안 걸리는 시간에 제 작품을 감상하시죠. 저도 많은 것들을 보지만 저한테 특별한 것들이 있어요. 그런 책과 작가가 있다면 평생 찾아보게 될 겁니다. 소수에게나마 제 작품이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제 작품이 아직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면 더 노력해야겠지요.
왕지윤 직관적인 감성과 이성적인 분석 중 어떤 반응이 더 와 닿으시는지요.
정유미 일단은 두 가지가 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선은 느낌이나 직관이고요. 처음부터 분석이 가능한 건 아니잖아요. 좋은 느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엔 왜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하죠. 지레 머리로 찾으면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를 수도 있죠. 먼저 느낌으로 갖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거죠.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 이미지들을 보면서 작업 소재를 찾을 때, 꽂히면서 시작되잖아요. 많은 분들이 이유를 모르지만 어떤 이미지에 꽂힐 때가 있잖아요. 그러고 왜 끌리는지, 무엇이 매력적인지 생각합니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이하연 작업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요.
정유미 온갖 생각을 다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림에 좀 더 몰두해야 하는 것도 있고, 노동이 되는 그림도 있어요. 단순하게 그릴 때는 무의식 상태에서 그리는데, 짧고 간단한 그림인데 몰두해야 하는 그림은 그때의 감정에 치우쳐서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림을 그리면서 성공하겠다는 열망을 불태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누구한테 화났던 생각도 하는 등 감정이 복합적이고, 무의식적인 상태에 빠지기도 해요.
이하연 오랫동안 작업을 하시게 되면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힘드실 텐데요. 어떻게 재충전하시나요?
정유미 잠을 많이 자요.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최근엔 좀 줄었습니다.
김은진 작업은 주로 작업실에서 하시는 편인가요?
정유미 <먼지아이>를 작업할 때는 독서실에서 했었는데 집중이 잘 되었어요. 애니메이션은 기간도 좀 길고, 작업 자체가 좀 지루한 편입니다. 그래서 혼자 집에서하면 잘 안 돼요. 왜냐하면 집에서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청소도 할 수 있고, 잠도 잘 수 있고, 너무 편한 거죠. 그 이후론 공동 작업실에서 했습니다. 홍대 근처에 작업실을 쉐어하는 곳이 많아서 그런 곳에서 해봤어요. 혼자서도 해봤는데 그림은 가능한데 애니메이션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너무 지겨워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했어요.
이선미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정유미 일정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연애놀이>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작업이 먼저 이루어질 듯하고, 연말에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이 작업들로 인해 일정이 변경될 수 있지만 그림책으로 옮기는 작업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김은진 오늘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하연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으시고 오래 기억되는 작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유미 저도 감사드려요.

정유미
볼로냐 국제 아동 도서전에서 『먼지아이』와 『나의 작은 인형 상자』로 2년 연속 라가치상을 수상하고,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연애놀이>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2014년 한국 그림 작가로는 처음으로 라가치상 대상(뉴 호라이즌 부문)을 수상한 『먼지아이』는 2009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깐느영화제 감독 주간에서 첫 상영을 가졌고, 그 후 전세계 70여 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어드바이저로 있는 뉴욕 햄튼 국제 영화제에서 최우수 단편영화상을 받았고, 크로아티아 타보 국제 영화제에서는 그랑프리와 최우수 애니메이션 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국내외에서 10여 개의 주요 상을 받았다. <먼지아이>는 유럽 공영예술채널 Arte와 스페인 문화 채널 Televisi? de Catalunya를 통해 유럽 7개국에서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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